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311화 (311/464)

# 311

311화 유럽 (1)

1944년 12월 10일 07시 10분. 생나제르(Saint-Nazaire) 항구.

평소라면 조용했을 항구와 인근 지역이 엄청난 혼란에 잠겨 있었다.

“공습이다!”

“공습이다!”

쾅! 콰쾅!

투타타탕! 투타타탕!

사방에서 폭탄들이 터지고 대공포탄의 불줄기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빌어먹을 레이더!”

항구의 입구에 만들어진 방공타워‘1번’에서 1번 타워의 지휘책임자인 군터 소령이 수화기를 손에 든 채 욕설을 내뱉었다.

6시 반부터 타워에 설치된 레이더는 물론이고 비스케이만 지역에 설치된 레이더들 모두가 먹통이 되어 있었다.

*       *       *

“우리만이 아니라 비스케이만 지역의 모든 레이더들이 먹통이라고?”

“예.”

처음 레이더의 이상이 있음을 확인한 군터 소령은 바로 보고를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비스케이만 지역 전체의 레이더들이 모두 먹통이 되었다는 대답과, 영국에서 대규모 폭격기들이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먹통이 되었으니 공습에 대비하라는 명령이었다.

명령을 받은 군터 소령은 지체하지 않고 자신이 지휘하는 대공포대에 명령을 내렸다.

“양키들의 폭격이 예상된다. 모두 북서쪽 상공을 경계하라!”

명령을 내린 군터 소령은 부관에게 명령했다.

“이곳에 만들어진 3개의 방공타워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타워가 우리다! 또다시 당할 수는 없지! 커피 가져와!”

“예.”

생 나제르의 방어를 맡은 독일군들에게 있어서 이 명령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영국에서 발진한 폭격기들은 주공(主攻)이 아니라 조공(助攻)이었다. 브레스트부터 시작해 비스케이만 북쪽 지역의 레이더들을 먹통으로 만든 것은 이 폭격기 편대를 선도하는 모스키토들이 뿌려댄 알루미늄 조각들이었지만, 생 나제르와 뽀흐 듀 꼴레(Port du Collet) 인근 지역의 레이더들을 먹통으로 만든 것은 연합군 상륙부대를 따라 움직이는 두 척의 리버티급 수송선이었다.

두 척의 수송선에는 독일군의 레이더 전파와 통신용 전파의 주파수를 분석하는 장치들과 ‘사운드 테스터(Sound tester)’라 불리는 초(超)고출력 전파 송출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척의 수송선에서 송출하는 방해전파가 상륙지점 부근에 있는 독일군 레이더들과 독일군이 사용하는 무전기를 먹통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를 알 리 없는 군터 소령의 1번 타워는 물론이고 항구 여기저기에 설치된 대공포좌에 자리한 병사들이 북서쪽 하늘-지난번 미군 폭격기들이 날아온 방향이었다.-을 경계하는 가운데 나제르 항 근처 바다 위로 두 척의 잠수함이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폭격에서 유보트 벙커는 물론이고 함선을 정비할 시설물들이 모두 파괴된 다음, 생 나제르에 입항하는 유보트는 상태가 매우 위험한 한두 척을 빼고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북해의 잠수함 기지로 갔거나 아니면 대서양에서 연합군 함대에 막혀서 비스케이만에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조용히 수면 위로 부상한 잠수함들은 특수 임무를 부여받은 4척의 가토급 잠수함들 가운데 2척이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잠수함의 승조원들은 곧 커다란 접시형의 안테나를 갑판에 설치했다.

설치가 끝나자 어둠 속에서 날아올 연합군 공격대의 길 안내를 위한 유도 전파가 송신되기 시작했다.

전파에 실린 것은 ‘성조기여 영원하라.’와 ‘양키 두들’이었다.

공격대의 가장 앞에는 전선 통제 임무를 맡은 어벤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항법사 석에 앉아 크루에시(Kruesi)사의 라디오 방향탐지기를 조작하던 항법사들은 노래가 가장 또렷하게 들리는 방향으로 기수를 움직이도록 했고, 선도(先導)의 어벤저들이 보내는 발광신호에 따라 공격대들도 방향을 수정했다.

오전 7시 5분. 전파 유도를 받아 날아온 공격대가 생 나제르의 항구와 뽀흐 듀 꼴레에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유럽본토에 발을 딛기 위한 연합군의 첫 일격이었다.

