# 369
369화 작전명 해일(Tidal wave) (11)
여의도에 도착한 미군 수송기의 도어가 열리고 고 제독이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정 수석차관이 고 제독을 반가이 맞이했다.
“원로(遠路)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수고는 무슨, 다 좋은 나라 만들자고 하는 일 아닌가? 자네도 요즘 많이 바쁘다며?”
“모두가 바쁘지요.”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누며 활주로를 벗어나 근처에 대기한 지프에 올랐다.
“어? 자네가 모는 것인가?”
“예. 가끔씩 이렇게 몰고 다니는게 속도 풀리고 좋더군요.”
“스틱이라고 몰지 못하겠다고 그러더니….”
“‘남자라면 스틱’이라는 말도 이해가 가더군요. 아직까지는 차가 흔하지 않아 길이 안 막혀서 그런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고 제독의 웃음소리와 함께 출발한 지프는 호위 차량들과 함께 여의도 공군기지를 벗어나 한강대교를 건너 종로로 향했다.
“그래… 듣는 사람도 없는 것 같으니 좀 물어보도록 하지, BS의 동향은 어떠한가?”
“여전히 런 어웨이와 접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런 어웨이는 슬금슬금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돌아와?”
“임정 공약 있지 않습니까? ‘독일과의 전쟁이 끝나면 바로 헌법비준투표 시행. 이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의회를 구성하는 투표를 진행한다.’ 그것을 노리는 것이겠지요.”
“가능성이 있을까?”
“런어웨이 단독으로는 힘들겠지만, 국내 토착 세력과 연합을 한다면 의외로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분석입니다.”
“토착세력? 그렇게 조졌는데도?”
정 수석차관이 ‘토착세력’을 언급하자 고 제독은 심각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고 제독의 물음에 정 수석차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길게 보면 삼국시대 지방 호족들부터 이어져 온 이들입니다. 저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이 탄 지프는 조선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의 입구를 보며 고 제독은 정 수석차관을 돌아봤다.
“어르신들 고집도 참 대단하시군.”
“그러니까 그 긴 세월 독립운동에 매진하셨겠지요.”
“그렇겠지.”
조선총독부 청사와 서울시청, 총독 관사 등의 신식 건물이 있었지만 임정은 그 건물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는 날, 다 부셔 버리겠다!”
김 주석의 선언 아래 조선총독부 청사와 총독 관사는 텅텅 빈 채 경비병들만 건물을 지키고 있었다.
유일하게 업무를 보는 곳은 서울 시청뿐이었다. 하지만 서울 시청 역시 전쟁이 끝나는 날 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총독부 청사를 포기한 임정이 자리한 것은 조선 호텔이었다. 일본인이 주인으로 있던 것을 강제로 징발한 임정은 조선 호텔에서 필요한 행정 업무를 봤는데, 이는 의외로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 * *
“어서 오게.”
“수고가 많네.”
대회의실에 들어선 고 제독이 경례를 하자 주석과, 부주석을 비롯한 임정의 각료들이 그를 환영했다.
“급박한 순간임에도 서울에 온 것을 보니 매우 중대한 사안이 발생한 것 같군?”
“주석님과 정부의 재가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고 제독의 대답에 주석을 비롯한 각료들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재가가 필요한 사안? 무엇인가?”
“핵폭탄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습니다.”
“핵폭탄이라고!”
주석과 각료들이 모인 회의장에 말 그대로 ‘핵폭탄’이 떨어졌다.
“…그러니까, 미국은 핵폭탄을 소형화시켰지만 독일에 투하하자니 독일의 방공망 때문에 쉽지가 않고, 독일 역시 핵폭탄을 만들었지만 소형화를 하지 못해 써먹지를 못한다. 그 대신에 독일은 ‘더티 밤’이라는 방사능 오염 폭탄을 만들어 뿌리겠다고 공언했다는 것인가? 그리고 이 오염 폭탄은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기니 동맹국 국민들과 병사들의 안전을 위한다면 종전 협상을 하자고 미국에게 제의를 했고?”
