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8
338화 르망 전차전(戰車戰) (3)
“…따라서, 저 르망에 있는 독일 놈들의 깡통들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욱 골칫거리가 된 것 같다. 제군들은 저 독일제 깡통들의 뚜껑을 따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제출하도록. 시한은 24시간이다.”
워커 사령관의 명령에 별을 단 장성들부터 단풍잎을 단 소령들까지 전차부대 지휘관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한국군은 이미 적당한 전술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국군에게 물어보는 것이 빠르지 않겠습니까?”
가장 말석에 앉아 있던 소령이 의견을 내놓자마자 워커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갔다.
“야, 이 멍청한 새꺄! 왜? 아예 네놈이 차고 있는 빌어먹을 똥 기저귀도 한국군에게 갈아 달라고 그러지? 우유병도 물려 달라고 하고 말이야! 스스로 해법을 찾아내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빌어먹을 개새끼는 내가 지휘하는 부대에 필요가 없다! 그런 좆같은 생각을 하는 놈들은 지금 당장 엿 처먹을 전출 신청서 작성해서 제출해! 바로 결재해 주마!”
욕설 가득한 워커 사령관의 호통에 지휘관들의 입은 합죽이가 되었다.
눈치만 살피는 지휘관들의 모습을 보며 워커 사령관은 이를 바득 갈았다.
“이런 쓰레기 같은 멍청이들을 데리고 전쟁을 하라니… 씨팔! 12시간 안에 대책 내놓도록! 12시간 안에 답이 안 나오면 당장 후방 보급 담당으로 보내 주마!”
“사령관 각하. 24시간 아니었….”
“지금 네놈들 상태를 보면 24시간 아니라 48시간이 돼도 답이 나올 것 같지가 않아! 지금 우리 제2 상륙군의 진격 속도를 보면 약 36시간 안에 저 빌어먹을 깡통들과 마주칠 것이다! 12시간 안에 답을 내놓고 24시간 안에 그 전술을 확실하게 습득한다. 이상!”
명령을 내린 워커 사령관은 뒤도 안 돌아보고 지휘본부 텐트를 나갔다.
“저런 개새끼들을 데리고 전쟁을 해야 한다니….”
텐트에서 하나둘 빠져나가는 지휘관들을 바라보며 워커는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지금 미군은 한국군에 중독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한국군 덕에 각종 무장들이 충실해졌고, 한국군만이 가진 장비들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많은 미군 병사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덤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군은 한국군에 중독이 되어 버렸다.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지휘관들이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근처에 한국군이 있냐’ 였다. 한국군이 없으면 그제야 해법을 찾기 위해 고민을 하는 지휘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워커 사령관도 지휘관들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고위 장성들을 제외한 장교들 가운데 이번 전쟁이 첫 실전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론만으로 알던 지식을 실전에 적용하면서, 아니면 뭔가 새롭고 참신한 전술을 생각할 때마다 그들은 한국군-정확히는 21세기 출신 한국군-들을 바라봤다.
지금만이 아니라 앞으로 약 8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다듬어지고 새롭게 탄생한 전술을 가진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워커 사령관을 비롯한 고위 장성들 대부분은 이 부분에 강한 우려를 품었다. 그래서 지휘관들을 갈궈 대는 것이었다.
“배우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네놈들은 배울 만큼 배웠어! 이제 생각이라는 것들을 좀 해 봐!”
쿵! 쿠쿵!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지휘관들 때문에 열이 오른 머리를 식히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워커 사령관은 멀리서 들리는 포성에 얼굴을 굳히고는 뒤따르던 부관을 불렀다.
포성이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부관.”
“예, 사령관님!”
“어디서 전투가 벌어진 것인가?”
워커 사령관의 물음에 부관은 바로 대답을 했다.
“아닙니다. 한국군 소속 K1전차들과 퍼싱 전차들의 사격 훈련입니다.”
“사격 훈련? 열심이군.”
“새로 공급된 특수관통탄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 그쪽으로 가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차량 준비하겠습니다.”
독일군의 신형 중전차들을 상대하기 위한 보다 효과적인 전술을 찾기 위해 미군 지휘관들이 골머리를 썩이는 동안 한국군은 그보다 작아 보이지만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표적. 1시 방향 하노마그, 거리 2km. 탄종 날탄.”
-국산을 쓸까요?
장전수의 물음에 남궁 소령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국산 쓰자고 이 훈련하냐! 미제 써! 미제!”
-옙! 장전 끝!
-조준 끝!
“쏴!”
쾅!
