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6
326화 유럽 (16)
독일군의 콧잔등이를 한 방 때리고 옆으로 빠지는 작전이기는 했지만 전투, 특히 시가전은 언제라도 치명적인 변수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에 벌레는 한시도 쉬지 않고 상황을 전달했다.
“여기는 벌레. 유닛 45. 53. 그 자리에 잠시 대기하라. 성당의 종루를 처리하기 위해 세가6호가 이동 중이다. 잠시 대기. 이상.”
-유닛 45! 맨 다운(Man Down)! 맨 다운!
“빌어먹을! 여기는 벌레! 세가6호! 최대한 빨리 성당으로 이동하라! 부상자와 아군을 보호하라! 이상!”
-여기는 세가6호. 곧 도착한다. 성당 제압하겠다. 이상.
-여기는 세가5호. 성당으로 이동하겠다. 이상.
“여기는 벌레 유닛55, 32! 유닛 45를 지원하라! 이상.”
-유닛55. 이동하겠다. 이상.
응답과 동시에 유닛55의 K151과 방탄 닷지들이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 * *
온갖 무기들과 전략, 전술들이 발전을 했지만, 마지막은 소총을 든 보병이 마무리를 해야 했다. 그래서 시가전에 돌입하자마자 병사들은 K151과 방탄닷지에서 내려 하나씩 건물을 청소하면서 이동을 해야 했다.
유닛45에 닥친 위기도 그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이 모퉁이를 돌면 바로 성당 앞이기는 한데….”
성당으로 향하는 야트막한 경사로 모퉁이에 몸을 숨긴 유닛45의 리더는 지도와 주변 상황을 살피며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는 벌레. 유닛45.53. 그 자리에 잠시 대기하라….
때마침 날아온 벌레의 통신에 리더가 귀를 기울일 때, 뒤에 있던 부하 하나가 담벼락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리더. 저 성당에는 종루가 그다지….”
탕!
그 순간 총성과 함께 고개를 내밀었던 부하가 풀썩 쓰러졌다.
“저격이다!”
“모두 고개 숙여!”
병사가 쓰러짐과 동시에 근처에 있던 부하들이 죄다 몸을 숙였다.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숙인 유닛45의 리더는 무전기의 스위치를 누르고는 고함을 질렀다.
“유닛45. 맨 다운! 맨 다운!”
벌레에게 상황을 보고한 리더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차에 실어!”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방탄닷지가 쓰러진 병사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닷지가 옆에 서자 쓰러진 병사를 부축한 병사들이 방탄닷지의 차문을 열었다.
부아아악!
병사들이 부상병을 싣는 동안 방탄닷지의 총탑에 설치된 개틀링은 성당을 향해 총탄을 쏟아부었다.
바로 그때, 성당 맞은편에 자리한 고풍스런 석조건물의 다락방에서 모퉁이에 은신한 병사들을 향해 총탄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바아아악! 투콰쾈! 핑! 피피핑! 퍽!
“기관총이다!”
다락방에서 쏟아진 기관총탄들은 도로에 깔린 포석(鋪石)과 담장의 벽돌을 부수며 사방에 파편을 튕겼고, 리더는 다급히 손짓을 했다.
“뒤로 물러나!”
리더의 명령에 유닛45의 병사들과 길 건너편에서 나란히 움직이던 유닛53의 병사들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 부상병을 태운 방탄 닷지는 그대로 후진해 사라졌다.
“누구 또 죽거나 다친 녀석들 있냐? 죽은 놈 손들어!”
“없습니다!”
부하들의 상태를 확인한 리더는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전차야 빨리 와라….”
쿠르릉!
얼마 지나지 않아 전차가 다가오자 유닛45의 리더는 바로 무전기의 채널을 변경해 전차에 표적을 알렷다.
“여기는 유닛45! 성당 맞은편의 건물부터 제거해야 한다! 다락방에 기관총좌!”
-여기는 세가6호. 표적 확인했다. 이상.
답신과 함께 K1E1 전차의 포탑이 돌아가며 문제의 건물을 조준했다.
쾅! 쾅!
K1E1전차의 속사 2발로 문제의 기관총좌가 매복했던 석조 가옥의 다락방과 그 아래층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여기는 유닛45! 이제 성당이다! 종루가 익숙한 모습이 아니다! 성당의 다락방들을 다 제거하라! 이상.”
-여기는 세가6호 확인.
성당의 모습을 확인한 세가6호는 포신을 돌려 성당의 다락방들을 노렸다.
쾅! 쾅! 쾅!
세가6호의 주포가 성당의 다락방들이 있는 곳을 가로로 부수기 시작할 때, 유닛 45의 리더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성당에 진입한다! 이동.”