“그렇습니다.”
고 제독의 대답을 들은 김 주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제안을 하면서 왜 뉴욕을 공격한 것이지?”
“미국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 제독의 말에 주석을 비롯해 회의실에 모인 모든 각료들이 동시에 중얼거렸다.
“히 총통이 실수를 했구먼.”
각료들이 서로 귓속말을 나누는 가운데 김 주석이 고 제독을 바라봤다.
“그런 상황이어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그런 방송을 한 것이구먼? 루즈벨트 대통령이야 강골(强骨)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네만, 미국 국민들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진주만 공습을 당했을 때와 거의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일본이 항복한 다음 좀 느슨해졌던 분위기가 다시 강경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고 제독의 대답에 김 주석은 가볍게 혀를 찼다.
“쯧쯧쯧. 세상만사 사람 뜻대로 되는 것 없다더니… 히 총통이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를 뒀구먼. 그런데 우리가 핵폭탄을 확보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무슨 소리인가?”
김 주석의 물음에 고 제독은 목을 축이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미국의 핵폭탄 개발에는 우리 성 부장 일행이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아시고들 계실 것입니다.”
“잘 알고 있네.”
“성 부장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에 소형화에 성공한 핵폭탄의 중량이 한반도에 실려 있는 무인기로 실어 나를 수 있는 무게입니다.”
“잠깐, 그렇다면 미국이 보유한 경폭격기들로도 운반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미국이 아무리 우리에게 호의적이라고 해도 자신들도 실어 나를 수 있는 핵폭탄을 우리에게 맡기겠는가?”
고 제독의 말을 끊으며 이병석이 모순점을 지적했다. 이병석의 말에 이청천과 김원봉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 제독은 가볍게 긍정을 하며 이병석의 말을 받았다.
“단순하게 수송 능력만 살핀다면 육군참모총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설명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독일의 방공망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미군이 가진 경폭격기로는 이 방공망을 뚫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무인기는 다릅니다. 속도도 빠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레이더에 걸리지 않습니다.”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다?”
“예. 지금까지는 아무도 이 특성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무인기의 가장 위협적인 부분이 바로 이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군이 가진 폭격기들로는 독일의 방공망을 뚫기가 힘이 들지만 우리는 뚫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흐음….”
김 주석은 생각에 잠겼다. 한편,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청천이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미국 대신 나서서 독일에 핵 공격을 가해야 하나? 이유가 있나? 단순히 동맹국이기 때문이란 말 말고, 우리의 국익(國益)을 생각했을 때 말이야.”
“유럽에 주둔한 우리 병사들의 안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방사능 오염폭탄의 제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히틀러는 쓰겠다고 말한 이상 반드시 사용을 할 인간이고 말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독일의 전투 능력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잘못하면 소련이 부활할 수 있는 계기를 우리가 만들어 줄 수 있네. 독일보다는 소련이 우리에게 더욱 큰 위협이야.”
이병석은 소련을 언급했다. 그로서는 저 멀리 있는 독일보다는 소련이 더욱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소극적으로 기다리고만 있으면 우리 병사들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거 참… 그게 참 애매하군….”
이 병석이 말을 흐리며 생각에 잠기고 있을 때, 김원봉이 뒤를 이어 고 제독에게 질문을 던졌다.
“핵폭탄이라는 것이 참으로 강력하고 탐이 나는 무기라는 것은 인정하네. 그리고 그 핵폭탄은 지금 미국만이 연합국에서 유일하게 가지고 있지. 우리가 핵폭탄을 보유함에 있어 정당성을 가지게 할 명분이 있나? 중국과 소련 공산당의 위협을 명분으로 삼으면 만주에 있는 미군 때문에 억지를 써야 하네.”
“소련은 몰라도 중국 공산당이 보유의 명분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만주에는 미군이….”
