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309화 (309/464)

# 309

309화 유럽으로 가는 길 (11)

한스의 설명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상관은 바로 윗선으로 보고서를 올렸다. 그리고 그렇게 올라간 보고서는 바로 격렬한 설전을 벌이는 불씨가 되어 버렸다.

“나름 합리적이기는 한데… 그래서 귀관들은 양키들이 어디를 상륙지점으로 삼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OKH(Oberkommando des Heeres. 육군최고사령부)의 벙커에서 보고를 받은 하인츠 구데리안은 질문을 던졌다.

중앙아시아 전투에서의 공훈을 인정받아 OKH의 장군참모장(Großer Generalstab, 대장군참모)로 영전(榮轉)한 구데리안이었다.

그의 장군참모장 취임은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그가 베를린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 육군과 자유 폴란드 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그리스를 지나 동부 유럽으로 치고 올라갔고, 또 다른 한축은 시리아에서 계속해서 북으로 밀고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독일은 카프카스 산맥을 경계선으로 미국의 진격은 막았지만 중동을 상실했고, 중앙아시아 지역은 서인도 공화국과 연결된 실낱같은 연결로만 유지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구데리안이 그때까지 그곳에서 지휘를 하고 있었다면 그는 다른 이유 때문에 베를린에 왔을 것이었다.

교수대에 매달리기 위해서.

구데리안의 질문을 받은 한스 소령은 바로 대답을 했다.

“비스케이 만(灣)입니다.”

“비스케이 만?”

한스 소령의 대답에 구데리안은 벽에 걸린 지도를 살폈다.

“흐음….”

지도를 보며 가능성을 따져보던 구데리안은 입을 열었다.

“가능성은 있군. 좋아! 장군 참모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겠다.”

“감사합니다!”

구데리안은 한스 소령의 의견을 장군 참모들의 회의 안건으로 올렸다.

한스 소령의 안건을 들은 참모들은 세 무리로 나뉘어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만약 양키들이 지금 바로 상륙을 할 것이 확실하다면 비스케이 만이 가장 정답이다! 그곳은 그렇게 춥지가 않으니까.”

“만약이 아니라 양키들은 지금 당장 상륙할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장소는 비스케이 만이 아니다! 네덜란드다!”

“둘 다 틀렸다! 양키들은 지금 상륙하지 않아! 제 아무리 상륙전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저 수송선단에 실린 병력들을 단 시간에 안전하게 상륙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지금은 겨울이야!”

“그러니까 비스케이 만이라면 가능하다니까!”

“그 비스케이 만의 바다를 직접 본 적 있어? 파도 사납기로 유명한 곳이 비스케이 만이야!”

“그 만에 유보트 기지들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건가!”

“양키들이 지금 당장 상륙한다는 것은 단기전을 원한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저 먼 프랑스 남쪽에 상륙할 이유가 없다! 네덜란드야! 네덜란드에 상륙하면 바로 우리 독일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금은 한겨울이야! 북해의 바닷물을 헤치고 상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양키들의 상륙장비들을 생각한다면….”

“북해가 한 여름의 태평양처럼 잔잔한 줄 알아!”

장군참모들 사이에 설전만이 벌어지고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 구데리안은 부관을 돌아봤다.

“OKL(Oberkommando der Luftwaffe, 공군최고사령부)과 OKM(Oberkommando der Marine, 해군최고사령부)에서 연락은?”

“둘 다 양키들의 함대에 40해리(약74km)이내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아예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다는 소리 아닌가?”

부관의 대답을 들은 구데리안은 장군참모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 해군과 공군이 제대로 정찰을 못하고 있소이다. 따라서 임시지만 몇 가지 가정을 세운 다음 그에 맞춰 행동을 결정합시다. 우선은 양키들이 당장 상륙한다고 가정을 하도록 합시다.”

“이 계절에 상륙은 불가능합니다!”

“다들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한니발도 알프스를 넘었고, 나폴레옹도 알프스를 넘었소이다. 미리 준비한 다음 상륙이 없으면 웃고 넘길 수 있지만, 준비도 안 한 상태에서 당하면 그때는 돌이킬 수도 없소. 따라서 우선은 지금 당장 상륙을 한다고 생각하고 계획을 수립합시다.”

“알겠습니다.”

구데리안이 첫 번째 기준을 제시하자, 참모들은 다음 기준을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가장 유력한 지점은 비스케이 만입니다. 미군의 대함대가 일시에 들어올 수 있고, 그나마 따뜻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비스케이 만은 파도가 사납기로 유명합니다. 저는 노르망디가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륙선들을 갖다 대기에 적당한 모래사장도 있고, 파리에도 가깝습니다.”

“저는 네덜란드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로테르담 인근입니다. 로테르담의 하구도 이용할 수 있고, 동시에 너른 모래사장도 있습니다.”