*       *       *

“사격!”

“적기를 막아라!”

기습적인 일격을 먹은 독일군이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서쪽의 높은 고도에서 밀고 들어올 폭격기들을 대비해 돌려놓았던 대공포의 포신을 돌려 대공사격을 시작했지만 어벤저와 돈틀리스들은 그들이 상대했던 대형 폭격기들에 비해 작고 재빨랐다.

투파파파팡!

“크악!”

“아악!”

고속으로 저공비행하는 콜세어들이 20mm기관포로 사격을 할 때마다 지상에 설치된 20mm대공기관포들이 주변에 있던 독일군들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어벤저와 돈틀리스들에게 있어서 대구경 고사포들보다는 빠른 발사속도를 가진 20mm대공포들(Flak30, 38, 4연장38 L / 112.5)이 더욱 치명적이었다.

이들의 빠른 제거를 위해 콜세어들이 나섰고, 콜세어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열심히 수행했다.

콰쾅!

“아악!”

“아악! 살려줘! 의무병!”

급강하한 돈틀리스가 투하한 1000파운드 폭탄이 명중하면서 1번 방공타워 옥상은 폐허로 변했다.

폭탄의 파편을 뒤집어쓴 독일군들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실내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고 있던 두툼한 강철 문에 또 다른 1000파운드 폭탄이 떨어졌다.

쾅!

일본과의 전투를 치르면서 어벤저와 돈틀리스 파일럿들의 기량은 완숙의 경지에 들어섰다.

그들에게 있어서 육상의 고정 표적은 ‘매우 손쉬운’ 상대라는 것이 작전을 계획한 참모들의 생각이었고, 파일럿들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전은 아니었다.

퍼퍽!

“피격! 후퇴한다!”

“육군항공대의 폭격으로 심하게 손상을 입었다고? 이게? 썅!”

“쉬운 표적?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쉽다고? Shit!”

아직도 살아남아 빗발치듯 쏟아지는 20mm기관포탄들을 피하며 파일럿들은 입으로는 온갖 불평과 욕설들을 뱉으면서도 눈은 표적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7시 45분.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폭격이 끝나고 미군 항공기들이 물러났다.

“후우~.”

전투가 끝나고 피로에 지쳐 길게 숨을 내쉬던 독일군들은 바다를 바라보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들의 눈앞에 자리한 바다에는 거대한 강철의 성벽들이 그들의 시야를 막고 있었다.

전함들을 보고 넋이 나가 버린 독일군들이 있는 곳을 향해 전함들이 주포를 하나둘 육지로 돌리고 있었다.

마침내 모든 준비를 끝낸 전함들은 상륙지점의 독일군들을 표적으로 14인치들과 16인치 주포들을 일제히 발사했다.

쿠아아앙!

수백 kg의 무게를 가진 포탄들이 명중할 때마다 건물들을 비롯한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해갔다.

콰아앙! 쾅!

포탄이 떨어진 땅에는 커다란 구멍이 파였고, 폭발이 만들어 낸 폭풍에 휘말린 독일군들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분해가 되어 버렸다.

가장 불쌍한 처지가 된 것은 ‘1번’ 타워였다. 항구 입구에 만들어져서 눈에 확 들어오는 위치에 자리한 1번 타워는 매우 훌륭한 표적이었다.

거기에 더해 어지간한 폭격은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진 덕에 주포탄 1~2발 정도는 버텨 내고 있었다.

“저거 부숴 버려!”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오기(傲氣)가 생긴 전함들의 주포 포수들은  1번 타워에 집중적으로 주포탄을 때려 박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10여 발 이상의 14인치, 16인치 포탄들을 얻어맞은 1번 타워는 그 자리에 무너져 버렸다.

수북하게 쌓인 콘크리트 더미에서 빠져나온 독일군들은 아무도 없었다.

투타타타타.

여전히 육지를 향해 주포를 겨눈 채 버티고 선 전함들의 머리 위로 헬리콥터들이 요란하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소리지?”

전함들의 벽 뒤에서 상륙을 위해 달려가던 LVT들과 상륙주정에 탄 채 헬리콥터들을 바라보던 병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악이, 그것도 클래식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음악?”

미군 전함들의 포격이 끝나고 조용해진 폐허를 헤집고 나온 독일군들은 순간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요란한 소음들이 하늘을 울리는 와중에 음악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쳤나?”

