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6
336화 르망 전차전(戰車戰) (1)
벨르뷰(Bellevue)를 포함한 생테르블랭(Saint-Herblain)을 정리하며 한국군은 빠르게 북쪽으로 전진했다.
“낭트의 북쪽을 막아 버린다!”
송 소장과 변 준장의 명령에 따라 한국군 병사들은 전력을 집중해 북쪽으로 치고 올라갔다. 한국군의 발목을 잡기 위해 독일군들이 끈질기게 저항을 했지만 이미 기세가 오른 한국군은 독일군들을 계속해서 북쪽으로 밀어붙였다.
한국군에 이어 강을 건넜던 미 해병대는 동쪽으로 진로를 틀어 낭트시의 서쪽 방면을 압박해 들어갔다.
낭트시의 서쪽 부분에서 일르 드 낭트를 건넌 미 육군과 조우한 미 해병대는 바로 진로를 북쪽으로 돌려 낭트시의 북쪽으로 치고 들어갔다.
“독일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다!”
“주머니의 입구를 막아야 한다!”
도망치는 독일군을 잡기 위해 미 해병대와 육군은 낭트를 포위하면서 점점 압박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생테르블랭의 미로 같은 시가지 덕에 한국군은 독일군을 소탕하는 것에 하루의 시간을 소모했다.
“갈 길은 먼데, 거참 끈질기네!”
“무슨 쥐새끼들이냐!”
쥐새끼들마냥 시가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독일군들을 처리하느라 한국군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입에 욕설을 달고 전투를 치러야 했다.
오르보(Orvault) 지역까지 밀리면서도 끈질기게 저항을 하던 독일군들은 한국군이 오르보 지역의 절반을 차지할 즈음에 갑자기 백기를 들고 항복을 했다.
바로 전까지 끈질기게 버티던 독일군들이 갑자기 백기를 들고 항복을 하는 상황에 한국군이 오히려 당황을 했다.
“이것들이 갑자기 실성을 한 거냐?”
“제정신 차린 것 아닐까?”
“진작에 제정신을 차릴 것이지.”
백기를 들고 밖으로 나오는 독일군들의 무장을 해제하던 한국군들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르보 북쪽에서 미군들이 밀고 내려온 것이었다. 계획에도, 예상에도 없던 우발적인 행동이었지만 중간에 끼인 독일군으로서는 더 이상의 저항을 할 의지도, 능력도 상실케 만드는 일이었다.
결국, 오르보 지역에서 방어전을 펼치던 독일군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미군과 한국군들에게 항복을 해야만 했다.
* * *
“제1상륙군이로군.”
미군과 접촉을 했다는 보고를 받은 송 소장은 문제의 미군이 어디 소속인지 알아챘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변 준장은 상황을 예측했다.
“아마도 제1상륙군은 부지런히 위로 달리고 있겠지요?”
“그럴 것입니다. 아니, 확실히 달리고 있겠군요. 그 ‘워커’가 사령관이니 말입니다.”
제1상륙군의 사령관이 누구인지 아는 송 소장은 확신에 가까운 어조로 대답했다.
* * *
중동 전선에서의 워커는 전도유망한 유능한 장성이었다.
미군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기갑부대의 지휘관으로서 워커는 열성적으로 한국군의 전술을 흡수했다. 그런 워커의 가장 직접적인 상관(上官)이 패튼이었다는 것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형국이었다.
명목상 중동전선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가 영국과 한국의 장성들을 조율하고, 여러 정치적인 사안을 처리하는 위치였다면 실전은 패튼이 담당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워커는 패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자기도 자기가 망할 잡종놈(God damned bastard)이라는 것을 잘 아는 작자에게 신물 나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며 배운’ 기동전술에 한국군의 기갑부대 운용 전술을 곁들이며 워커는 자신의 지분을 확실히 챙겼다.
그 덕에 워커는 ‘일본을 먼저 처리한다.’라는 목표로 시행된 ‘지름길(Shortcut)작전’에서 만주의 관동군을 상대하는 사령관의 자리를 떠맡았다. 그리고 만주로 부대를 몰고 올라가서는 관동군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렸다.