“로테르담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겨울의 북해바다는 상상 이상으로 난폭합니다.”

“하지만 최단거리야!”

“그만큼 우리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걸어야 한다면 노르망디 쪽에 걸겠습니다. 비스케이 만에 비해 영국과 가깝습니다. 상륙 이후의 보급이 유리하다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비스케이 만보다 파리에 가깝습니다. 런던에 자칭 ‘지유프랑스 정부’가 있는 한, 양키들은 파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파리가 있었군.”

“파리가 있었어.”

파리가 튀어나오자 네덜란드를 주장하던 참모들은 입을 다물었다.

구데리안은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다면 비스케이 만과 노르망디로군. 어디로 낙점하는 것이 좋겠나?”

구데리안의 말에 참모들은 두 곳을 놓고 설전을 벌였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지루한 대치가 이어지던 가운데 참모 하나가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만약 우리가 예상한 곳과 다른 곳에 양키들이 상륙한다면 문제가 커집니다.”

“그건 그렇지. 그래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는 것 아닌가?”

“관점을 살짝 바꿔보면 어떨까요?”

“관점을 바꾼다?”

“제 아무리 해안방어를 튼튼히 해도 지금 양키들의 해상전력이라면 제대로 막기가 힘듭니다. 그렇다면 해안선에는 해안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병력만 배치하고, 캉(Caen)과 낭트(Nantes)에 보병 1~2개 사단 정도의 병력을 배치합니다. 그리고 주력은 바로 이곳.”

참모가 가리킨 곳은 르망(LeMans)이었다.

“르망에 전차사단(Panzerdivision)들을 대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노르망디와 비스케이 만, 어느 쪽에서 양키들이 밀고 들어온다고 해도 충분히 방어를 준비할 시간이 생깁니다.”

“괜찮군.”

고개를 끄덕인 구데리안이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계획서를 작성하도록. OKH와 OKW의 영감들이 아무 소리도 못하게 확실하게 준비해.”

“야볼(Jawohl)!”

*       *       *

참모 본부에서 상신한 방어계획은 OKH에서 격렬한 설전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계획에 대한 찬반 문제로 설전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병력배치 문제로 설전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설전의 주역은 롬멜이었다.

“해안에서 밀리면 끝장이다! 적의 발을 해안에 묶어 버리거나 아니면 도로 바다로 처넣어야 한다!”

공세중심적인 가치관을 지닌 롬멜은 적극적인 방어를 주장했다.

“롬멜 원수. 장군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공세를 위해서는 병력을 집중해야 하네. 문제는 양키들은 상륙지점을 선택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이야. 두 곳에 충분한 병력을 배치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말일세.”

“그것은 소관(小官)도 압니다. 소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적들이 모래사장에 발을 딛자마자 바로 바다로 밀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르망에 방어부대의 본진을 놓는다? 괜찮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캉과 낭트에 보병사단을 배치한다? 이것은 낭비입니다! 캉과 낭트에 배치되어야할 것은 전차사단입니다! 보병 사단 1,2개 정도는 바로 포위돼서 끝장이 날 것입니다! 무의미한 낭비란 말입니다! 밀어붙여야 한다면 전차로 밀어 버려야 한단 말입니다!”

“전차사단은 안 돼! 전차 사단 1개가 날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손해야!”

“그렇다고 양키들의 상륙을 허용한다면 그렇게 아낀 전차사단으로 그 몇 배의 전차사단을 상대해야 합니다! 일본의 경우를 보십시오! 양키들이 교두보를 확보한 그 시점에서 서유럽은 우리 손에서 떠나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1차 방어선에 전차사단을 배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롬멜과 다른 장성들은 평행선을 그렸다.

두 진영의 설전은 OKW까지 올라가서도 계속해서 이어졌고, 마침내 히틀러가 있는 곳에서 결론이 내려지게 되었다.

양쪽의 설전을 듣던 히틀러는 질문을 던졌다.

“지금 프랑스에 배치된 전차사단은 모두 몇 개지?”

“4개 사단입니다.”

“그 가운데 남쪽에 배치된 것은?”

히틀러의 물음에 빌헬름 카이텔 OKW최고사령관은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1개 사단입니다.”

“하!”

기가 막히다는 듯 감탄사 아닌 감탄사를 내뱉은 히틀러는 장성들을 노려봤다.

히틀러가 노려보자 카이텔은 다음 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렇게 배치된 1개 기갑사단은 이제는 구형이 된 4호 전차들로 구성된 사단이었다.

잡아먹을 듯이 장성들을 노려보며 히틀러는 으르렁거렸다.

“이미 한참 전부터 서유럽의 방어를 강화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을 했는데….”

“죄송합니다!”

