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7
307화 유럽으로 가는 길 (9)
루즈벨트의 연설은 미국인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불러왔지만 문제가 생겼다.
병력이 이동을 한 시기와 대선(大選)이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불공정한 정치선전이다! 여론전이다! 루즈벨트는 비겁한 수를 쓰고 있다!”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토머스 듀이는 격렬하게 비판을 하고 나섰지만, 열세를 뒤집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결국 듀이는 음모론을 들고 나왔다.
“진주만 공습은 알고도 당한 것이었다. 루즈벨트는 전쟁에 끼어들기 위한 명분을 얻기 위해 기습을 허용한 것이다!”
기습을 당하는 항구에 가장 중요한 전력인 항모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 노후한 전함들만이 항구에 있었다는 것 등등 여러 이유를 들며 듀이 쪽 진영은 음모론을 주장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음모론이 불거지면서 뜻하지 않은 유탄을 얻어맞은 것은 9전단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현실이 되니 기분은 좀 더럽군. 아니, 아주 더럽네.”
미국 주재 한국 외교부 직원들이 보낸 급전(急傳)을 읽은 정 수석차관은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미래에서 온 존재들이라니! 이거야말로 국민들을 바보로 아는 희대의 사기극이다!
-유명한 물리학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시간이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공통의 결론이었다.
-루즈벨트가 국민들을 우롱한 것이었다!
‘9전단 음모론’은 예상 외로 약발이 들었다. 미국인들 사이에 의심을 하는 이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는 여론조사에, 듀이가 직접 메가폰을 들고 ‘9전단 음모론’을 떠들기 시작했다.
“저명한 학자들 모두가 미래에서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우리가 물어본 이들은 모두 당대의 석학들이다! 바로 들통이 날 사기극을 벌일 정도로 루즈벨트는 국민을 우습게 본 것이다!”
전국을 순회하며 유세를 하며 듀이는 이 ‘9전단 음모론’을 계속 주장했다.
하지만, 이 ‘9전단 음모론’은 거센 반발에 부딪쳐야 했다.
반발의 주역들은 듀이가 언급한 저명한 물리학자들이었다.
-말을 하려면 똑바로 하라! 우리가 말한 것은 ‘9전단이 시간 이동을 하게 된 이유와 방법은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9전단이 미래에서 온 것은 확실하다.’, ‘시간 이동은 현재 우리가 가진 지식수준과 기술로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듀이는 우리의 말을 제멋대로 가지고 놀지 마라! 평생을 진리탐구에 매진해 온 우리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라!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저명한 학자들의 연명사인이 들어간 반론이 주요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하고, 실제로 라디오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듀이를 비판했다.
학자들의 반발에 궁지에 몰린 듀이는 계속해서 ‘증거물들’을 내놓으며 음모론을 주장했다.
“저들이 처음 나타난 필리핀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그들의 옷차림을 보라! 지금 우리가 입은 복식과 거의 유사하다! 바로 전 세기(世紀)인 빅토리아 시대와 지금 1944년의 복색을 비교해 보라! 천양지차(天壤之差)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후의 시대에서 온 이들의 복색이 우리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보나?”
“그건 그러네?”
듀이의 항변에 적지 않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디오를 통해 듀이의 반박연설을 듣던 미국 주재 한국 외교부 직원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알았으면 알루미늄 호일로 우주복이라도 만들어서 입고 돌아다녀야 했나?”
듀이가 음모론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그에 호응하는 여론의 세가 만만치 않음을 확인한 루즈벨트 진영은 대책을 의논했다.
“지금 LA에서 정비 중인 9전단의 함선들을 공개하는 행사를 벌이는 것은….”
“그거 FBI와 OSS 모두 강하게 반대를 하고 있어. 아직도 유대인들과 독일 그리고 소련의 스파이들이 상당수 남아 있다고 그러더군.”
“이후의 역사를 밝히는 것은?”
“과거가 바뀌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고”
단 한 방으로 듀이 진영의 입을 막아 버릴 수단을 찾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원자로의 설계도면을 놓고 학자들과 씨름을 하던 성 부장이 답을 내놓았다.
“마데 인 차이나의 불량품을 여기서 써먹을 줄이야. 세상 참 재미있네.”
지나치게 과도한 출력으로 인해 인명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가방 한구석에서 썩어가던 레이저 포인터를 꺼내든 성 부장은 피식거리며 중얼거리고는 드라이버를 찾았다.
“이걸 어떻게 튜닝을 해야….”
