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7
357화 르망 포켓(Le Mans Pocket) (6)
‘샤또 드 보상(Château de Beauchamp)’으로 후퇴해 전열을 재정비하려는 독일군과 포위망에서 빠져나가려는 것을 막으려는 미군과의 1차전은 독일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독일군 위장 부대로 인해 연합군들은 혼선을 겪었고, 그 혼선을 틈 타 독일군은 무사히 르망 포켓(Pdcket)의 주둥이가 닫히기 전 포위망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직 작전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최대한 빨리 독일군을 쫓아 포위망을 완성시킨다!”
워커 사령관과 리지웨이 사령관의 독려 아래, 연합군들은 최대한 추격 속도를 높였지만 24시간의 차이를 좁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 독일군이 아무 생각 없이 후퇴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습이다! 지원이 필요하다!
-매복이다! 지원을 보내 달라!
“또 당했군….”
스피커를 통해 튀어나오는 지원 요청에 벌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망치는 독일군을 잡기 위해 미군이 급히 움직이자 독일군은 매복을 통한 ‘치고 빠지기’ 작전을 아주 절묘하게 운용했다.
옆에서 통신을 같이 듣고 있던 빨갱이와 창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야 원…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우리하고 영국군 LRDG(Long Range Desert Group. 장거리 사막 전투단)한테 배운 것을 확실하게 써먹는데?”
“이 자식들… 차량을 아주 기가 막히게 써먹어.”
창의 말처럼 독일군 기습조들은 차량을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다. 선두에 선 미군 기갑 전투단의 자주포들이 사전 제압 포격을 가하면 후다닥 사거리 밖으로 물러났다가 포격이 끝나면 재빨리 적당한 매복 장소로 이동해 몸을 숨겼다. 그런 매복조들의 주력 무장은 7.5cm Pak40과 판처 파우스트, 그리고 MG42였다.
독일군 매복조들은 연합군 전차들의 완벽한 파괴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기동 불능을 노리고 공격을 가했다.
캐터필러와 포신을 파괴당한 전차들은 그 자체로 진격로를 막는 방해물이 되어 버렸다.
“지독한 놈들….”
독일군들은 절대로 흥분하지 않고 캐터필러와 포신만을 노렸고, 훌륭하게 작전을 완수했다.
한국군 역시 그런 독일군들에게 한 방 멋지게 먹은 상황이었다. 이미 독일군들에게도 널리 소문이 퍼진 K1E1전차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매복해 있던 독일군들은 바로 포격을 요청했다. 후퇴에서 살아남거나, 히틀러의 명령으로 급파된 독일군의 17.5cm Kanone18들이 이 요청에 응해 집중 포격을 가했고, 그 포격에 세가 8호의 우측 휠들이 다 박살나 버리고, 세가 5호의 좌측후부 구동륜이 작살나 버리는 참극이 발생했다.
도 어르신과 그의 정비반들의 노력으로 수리는 완료되었지만, 원 준장은 K1전차들을 가장 선두로 내보내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천하의 한국군이?”
“천하의 제1독립기갑교도대대가?”
이야기를 들은 미군 장성들이 다들 의아해하자 워커 사령관이 침울한 표정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원 준장의 부대나 우리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못 쓰고 있다. 저 빌어먹을 날씨 때문에.”
원 준장이 가리킨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쉼 없이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상륙 초반과 달리 본격적인 겨울에 들어서면서 날씨는 또 다른 적이 되었다. 낮게 구름이 깔리고, 세차게 부는 바람에 한국군의 드론은 물론이고 해군이 보내 준 어벤저들도 지상에 발이 묶여 있었다. 그 결과, 연합군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상전을 치러야 했다.
결국, 독일군이 주머니에서 확실하게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게 된 워커 사령관과 리지웨이 사령관은 휘하의 장성들을 다 불러 모아 회의를 열어야 했다.
“…해서. 우리는 독일군들이 우리의 포위망을 벗어났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독일군들이 포위망을 벗어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워커의 발언에 회의실 안 여기저기에서 실망의 한숨들이 터져 나왔다.
