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
265화 본토진공(本土進攻) 그리고 내홍(內訌) (11)
“구레 전멸?”
“그렇습니다!”
오전 9시. ‘구레가 폭격을 당했다.’라는 급보에 이노우에는 물론이고 히로히토까지 다급한 얼굴을 하고 천황참모본부 회의실에 모습을 보였다.
먼저 와 있던 참모들의 경례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자리에 앉은 히로히토는 다시 한 번 사실을 확인했다.
“전멸이 확실한 것인가?”
히로히토의 물음에 가장 먼저 사실을 확인한 참모가 대답했다.
“전멸(全滅)이라기보다는 소멸(消滅)이 더 정확합니다.”
“연합함대는?”
“전멸입니다.”
“허….”
보고를 받은 히로히토가 허탈한 얼굴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노우에가 대신해 상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구레를 소멸시킬 정도의 폭격이라면 대규모의 폭격기를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 레이더 기지의 불찰(不察)인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히로시마에서 현지로 달려간 이들이 생존자들에게서 확보한 보고에 따르면 폭격기는 단 한 대, 폭탄은 단 한 발이었습니다.”
“한 발?”
“…그렇습니다.”
“그건 불가….”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하려던 이노우에는 순간 말을 멈췄다.
잠시 생각을 하던 이노우에는 스스로에게 자문(自問)했다.
“우라늄 폭탄을 드디어 만든 것인가?”
이노우에의 말에 상석에 앉아 있던 히로히토가 입을 열었다.
“우라늄 폭탄이라면 니고연구(ニ号研究)를 말하는 것인가?”
히로히토의 물음에 이노우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단 한 발로 그 정도의 위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우라늄 폭탄밖에 없습니다.”
미군에 의해 연결로가 끊기기 전, 독일은 미국과 영국이 우라늄을 이용한 초강력 폭탄을 연구하고 있다는 정보를 보냈었다.
미국과 영국이 연구를 하고 있다면 독일 역시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 확실하고, 동맹국에게조차 비밀로 취급할 정도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노우에와 히로히토는 1940년부터 진행되어 온 ‘니고연구(ニ号研究)’에 지원을 강화했다. 하지만 지원을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연구는 아직도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이노우에의 대답에 히로히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결국 그들이 완성을 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됩니다. 문제는 저들이 과연 대량생산에 성공했느냐 입니다.”
이노우에의 대답에 히로히토의 표정이 밝아졌다.
“장군은 대량생산에 실패했다는 생각이로군?”
“그렇습니다. 만약 미국이 대량생산에 성공했다면 시모노세키를 폭격할 때부터 썼을 것입니다. 미국이라면 그런 일에 절대로 아낄 이들이 아니니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
“제 생각에 미국은 아직 대량생산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잘해야 한 발 아니면 두 발이 다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발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곳인 구레를 목표로 사용을 한 것입니다.”
이노우에의 설명에 히로히토가 이해를 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재차 질문했다.
“장군은 그럼 이 폭격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허장성세(虛張聲勢)입니다. 미국이 원산에 상륙한 다음부터 본토에 뿌려 댄 전단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를 이런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무조건 항복하라.’ 미국은 우리 일본이 겁먹고 무조건 항복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원산에 자리한 비행기지에 배치된 B-30 폭격기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본 본토를 향한 대규모의 전단지 살포였다.
일본의 주요도시들의 이름들을 적고, ‘조만간 이 도시들을 목표로 무차별 폭격을 할 것이니 알아서 도망가라. 아니면 너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지도자들에게 항거하라.’라는 내용이 적힌 전단지들을 일본 전토에 뿌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한 일은 대구에 전단지를 살포한 다음 약속대로 대구를 밀어 버린 것이었고.
이노우에의 설명을 들은 히로히토는 손가락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히로히토의 말이 사라지자 회의실 안은 침묵에 잠겼다.
“이노우에 장군.”
“예, 폐하.”
“우선은 미국이 생산한 우라늄 폭탄을 두 발로 잡고, 남은 한 발을 어디에 쓸 것 같은가? 이곳 도쿄?”
“도쿄는 아닐 겁니다.”
“어째서?”
“나중에 항복문서에 사인을 할 사람은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노우에의 뼈있는 말에 히로히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참으로 슬픈 희극(喜劇)이로군.”
그 말을 끝으로 히로히토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5분 정도 지났을까? 히로히토는 다시금 진지한 얼굴이 되어 이노우에를 불렀다.