“이건… 바그너? 내가 진짜 미쳤나 보네.”

“너 미친 거 맞아. 나도 미쳤지.”

음악이라고는 들릴 리가 없는 장소, 거기에 클래식의 선율이 들리자 독일군들은 그 와중에도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농담을 건넸다.

“이거… 그 하이만 소령이 자주 틀던 곡 아냐?”

“그 나치 새끼? 살아남았어? 재수도 좋아.”

골수 나치 당원으로 유명한 장교의 이름을 들먹이며 하늘을 바라보던 독일군들은 하얗게 질렸다.

말로만 듣던 미군의 오토자이로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음악은 그 오토자이로들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그 유명한 ‘발키리의 기행(The Ride Of The Valkyries)’은 백 소령의 헬기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백 소령이 헬기에 스피커를 다는 것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 미군 장교들이 질문을 던졌고, 백 소령의 대답을 듣자마자 적지 않은 헬기 파일럿들이 자신들의 헬기에도 스피커를 매달기 시작했다.

물론 정비장교들은 모두 질색을 했고, 해당 안건은 위로위로 올라가 홀시 제독에게까지 당도했다.

보고서를 받아든 홀시 제독은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이거 참 걸작이군! 걸작이야!”

파안대소(破顔大笑) 끝에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홀시 제독은 고 제독을 돌아봤다.

“제독. 제독의 부하 가운데 아주 걸물이 있군!”

“면목 없습니다.”

고 제독의 말에 홀시 제독은 손을 내저었다.

“아냐! 아냐! 그동안 고 제독의 부하들을 보면 파일럿들 빼고는 다들 샌님 같았는데, 명색이 뱃놈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고 제독의 예상과 달리 홀시는 아주 반색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병사들의 사기를 올릴 수 있다면 스피커 몇 개 갖다 다는 정도는 문제 될 것 없지! 그래 음악은 뭐를 튼다고 하나?”

홀시 제독의 물음에 고 제독은 바로 대답을 했다.

“아마도 ‘발키리의 기행’일 것입니다. 바그너의 오페라에 나오는 것이지요.”

“바그너?”

“히틀러가 바그너를 아주 좋아한다고 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것을 따라 하는 겁니다.’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한 고 제독은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 고 제독의 대답을 들은 홀시 제독은 다시 한번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히틀러가 바그너를 좋아하는데 바그너의 음악? 하하하하! 이거 진짜 걸물이로군! 걸물이야!”

홀시 제독은 호쾌하게 공식적으로 허가를 했고, 더욱 많은 헬리콥터 파일럿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헬리콥터에 스피커를 매달았다. 음악의 문제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MH-60R에 장착된 통신기의 출력이 좋았던 덕에 생 나제르는 물론이고 뽀흐 듀 꼴레의 상륙을 맡은 헬리콥터들까지 무선으로 수신한 음악을 스피커로 뽑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생 나제르와 뽀흐 듀 꼴레, 두 상륙지 사이의 모든 이들이 총성과 포성, 비명이 섞인 ‘발키리의 기행’을 들어야 했다.

*       *       *

투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타타탕! 파웃! 파웃!

기관총과 로켓을 만재하고 선두에서 비행하고 있던 헬리콥터들이 착륙지대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동체 좌우에 임시로 설치한 파일런에 각기 2발 씩, 총 4발의 HVAR(High Velocity Aircraft Rocket,고속 항공기 로켓)들이 지면을 향해 발사 되었고, 도어건너들이 2연장 M42기관총들을 미친 듯이 쏘아 댔다.

“랜딩!(Landing!)”

“가자!”

헬리콥터의 바퀴가 땅에 닿는 가벼운 충격이 전해지자마자 벌레가 가장 먼저 헬리콥터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 뒤를 따라 부하들이 튀어나갔고, 그들을 모두 내보낸 백 소령의 MH60R은 출력을 높여 곧 그 자리를 벗어났다.

뒤이어 벌레의 나머지 부하들, 빨갱이와 창기 일행을 태운 헬리콥터들이 줄줄이 날아왔다.

동료들과 부하들이 모두 무사히 도착한 것을 확인한 벌레는 바로 무전기의 키를 눌렀다.

“최대한 빨리 청소하고 챙길 건 챙긴다!”

“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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