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91화 (291/464)

# 291

291화 협상, 귀향 그리고 출항 (12)

벌레의 집요한 설득에 이청천은 백기를 흔들었지만 이병석은 끝까지 앙금을 남겼다.

“자네의 말도 일리는 있기는 하지만 지금 한창 사단장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를 무조건 이동을 시키는 것도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네. 따라서… 자네가 한 번 설득을 해 봐. 자네의 설득이 통해서 김 장군이 합참에 들어오겠다면 나는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겠네.”

“…알겠습니다.”

끝까지 앙금을 남기는 이병석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벌레는 대답을 하자마자 경례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보게, 철기. 저 젊은이들에게 너무 야박하게 구는 것 아닌가? 아닌 말로 저들이 있어서 우리의 꿈을 실제로 만들 수 있지 않았나?”

벌레를 내보낸 다음 이청천은 이병석에게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병석도 할 말이 있었다.

“공은 인정합니다만, 군을 지휘하는 것은 저들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비록 우리가 저들의 힘을 빌렸다 하나,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라도 견제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름만 거창할 뿐 속 빈 강정 신세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들이 틀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언제나 사리에 맞는 합당한 말을 하고, 일을 행하는 방법 또한 합당한 틀 안에서 정해 움직이지 않는가?”

“그 합당함 덕에 나라를 생각하던 어르신을 내쳤고, 헛된 꿈이나 꾸는 망상가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하아~.”

이병석의 거친 발언에 이청천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말한 ‘내쳐진 이’와 ‘망상가들’이 누구들인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리숭민, 그의 그림자가 너무나 짙구나.’

이청천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청천 역시 한동안은 리숭민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리숭민이 그동안 쌓은 공에 비해 과가 너무나 컸고, 리숭민의 독선적인 성격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21세기 출신들이 그를 배제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고, 리숭민 대신에 김백 주석을 선택한 이청천이었다.

하지만 이병석은 리숭민에 대한 호의를 접지도 않았고, 숨기지도 않았다.

이병석이 만주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 호피(虎皮)로 만든 옷을 비롯한 여러 선물과 격려의 내용을 담은 친필서한을 보낸 이가 리숭민이었다.

이병석이 리숭민을 추종하는 것은 다 그만한 연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청천이 보기에 이병석의 행보는 극히 위험했다.

새롭게 탄생한 대한민국 국군의 핵심을 맡은 이들이 리숭민을 적대시하는 상황에서 리숭민을 지지하는 것을 숨기지 않고, 21세기 출신들을 배제하려는 시도를 점점 대놓고 하는 이병석이었다.

이청천은 이병석이 대답한 행보를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 육국참모총장이라는 지위를 믿고 있는 것이었다.

“저러다 자신이 먼저 내쳐질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안 하는 것인가.”

긴 시간동안 같이 독립투쟁을 해 온 동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하는 이청천이었다.

*       *       *

“어떻게 되었냐?”

빨갱이의 물음에 벌레는 이부터 갈았다.

“빠드득! 강꼰대하고 리꼰대는 반드시 쳐내야겠다!”

“왜? 리꼰대가 막았어?”

“반절은 막았지.”

“반절? 그 무슨….”

“사단장 임무를 잘하고 있는 이를 강제로 합참으로 보낼 수 없으니 우리보고 알아서 설득하랍신다.”

“뭐?”

벌레의 대답에 빨갱이는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벌레의 대답을 들은 창기가 중얼거렸다.

“그 양반 이번 일에 대한 중요성을 모르는 건가?”

“우리들한테 고춧가루 뿌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우리를 왜 못 잡아먹어서 난리인 거야?”

창기의 물음에 벌레와 빨갱이가 동시에 대답했다.

“리숭민.”

“그 양반, 리숭민 열혈 빠돌이잖아.”

벌레와 빨갱이의 대답에 창기는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리숭민, 그 인간은 계속해서 발목을 잡네….”

