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2
302화 유럽으로 가는 길 (4)
브레스트 항구 상공.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모두 준비해라!”
폭격전대장의 통신에 B-30 폭격기들의 폭격수들은 노든mk.2조준기의 접안구에 눈을 갖다 댔다.
그와 동시에 기장은 계기판에 달린 오토 파일럿 스위치를 켰다.
오토 파일럿이 가동하면서 B-30 폭격기는 폭격수가 노든 조준기를 통해 진행하는 미세 조정을 제외하고는 지금의 고도와 속도, 방향을 유지한 채 직선 비행을 하게 되었다.
폭격기들이 접근하자 군항(軍港)과 인근 지역에 자리한 독일군들의 대공포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순식간에 검은 폭연(爆煙)들이 가득 찼지만 무익(無益)한 일이었다.
B-30들이 비행하고 있는 고도까지 유효한 사거리를 가진 대공포들은 그 수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Target insight!”
조준기의 십자선에 유보트 벙커의 모습이 잡히기 시작하자 폭격수는 투하 스위치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대공포탄들이 터지면서 만드는 충격파에 기체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꼿꼿하게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폭격수는 십자선 안에 유보트 벙커가 들어오자 바로 스위치를 눌렀다.
“Bombs away!”
8톤짜리 거대한 폭탄이 단번에 떨어져 나가자 B-30폭격기의 기체가 순간적으로 위로 올라갔다. 재빨리 오토파일럿을 해제한 기장은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좋아! 고도를 올린다!”
블록버스터를 투하한 B-30들은 고도를 올리며 선회를 시작했다.
후속하는 폭격기들과 동선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고, 일본과의 전투에서 경험을 축적한 폭격기 조종사들은 능숙하게 기체를 움직였다.
폭격기들이 폭탄을 투하하는 상공 한쪽에서는 전과 확인을 위한 카메라를 장착한 B-30이 열심히 촬영을 하고 있었다.
B-30폭격기들이 투하한 블록버스터들은 표적을 향해 고속으로 낙하했다.
8톤이라는 육중한 무게, 유선형으로 설계된 동체, 소총의 강선처럼 폭탄을 회전시키도록 설계를 해 부착한 꼬리날개는 바람의 영향을 무시하고 블록버스터를 유보트 벙커로 향하게 만들었다.
중력의 도움을 받아 고속으로 낙하한 블록버스터들은 그대로 유보트 벙커의 천정을 뚫고 들어갔다.
콰쾅! 쾅! 콰콰쾅!
벙커버스터들은 요란한 폭음-유보트 벙커를 중심으로 반경 1km 안에 있던 주택들의 유리창이 모조리 깨졌다.-과 엄청난 진동, 그리고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어 내며 유보트 벙커들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토트 조직(Todt Organisation)을 건설한 회심의 역작이자 ‘난공불락, 파괴불가능’의 평가를 받던 건물들이 단 한순간에 거대한 무덤으로 변한 것이었다.
피해를 입은 것은 유보트 벙커만이 아니었다.
12기가 동원된 1차 폭격만으로 유보트 벙커들이 폐허가 된 것을 확인한 폭격 전대장은 남은 20기에게 항만 시설을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
그 명령에 따라 브레스트 항은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도크와 부두에 설치된 크레인들이 엿가락처럼 휘어졌고, 군함들의 접안을 위해 길게 뻗어 나간 부두는 허리가 끊어져 버렸다.
수백 Kg에서 1톤에 가까운 콘크리트 파편 덩어리들이 폭발이 만들어 낸 폭풍에 의해 최소 10m 이상 날아가 바다에 떨어졌다.
그 덕에 항구의 수로는 이 생각지도 않은 암초들로 인해 덩치가 큰 군함들의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때까지 사용했던 250파운드에서 1000파운드 폭탄이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항구의 시설물들만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었다.
브레스트 군항에 접안해 있던 경순양함 뉘른베르크-바로 며칠 전 북해함대에서 옮겨왔다. 당시 수병들은 추운 북해에서 온난한 남프랑스로 간다고 매우 좋아했었다-는 접안해 있던 부두에 명중한 블록버스터가 만든 폭풍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전복이 되어 버렸다.
대공전투를 위해 외부 대공포좌에 모여 있던 수병들 대부분이 전사를 해 버렸고, 순식간에 전복이 되면서 살아남은 이는 겨우 58명에 불과한 비극이었다.
비극의 주인공은 뉘른베르크만이 아니었다. 수로에 떨어진 블록버스터가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인공해일에 휩쓸린 유보트들 여러 척이 그대로 전복이 되거나 육상까지 밀려 올라가 좌초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난장판이 되어 버린 항구에 대기하고 있던 미군의 B-17 폭격기들과 B-24의 대군이 몰려들었다.