명령과 동시에 유닛45는 모퉁이를 돌아 성당이 있는 곳을 향해 다리기 시작했다. 유닛 45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길 건너편에 있던 유닛53은 빠르게 길을 가로질러 유닛45가 있던 자리를 메우고는 성당을 향해 총들을 겨눴다.
잠시 후, 세가 5호와 다른 유닛이 달려오는 것이 보이자, 유닛53의 리더가 무전기의 키를 눌렀다.
“여기는 유닛53. 유닛45를 도와 성당 제압에 들어가겠다. 후속 유닛은 성당 맞은편의 건물을 제압하라. 이상.”
-여기는 유닛55. 우리가 처리하겠다. 이상.
-여기는 유닛32. 커버하겠다. 이상,
가까이 다가오는 2개의 유닛의 답변을 들은 유닛53의 리더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우리도 진입한다. 가자!”
리더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은 성당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한국군, 아니 제1독립기갑교도대대가 전투병들을 운영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병력 운용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덕분에 한국군은 물론이고 미군까지도 연구의 대상이었다.
제1독립기갑교도대대의 전신인 필코세이프티의 기반은 PMC였다.
적은 인원으로 강력한 작전 능력을 보유해야 했던 그들로서는 정규군과는 다른 병력 운영 시스템을 만들었다.
우선은 2인 1조의 페어(Pair)-페어리로 부르는 멍청이들이 자주 나오기는 하지만-가 기본이었다.
영업(?)에 들어가 흩어지더라도 무조건 페어 단위로 움직여야 했다. 만약 동료가 죽거나 다쳐 혼자 남으면 다시금 페어를 완성해 두 사람의 호흡이 맞을 때까지 작전에 투입하지 않았다.
다음이 2개 페어가 모여 구성된 팀(Team). 페어가 인원 구성의 기본 단위라면 팀은 운용의 기본 단위였다.
SUV 1대와 1팀으로 구성한 것이 영업에 나설 때 움직이는 최소단위였다.
그리고 2개 팀이 모인 것이 유닛(Unit)이였다. 이 유닛서부터 단순한 호위가 아닌 좀 더 공세적인 영업이 가능해졌다.
가장 최상위인 그룹(Group)은 오히려 정해진 규모가 없었다. 단지, 벌레 일당을 따라 3개의 그룹으로만 나뉘어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규모로 보면 벌레의 그룹이 가장 인원이 적었고, 빨갱이의 그룹이 가장 인원이 많았다. 이렇게 나뉘었지만 어떤 작전이냐에 따라 그룹의 인원은 고무줄처럼 들쭉날쭉하게 변했다.
변하지 않는 규칙은 단 하나.
팀 이하로는 절대 쪼개지 않는다.
바로 이런 운영방침과 이를 이용한 성과에 국군과 미군이 관심을 보이며 연구를 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분대-미군은 이 분대도 반으로 쪼개서 역할을 분담했지만-에서 소대, 중대, 대대로 확대되어 가는 방식과 분해 결합이 자유로운 제1독립기갑대대의 방식, 이 둘의 장단점을 비교하는 것이 새로운 논제였다.
* * *
전차의 포격을 통해 지붕이 날아가 버린 성당에 가까이 접근한 유닛45의 리더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LAW! 정문 바로 옆 창문들을 날려 버려!”
리더의 명령에 길게 뽑은 LAW를 든 병사 둘이 자세를 잡았다.
푸슈욱! 파슛! 콰쾅!
특유의 발사음과 연기를 남기며 날아간 LAW의 탄두들은 성당 정문 좌우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진입!”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은 LAW가 만든 구멍을 통해 성당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곧 이어. 후속한 유닛들에게 자리를 넘긴 유닛 53이 성당에 진입했다.
성당과 그 인근 주택들에 대한 청소가 끝나는 것으로 한 단락을 정리한 한국군은 곧장 라 구 쉐르(Ecole La Guerche)로 향하는 도로와 그 인근 지역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한편, 도시의 방어를 맡은 하인츠 소령은 한국군의 움직임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지? 왜 저렇게 방향을 튼 것이지? 저놈들은 낭트로 가는 것이 아니었나?”
연합군이 낭트로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쪽 방면에 주요 병력을 배치했던 하인츠 소령에게 이 일은 의문이었다.
의문을 풀기 위해 하인츠 소령은 지도를 펼쳐 놓고 자신이 방어하고 있는 셍-에띠엔느-드-몽륙(Saint-Étienne-de-Montluc)의 지도를 펼쳐 놓고 도로들을 유심히 살폈다.
손가락으로 도로들을 따라가며 상황을 살피던 하인츠 소령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런!”
