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8
308화 유럽으로 가는 길 (10)
미국 본토에서 출발한 함대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함대는 영국에서 약 1000km 떨어진 지점에서 합류를 했다.
대형의 정비를 위해 주요 함선들과 수송선들의 속도가 느려졌고, 혹시나 모를 유보트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100여 척의 구축함들이 함대의 사방을 돌며 경계의 눈을 번뜩였다.
연합군의 함대가 느리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3기의 PBM마리너 비행정이 함대를 향해 날아왔다.
착수(着水)를 하기 위해 함대의 상공을 선회하는 마리너 안에서 수면을 내려다보던 앤드루스 대장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독일이나 일본이 ‘비겁한 미국의 물량’이라고 떠들어 대는 심정을 알 것 같군.”
앤드루스 대장의 말에 동승하고 있던 참모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발아래 수면에는 눈이 닿는 모든 곳이 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리너 비행정의 고도가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자 앤드루스 대장은 다시 의자에 앉으며 참모들을 돌아봤다.
“이제부터 우리는 회의를 가장한 전장에 들어간다. 마음 단단하게 먹도록.”
“부럽군… 내가 저 병력을 지휘할 수만 있다면….”
또 다른 마리너 비행정에 탑승한 영국 육군 장성은 저 아래 바글바글한 수송선을 보며 안타까움과 부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베레모를 쓴 그의 군복 옷깃에는 영국 육군 원수 계급장이 선명하게 달려 있었다.
부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그는 몽고메리였다.
마지막 세 번째 마리너에는 영국 해군의 장성들이 타고 있었다.
“빌어먹을 양키들… 저 함선들의 절반만 있었어도 독일 놈들을 바다에서 쫓아낼 수 있었는데….”
함대의 사방 외곽과 함대 진형 내부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구축함들과 천천히 움직이는 대형 함선들을 보며 영국해군 장성들은 질시를 감추지 못했다.
렌드리스를 통해 미국의 구축함들 수십 척을 제공받았지만, 그렇게 받은 대부분의 구축함들은 1차 대전과 그 이후 전간기에 만들어진 노후함들이었다.
영국해군 장성들이 투덜거리고 있을 때, 연락관의 신분으로 탑승한 미 해군 중령은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들으면 오해를 할 소리들만 하는군….”
미국도 할 말은 있었다. 미국의 전시 생산이 제대로 돌아가기 전, 유보트를 막기 위해 미국은 영국에 구형 구축함들을 지원했다.
비록 1차 대전 때 사용한 구형이기는 했으나 오버홀을 끝내고 보내준 구축함의 수만 50척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영국에 제공된 호위항공모함들과 최신형 구축함들의 수만 해도 수십 척이 넘는 상태였다.
“줘도 못 써먹는 인간들이 욕심만 많아서...”
영국은 미국의 함선을 있는 대로 끌고 갔지만 정비 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영국 본토에 있는 조선소들과 해군 정비창의 규모로는 제공된 함선들을 다 소화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결국, 그렇게 제공된 함선들의 많은 수가 미국 본토로 돌아와 정비를 받고 다시 작전에 참가해야만 했다.
“흐음… 이거야….”
질시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불평을 하는 다른 장성들은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중년의 장성이 입을 열자 일제히 입을 다물고 시선을 모았다.
기라성 같은 해군 장성들을 주목하게 만든 이는 마운트배튼 제독이었다.
다른 장성들의 주목을 받은 마운트배튼은 싱긋이 웃으며 영국식 유머를 구사했다.
“당분간 미국 대통령을 대영제국 해군 관함식에 초청하면 안 되겠군요.”
“응? 하!”
“하하!”
그의 유머를 이해한 영국 장성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쓰라림이 가득 담겨 있었다.
1차 대전이 벌어지기 전, 독일의 빌헬름2세는 처칠을 초청해 독일제국 육군의 훈련을 보여주었다.
군단 규모로 벌어진 대규모 훈련을 본 감상을 묻는 빌헬름2세에게 처칠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장관을 보시기 원하신다면 내년에 스핏헤드에 한 번 들르시지요.”
이국표준주의((Two-power standford,)-영국 이외의 모든 해군이 연합해도 영국해군의 전력은 그걸 능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에 입각해 구성된 영국 해군력의 최전성기였기에 가능한 대답이었다.