“중국은 바다를 건너와도 됩니다. 서해가 그렇게 넓은 바다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모택동이 우리에게 적대감을 가진 것은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모택동은 장개석이 상대를 하면….”
“장개석은 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
“저로서는 주석님과 여러분들이 이렇게 주저하시는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언제나 ‘자주(自主), 자강(自强)’을 염원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좋은 기회를 주저하시는 것입니까?”
“그 핵폭탄 한 발의 위력이 어떠했는지를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일세.”
일본이 항복문서를 조인한 다음, 김 주석과 각료들은 일본을 방문하면서 핵폭탄과 폭격으로 쑥밭이 되어 버린 일본의 참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김 주석은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어 갔다.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에 핵폭탄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 잘 아네. 그렇기 때문에 주저하는 것일세. 과연 미국이라는 초강국이 핵폭탄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우리와 나눌 것인가? 만약 나눠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미국에게 내줘야 하는가? 혹시나 또 다른 종류의 식민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선린(善隣)으로 이어갈 미래가 아니라 경계와 압박의 미래가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아니, 핵폭탄을 가진다고 모든 것이 다 잘 될까? 그 힘에 취해 팽창주의를 취하면서 자랑스러운 조국이 아니라 악당 국가로 만들어 버리는 것 아닐까? 이런 걱정 때문에 주저하는 것일세.”
김 주석의 설명에 고 제독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역시나 엄혹(嚴酷)한 국제 관계를 몸으로 겪었던 이들이야.’
교묘하고 세련되게 후려치던 21세기와 달리 ‘야만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대놓고 제국주의를 표방했던 국제 관계를 몸으로 겪은 이들이 눈앞에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이상보다는 현실을 더욱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고 제독이 입을 열었다.
“주석님과 의원 여러분들이 걱정하시는 바를 잘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소관(小官)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핵폭탄을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게서 얻어 내던가 아니면 독자 개발을 하던 말입니다. 미국이 원폭을 만든 이상 소련도, 중국도 원폭을 만들 것입니다. 스스로 연구를 하던 기술을 훔쳐서든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됩니다. 소련, 중국과 국경이 맞닿은 우리나라입니다. 아무리 미국이 우리 동맹이라고 하더라도 바다 건너입니다. 만약의 일이 벌어진다면 늦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핵이 있다면 중국과 소련은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초기에는 반대가 강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핵보유국이 많아지는 순간, 미국은 자신들과 힘을 합칠 수 있는 핵보유국이 하나라도 많을수록 좋은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손을 내밀 것입니다.”
“외교로 해결을 하는 방안도 있지 않은가?”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면 외교도 힘을 못 씁니다. 특히나 중국이 상대라면 말입니다.”
“그놈의 중국이 끝까지 문제로군.”
고 제독의 대답에 김 주석은 작게 중얼거렸다.
거의 병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21세기 출신들은 공통적으로 심각한 혐중(嫌中)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임정의 독립운동가들도 한반도에 있던 자료들을 통해 21세기 중국의 패악(悖惡)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기록으로 본 이들과 체감(體感)을 한 이들의 정도 차이는 심각할 정도로 간극이 넓은 상황이었다.
“그래… 그래서 제독은 우리가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로군? 그렇다면 제독은 개인적으로 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솔직히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핵무기는 애물단지입니다. ‘계륵(鷄肋)’입니다. 개발과 제작에도 많은 자금이 들어가지만 수명과 위력을 유지하는데도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신생대한민국의 경제력을 생각한다면 한반도와 함께 양대 애물단지가 될 상황이 큽니다. 하지만 외교나 국방에 실어 줄 힘을 생각한다면 핵폭탄은 돈과 같습니다.”
“돈?”
“돈이 행복을 주지는 않지만 근심은 많이 줄여주니까요.”
“그렇기는 하지….”
고 제독의 대답에 모인 이들 모두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뒤, 정 수석차관이 고 제독을 찾아왔다.
“워싱턴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같이 가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