레이저 포인터를 가지고 벌인 시연은 듀이 진영의 입을 다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만년필과 비슷한 사이즈의 레이저 포인터가 종이에 불을 붙여 버리고, 수소가 들은 풍선을 불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루즈벨트와 듀이, 양쪽 진영의 인사들과 일반 시민들, 학자들까지 참관인으로 참석하고 귀한 컬러 필름으로 촬영된 참관회는 전국의 극장에서 상영되었고, 미국 사회에는 때 아닌 레이저 붐이 불었다.
여담으로 이 시연회는 SF 만화나 영화 설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안테나 달린 권총 같은 스타일의 광선무기들이 모조리 작은 원통형으로 디자인이 바뀌게 된 것이었다.
또 다른 영향을 받은 쪽은 군부였다.
시연회를 감명 깊게 본 군부에서는 레이저를 무기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연구 오더를 집행했다.
그리고 듀이는 역으로 사기꾼으로 몰리며 대선에서 패배를 하게 되었다.
* * *
한 겨울에 벌어진 대규모 군사 이동이 선거 때문이라는 괴벨스의 설명이 납득이 가는 듯, 히틀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주의라는 미명(美名)아래 자신의 전대 대통령들이 세운 전통마저 무너뜨린 위선적인 독재자 놈!”
루즈벨트에 대한 통렬한 비난을 한 히틀러는 계속해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온갖 단어들을 그러모아 루즈벨트를 비난한 히틀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소리를 질러 대느라 가빠진 숨을 잠시 고른 히틀러는 좌중에게 명령을 내렸다.
“괴벨스! 양키 병사들에게 알려라! 그들은 민주주의 탈을 쓴 독재자를 위해 헛되이 목숨을 버리고 있다고 말이야!”
“야볼(Jawohl)!”
“그리고 군은 서부전선 방어를 위한 전력을 강화하도록!”
“그러려면 동부 전선에서 병력을 빼야 합니다. 총통각하.”
“동부 전선?”
“예. 총통각하. 루마니아 전선은 루마니아 군과 무장SS이탈리아 군단을 배정했지만 우랄 산맥이 문제입니다.”
“슬라브 놈들을 동원해! 당장 그 그루지야 백정 놈이 돌아오면 자기들이 어떻게 될지 잘 아는 놈들이다! 기를 쓰고 방어를 할 거다!”
“그러시면 우랄 산맥 동쪽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철회하시는 겁니까?”
육군 장성의 질문에 히틀러는 단호하게 명령했다.
“철회는 없다! 철회는 없어! 그 빌어먹을 그루지야 백정 놈에게 나 히틀러가 등을 보일 수는 없다!”
히틀러의 단호한 대답에 육군 장성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저 빌어먹을 양키들이 오는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그루지야 백정 놈을 교수대에 올리는 것은 좀 늦추도록 한다. 만슈타인에게 명령을 보내! 봄이 되어도 공세는 보류다! 우선은 서쪽부터 정리한다고 말이야!”
“Jawohl!”
명령을 내린 히틀러는 지도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누구를 맡겨야 잘 해낼까….”
히틀러의 혼잣말을 들은 괴벨스가 냉큼 끼어들었다.
“롬멜이 어떻습니까?”
“롬멜?”
히틀러가 솔깃한 표정을 짓자 OKW의 장성들이 일제히 반대를 했다.
“롬멜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근신 중입니다. 패장에게 중책을 맡긴다는 것은 좋지가 않습니다.”
“롬멜은 공세 우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방어 위주의 전략을 세우고 운용하는 것에는 적합하지가 않습니다.”
미군이 ‘지름길(shortcut)작전’을 시작하면서 북아프리카 전선의 추축군은 큰 피해를 입고 후퇴를 해야 했다.
위기임을 파악한 롬멜은 히틀러에게 후퇴를 상신했고, 어렵사리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내전이 일어나기 직전 이탈리아를 통과해 돌아온 독일 아프리카 군단을 환영하는 행사가 끝난 다음, 히틀러는 롬멜에게 경고를 했다.
“상황이 다급하지 않았다면 후퇴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병사들을 구해 왔다지만 패전은 패전. 당분간 자숙하고 있도록.”
“예. 총통각하.”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집에서 근신을 하고 있는 롬멜을 OKW의 장성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능력은 좋지만, 그에 못지않게 공을 탐했고, 총통에게는 열광적인 지지를 보였지만 같은 국방군 장성들에게는 계급과 기수를 모조리 무시한 채 안하무인으로 굴었기 때문이었다.