순간적으로 강렬한 섬광이 시야를 가렸고, 잠시 후 저 멀리 있는 하노마크 장갑차로 날아가는 하얀 불꽃이 보였다.
퍼어엉.
하노마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얼마 후, 폭발음이 들려왔다.
차장용 조준경으로 문제의 하노마크-덩치도 적당했고, 무엇보다 차체 측면에 그려진 철십자 마크가 조준점으로 써먹기 최고였다.-를 살피던 남궁 소령이 무전기의 키를 눌렀다.
“가주다. 제대로 맞았냐? 이상.”
-여기는 세가1호. 철십자 좌하단에 명중. 이상.
세가1호에서 올라온 보고를 들은 남궁 소령은 자신의 포수를 바라봤다.
“철십자 노린 것 맞지?”
“예.”
“좋아. 두 발 속사. 럭키샷인지 아닌지 보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날탄 장전!”
“장전 끝!”
“조준 끝!”
“쏴!”
쾅!
남궁 소령은 집요할 정도로 사격을 계속했다. 1.5km까지는 500m 간격으로, 1km까지는 100m간격으로, 500m까지는 10m 간격으로 사격을 이어 가며 데이터를 확보했다.
자신이 직접 지휘하는 전차의 사격이 끝나자마자 남궁 소령은 나머지 7대의 K1E1들은 물론이고 전력 보강용-이라고 하지만 관전무관의 성격에 더 가까운-으로 미군에게서 옮겨 온 4대의 퍼싱까지 시험 사격을 실시했다. 그리고 그 집요한 사격의 결과, 표적용으로 사용된 5대의 노획 하노마크와 3채의 농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격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한 리포트를 든 남궁 소령이 원 준장이 지휘본부 차량을 찾았을 때, 그를 가장 반갑게 맞이한 이는 워 준장이 아니라 워커 사령관이었다.
“사격 시험을 했다고?”
“예. 새로 배치된 특수관통탄의 명중률을 한번 테스트해봤습니다.”
“관통력은?”
“그 부분은 적당한 표적도 없고, K-274를 기반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K-274만큼의 성능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은 최강의 위력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무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가? 그래서 명중률은?”
“K1E1의 경우, 2.5km까지는 그럭저럭 원하는 부분 근처에 갖다 꽂을 수 있었습니다. 퍼싱은 2km안팎이었고 말입니다.”
“km면….”
남궁 소령의 설명을 들으며 마일 단위로 암산을 해보던 워커 사령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1.5마일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군.”
“동부 전선에서 독일 놈들은 2km 너머까지 노렸던 것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자네 말대로 OK목장의 결투와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로구먼. 참 ‘엿’같군.”
‘엿’이라는 단어까지 내놓으며 투덜거린 워커 사령관은 원 준장을 돌아봤다.
“독일 놈들의 방어선에 접촉하기 전까지 한국군이 선두를 맡아주겠소? 아무래도 눈 좋은 친구들이 선두를 맡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
“기꺼이 맡겠습니다.”
원 준장이 받아들이자 워커 사령관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은 하나 덜었고, 아! 그 레포트 좀 내게 줄 수 있나? 내 밑에 있는 ‘돌대가리들’은 그저 새 장난감 받았다고 좋아만 하지.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하는 새끼들이 하나도 없어.”
“여기 있습니다.”
“고맙네. 흠… 흠… 그렇군. 이 망할 새끼들을….”
‘엿’, ‘돌대가리’, ‘새끼들’이라는 한국어를 정확하게 발음하며 자리를 뜨는 워커 사령관을 보며 원 준장과 남궁 소령은 미군 지휘관들의 애도를 빌었다.
* * *
알론느(Allones)에서 약 13km 떨어진 샤또 드 벨르-필르(Château de Belle-Fille)주변의 작은 숲.
보카쥬라 불리는 키 작은 잡목림으로 구획이 나뉜 농지들과 군데군데 자리한 농가들, 한쪽에 옹기종기 모인 작은 촌락들을 시야에 둔 숲에는 1대의 푸마(Der Panzerspähwagen Sd.Kfz. 234)가 숨어 있었다.
문제의 푸마는 연합군이 오는 방향과 규모를 탐지하기 위해 사방에 뿌려진 8대의 푸마들 가운데 1대였다.
푸마들 외에도 약 20여 대의 사이드카들이 푸마들이 숨은 곳보다 약 2km 앞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연합군을 발견하게 되면 사이드카들은 바로 후퇴를 하면서 푸마들에게 알리게 되고, 푸마들은 그 정보를 송신한 다음 좀 더 자세하게 적들을 관찰한 다음 본대로 도망치는 것이 임무였다.