그렇게 쌓은 공로를 기반으로 워커는 ‘1950년대의 미 육군을 책임질 지휘관들’ 가운데 선두 주자로 손꼽히고 있었다.
* * *
제1상륙군이 르망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고 있을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제2상륙군은 낭트에서 여유를 즐길 상황이 아니었다.
“1개 사단을 남겨서 낭트의 정리를 하고, 나머지는 바로 르망으로 간다!”
리지웨이의 명령에 거버너 소장의 사단이 남아서 낭트의 마무리를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고, 막 상륙이 끝난 부대들까지 모두 짐을 챙겨서는 부랴부랴 르망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워커만 신날 수는 없지!”
워커와 더불어 미 육군 차세대 주자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던 리지웨이는 양보를 할 의향이 전혀 없었다.
덕분에 낭트시의 시민들은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끊어진 다리 대신에 놓인 조립교는 물론이고 한국군과 미 해병대의 도강을 위해 놓인 다리들을 통해 미군의 차량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낭트시의 주요 교통로는 미군의 전차들을 비롯한 온갖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대기는 매연으로 가득 찼다.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 피워 댄 보일러나 벽난로의 연기들-석탄이 가장 주요한 땔감이었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과 매연이 섞이면서 그해 겨울, 낭트시의 시민들 가운데서는 호흡기 질환자들이 속출했다.
* * *
르망.
“양키들이 북상 중이라고?”
“예. 적어도 24시간 안에 알론느(Allones)지역까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참모의 대답에 롬멜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알론느? 그렇게나 빨리? 주요 교통로에 지뢰지대를 설치하지 않았나?”
롬멜의 지적에 참모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설치를 했습니다. 다만...”
“다만?”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충분하게 설치를 하지 못했습니다.”
-후방이라 생각할 수 있는 프랑스 지역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지뢰지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륙으로 인해 지뢰지대를 설치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 거기에 더해 겨울이라는 계절적인 이유로 인해 매설 작업에 시간이 더욱 오래 걸렸다.
-시간적 여유도 부족했지만 지뢰 자체의 물량도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레지스탕스들이 미군에게 지뢰지대의 존재를 알려줬다.
“레지스탕스들이 문제였군...”
잔뜩 인상을 구긴 롬멜이 레지스탕스를 언급하자 회의에 참석한 요제프 디트리히가 툴툴거렸다.
“그러기에 애초에 처리를 했어야….”
“누군지 알고?”
롬멜의 말에 디트리히는 입을 다물었다.
“SS의 방식을 뭐라 할 생각은 없지만 때와 장소는 좀 생각해 줬으면 하네.”
“알겠습니다.”
“후우~.”
디트리히에게 주의를 준 롬멜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르망에 모여든 부대는 모두 4개 사단이었다.
원래 주둔하던 1개 사단에 새로운 3개 사단이 추가로 배치가 된 상황이었다.
LSSAH(Leibstandarte SS Adolf Hitler, 제1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Das Reich, 제2SS기갑사단), 그로스 도이칠란트( Großdeutschland)가 그 3개 사단이었다.
독일군 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부대들이었고, 그만큼 전공도 많이 쌓은 부대였다. 그런 전공을 인정받아 신형 6호 전차들이 1순위로 배치된 부대였다.
신형 6호 전차를 수령하고, 운용방법을 습득하기 위해 독일 본토로 돌아와 있던 3개 사단은 미군이 상륙하자마자 바로 이곳 르망으로 보내진 것이었다.
문제는 이 사단들이 그 유명세만큼이나 자존심도 강했기 때문에 지휘가 쉬운 부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싸우기는 잘 싸우지만 그것이 명령에 따라 싸운다기보다는 자신들이 속한 부대의 명예를 위해, 또는 나치당과 히틀러를 위해 싸우는 이들이었다.
무장SS면서도 나치당보다는 국가에 충성한다는 생각이 좀 더 강한 다스 라이히가 오히려 별종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양키들을 돕는 프랑스인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돕는 프랑스인들도 있지. 그들이 보낸 정보다.”
