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76화 (276/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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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화 본토진공(本土進攻) 그리고 내홍(內訌) (22)

“아서라.”

벌레와 빨갱이의 말을 듣자마자 원 준장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어째서입니까? 우리 주특기 아닙니까? 이미 몇 번의 경험도 있고 말입니다.”

“그래. 그 몇 번의 경험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위에서도 이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야. 이미 영친왕에게서 천황참모본부의 위치도 알아냈으니까.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야. 도쿄의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제국 육군 제1총군의 제1항공군 사령관인 영친왕까지 조선인이라 기밀이 누설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내부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는 곳이야. 내부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잘못 들어갔다가는 목표물들은 다 도망가고 역으로 너희들이 사냥감이 되거나 아니면 기껏 찾았더니 이미 대가리에 구멍이 나서 죽어 있는 상황이 될 거다.”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대가리들이 계속 도쿄에 죽치고 있는 것은 여러 경로로 확인된 상황입니다. 대가리에 구멍 나는 것은 우리나 미군이 100m전방까지 밀고 들어가면 당연히 벌어질 일이란 말입니다. 일본 놈들 습성 잘 알지 않습니까? 책임질 놈들 가운데 하나, 또는 중간 대가리 하나가 알아서 죽으면 ‘모든 일은 저 놈이 다 벌인 겁니다.’하면서 피해 나가는 거. 그리고 우리가 시간이동하기 전의 역사에서도 대가리에게 책임을 안 물었더니 ‘죽은 놈만 억울하네. 우리는 죄가 없었네.’ 하는 헛소리만 해 대지 않았습니까? 잡아야 합니다.”

원 준장의 말에 벌레가 계속해서 작전을 결행해야 하는 이유를 대며 반발했다. 하지만 원 준장은 꿋꿋하게 거부의사를 고집했다.

“그런 일이 벌어져도 이 출장은 안 돼. 이미 도쿄의 2/3가 재로 변했고, 도쿄의 대공방어망이 거의 무너져 내렸지만, 천황참모본부가 있는 고쿄만은 방공망이 무너지지 않았다. 너희들도 영친왕의 보고서를 이미 봤을 것 아냐? 독일제 레이더와 탐조등 시스템, 그리고 그 감시체계와 자동으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독일제 128mm대공포들과 역시나 독일제 88mm, 20mm 대공포로 도배를 한 곳이야. 그리고 그 근처에는 급조지만 폭격기 요격을 위한 전투기 기지들이 확인된 것만 3곳이 있어. 때문에 B-30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전투기, 심지어 우리 해군의 KF-1C까지도 근처에 안 가는 곳이다. 네놈들도 항공사진들을 보고는 ‘리틀 평양’이라고 했잖아? 그런 곳에 헬리콥터를 타고 침투한다고? ‘블랙호크 다운 1944’ 찍을 일 있냐? 여태까지 애들 안 죽이려고 기를 쓰던 놈들이 약 쳐 먹었어?”

“상황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오늘 있었던 일본 놈들의 바보짓으로 도쿄 상공이 비었습니다! 제대로 된 교란 작전만 벌일 수 있다면 이 작전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KF-1C가 안 가는 이유는 벙커버스터 재고 부족 때문 아닙니까? 벙커버스터 재고만 충분했어도 해군은 이미 덤벼들었을 겁니다!”

계속해서 머리를 가로젓는 원 준장을 상대로 벌레와 빨갱이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설득을 계속했다.

“우리 애들 죽는 거, 진짜로 피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더러운 비정규전이 계속 이어진다면 안 죽어도 될 애들까지 죽어 나갈 겁니다! 제대로 준비만 되고 교란만 잘 된다면 최소한의 피해로 일본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는 정석적인 항복을 받아내기를 원하고 있다. 당당하게 도쿄로 밀고 들어가 일본 놈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바라고 있어.”

“대가리를 먼저 잡고 나중에 항복 서명 받아도 됩니다. 지금 찬밥, 더운 밥 가릴 때입니까? 겨우 사단 3개 동원해 놓고는 무슨 가오(かお, 顔)를 잡으려고 그런 답니까?”

“우리 위쪽만 아니라 미국의 위쪽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 천황궁 정전(正殿)에서 항복문서를 받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지랄….”

튀어나오는 욕설을 억지로 막은 벌레는 계속해서 원 준장을 설득했다.