OKW의 장성들이 여러 이유를 들며 롬멜을 반대했지만 히틀러는 마음을 굳힌 듯이 보였다.
“롬멜을 부르도록.”
히틀러가 친위대 장교에게 명령을 내리자 육군 장성들은 다들 낙담했다. 그런 장성들을 노려보던 히틀러는 시선을 돌렸다.
“Herr. 슈페어.”
“예! 총통각하!”
“노르망디의 방어시설 건축은 어떻게 되어가나?”
“지금 기초공사를 끝내고 벙커들과 방벽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잘하고 있기는 한데, 더욱 속도를 올리도록. 비스케이 만 쪽은 어떠한가?”
“우선은 파괴된 해군기지들의 시설을 복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흘 전, 생 나제르가 날아갔지. 빌어먹을 양키들!”
슈페어의 말을 끊으며 욕설을 내뱉은 히틀러는 루프트바페 장성들을 노려봤다.
“밀히! 갈란트!”
히틀러의 호명의 두 장성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 총통각하!”
“루프트바페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번번이 양키들의 폭격기를 막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자네들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면 당장 계급장을 떼고 나가!”
히틀러의 질책에 갈란트가 입을 열었다.
“좀 더 성능이 뛰어난 전투기가 필요합니다!”
“갈란트! 이 변명만 하는 자식아! 도버 항공전에서는 스핏파이어 타령을 하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인가?”
“아닙니다! 더 많은 Ta183이 필요합니다! Me262는 공격기로나 쓸 만하지 전투기로는 부적합합니다!”
“Me262는 별로 좋지가 않다? 이번에는 핑계가 아닌 것인가?”
“아닙니다! 더욱 많은 Ta183을 배정해 주십시오!”
갈란트의 말에 히틀러는 슈페어를 돌아봤다.
“가능하겠나?”
“Me262의 생산량을 조율하면 가능할 듯 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명령을 내린 히틀러는 갈란트를 노려봤다.
“자네의 징징거림을 들어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결과를 보이도록! 만약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면 제군들은 괴링을 다시 볼 것이다!”
“Jawohl!”
히틀러의 경고에 밀히와 갈란트는 군기가 바싹 든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이를 악물었다.
괴링이 돌아온다는 것은 그를 추종하는 이들도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항공전을 잘 모르는 이들이 다시금 루프트바페를 좌우하는 것은 사양할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양키들의 터빈 전투기들이 장착한 신무기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들어왔나?”
히틀러의 물음에 밀히가 고개를 저었다.
“유도 로켓이라는 것만 파악된 상태입니다.”
“좀 더 자세한 정보는 없는 것인가?”
“예전의 유대인들을 통해 확보한 정보가 있는데 매우 황당한 이야기인지라….”
“황당한 이야기?”
“미래에서 온 이들이 유도 로켓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였습니다.”
“아! 그 9전단인가 뭔가 하는 그것들?”
“그렇습니다. 총통각하.”
밀히의 대답에 히틀러는 다시 슈페어를 돌아봤다. 무언의 질문을 받은 슈페어는 바로 서류를 뒤적거려 대답했다.
“물리학자들에게 문의를 해봤지만 시간이동은 불가능하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미국의 물리학자들은 그들이 미래에서 왔다고 보증을 했는데?”
“프로파간다(propaganda)입니다.”
히틀러의 물음에 답한 이는 괴벨스였다.
“프로파간다?”
“예. ‘미래에서 온 이들.’ 즉 ‘앞으로의 역사를 아는 이들’이 미국을 지지한다는 식으로 선전을 해서 국민들을 호도(糊塗)하는 것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보인 루즈벨트의 꼼수를 보십시오.”
“그럴 가능성도 있겠군. 하지만, 신무기는 존재하는 것이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슈페어!”
“비슷한 무기의 설계 및 시제품 생산을 지시했습니다.”
슈페어의 즉답에 히틀러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슈페어로군. 믿음직해.”
“감사합니다. 총통각하!”
슈페어에 대한 칭찬을 끝으로 히틀러는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육군은 서부유럽 방어를 위한 계획을 롬멜과 함께 다시 손봐서 제출하고, 루프트바페는 목을 걸고 양키들의 폭격기들이 날뛰는 것을 막도록. 그리고 되니츠!”
“예. 총통각하!”
호명당한 되니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보트들을 동원해 양키들의 함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철저하게 감시하도록! 희생을 감수하고 말이야!”
“Jawoh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