롬멜의 말과 동시에 지휘관들에게는 서류들이 분배되었다. 건네받은 서류들에 적힌 숫자들을 확인하던 지휘관들이 심각해진 얼굴로 롬멜을 바라봤다.
“이거 확실한 것입니까?”
“확실한 거요.”
“장군이 아프리카에서 써먹었던 트릭과 같은 것 아닙니까?”
독일이 북아프리카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롬멜은 전차들과 차량들을 동원한 시가행진에서 꼼수를 부렸다.
행사장을 통과한 차량과 전차들을 뒷길로 돌려서 계속 돌게 만드는 것으로 허장성세(虛張聲勢)의 교란작전을 벌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롬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인해 봤는데 그 숫자가 정확하네.”
“빌어먹을...”
“무슨 이반놈들도 아니고...”
“그 빌어먹을 이반들도 중전차(重戰車)로 모든 전차부대를 구성하지는 못했지.”
서류들을 살피던 독일군 지휘관들은 속이 타는지 연신 물을 마셔댔다. 그런 지휘관들을 보며 롬멜이 입을 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귀관들의 사단에 속한 중전차대대들이 신형6호전차로 모든 구성이 끝났다는 것이네. 그리고 다른 전차들도 최소한 4호 전차나 3호 돌격포로 구성이 되었다는 것이지. 그리고 우리가 치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방어를 하는 입장이고.”
계속해서 설명을 하려는 순간 가벼운 노크소리와 함께 장교가 들어와 롬멜에게 통신문을 건넸다. 통신문을 받아든 롬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총통이 애를 쓰셨군.”
“지원입니까?”
“독립 중전차 대대 3개 대대가 추가로 도착했네.”
롬멜의 말에 지휘관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곧 이어 다스라이히의 지휘관 하인츠 람머딩 SS중장이 한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좋은 소식이기는 합니다만, 하늘이 뚫리면 무용지물입니다. 루프트바페는 아직입니까?”
“앞으로 12시간 이내에 새로운 그룹들이 배치가 끝날 것이라고 알려왔소. 새롭게 배치된 그룹들은 모두 신형 터빈엔진 전투기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소. 그렇다면 적어도 무력하게 뚫리지는 않겠지.”
“이틀 만에 프랑스 남부의 하늘을 내준 놈들의 장담을 믿어야 할지...”
“그렇다고 우리 전차들이 하늘로 날아 올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괴링이 당장이라도 돌아올 테지.”
롬멜의 농담답지 않은 농담에 장군들은 모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괴링을 언급한 짧은 농담으로 분위기는 한결 여유를 되찾았다. 장군들의 얼굴에 여유가 도는 것을 보며 롬멜은 말을 이어갔다.
“자… 멀리서 오는 양키들을 환영하기 위해 좀 더 준비를 해 보도록 하지.”
롬멜은 장군들과 함께 르망을 방어하기 위한 배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철조망에 대전차지뢰밭, 다시 철조망, 그리고 대전차호와 매복한 대전차포 진지, 다시 철조망과 대전차지뢰밭, 그리고 다시 대전차호….”
롬멜이 설정한 방어진형을 살피던 람머딩 중장이 짧은 감상을 내놓았다.
“이반 놈들이 잘 써먹은 방법이군요.”
“유용한 것은 우리도 써먹어야지.”
롬멜의 말에 디트리히를 뺀 다른 장성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자넨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은데?”
“갑갑하게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신형6호 전차는 최강입니다! 치고 나가야 합니다!”
“양키들의 퍼싱도 만만치 않아.”
“전차의 성능이 비슷하다고 쳐도 그것을 운용하는 전차병들은 우리 애들이 최고입니다! 전차는 움직여야 자기 밥값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중전차는 더욱 그렇고 말입니다! 시작부터 웅크리고 있으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입니다!”
적극적임 움직임을 강조하는 디트리히의 말에 장성들은 슬그머니 마음이 움직였다. 롬멜서부터 시작해 자리에 모인 장성들 모두 전격전의 영광을 보고 누렸던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다시 한번 벌어진 회의를 통해 작전이 조금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