“이노우에 장군.”
“예, 폐하.”
“미국에게 아주 강력한 폭탄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이에 대한 방책을 수립하라! 우리 일본의 도시 하나가 날아갈 때마다 적어도 미국의 폭격기 100기는 떨어져야 할 것이다!”
“핫! 이미 잇센(一閃)의 대량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신예 폭격기가 제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이번처럼 무방비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좋다! 그리고 미국의 상륙에 대비해 방어태세를 재점검하라! 상륙한 미군이 1m를 전진할 때마다 10명의 미군이 죽어 나가게 만들어라!”
“핫!”
“신민들에게 전하라! 미군이 상륙하면 여자란 여자들은 모조리 강간당할 것이고, 세간살이는 모조리 약탈당할 것이다! 신주방어(神州防禦)에 군과 민이 따로 없으니 모두 결사의 각오로 나서라고 말이야! 필요하면 내가 직접 방송에 나가겠다!”
“핫!”
자리에서 일어선 히로히토는 단호한 목소리로 회의실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외쳤다.
“절대! 최후의 최후까지 겁먹지 말고 미국의 공격에 저항하라! 끝까지 저항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 제국이 미국을 협상테이블에 앉힐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핫!”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했지만, 회의실에 있던 모든 이들- 심지어 히로히토 자신마저도- 양키, 귀축이라고 부르던 것을 미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 * *
일본에서 히로히토와 군부가 결사의 각오를 다짐하고 있을 때, 대구에서도 다시금 전투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쾅! 쾅! 쾅! 콰쾅!
“포격이다! 피하라!”
“피해!”
‘중포 사용을 허가한다.’라는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육군 5사단의 포병들이 모든 화력을 동원해 공산당원들이 점거한 대구역과 대구부청 인근을 타격했다.
이미 지난 대구 전투에서 벌어졌던 폭격으로 인해 폐허로 변해 버린 시가지가 이번 포격으로 인해 황폐한 무인지대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악!”
“피해라!”
“피해라!”
포격이 진행되면서 사방에서 피하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지만 군사훈련이나 군대 경험이 전혀 없던 대부분의 공산당원들은 어디로 피해야 하는지,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우왕좌왕하다가 피해를 더욱 키우게 되었다.
“포격이 끝났다!”
“포격이 끝났다!”
“전투를 준비하라!”
언제 끝날지 모르게 이어지던 포격이 멈추자 사방에서 전투준비를 외치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전투준비를 외치는 고함소리에 공산당원들은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소총을 들어 앞쪽을 겨눴다.
끼리리릭! 우르르릉!
잠시 후, 요란하게 들리는 금속의 마찰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열차에 실려 지나가는 것을 구경만 했던 거대한 전차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탕! 타탕! 탕! 탕!
전차가 나타나자마자 공산당원들은 전차를 향해 사격을 해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쏜 탄환은 전차의 장갑에 부딪히며 헛되이 튕겨 나갔고, 공산당원들이 모인 곳으로 포구(砲口)를 돌린 전차들의 주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콰쾅!
* * *
“비서동지! 제2방어선이 뚫렸습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피신을 독촉하는 부하의 목소리에 박헌양은 멍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어디로?”
“금호강을 건너 산으로 가면 됩니다. 그곳에서 산을 타고 이동해 팔공산으로 빠지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빨치산 활동인가….”
“비서동지! 시간이 없습니다!”
다급한 표정을 한 부하가 계속해서 피신을 독촉했지만 박헌양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에이! 썅!”
다급해진 부하가 욕설을 내뱉고 먼저 몸을 피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박헌양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정치적 인신공격(人身攻擊)을 받는 것도 모자라 숭고한 혁명의 깃발이 더럽혀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봉기를 했다. 하지만, 봉기를 하면 바로 뒤따라 호응을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다른 지역에서의 반응은 극히 미약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비록 방법론(方法論)에 이론(異論)을 보였지만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같은 꿈을 꾸던 이들까지 모두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동지들에게 날 선 비난을 해 대기 시작했고, 매국노와 같은 취급을 해 댔다.
“좋다! 이 땅에 공산혁명의 붉은 기가 휘날리는 날, 내 이 모든 수모를 갚아 주리라!”
이를 갈며 박헌양은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과 함께 대구역과 대구부청의 창고들에서 무기들을 꺼냈다.