“지금 즉시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전차사단들을 프랑스로 보내!”

“야볼(Jawohl)!”

허겁지겁 대답하는 카이텔을 노려보던 히틀러가 명령을 내렸다.

“롬멜의 말이 일리가 있다. 캉과 낭트에 우선적으로 각기 1개 전차사단을 배치시킨다! 르망에는 남은 2개 전차사단과 바로 이동이 가능한 모든 보병사단들을 대기시키고! 롬멜!”

“예! 총통각하!”

히틀러의 호명에 롬멜은 자세를 바로 세우며 대답했다.

“자네가 바라는 대로 해줬다! 만약 양키들을 밀어내지 못한다면 자네에게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야볼(Jawohl)!”

“그 무거운 엉덩이 쳐들고 당장 움직여!”

히틀러의 축객령에 장성들은 허겁지겁 밖으로 사라졌다.

한심하다는 얼굴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히틀러는 대기하고 있던 친위대 장교에게 명령했다.

“슈페어에게 지금 당장 오라고 해!”

“야볼(Jawohl)!”

*       *       *

“언제까지 저 상병 놈에게 명령을 들어야 하는지….”

히틀러의 방을 빠져나와 OKW로 돌아가는 길에 장성 하나가 작게 푸념을 늘어놓자, 옆에 있던 장성 하나가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쉿! 누가 듣습니다!”

“답답해서 그래요. 몇십 년 동안 군에서 전략과 전술을 갈고 닦아온 우리가 저 빌어먹을 보헤미아의 상병에게 굽신거려야 하니 말이요.”

“쉿!”

주변을 살피며 다시 한 번 주의를 준 동료 장성이 짧게 대답했다.

“답답해도 어쩔 수 없어요. 양키들이 독일 땅에 들어오는 순간 히틀러만이 아니라 우리도 같이 파멸하게 되니 말이에요.”

“후우~.”

*       *       *

1944년 12월 10일. 베를린에서 히틀러의 결정이 내려지고 사흘 후. 대서양에서 합류한 연합군 함대가 드디어 상륙에 들어갔다.

연합군이 상륙지점으로 삼은 곳은 생 나제르(Saint-Nazaire)와 뽀흐 듀 꼴레(Port du Collet)였다.

두 곳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32km. 서로 엄호가 가능한 두 곳에 연합군의 대함대가 밀려들었다.

해변을 향해 몰려가는 LVT들에 탑승한 해병 가운데 한 명이 동료에게 농담을 했다.

“Welcome to France.”

*       *       *

제일 처음 상륙지점으로 낙점을 받은 곳은 브레스트였지만 그곳은 파리에서 너무 멀었다.

“대병력을 일시에 내리기 편하고 움직이기 편하자면….”

프랑스 지도를 놓고 샅샅이 뒤지는 미군 장성들을 본 송 소장과 원 준장이 질문을 던졌다.

“그냥 노르망디로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송 소장과 원 준장의 질문에 미군 장성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곳은 이미 방어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피할 수 있는 손실은 피해야지요.”

“그리고 그 악몽과도 같은 장면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아요.”

미 육군 장성들이 모두 빠지지 않고 ‘악몽과도 같은 장면’이라는 말을 하자 송 소장과 원 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에… 태평양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한 상륙작전은 미리 준비를 하신 덕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연사(演士)로 나선 벌레-덕분에 미국까지 출장을 와야 했다.-의 말에 미군 장성-마셜까지 참석했다.-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필리핀을 시작으로 한 태평양 전선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벌레와 빨갱이는 태평양 전투를 소재로 한 미국의 유명한 전쟁 드라마를 정성을 다해 편집해 시청각 교재로 활용했고, 그 효과를 톡톡히 봤었다.

“그때, 미리 준비를 하신 덕에 일본군들이 준비를 한 곳을 피해 작전을 세울 수 있었지요. 그럼 이번에는 유럽입니다. 아시다시피 영국과 가까운 프랑스 해안에 독일군이 아주 튼튼한 방어시설을 세웠습니다. 도쿄에서 보셨듯이 독일 놈들이 지으면 아주 튼튼합니다. 그래서 이런 장면이 벌어지지요.”

말을 마친 벌레는 영상을 재생했다.

‘전쟁영화의 패러다임(paradigm)을 바꿨다.’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초반30분의 오마하 해변 상륙씬이었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마셜이 자리에서 일어나 벌레에게 말했다.

“잘 봤네.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는 내일 하고 싶군.”

“그러시지요.”

영 좋지 않은 마셜의 표정에 벌레는 냉큼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많은 장군들이 위스키를 병째로 들이키는 일이 벌어졌다.

그 대부분이 나이 지긋한, 1차 대전의 수라장을 직접 겪은 노장(老將)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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