창기의 말에 이어 빨갱이는 도저히 분을 참지 못하겠는 듯, 위험천만한 발언을 했다.

“차라리 마피아 고용해서 리숭민을 쓱싹해 버릴까?”

“야!”

빨갱이의 말이 나오자마자 벌레는 빨갱이의 말을 막았고, 창기는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입이 풀린 벌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예 지금 쓱싹해 버리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 더 나을 수 있어. 임정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친(親)리숭민 라인을 생각해 봐. 왼쪽에 가장 큰 위험요소로 혹부리가 있다면 오른쪽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런 어웨이 숭민이야.”

“그런 방법은 가장 나중으로 미뤄 놓자. 똥을 쌀 것이 확실하다고 똥 대신 피를 뒤집어 쓸 필요는 없잖아?”

“피를 뒤집어쓰는 한이 있더라도 배제를 할 수 있으면 배제를 시켜야지. 우리가 아는 리숭민이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바로 그 자리에서 ‘뒤로 돌아가!’라는 명령도 서슴지 않고 내릴 사람이다.”

“그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지금은 김일홍 장군 문제가 먼저야.”

벌레가 결정을 내 버리자 빨갱이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정치적인 문제를 임시로 봉합한 셋은 가장 중요한 문제에 집중했다.

“그래서, 김일홍 장군은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기는? 우리들이 직접 찾아가서 설득해야지.”

“우리들?”

창기가 흠칫하며 묻자 벌레는 다시 한 번 이를 갈았다.

“빠드득! 이번에도 나 혼자 가서 다하라 그러면 다 죽여 버릴겨.”

결국, 세 명은 김일홍의 숙소를 방문했다. 벌레 일행을 맞이한 김일홍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세 사람을 환영했다.

“어서들 오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자리에 앉게.”

세 사람에게 자리를 권한 김일홍은 부관을 통해 간단한 다과상을 준비했다.

“생각 같아서는 술잔을 나누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하여 차를 준비했네. 모든 전쟁이 끝나는 날, 내가 술 한잔 사도록 하지.”

“말씀만 들어도 감사합니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인가?”

방문한 용건을 묻는 말에 벌레 일행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서로를 마주 보며 결심을 다시 굳힌 셋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이어 벌레가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 육군을 위해 장군님께서 큰 결단을 내려 주셨으면 합니다. 제발 합참으로 와 주십시오!”

벌레의 말에 김홍일 장군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린 김일홍 장군이 세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지금 합참으로 들어오라는 소리인가?”

“그렇습니다.”

“곧 유럽전선에서 벌어질 전투에 참가를 해야 하는 이 중요한 때에?”

“그래서 장군님이 더욱 오셔야 합니다.”

“왜 나인가?”김일홍 장군의 물음에 벌레가 대답을 했다.

“장군님이 가장 전문가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전문가라서?”

그 뒤로도 상당한 시간동안 벌레는 왜 김일홍 장군이 합참에 필요한지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벌레의 긴 설명이 끝나고 빨갱이가 말을 바로 받았다.

“짧고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 우리 육군의 상황은 패전으로 산산이 부서진 부대들을 가까스로 재편성을 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실전 경험이 있는 병사들도 많지만 실전이라고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애송이들은 더 많습니다. 초급 장교들과 중급 장교들은 있지만 그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 지도를 할 수 있는 고급 지휘관들은 대부분이 전사해서 거의 없는 상황과 비슷한 것입니다.”

“전혀 짧지도 않고 간단하지도 않군. 하지만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잘 알겠네. 그런데 그것이 아까 내가 말한 질문의 답이 되지는 않아. ‘왜 나인가?’라는 질문 말이야. 원 준장이나 송 소장도 있지 않은가?”

“영감… 아니 장군님이 말씀하신 두 분은 이 정도 대규모 작업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장군님은 이미 경험해 보셨지 않습니까? 야전군급인 19집단군의 참모 경력 말입니다.”

벌레의 대답에 김일홍 장군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과로로 시달리던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는군.”