그동안 북유럽의 하늘에서 시달렸던 것을 앙갚음이라도 하듯 B-17과 B-24들은 항구를 철저하게 부숴 버렸다.
브레스트에서 벌어진 참극은 로리앙에서도 거의 비슷한 시간에 비슷하게 벌어졌다.
전과확인기가 촬영한 필름과 폭격 직후 이뤄진 항공정찰에서 찍은 사진을 놓고 분석을 한 연합군 정보부는 이 폭격으로 대서양에서 활동하는 유보트 전력의 절반 정도를 깎아 먹었다고 평가했다.
독일군 자신도 거의 비슷한 평가를 내렸고, 후대(後代)의 전쟁사학자들도 동일한 평가를 내린 작전이었다.
‘독일 유보트 부대 최대의 참극이 벌어진 날.’이었다.
* * *
“아! 속 시원하다!”
보고를 받은 앤드루스 대장은 오랜만에 활짝 핀 얼굴로 가슴 부근을 쓰다듬었다.
앤드루스 대장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참모들을 바라봤다.
“영국 놈들의 표정을 한 번 보고 싶군!”
그동안 앤드루스의 폭격기들이 연신 실패의 고배(苦杯)를 드는 동안 영국군은 충고를 가장한 비아냥거림을 계속해왔다.
“거 참! 뭐하러 주간 공격을 고집해서 피해를 키우는 것이오? 차라리 우리와 같이 야간폭격에 전력을 집중하는 것이 낫겠소!”
“유보트들의 공세를 막기 위해서는 충분한 항속거리와 폭장량을 가진 항공기들이 많이 필요하오. 어차피 주간폭격도 거의 중지한 상황인데 유보트들 초계에 폭격기들을 투입하는 것이 어떻겠소?”
영국인들 스스로는 동맹국을 향한 충고라고 했지만, 듣는 앤드루스와 미국인들에게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충고였다.
보고서를 확인하던 앤드루스는 참모에게 명령했다.
“영국 놈들에게 연락해서, 생 나제르에 유보트들이 얼마나 몰려드는지 알아보라고 해! 브레스트와 로리앙이 날아간 이상 유보트들이 갈 곳은 생 나제르 아니면 저 북쪽밖에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베를린. 총통관저.
“… 확실히 호되게 당하기는 당했군.”
담담한 히틀러의 말에 되니츠는 더욱 사색이 되어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총통 각하!”
“사령관이 사과를 할 필요는 없어. 이번 일은 불가항력(不可抗力)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니까. 지금은 유보트 전력을 어떻게 하면 유지를 시킬 수 있을지 그것부터 연구하도록.”
“알겠습니다, 총통각하!”
“자리에 앉도록.”
되니츠를 자리에 앉힌 히틀러는 회의실에 자리한 장성들과 슈페어를 돌아봤다.
“태평양에서 놀고 있던 양키들이 드디어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는 다들 들었지?”
“예, 총통각하.”
“그 규모도 엄청나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예, 총통각하.”
“그리고 미국 본토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수송선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보고도 들었겠지?”
“예, 총통각하.”
“그러면 그것에 대한 방책을 생각해 보도록 하지. 양키들과 그 일당들이 영국에 도착한 다음 바로 도버해를 건널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참모들의 예상으로는 빨라야 3월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3월이라….”
육군 장성의 대답을 곱씹은 히틀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은 병력 운용이 가장 힘든 계절이었다.
양키들과 그 일당들이 바다를 건너 상륙한다면 가장 유력한 곳이 프랑스였다.
독일이나 다른 북유럽해안 국가에 비해 온난한 곳이 프랑스였지만 이 추운 겨울에 차가운 바닷물에 젖어가며 상륙을 한다면 전투손실보다 비전투손실이 더욱 클 일이었다.
“양키들이 아무리 미친 놈들이라고 하더라도 이 겨울에 상륙작전을 벌일 정도로 미친 놈들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Herr. 슈페어.”
“예, 총통각하.”
“대서양 방벽(Atlantikwall)의 건설 상황은 어떠한가?”
“앞으로 6개월 안에 1차 목표인 칼레( Pas-de-Calais)에서 페캉(Fécamp)까지 완공됩니다.”
쾅!쾅!
“늦어! 늦어!”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히틀러가 소리를 지르자 슈페어를 비롯한 모두는 자라목이 되어 히틀러의 눈치를 살폈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히틀러는 소리를 높였다.
“노르망디까지 3월 안에 끝내! 네놈들은 파드 칼레 아니면 디에프라고 하지만 처칠이나 루즈벨트 모두 멍청이들은 아냐! 영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 칼레인만큼 우리도 신경을 쓸 거라는 것쯤은 그들도 알아! 디에프는 이 쓴 맛을 봤던 곳이고! 내 예상으로는 노르망디다! 쓸데없이 다른 곳에 힘을 쏟지 말고 노르망디에 집중해!”