그 이후 벌어진 1차 대전과 연속된 대공황으로 인해 그때의 일화는 과거의 영광이 되고 말았지만.
* * *
한반도에 오른 앤드루스 대장 일행과 마운트배튼, 몽고메리 일행은 간단한 의전행사를 끝내고 바로 통합작전센터로 이동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통합작전센터의 실내를 본 장성들의 눈은 있는 대로 커졌다.
“이거야 원.... 응?”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마운트배튼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곧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오늘 하루 동안 ‘이거야 원’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줄 모르겠군.”
통합작전센터에 부속된 대형 회의실에 장성들과 참모들이 자리하자 장성들은 서로 상견례를 했다.
홀시는 이 자리가 처음인 앤드루스 장군 일행과 영국 장성 일행에게 고 제독을 소개했다.
“이 뛰어난 함선을 운용하는 부대의 지휘관이자, 우리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 가운데 하나인 한국의 고 제독이오. 고 제독과 그의 부대가 없었다면 우리 미국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외다.”
솔직담백하기-악평을 하는 이들은 단순무식하다고 평하는-로 소문난 홀시의 소개를 받으며 고 제독은 새로이 자리한 장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고 제독에 이어 송 소장과 원 준장, 그리고 한국군 사단장들의 소개가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영국 육군과 해군의 장성들이 자기소개를 했다.
짧은 상견례가 끝나고,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미국은 반드시 이 시기에 상륙작전을 벌이기를 고집하는 것이오?”
몽고메리 원수의 질문에 앤드루스 장군이 바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부분은 이미 합의를 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지만 겨울철 상륙작전은 자칫 잘못하면 필요 이상의 비전투손실을 가져올 수 있소.”
“그에 대비해 선정된 상륙장소입니다만?”
앤드루스 장군을 대표로 한 미국이 물러설 생각을 바꾸지 않자 마운트배튼 제독이 몽고메리를 대신해 앞으로 나섰다.
“그렇다면 상륙 지점에 대한 지리 정보는 확보했습니까?”
마운트배튼 제독의 지적은 디에프 상륙작전의 실패에서 얻은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
사전에 제대로 된 정보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립되고 막무가내식으로 진행된 상륙작전은 처참한 실패로 끝이 났었다. 그 경험을 뼈에 새긴 마운트배튼 제독이었다.
마운트배튼 제독의 질문에 홀시 제독과 고 제독은 빙긋 웃었다.
“정보는 입수했습니다.”
고 제독의 손짓에 대기하고 있던 장교가 회의실 벽에 달린 대형 모니터에 지도를 투영했다.
상륙 지점의 자세한 지도와 각종 지리데이터가 표시되자 영국 장성들의 입은 굳게 다물어졌다.
“어디서 이런 정보를….”
“한반도니까요.”
고 제독의 짧은 대답에 마운트배튼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거야 원….”
‘꼬장꼬장하다.’라는 평가를 받는 영국 장성들의 입을 막아 버린 것은 21세기 미국이 넘겨준 전 세계 지리 정보 데이터였다.
마운트배튼이 물러서자 몽고메리가 다시 전면에 나섰다.
“아직 우리 육군의 준비가 끝나지 않았소. 최소한 1달만 뒤로 물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오.”
몽고메리의 말에 홀시가 앞으로 나섰다.
“우리 상륙군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왔소이다. 마셜 장군은 우리 미국과 아세안 연합군들로 구성된 상륙군만으로도 충분히 자전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말했소. 영국이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면 이후 벌어질 2차 작전의 주공(主攻)으로 나서는 것이 어떻소이까? 노르망디에서 벌어질 2차 작전 말이오.”
“그건 안 되오!”
“그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홀시 제독의 제안을 몽고메리는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을 했다.
몽고메리만이 아니라 마운트배튼도 분명히 거부의 뜻을 밝혔다.
한미아세안 연합함대를 방문하기 전, 몽고메리와 마운트배튼 제독을 위시로 한 장성들은 처칠의 밀명(密命)을 받았다.
“우리 대영제국은 인도를 잃었고, 중동을 잃었소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저 아프리카밖에 없소!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국의 뒤만 따라다닌다면 우리 대영제국의 미래는 없소이다! 우리 대영제국의 미래를 위해 귀관들은 최선을 다하시오!”