“대한민국 육군에게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잘못하면 다시 한 번 더 일본군 출신 친일파들이 국군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창기의 말에 김일홍 장군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광복군 출신들과 자네들이 있는데도 말인가?”

김일홍 장군의 물음에 벌레가 그렇게 판단한 근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계획을 보자면 대한민국 국군은 육해군 통틀어 40만 수준입니다. 물론 이건 최대로 잡은 수준이기는 합니다만, 지금 새롭게 획득을 시도하고 있는 영토와 수복한 영토를 생각해 보면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문제는 광복군 출신들과 우리 동료들이 하나도 죽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은 채 전후에도 군에서 활동한다고 해도 커버 가능한 수치는 20만까지입니다. 이 차이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국제관계가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라면 저 40만까지 증강되는 것은 순식간일 것입니다. 문제는 저렇게 늘어나는 인력들을 관리할 이들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경험한 이들을 진급시켜 메우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투의 충격을 못 이겨 군을 떠나는 이들도 많을 것이고, 능력이 부족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빈자리를 친일파가 메운다? 가능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그렇게 들어온 이들이 그렇게 힘을 쓸 수 있을까?”

김일홍 장군의 지적에 벌레는 또 다른 문제점을 지적했다.

“저희들이 배운 역사와 달리 힘을 못 쓸 가능성도 꽤 됩니다. 하지만 국군이 패배한 군대인 일본군의 색으로 물 들 위험이 너무 큽니다. 이는 반드시 피해야 할 일입니다.”

벌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빨갱이가 말을 받았다.

“광복군의 어르신들은 앞으로도 계속 위로 올라가실 겁니다. 원로 분들은 그보다 더 빠르게 군을 떠나실 것이고 말입니다. 그렇게 광복군 출신들이 구름 위에서 노는 상황이 되어버리면 땅 위에서 병사들을 움직이는 이들 대부분은 친일파 출신들일 것입니다. 이 말은 위와 아래가 단절된 상황에서 병사들과 부사관, 아, 부사관은 최대한 막는다고 쳐도, 초급과 중급 간부들까지는 일본군의 색이 짙게 물들어 버릴 겁니다.”

“그걸 막는 방향으로 훈련을 시키면 되는 일 아닌가?”

“훈련소에서 막으면 뭐합니까? 당장 계속 생활을 해야할 부대는 일본군의 색으로 물들어버렸는데 말입니다.”

“따라서 이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장군님이 반드시 합참에 오셔야 합니다. 시스템을 건축하고 피드백을 통한 조종을 하는 동안 이 모든 과정을 가장 위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분은 장군님밖에 안계십니다.”

벌레와 빨갱이, 창기는 끈질기게 김일홍 장군을 설득했다.

세 사람의 설득이 이어질수록 김일홍 장군 역시 왜 이들이 이렇게 필사적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자네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겠네.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따지면 나 역시 출신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내가 활동을 한 군대는 국민당군이야. 자네들이 말한 무능, 개판, 엉망진창의 정도로 따지자면 일본군만큼이나 피해야 할 군대 출신이란 말일세.”

김일홍 장군의 말에 벌레가 바로 반론을 내밀었다.

“하지만 장군님은 광복을 위해 활동하셨지 않습니까? 일신의 영달(榮達)을 위해 온갖 짓을 벌인 친일파와 다르게 말입니다. 그리고 2사단을 통해 이미 충분한 실적을 쌓으셨고, 그 능력도 증명하셨고 말입니다.”

“좋게 평가해줘서 고맙군.”

짧은 대답을 끝으로 김일홍은 침묵에 잠겼다. 한참 동안 말없이 장고에 빠져 있던 김일홍 장군이 셋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바로 결정을 하기에는 사안이 무겁군. 이틀 후까지 답을 주겠네.”

“장군님의 결단을 기다리겠습니다.”

이틀 후, 김일홍 장군은 세 사람을 찾았다.

“내 자리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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