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318화 (318/464)

# 318

318화 유럽 (8)

회의장에 들어온 친위대원들은 히틀러의 명령에 OKW의 고위 장성들을 줄줄이 끌고 나갔다.

순식간에 회의실 안에는 히틀러와 괴벨스, 슈페어 그리고 제3제국이 출범하면서 장군이 된 신세대 장성들만이 창백한 얼굴로 남아 있었다.

아직도 화를 풀지 못한 히틀러가 시뻘건 얼굴로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고, 남은 이들은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다.

가장 창백한 얼굴을 한 이는 괴벨스였다. 지난 회의에서 연합군의 대규모 수송선단이 단지 프로파간다라고 말을 했었던 괴벨스는 아예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다들 듣도록!”

씩씩거리며 사람들을 노려보던 히틀러의 명령에 회의실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히틀러를 바라봤다.

“이제부터! 모든 군사작전은 내가 직접 지휘한다! 내 명령이 없는 한, 전선의 소총병 하나라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내가 진격하라면 포탄이 쏟아져도 진격하는 것이고 사수하라면 전멸을 하더라도 사수해야 하는 거야!”

히틀러의 폭탄선언에 장성들은 모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끝났다!’

그런 장성들의 마음가짐을 아는지 모르는지 히틀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전선의 사령관들에게 주어진 재량권을 회수하겠다! 작전을 펼치고 싶으면 직접 와서 나를 설득하라고 해! 모든 전선의 사단장들부터 그 윗선의 지휘관들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정기적으로 내게 유선(有線)으로 보고를 하도록!”

히틀러의 독주(獨走), 아니 폭주(暴走)였다. 이에 발터 모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총통각하.”

“조용! 아직 내 말 끝나지 않았다!”

히틀러의 호통에 모델은 입을 다물었다. 히틀러는 장군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는 저 프로이센육군의 찌끄러기들이 보여주었던 행태를 용서하지 않겠다! 지금 즉시, 육군과 해군, 공군의 모든 전력을 조사해 보고하라! 의견은 그다음에 받겠다! 지휘봉을 마음껏 휘두르고 싶으면 결과부터 보여라! 결과가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더 많은 재량권을 얻을 것이다! 만약 실패를 해도 어쩔 수 없는 실패라면 용서하겠다! 허나, 방금 전의 그 찌끄러기들처럼 멍청한 짓을 해서 나온 결과라면 그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다!”

“…”

히틀러의 선언에 노장(老將)들은 암담한 표정을 지었고, 이제 막 장성 계급을 받은 젊은 장성들은 야심이 가득한 눈으로 히틀러를 바라봤다.

두 가지 상반된 감정으로 나뉜 장성들의 얼굴을 보며 히틀러는 마무리를 지었다.

“지금 즉시 제32사단의 남은 병력을 낭트로 보낸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 그리고 되니츠!”

“예! 총통각하!”

“유보트들에게 명령을 내려! 죽을 때 죽더라도 저 양키들의 수송선들을 잡으라고!”

“알겠습니다. 총통각하.”

“그리고… 밀히!”

“예, 총통각하!”

“네덜란드와 프랑스 북부에 있는 모든 전투기 부대들을 남부로 보내라! 특히, 터빈엔진 전투기 부대들은 빼먹지 말고 다 보내도록!”

“그러면 영국에서 날아오는 폭격기들을 요격할 수단이….”

“요격임무는 독일 본토에 남은 전투기들에게 배정해!”

“알겠습니다. 총통각하.”

“정확하게 2시간 주겠다! 지금 우리의 전력을 제대로 조사해서 다시 오도록! 1분이라도 늦으면 그 책임을 묻겠다!”

히틀러의 명령에 장성들은 후다닥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괴벨스, 슈페어. 두 사람은 남도록.”

장성들의 무리에 섞여 회의실을 나가려던 괴벨스와 슈페어는 제자리에 얼어붙어야만 했다.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떠는 괴벨스를 보던 히틀러가 입을 열었다.

“프로파간다라고?”

“죄, 죄송합니다. 총통각하!”

바들바들 더는 괴벨스의 모습을 바라보던 히틀러는 의외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 박사도 실수를 할 때가 다 있군. 하지만 용서는 이번뿐일세.”

“감, 감사합니다. 총통각하!”