하인츠 소령은 대기하고 있는 전령을 보며 소리쳤다.
“양키들이 노리는 것은 낭트가 아냐! 르망이다! 당장 통신을 보내야 해!”
하인츠 소령은 허겁지겁 메모지에 메모를 작성했다.
“적 주공… 목표… 르망….”
하인츠 소령은 내용을 적은 메모지를 쭉 찢어 전령에게 내밀었다.
“지금 즉시 이 문건을 통신실로 보내! 수신자는 낭트와 르망!”
“Jawohl!”
전령을 내보낸 하인츠 소령은 지도를 보며 고민에 잠겼다.
“지금이라도 병력 배치를 바꿔야 하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츠 소령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군이 하인츠 소령이 배치한 병력이 있는 곳으로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미군이 본격적으로 시가전에 돌입하면서 독일군은 속절없이 뒤로 밀렸다.
압도적으로 많은 병력을 이용해 미군은 독일군들이 있거나 있음직한 건물들을 하나하나 털어 나갔다.
“이젠 끝이로군.”
끝이 왔음을 직감한 하인츠 소령은 전령에게 메모지를 건넸다.
“낭트로 보내라고 해.”
-대규모의 미군. 낭트 방면으로 이동.
위와 같은 짧은 내용의 무전을 보내는 것을 끝으로 하인츠 소령은 백기를 흔들었다.
결론적으로 하인츠 소령이 보낸 2건의 통신은 르망과 낭트 지역의 독일군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르망으로 온다는 거야? 아니면 낭트로 간다는 거야?”
“양키들이 낭트를 그냥 지나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 말이 될 수도 있어. 놈들의 목적을 생각해 봐.”
동일인이 보낸 서로 다른 내용의 무전으로 인해 독일 육군 지휘부는 몇 시간을 회의로 소모해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소모한 끝에 나온 것은….
“빌어먹을 루프트바페!”
초반에 대량으로 전투기를 상실한 덕에 제대로 된 항공정찰조차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야! 우선 최대한 빨리 기존에 배치하기로 한 병력들을 르망에 배치한다! 낭트 역시 기존 계획대로 움직인다!”
히틀러에 의해 프랑스 방면 독일군 총사령관이 된 롬멜은 명령을 내려놓고도 입맛이 썼다.
“결국은 시간낭비만 했군.”
* * *
한편, 미군이 때를 놓치지 않고 돌입을 하면서 한국군은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라 구 쉐르(La Guerche), 좀 더 나아가 샤토브리앙(Châteaubrian)으로 향하는 도로와 그 인근 지역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수고했네!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워커 대장의 미군들을 먼저 보낸 한국군들은 잠시의 휴식시간을 가지며 장비들을 점검했다.
“지금까지 피해는?”
“중상 2. 경상 7. 사망자 없음.”
“다행이네.”
벌레의 말에 창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옆에 있던 빨갱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 머리에 총 맞은 녀석 있지 않았냐?”
“그 녀석, 철모 덕 좀 봤다. 목숨은 건졌어. 앞으로 평생 두통은 있겠지만.”
“앞으로 다시는 무거워서 못 쓰겠다는 말 못하겠네.”
빨갱이의 말에 벌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의 철모는 미군의 오리지널M1철모에 손을 본 것이었다.
M1철모의 외피와 내피 사이의 얼마 안 되는 공간에 유리섬유와 수지를 적층시킨 방탄판을 가득 채워 방호력을 높인 물건이었다.
조금이라도 방호력을 높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었지만 정작 실사용자들은 무겁다고 아우성을 쳐댄 물건이었다.
“뭐 영감님이 갈군 덕에 다들 잘 쓰고 다니기는 하지만….”
벌레의 말에 옆에 있던 빨갱이가 타박을 했다.
“얌마. 그 호칭 좀 어떻게 통일해라. 언제는 준장님. 언제는 영감님. 또 언제는 사쪼… 무슨 애들 동요가사도 아니고….”
“그래, 그래. 특히 사쪼라는 호칭은 좀 쓰지 마라. 군대에서 왜놈 잔재 뺀다던 놈이 사쪼거리고 다니냐?”
“미안하다. 훈련소에서 들은 건데 입에 쫙쫙 붙네.”
“훈련소가 언제 적 이야기인데 아직까지...”
“아니 이번에 용산에 세워진 훈련소. 신병들 교육 시키고, 생활관 관리하고 어쩌고 하다가 배웠다. 상관 욕할 때 일본말 쓰기.”
“잉?”
“계급장 값어치 못하는 양반들 보고 뒤로 돌려 깔 때 쓰더라고. 뭐 군조사마, 쇼군사마 이렇게….”
“마! 배울 걸 배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