“정석적인 항복은 정규전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군인은 싸우고 민간인은 구경만 하는 것이 정규전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정규전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일본 놈들은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할 것 없이 죄다 북한 빨갱이들 마냥 ‘총폭탄’이 돼서 덤벼드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이럴 때는 대가리부터 따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서 ‘내부구조’ 말입니다. 우리가 알아냈습니다. 포로들 가운데 고급장교들만 골라서 족친 끝에 알아냈단 말입니다. 제대로만 된다면 큰 피해 없이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단 말입니다!”

벌레와 빨갱이가 포기하지 않고 설득을 이어가자 원 준장은 결국 속내를 드러냈다.

“자식들아! 니들 정치는 신경 하나도 안 쓰지?”

“갑자기 여기서 정치는 왜 나옵니까?”

“저기 높으신 양반들이 니들을 곱게 안 보고 있는 상황이란 말이다! 중동에서 은성 무공훈장 받았고, 서울에서 벌인 일로 다시 한 번 더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지!”

“서울에서 수고했다고 태극무공훈장도 준 양반들이 왜 시비를 거는 겁니까?”

“거기서 은성 무공 훈장을 또 받아 챙겼잖아! 어지간한 미군 장성들이 나는 물론이고 높으신 양반들 이름은 몰라도 네놈들 별명은 아는 상황이야! 이미 견제가 들어오고 있단 말이다! 네놈들 기획안이 올라가도 작전은 광복군 출신 지휘관이 이제 막 전장에 나온 애새끼들을 끌고 뛸 거다! 그게 성공할 거라고 보냐! 네놈들이 피하고자 했던 떼죽음이 벌어지는 거야! 그리고 그 책임은 네놈들이 뒤집어쓸 거고!”

“씨발! 이번 전쟁 끝나고 군대 때려 치면 될 것 아닙니까!”

“군대에 말뚝 박을 거였으면 용병짓 안 했습니다!”

“이 또라이 새끼들아!”

원 준장은 거친 손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어쨌거나 이 계획은 받아들일 수 없다! 나가!”

제1독립기갑대대의 사령부 건물을 나온 벌레와 빨갱이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누가 겐세이(けんせい,牽制)를 하는지 짐작 가냐?”

“이병석 장군이겠지.”

“그래.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의 최고 대가리다. 어떻게 할 거냐? 여기서 접을 거냐?”

빨갱이의 물음에 벌레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었다.

“미쳤냐? 이걸 왜 접어?”

“그러면 어떻게 할 거냐? 이청천 장군이 있었다면 바로 결재가 떨어졌겠지만 이병석 장군은 바로 야료(惹鬧)를 부리다가 딴 짓을 할 텐데 말이다.”

벌레와 빨갱이는 이병석을 좋게 보지 않고 있었다.

청산리 전투의 영웅이고, 무장독립투쟁의 한 축이기는 했지만 정치적 욕망이 강한 이였다.

거기에 더해 기무 장교인 최 중령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반(反)임정’을 표방한 리숭민과의 관계를 비밀리에 계속 유지하고 있는 이였다.

그동안의 화려한 경력만 아니었다면 새로운 대한민국 군부(軍部)에 자리를 내어 줄 수 없는 이였다.

잠시 고민을 하던 벌레가 결정을 내렸다.

“이것 팔아 버리자.”

“팔아?”

“레인저의 애덤슨 대령이 어디 있는지 알지?”

“애덤슨 대령? 그 욕심쟁이?”

“그 욕심을 이용해야지. 그 양반 별 달고 싶어서 난리 났잖아. 이거 넘기면 좋다고 받아 챙길 거다. 거기에 머리도 잘 돌아가잖아.”

벌레의 설명에 빨갱이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애덤슨 대령이 지휘하는 레인저 부대는 중동에서부터 서울까지 여러 번 손발을 맞춰봤던 부대였고, 지금은 한국군과 같이 베이커(B) 그룹에 속해 있었다.

벌레의 설명처럼 애덤슨 대령은 장성으로 진급하는 것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면서도 필요 이상의 무리를 하지 않을 정도의 머리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이 계획을 본다면 성공을 위해 특화된 전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챌 것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빨갱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우리가 가롯 유다가 된 느낌이다.”

“이걸 팔아넘기면 느낌이 아니라 가롯 유다가 되는 거야. 어떻게 할래? 진행할까?”

“너는?”

“진행하고 싶다.”

벌레의 말에 잠시 더 고민을 하던 빨갱이가 결정을 했다.