“괴벨스. 양키들이 드디어 유럽에 발을 디뎠다. 이제부터는 진짜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이다. 국민들이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만들어라.”

“옛! 그렇게 하겠습니다!”

“용서는 이번뿐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목숨을 걸고 명령을 완수하겠습니다!”

“그럼 가 봐!”

“하일 히틀러!”

괴벨스를 내보낸 히틀러는 슈페어를 바라봤다.

“Herr.슈페어.”

“예, 총통각하!”

“하나만 묻지. 프랑스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저, 저는 군과 관련해서는 문외한(門外漢)인지라….”

“자네의 상식에 기반해서 말해 보게.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자네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거야.”

방금 전, 장성들에게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부드러운 히틀러의 말에 슈페어는 더욱 긴장했다.

“상식이라고 해도….”

“어허! 내 앞에서 제3제국이 멸망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던 그때의 용기는 어디로 갔나? 난 좀 상식적인 대답을 듣고 싶은 것뿐이야. 뭐라 하지 않을 테니 자신의 생각을 말해 보도록.”

히틀러의 닦달에 슈페어는 점시 생각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금 힘들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프랑스는 적지(敵地)에 가까운 곳이니 말입니다.”

“그렇겠지….”

슈페어의 대답에 히틀러는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시 프랑스가 독일에 협조적이라고는 했지만 게슈타포가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레지스탕스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었다.

항복한 이후 대부분의 프랑스 국민이 독일에게 협조적이라고는 했지만, 독일과는 뿌리 깊은 적대 관계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얼굴을 바꿀 수 있는 놈들이라는 거지. 빌어먹을 프랑스 놈들….”

프랑스 인들에 대한 욕설을 내뱉은 히틀러는 슈페어에게 다시 질문했다.

“노르망디와 비스케이 만으로 보냈던 토트 조직의 상황은 어떠한가?”

“노르망디 쪽은 아직 건재하며, 비스케이 만은 일단 브레스트 항구 복구에 집중하고 있던 터라 아직 큰 피해는 없습니다.”

“즉시 도로 불러들이도록.”

“알겠습니다, 총통각하!”

이미 브레스트 쪽은 철수명령을 내렸다는 것을 끝까지 숨긴 슈페어였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도를 살피던 히틀러가 명령을 내렸다.

“철수한 토트 조직은 할 일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총통 각하.”

“서부방벽(Westwall)을 강화한다. 그곳이 서부 전선의 최후방어선이 될 것이다.”

“최후방어선….”

“그렇다. 최후방어선. 양키들의 발을 최대한 묶어 버려야 한다.”

“알겠습니다. 총통각하.”

“그리고 우라누스 계획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아직 제대로 된 결과가….”

“유대 놈들까지 꼈는데도?”

“죄, 죄송합니다.”

슈페어의 대답에 히틀러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며 목소리가 커졌다.

“하이젠베르크에게 전해! 앞으로 석 달 주겠다! 석 달 안에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연구원 모두 교수대에 매달릴 것이라고!”

“총통각하, 그것만은! 그들이야말로 제국에서 추리고 추린 인재들입니다!”

“밥값 못하는 인재들은 소용없어! 그러니 제대로 전해! 석 달이다, 석 달!”

“알겠습니다, 총통각하!”

“나가 봐!”

“하일 히틀러!”

허겁지겁 경례를 한 슈페어는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혹시라도 누가 붙잡을까 헐레벌떡 총통관저를 나온 슈페어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이제야 살겠군.”

*       *       *

베를린에서 히틀러가 날뛰고 있을 때, 부흐뇌프-엉-해쯔는 연합군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삐이익!

“멈춰! 멈춰!”

호루라기를 입에 문 헌병들의 수신호에 따라 트럭들과 전차들이 줄지어 교차로들을 통과했다.

수 많은 건물들이 폐허로 변해 황량한 풍경 속에 시가전에서 목숨을 보전한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부서진 가옥에서 멀쩡한 세간살이를 찾거나 연합군의 화물을 나르고 있었다.

“고작 100명 정도를 상대하면서 전차를 5대, 하프트랙 4대를 날렸다고?”