“비서동지! 무기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뭐라!”
부하들의 보고에 박헌양은 다급히 소총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무슨 문제인가?”
“그게 알 수가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말에 박헌양은 급히 무기에 대한 지식이 있는 이를 찾았다.
피 같은 시간이 흘러 포수(砲手, 사냥꾼.)를 아비로 뒀었다는 당원이 문제를 찾아냈다.
“공이가 없습니다.”
“공이?”
“공이가 없으면 총이 탄환을 못 쏩니다.”
수거한 소총들을 완전 폐기하기 전에 혹시라도 모를 사고를 대비해 소총의 공이들을 제거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공산당원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럼 이 총들 전부 다 못 쓰는 것인가?”
박헌양의 물음에 당원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다른 동지들 총들을 보니 공이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전부 다 확인해야 합니다.”
“밤을 새서라도 확인하게! 시간이 없어!”
말 그대로 밤을 새서 조사한 끝에 사용가능한 아리사카 소총은 전체 3900자루 가운데 1563자루였다.
경기관총을 비롯한 중화기들은 아예 사용가능한 것이 없었고, 척탄통은 포탄이 없었다.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또 뭔데!”
“탄약이 안 맞습니다!”
“뭐!”
수거된 총기는 38식과 99식이 무분별하게 섞여 있었다.
군사경험이 없던 공산당원들은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 마구 소총과 탄약을 가져갔고, 그것이 또 다른 말썽을 불러온 것이었다.
“지금 당장 탄약들을 소총들을 확인해서 제대로 분배하도록!”
그런 온갖 혼란을 겨우 해결했을 때는 이미 날이 환하게 밝은 다음이었고, 경찰예비대와 육군이 이미 그들을 포위해 가고 있었다.
몇몇 공산당원들이 포위망을 빠져나가려 시도를 할 무렵은 이미 포위망이 완성된 이후였다.
포위망에 갇힌 공산당원들이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전차와 장갑차에 의지해 진압해 들어오는 경찰 예비대와 육군의 화력에 눌려 차근차근 진압되어 나갔다.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마라!”
“서두르지 말고 한 구역씩 차근차근 제압해 나가!”
“훈련대로 행동하라!”
경찰 예비대와 육군은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포위망을 좁혀나갔다.
해가 질 무렵, 포위망은 박헌양과 핵심 간부들을 둘러쌌다.
“투항하라!”
밖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박헌양은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을 돌아봤다.
“끝이로군.”
“크흑! 비서동지!”
담담한 박헌양의 말에 부하들은 통곡을 했다. 박헌양은 담담한 목소리로 부하들을 다독였다.
“동지들. 기운 내시오. 이번의 혁명은 실패했지만, 이 일을 경험 삼아 다음 혁명은 반드시 성공을 시킵시다!”
“비서동지!”
“수감생활이 조금 힘들겠지만 이겨냅시다! 이겨내면! 다시금 혁명을 위해 일할 수 있을 것이오!”
“투항하라!”
밖에서 다시금 들리는 투항권고에 박헌양은 가까이에 있던 부하에게 명령했다.
“백기를 흔들게.”
“크흑! 알겠습니다!”
박헌양의 명령을 들은 부하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투항한다! 쏘지 마라! 투항한다!”
“무기를 버리고 밖으로 나와!”
밖에서 들리는 명령에 박헌양과 핵심간부들은 소총을 버리고 두 팔을 위로 높이 든 채 숨어 있던 건물에서 걸어 나왔다.
장갑차에 달린 서치라이트의 밝은 빛에 투항한 이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박헌양입니다.”
“나도 봤어.”
서치라이트 뒤에서 투항자들의 모습을 살피던 육군 소령이 손에 들고 있던 싸창-마우저 권총의 중국 복제품-을 들어 박헌양을 겨눴다.
탕! 타타타타타탕
육군 소령이 쏜 45구경 탄환이 박헌양의 이마를 관통하는 순간 소령의 부하들이 투항자들을 향해 일제사격을 가했다.
싸창을 홀스터에 도로 집어넣은 소령이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저들은 모두 자살돌격을 시도하다가 죽은 것이다. 그렇게 보고하고 그렇게 기억해라.”
“알겠습니다.”
구우우우웅.
박헌양과 부하들의 시체들을 처리하는 육군 병사들의 머리 위로 일본을 향해 날아가는 B30폭격기들의 엔진음이 요란하게 하늘을 채워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