“실망은 아직 이르다. 우리는 확실하게 독일 놈들의 전력을 압도하고 있다. 이번 실패는 우리가 우리 능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따라서, 제군들….”
잠시 말을 멈춘 워커 사령관은 장성들을 노려봤다.
“이제부터는 이를 악물고 제대로 해 보자. 워싱턴을 의식해 조심스럽게 움직이지 말고, 최대한 악착같이 독일 놈들을 물고 찢어발겨 버리도록 한다.”
워커 사령관의 말에 이어 리지웨이 사령관이 말을 받았다.
“동맹국 민간인의 사유재산 보호와 같은 정치적인 문제는 이제부터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시가지의 블록 하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지운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의 승리와 병사들의 생명이다.”
워커와 리지웨이의 결단에 따라 연합군의 이동 방식이 바뀌어 버렸다. 지금까지는 도로 위로 다녔다면 이제부터는 도로는 단지 이정표일 뿐이었다.
연합군의 모든 부대는 도로 좌우로 넓게 퍼져서 도로를 덮어 버리며 이동을 하게 될 것이었다.
“이번 르망 포위전을 보더라도 압도적인 병력들이 길을 따라 움직이다 교통 정체에 빠져 버렸다. 좁은 장소에 많은 병력들이 몰리다 보니 독일 놈들의 위장 부대가 설칠 틈을 만들어 준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저 앞에 깔린 평야가 다 길이다! 길은 단지 이정표일 뿐이다!”
“농지 파괴나 기타 사유재산 침해는 저기 앉아 있는 변호사들에게나 맡기고 우리는 독일 놈들을 잡아 족치는 일에만 신경을 쓰도록 한다! 그 시발점은 르망에서 도망친 쥐새끼들을 다 때려잡는 것이다! 이번에는 놈들이 도망갈 생각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Yes, sir!”
워커 사령관과 리지웨이 사령관의 단호한 결단에 장성들은 큰소리로 화답했다. 회의실 한쪽 벽에 앉아 있던 법무관들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은 것은 덤이었고.
* * *
회의실에서 연합군의 높으신 분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을 때, 벌레 일당도 벌레의 텐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사령관들이 놓친 독일 놈들은 정체가 뭐지?”
“그건 또 무슨 소리? 이미 포로들을 통해서 알잖아. 무장 SS들하고 독일 국방군들인 거.”
벌레와 빨갱이가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것을 본 창기는 말을 이어갔다.
“그건 아는데. 생 나제르에서 만난 독일군들도 질겼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어. 거기다 포로로 잡힌 독일 애들 말에 따르면 동부전선에서 다 털어먹은 다음에 후방에서 신병 채우고 있던 부대라고들 했잖아. 실전 한 번 겪으면 신병들도 프로가 된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예상 이상이잖아?”
창기의 지적에 벌레가 답을 내놓았다.
“다들 메이커 부대잖아. 제1, 제2 SS전차사단에 그로스도이칠란트란다. 메이커 중에서도 메이커들인데 신병들도 품질이 다르겠지.”
“이것들이 메이커 부대 소속인 것은 아는데… 뭔가 생각이 잡힐 듯 말 듯하고 해서 말이 좀 복잡해지는데 감안하고 들어 봐라.”
“해 봐.”
“우선 매복 작전하는 놈들 봐봐. 이것들이 발목을 물고 늘어지는 것을 보면 왜놈들도 울고 갈 정도로 끈질기고 집요해. 그런데 어느 선이 되면 재빨리 도망을 치거나 그도 안 될 때가 되어서야 항복을 하지. 그런데 도망을 치는 놈들도 왜놈들처럼 아무렇게나 도망을 가는 것이 아니라 FM대로 움직이지. 항복을 하는 놈들도 보면 왜놈들처럼 바보 인형들이 아니라 당당해.”
“당당하다고?”
“‘내 일을 제대로 끝냈다.’라는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지. 우리가 겪은 왜놈들처럼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희생양으로 끌려 나와 그냥 발목을 잡고 늘어진 것이 아니라는 거야. 커다란 작전이 있고, 자신들은 그 작전의 성공을 위한 큰 부분을 맡아 성공시켰다는 그런 당당함.”