“하지만 노르망디는….”
“닥치고 노르망디다! 칼레보다 노르망디가 파리에 가깝다! 노르망디를 방어해야 해! 1순위가 노르만디! 2순위는 비스케이만!”
히틀러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장성들은 계속해서 반대를 했다.
“하지만 총통각하. 물론 노르망디 지역이 파리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교통 환경을 보면 칼레가….”
“내 말을 듣지 않을 거면 당장 계급장 떼고 나가!”
“...”
히틀러의, 최후통첩에 회의장 안은 침묵이 점령했다. 입을 다물어 버린 장성들을 노려보던 히틀러는 슈페어에게 시선을 돌렸다.
“슈페어!”
“예, 총통각하!”
“지금 즉시 토트조직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노르망디 지역의 방어시설을 확충하라! 그리고 브레스트와 로리앙 지역의 유보트 기지들을 최대한 빨리 복구함과 동시에 방어시설도 확충하도록!”
“인력이 부족합니다.”
“칼레 지역에서 농땡이 치고 있는 놈들 다 끌고 움직여! 3월까지 모든 공사를 끝내! 안 그러면 네놈에게 책임을 묻겠다!”
“Jawohl!”
평소라면 ‘Herr. 슈페어.’라고 친근하게 불렀을 히틀러가 ‘네 놈’이라는 말까지 사용하자 슈페어는 공포에 질려 대답했다. 슈페어를 윽박지른 히틀러는 다시 장성들을 노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놈들 눈은 옹이구멍이냐? 장식이야? 저 양키들이 일본군들을 상대하면서 어떤 식으로 상륙작전을 벌였는지 보고서를 안 읽은 것인가? 미국에 있는 정보원들과 나치 지지자들, 그리고 빌어먹을 유대 놈들이 목숨을 걸고 보내 준 뉴스 필름을 보지도 않은 것인가? 칼레? 디에프? 흥! 양키들이 보트에 타고 노를 저어 상륙을 하나보지?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까맣게 잊어버린 멍청한 놈들! ‘미천한 바이마르 하사관’이라고 나를 욕하기 전에 보고서들이나 제대로 읽어!”
“죄, 죄송합니다. 총통각하.”
히틀러의 폭언에 장성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조아려야만 했다.
“지금 당장 모든 자료들을 다시 검토한 다음 양키들의 상륙지점에 관한 새로운 보고서를 작성해서 가지고 와! 12시간 주겠다! 꺼져!”
히틀러의 축객령에 회의실에 모인 장성들은 허겁지겁 서류들을 챙겨 자리를 빠져나왔다.
“후우~.”
“휘유~.”
회의실 밖으로 몰려나온 장성들과 슈페어는 문이 닫히자마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총통이 폭발했군.”
“그동안이 이상했던 거야.”
히틀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장성들은 한쪽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한숨을 쉬는 슈페어를 바라봤다.
“저 양반도 좋은 시절 다 갔군.”
슈페어를 보며 수군거리던 장성들은 회의실 문이 다시 열리자, 바로 입을 다물고는 후다닥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나온 친위대 장교는 그런 장성들을 흘낏 보고는 막 벤치에서 일어서려는 슈페어에게 걸어갔다.
“총통각하께서 찾으십니다.”
“알겠네.”
옷차림을 정비한 슈페어는 히틀러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부르셨습니까, 총통각하?”
“거기 자리에 앉도록.”
“예. 총통각하.”
슈페어는 히틀러의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슈페어를 앞에 놓고 종이에 무엇인가 써내려가던 히틀러는 서명까지 끝내고는 종이를 내밀었다.
“명령서다. 슈페어. 필요하다면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주둔하고 있는 독일 병사들을 동원해도 좋다는 내 친필명령서다.”
히틀러가 내민 명령서를 받아든 슈페어는 히틀러를 바라봤다.
무언의 질문에 히틀러는 이유를 설명했다.
“저 고상하신 프러시아의 귀족나리들은 아직도 19세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슈페어. 자네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멍청이다. 양키들은 항구가 없으면 항구를 만드는 놈들이다. 그 녀석들이 필요한 것은 넓은 공간이지, 잘 만들어진 항구가 아니야. 슈페어. 다시 말한다. 늦어도 3월까지, 우선적으로 노르망디, 그 다음은 비스케이만까지 해안을 막아 버려. 양키들이 마음 편하게 움직일 공간을 없애 버리도록. 다시 말하지만 3월까지다. 알겠지.”
“예. 총통각하.”
“자네는 나의 몇 안 되는 친우다. 내가 책임을 묻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해주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