처칠의 밀명이 아니더라도 영국군 장성들은 무조건 미국의 뜻대로 움직여 줄 의사가 없었다.
전쟁은 누가 보더라도 미국에게 유리했다. 처칠과 정치인들은 전쟁 이후 재편될 질서에서 영국의 몫이 줄어드는 것만을 우려하고 있지만, 군인들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우리는 위대한 대영제국의 군인이다. 미군의 뒤만 따라다니는 보충병들이 아니야!”
몽고메리와 마운트배튼이 강하게 반대를 했지만 홀시 제독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독일 놈들에게 시간을 줘서 뭐 하자는 것이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미국의 병사들이 저 동유럽에서 독일 놈들과 혈투(血鬪)를 벌이고 있소이다! 한시라도 빨리 서유럽에 상륙해 독일을 족쳐야 한단 말이오! 그렇게 해서 한시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야 후방에서 고통을 감내(堪耐)하고 있는 국민들의 부담을 풀어 줘야 한단 말이외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무작정 상륙하는 것은 반대요!”
“그러니까 영국은 2차 상륙작전에 참가하면 된다고 한 것 아닌가! 그렇게 앉아서 급한 사람들 발만 잡아끌지 말고!”
“뭐라! 발만 잡아끈다고?”
“내가 무슨 틀린 말 했나? 댁들이 지금 보여 주고 있는 행태가 그거 아냐!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이 작자가!”
직설적이고 과격한 홀시 제독의 말에 영국인들이 발끈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쪽의 분위기가 과열되자, 앤드루스 장군이 진화에 나섰다.
“자, 자, 양쪽 모두 과하게 흥분하셨습니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숨을 가다듬읍시다. 우선 유럽주둔 미군 사령관으로서 홀시 제독을 대신해 과격한 표현에 대한 사과를 드립니다. 미안합니다.”
“큼! 크흠!”
“커흠!”
앤드루스 대장이 사과를 하고 나서자 영국과 미국 모두 헛기침을 하는 것으로 불편한 심정을 나타냈다. 어쨌거나 과열된 상황을 식히는 것에 성공을 한 앤드루스 대장이 상황을 정리했다.
“준비가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좋은 법이지만, 상륙군에 소속된 안작군단(ANZAC)은 이미 전력의 한 축으로써 충분한 규모입니다. 따라서 영국 본토에 있는 전투부대는 충실히 준비해서 2차 상륙작전을 주도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의회가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여기서 시간 낭비를 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의회는 물론이고 대통령께서도 좋은 말을 하시지는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누가 들을 것인지는 잘 알겠지?”
중간에 끼어든 홀시 제독의 말에 영국 장성들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하지만 더 이상의 반발은 없었다. 승패는 이미 갈렸기 때문이었다.
* * *
바다 위에서 한바탕 설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베를린에서도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설전의 시작은 소령 계급장을 단 젊은 참모가 의견을 내놓으면서였다.
“양키들이 봄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상륙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한스. 상륙이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아?”
한스의 상관이 바로 면박을 줬지만 한스는 계속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다.
“맞습니다. 상륙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잊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양키들이 상륙전의 전문가들이라는 것 말입니다.”
한스의 말에 상관은 코웃음을 쳤다.
“흥! 그 촌놈들이 상륙전의 전문가라고?”
“잊으셨습니까? 일본을 항복까지 몰고 가면서 양키들이 벌인 전투는 모두 상륙전으로 시작했습니다. 일본만이 아닙니다. 이미 중동에서도 상륙전을 벌였지요.”
한스의 말에 상관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사라졌다.
“계속해 봐.”
“일본을 상대로 하면서 양키들은 이미 상륙전이 달인(Meister)이 되어 버렸습니다. 항구?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예상했던 칼레나 디에프 등을 고집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서유럽의 어느 해안이라도 공간만 된다면 양키들은 바로 상륙할 수 있습니다.”
한스의 설명에 고민을 하던 상관은 고개를 저었다.
“기후를 생각해야지. 이 추운 겨울 바다에서 물에 젖은 병사들이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대서양과 북해는 태평양이 아니야.”
“양키들의 수륙양용 장갑차들을 잊으셨습니까? 병력 수송용 오토자이로들은 어떻고 말입니까?”
한스는 꿋꿋하게 자신의 의견을 고집했다.
“양키들은 봄이 아니라 지금 상륙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