타일러 소령이 제출한 전투 보고서를 읽은 거버너 소장-한국과 일본에서의 공훈을 인정받아 소장으로 승진했다.-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장본인인 타일러 소령을 노려봤다. 거버너 소장의 시선을 받은 타일러 소령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독일 놈들의 매복에 걸려서….”

“이미 사전포격으로 조졌다며?”

“예상보다 살아남은 놈들이 많았습니다. 거기에 시가전이라….”

“옹알이하냐? 제대로 된 문장으로 말 안 하지? 지금 여기가 너 구시렁거리는 거 들어주는 곳이야?”

“죄송합니다!”

“그리고 시가전 핑계 대는데… 너 한국과 일본에서 시가전 안 해봤어?”

“해봤습니다!”

“그런데 시가전에서 당해?”

“독일 놈들이 예상보다 독했습니다!”

“잽들은 안 독했냐?”

“잽들보다 똑똑한 놈들입니다.”

“똑똑하건 멍청하건 이렇게 손해를 보면 이긴 의미가 없어! 내가 두고 보겠어! 제대로 해!”

“Yes, sir!”

“나가 봐!”

거버너 소장의 임시 사령부가 자리한 시청건물을 나온 타일러 소령은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동맹국 국민들의 사유재산은 최대한 보전하라는 개 같은 명령을 내려놓고는 뭐 어쩌라고! 에라이 썅! 씨발! 못해먹겠네!”

진득한 육두문자를 내뱉던 타일러 소령은 자신의 앞을 지나가던 병사들이 경례를 하자 답을 하고는 휘적휘적 자신의 지프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타일러 소령이 사라지자 병사 하나가 옆에 선 동료에게 질문을 던졌다.

“수송선에 탔을 때부터 궁금했던 건데 말이지. Sibal이 뭐야? Erai Sayng은 또 뭐고?”

일본에서 출발하기 직전에 신입으로 합류한 병사의 질문에 동료는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씨발이 씨발이지. 뭐가 그리 궁금하냐?”

“남부 사투리인가?”

남부 출신인 타일러 소령의 출신을 생각하며 신입이 질문을 이어가자 고참 병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선 사투리다.”

“Chosen은 또 어디야? 어느 주(州)에 있는 곳이야?”

“아오. 썅! 닥쳐!”

*       *       *

타일러 소령을 상대로 한바탕 푸닥거리를 한 거버너 소장은 송 소장을 비롯한 연합군 육군 지휘관들과 회의를 진행했다.

“생 나제르의 상황은 어떻다고 합니까?”

“낭트를 향해 순조롭게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점심 무렵에 싸브네(Savenay)에 입성(入城)했다고 합니다.”

송 소장의 대답에 거버너 소장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 꽤 빠르게 움직였군요.”

“우리가 옆으로 넓게 퍼지는 동안 그쪽은 세로로 길게 퍼진 것이지요.”

뽀흐 드 꼴레의 해변이 더 넓었기 때문에 상륙군의 규모는 이쪽이 더 컸다.

상륙군의 규모가 더욱 컸던 만큼 상륙하자마자 연합군은 가로로 넓게 퍼져야 했다. 그렇게 옆으로 넓게 퍼지는 만큼 전진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려졌고.

한발 뒤쳐졌다는 안타까운 감정을 서둘러 지운 거버너 소장이 분위기를 전환했다.

“그럼 우리도 이제 속도를 올려야겠지요?”

거버너 소장의 말에 송 소장을 비롯한 연합군 지휘관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요.”

“내일부턴 제가 앞에 서지요.”

“그러시죠.”

죽이 착착 맞은 거버너 소장과 송 소장이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일을 진행하고 있을 때, 옆에 앉아있던 호주군 장성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진로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아똥-엉-해쯔(Arthon-en-Retz) 방면입니까?”

“두 방향으로 나눕니다. 하나는 방금 말씀하신 아똥-엉-해쯔를 경유하고, 다른 하나는 셍트 파 잔느(Sainte-Pazanne)를 경유 낭트로 올라갑니다.”

“두 진격로 사이가 너무 좁은 것 아닌가요?”

호주군 장성의 지적에 송 소장이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마슈꿀(Machecoul)로 우회해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면 너무 돌게 됩니다.”

“그렇군요.”

“그럼 내일 오전 8시에 출발하도록 하지요.”

“좋군요.”

내일의 일정까지 결정한 장군들은 서로 악수를 교환했다.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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