“흐음….”
“그러고 보니….”
창의 설명에 벌레와 빨갱이는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르망에 치고 들어갔을 당시에는 연합군의 물량 공세에 정신줄을 놓은 채 포로로 잡히는 독일군 병사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잡히는 독일군들의 수는 급감했고, 전투 중 부상을 입거나 매복을 해서 연합군의 발목을 잡아끌다가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항복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포로로 잡힌 이들은 당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잠시 말을 멈춘 창기는 난방용 기름 난로 위에서 펄펄 끓고 있던 커피포트에서 커피를 따랐다. 손끝을 녹이는 커피의 열기를 즐기며 창기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궁금한 것은 르망에서 도망쳐서 저기 ‘샤또 머시기’에 진을 치고 있는 독일군들도 그런 임무의 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것이야. 적어도 3개 사단 이상의 병력이 승리를 확신하고 시간을 끄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면 그 뒤에 오는 것들의 정체는 뭐야?”
창기의 지적에 벌레와 빨갱이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동안의 침묵 끝에 빨갱이가 입을 열었다.
“동부 전선에서 오는 병력들?”
“소련을 내비 두고?”
창기의 지적에 빨갱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것 말고는 답이 없잖아?”
“그건 그거대로 위험하잖아. 서부 전선의 승리를 자신할 정도의 병력이라면 보통 규모가 아닐 텐데, 카드 돌리기야?”
“카드 돌리기가 아닐 수도 있어.”
난데없는 벌레의 말에 빨갱이와 창기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미 모스크바는 떨어졌고, 전선은 우랄 산맥을 경계선 삼아 소규모 국지전만이 벌어지고 있어. 만약 ‘국가사회주의 러시아 공화국’과 ‘자유 우크라이나 공화국’이 현재의 전선을 무리 없이 지킬 능력을 확보했다면 독일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가용 병력을 손에 넣게 된다. 그것도 어리바리 신병이 아닌 닳고 닳은 놈들로 말이야.”
“빌어먹을….”
벌레의 말에 빨갱이는 욕설을 내뱉었고, 창기는 손에 쥐고 있던 커피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커피가 쓰군.”
* * *
비슷한 시가. 영국에서도 벌레 일당이 나누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화의 주체는 앤드루스 사령관, 제8공군 사령관 윌리엄스, 그리고 신임 제8공군 사령관으로 착임한 르메이였다.
“워싱턴에서는 제8공군의 움직임이 너무 신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르메이의 말에 윌리엄스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신중한 것이 아니라 방법이 없기 때문일세.”
“방법이 없다고요?”
“자네가 아시아로 가기 전에 있었던 폭격 작전에서 제일 적었던 손실률이 얼마였나?”
“12.1%였습니다.”
“아직도 기억하는군.”
“제일 적었으니까요.”
르메이의 대답에 윌리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폭격 작전에서 5%이상의 손실을 입으면 작전은 실패한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언제나 20% 이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후에 머스탱을 충분히 배치한 것으로 압니다만?”
“그랬지. 그래서 한동안 행복했지. 하지만 올해부터 다시 악몽이 시작되었어.”
“제트 전투기들 말입니까?”
르메이의 말에 윌리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트 전투기들이 머스탱을 처리하는 동안 구식 전투기들이 폭격기들을 처리했지.”
“우리도 타이거들을 배치하지 않았습니까?”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였어.”
윌리엄스의 말에 이어 앤드루스 사령관이 말을 이었다.
“워싱턴이 일본과 중부 유럽을 선택한 이후부터 유럽 주둔 미군은 현상유지에 급급한 상황이었네.”
“하지만 상륙 작전 이전에 타이거 전투기들을 비롯해 폭격기 세력이 충분한 규모로 이동해 오지 않았습니까?”
르메이가 따지고 들자 앤드루스는 지친 얼굴로 대답했다.
“독일군들도 돌아왔지.”
“돌아오다?”
“서부 전선에서 동부전선으로 갔던 빌어먹을 에이스들이. 그리고 소련 놈들 상대로 마지막 과정을 갈고 닦은 놈들이 돌아왔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