“도망치다가 야보(Jabo, 항공기의 지상공격)에 걸리면 끝장나겠지만 말이야.”
인근 농가에서 얻어(?) 온 빵과 치즈, 햄으로 점심을 때우고, 포도주로 입가심을 하며 푸마의 차장 몰트 하사는 부하들에게 농담을 했다.
“야보면 다행이게요? 재수 없이 양키들의 준비 포격에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뒤로 전진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하들의 농담을 들으며 몰트 하사는 주포탄의 장전과 후부 운전석의 조향을 담당하는 슈마허 상병의 머리를 헝클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네가 잘해야지. 내가 ‘뒤로 달려!’ 그러면 있는 힘껏 액셀을 밟으라고.”
“걱정 마십쇼. 하사님. 동부 전선에서도 몇 차례나 살아 나왔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 황금발을 믿어 보자고.”
뿌다다다앙!
“적이다! 양키다!”
한가롭게 식사를 즐기며 농담을 나누던 몰트 하사 일행은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달려온 사이드카의 독일 병사가 외치는 소리에 남은 음식과 술병들을 저만치 집어던지고는 바로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적은 어디야?”
“남서쪽에서 몰려오고 있다!”
“규모는?”
“적어도 야전군 규모!”
사이드카 병사의 외침에 몰트 하사는 물론이고 푸마의 탑승원들 모두가 하얗게 질렸다.
“나는 본부로 돌아간다!”
대략적인 상황을 알려준 사이드카가 서둘러 빠져나가자 정신을 차린 몰트 하사는 헤드폰을 쓰며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동 걸어. 소리 때문에 걸리면 안 되니까 RPM은 최저로 맞춰 놓고. 난 본부에 보고하겠다.”
“Jawohl.”
* * *
“여기 숲을 자세히 살펴봐 봐. 크기를 보아하니 뭐 하나 짱 박히기 딱 좋은 사이즈다.”
“알겠습니다.”
지도와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상황을 살피던 벌레의 명령에 부하가 드론을 움직였다. 자신이 지목한 숲의 영상을 찬찬히 살피던 벌레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럼 그렇지! 독일군 정찰 차량이다.”
디지털 지도에 마크를 한 벌레는 정찰 차량의 모습이 잘 나오는 정지 화상과 지도 데이터를 원 준장에게 송신했다.
“정찰 차량이기는 하지만 달고 있는 주포가 마음에 안 드는군.”
데이터를 받아든 원 준장은 선두에서 움직이고 있던 남궁 소령에게 데이터를 전송하며 명령을 내렸다.
“영감이 가주에게. 보낸 좌표에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도록. 이상.”
-가주가 영감에게. 접수했음. 이상.
원 준장에게서 명령을 받은 남궁 소령은 앞서 진행을 하던 정찰부대를 정지시켰다.
“닷지건 트럭이건 방탄판을 둘렀지만, 쟤는 포를 들고 있다는 게 문제지.”
선두 정찰 차량들을 멈춘 남궁 소령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주다. 세가3호와 4호는 지금 즉시 전달받은 좌표로 이동해 목표물을 제거할 것. 이상.”
남궁 소령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2대의 K1E1전차가 대열에서 빠져 나와 농지를 가로질렀다.
딱딱하게 얼은 농지 위로 육중한 K1E1은 스노우모빌처럼 빠른 속도로 푸마를 잡기 위해 달려갔다.
“탱크다!”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던 몰트 하사는 저 멀리서부터 보카쥬를 뭉개며 다가오는 전차들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아직 약 3km 이상이 거리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몰트 하사는 여유를 갖고 문제의 전차들을 관찰했다.
“저거 어느 나라 전차야? 아는 사람 있나?”
보카쥬들을 뭉개고 농지의 흙을 하늘로 비산시키며 달려오는 전차들을 보던 몰트 하사는 부하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몰트 하사의 물음에 다들 고개를 저을 때,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중동에서 살아 돌아온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자식 말이 포탑이 납작한 저차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가라고...”
“전차가 하늘을 난다!”
부하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몰트 하사는 계속 전차들을 관찰하던 또 다른 부하의 외침에 망원경으로 전차들을 바라보고는 기함을 했다.
야트막한 밭두렁을 만난 전차가 순간적으로 붕 떠올랐다가 다시 내려앉아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보던 몰트 하사가 슈마허 상병에게 소리쳤다.
“슈마허!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