“그래 하자.”

*       *       *

이틀 뒤, 이병석의 지휘본부에 미군장성들이 몰려왔다.

“무슨 일이오?”

돌발변수가 발생하지도 않았는데도 몰려온 미군 장성들을 보며 이병석이 이유를 묻자, 거버너 준장이 대표로 나섰다.

“지지부진한 전선의 상황을 일거(一擧)에 해결할 작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렇소이까?”

거버너 준장의 말에 이병석이 반색을 했다.

지금 베이커 그룹이 위치한 곳은 요코타(横田)였다.

원래대로라면 사가미하라(相模原)에서 우회를 한 다음 타마(多摩)를 관통, 타마 강을 도강해 바로 시부야(渋谷)로 진격을 해야 했다. 하지만 연합군의 함대를 노린 일본 항공기들의 자살공격으로 인해 니미츠는 육상에서 작전 중인 모든 지상 병력에게 근처에 있는 일본군 항공기지들을 최우선으로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로 인해 베이커 그룹은 요코타(横田)와 타치가와(立川)의 비행기지들을 정리하기 위해 북상을 한 상태였다.

시부야로 가는 길이 멀어진 상황에서 해결책을 들고 왔다는 소리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어떤 계획인지 알고 싶소.”

이병석의 요청에 거버너 장군이 작전 계획서를 내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 레인저부대에서 올라온 작전입니다. 계획은….”

거버너 준장의 설명을 듣던 이병석은 한국어로 작게 중얼거렸다.

“꽤나 대담한 작전이기는 한데… 왠지 낯익은 냄새가 난단 말이야….”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한국어로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들은 거버너 준장이 질문을 던지자, 이병석 준장은 강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아니오! 대담한 작전이기는 한데 목표 지점의 방어 상태를 보면 확률이 좀 낮을 것 같소만?”

“그 부분은 뒤에 이어진 교란 작전을 보시면 됩니다.”

거버너 준장의 설명에 이병석은 폐이지를 넘겼다.

이어지는 페이지에 적힌 교란 작전을 본 이병석은 보고서를 덮고는 콧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

“흐음….”

잠시 고민을 하던 이병석은 미군 장성들을 바라봤다.

“리지웨이 사령관과 니미츠 제독에게 재가는 받은 것이오?”

“이미 받았습니다.”

“나의 한국군이 할 일이 있소이까?”

“경성의 총독부 청사를 점령할 때 투입되었던 이들이 필요합니다.”

거버너 준장의 말에 이병석의 얼굴이 팍 찌그러졌다.

“꼭 그들이어야만 하오?”

“꼭 그들이어야만 합니다.”

“그들만큼 이런 작전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들은 없습니다.”

거버너 준장에 이어 다른 미군 장성들까지 나서서 강하게 요구를 하자 이병석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알겠소. 그들을 다시 불러 모으지.”

“감사합니다.”

“언제까지 불러 모으면 되오?”

“작전은 오늘 밤입니다.”

“저녁까지 준비시키겠소.”

“감사합니다.”

미군 장성들이 떠나고 난 다음, 이병석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부관을 불렀다.

“송 소장과 원 준장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       *       *

이병석의 호출을 받고 갔다 돌아온 원 준장은 벌레와 빨갱이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기어코 사고를 쳤더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벌레의 물음에 원 준장은 의자에 길게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서로 모르는 일로 하자. 모르는 일로. 그게 제일 낫겠지. 후우~.”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속을 정리하던 원 준장이 명령문을 내밀었다.

“참모총장의 명령이다. 즉시 애들하고 장비 챙겨서 레인저 부대로 가라. 오늘 밤 출장이다. 목표는 고쿄.”

“알겠습니다.”

담담하게 대답을 한 벌레와 빨갱이는 경례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의 등 뒤로 원 준장의 당부가 들렸다.

“몸조심해라. 앞으로 할 일이 많다. 유럽 구경은 해야지? 유럽에 볼 거 많잖아?”

“감사합니다.”

“전쟁 중이라는 것만 빼면 말이지요. 어쨌거나 감사합니다.”

*       *       *

그날 밤, 미육군 항공대가 자리를 옮겨온 아츠기 기지에서 수많은 헬리터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수많은 헬리콥터들이 내는 요란한 소음 위로 B-30의 폭격기 편대가 내는 거대한 엔진음이 덮어졌다.

두 집단의 목표는 도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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