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
264화 본토진공(本土進攻) 그리고 내홍(內訌) (10)
‘레이디 베티’가 무사히 이륙을 하자 곧이어 각종 계측 장치를 탑재한 또 다른 B-30이 뒤를 이어 이륙했다.
순항 고도까지 올라간 2대의 B-30은 곧 속도를 높여 일본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2대의 B-30이 대마도 인근에 도착하자 김해에서 출격한 2개 편대, 8기의 타이거 전투기들이 합류했다.
총 10기로 불어난 편대는 일본 본토를 향해 비행을 이어갔다.
일본도 폭격기들이 접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조지산(安蔵寺山)의 레이더 기지에서 온 경보입니다! 양키들의 소규모 편대 접근 중! 고도 11,000m!”
통신장교의 보고에 구레 진수부(呉鎮守府) 사령관 사와모토 요리오(沢本 頼雄)는 화가 난 얼굴로 바로 타박을 했다.
“소규모라고 하면 알 수가 있나! 좀 더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와! 이런 바보 자식!”
“핫! 죄송합니다!”
사와모토 사령관의 질책에 통신 장교는 꼬리를 말고는 후다닥 사령관실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통신 장교의 모습을 보며 사와모토는 혀를 찼다.
“쯧! 쓸 만한 녀석들이 없어! 쓸 만한 녀석들이!”
대미개전(對美開戰) 이후 제국 해군의 미래라고 불리던 인재(人才)들이 대거 사라져 버린 현실에 분통을 터뜨리는 사와모토였다.
10분 정도 지나, 통신 장교가 돌아와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전달했다.
“레이더 기지의 대공관측조(對空觀測組)의 보고에 따르면 대형 폭격기 2기, 소형 전투기 약 10여 기로 구성된 소규모 편대라고 합니다!”
“알았어! 가서 대기하도록!”
“핫!”
통신 장교를 돌려보낸 사와모토는 동석한 참모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생각하나?”
“대형 폭격기 2기로는 제대로 된 폭격이 불가능합니다. 소관(小官)의 생각으로는 정찰 임무를 맡은 편대로 보입니다.”
선임 참모의 말에 다른 참모들도 말을 덧붙였다.
“동의합니다. 시모노세키와 키타규슈를 폭격할 당시 양키들의 움직임을 보면 1대 또는 2대의 폭격기를 보내 상황을 정찰하고 폭격에 들어갔습니다.”
“조만간 양키들의 대규모 상륙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정찰이 확실합니다.”
“흐음… 정찰이라….”
콧소리를 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사와모토는 참모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요격이 가능할까?”
“지금 히로시마와 이곳 구레에 배치된 전투기들 가운데 11,000까지 올라갈 수 있는 전투기라면 잇센(一閃)이 있습니다. 바로 준비시킬까요?”
“요격은 안 됩니다! 잘못하면 양키들의 주목을 더 크게 끌 수 있습니다. 현재, 이곳 구레와 히로시마에 항공전력이 모이고 있지만 저 조선반도에 있는 양키들의 항공기 세력에 비하자면 턱없이 모자랍니다! 구레의 항공기들은 숨은 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저놈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그냥 찍어 가도록 놔두자는 거야!”
“그렇다고 격추시키면 저 놈들은 더욱 크고 강력한 전력을 구성해 몰려올 것입니다. 여태까지 겪어 본 일 아닙니까!”
“참모본부에서는 아군의 전력을 최대한 감추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지금은 전력을 드러내 보일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숨기고 안 숨기고의 상관없이 몰려올 놈들이야!”
“열이 몰려올 것을 백이 몰려오게 만들 일은 없지 않습니까!”
참모들 사이에서 격렬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가운데 사와모토가 결론을 내렸다.
“조용! 결정을 내리겠다!”
사와모토의 말에 참모들은 입을 다물고 사와모토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참모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사와모토가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어차피 양키들은 몰려올 것이 확실하다. 섣불리 저들을 자극시키는 일은 피하도록 하지. 지금 즉시 잇센을 비롯해 새로 배치된 고속전투기들에 위장망을 씌워 숨기고, 항공기지는 물론이고 연합함대에도 연락을 해. 대공전투를 준비하라고 말이지. 저 양키들의 전투기는 그냥 얌전히 지나가는 놈들이 아니니까.”
“핫!”
사와모토의 명령을 받은 참모들은 즉시 항공기지들과 연합함대에 명령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구레 항구의 하늘을 울리기 시작했다.
에에에엥.
“공습경보! 공습경보!” “총원(總員) 전투위치! 총원 전투위치!”
지상의 항공기지들은 물론이고, 전함 야마토를 비롯한 연합함대의 모든 함선들에서도 수병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대공전투를 준비했다.
전함 야마토의 함교.
“총원 전투배치 완료!”
“4분 45초입니다.”
부장의 보고에 함장 아리가 고우사쿠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을 한 보람이 있군.”
“드디어 5분의 벽을 깼습니다.”
“그렇지. 앞으로도 이런 속도를 잘 유지할 수 있다면 미군의 함재기들을 상대로 버틸 수 있겠어.”
아리가 함장의 말에 부장을 비롯한 장교들의 얼굴이 착잡해졌다.
“버티는 겁니까?”
“아아. 버티는 거다.”
함장의 말에 함교에 있던 젊은 장교들 가운데 한명이 거칠게 반항했다.
“야마토는 무적(無敵)입니다!”
젊은 장교의 의견에 동의하는 다른 장교들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리가 함장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전함을 상대로는 무적(無敵)이지만 항공기를 상대로는 버티는 정도가 최선이라는 것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세상이 바뀌고 있다. 해전(海戰)의 승패를 가르는 무기는 이제 이 수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하늘 위에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어.”
아리가 함장의 지적에 부장을 비롯한 장교들은 침울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중동해전부터 시작해 주요 해전에서 연합함대는 계속해서 패전을 기록했다.
패전의 원인 가운데 가장 큰 원인은 항공 전력의 열세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연합함대는 도쿄를 방어하는 소수의 함선들과 목숨 걸고 자원을 수송하는 함선들을 제외한 전략 대부분이 이 구레에 몸을 숨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일전(一戰)을 위해 숨을 가다듬으며 칼을 벼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무작정 나갔다가는 값없이 소모될 뿐이기에 숨은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번에 오는 적 항공기는 정찰이라고 하니까, 올라가서 한번 구경이나 해 볼까? 소문의 신예(新銳) 대형폭격기를 말이야.”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아리가 함장은 더욱 과장된 목소리와 몸짓을 하며 노천함교로 걸음을 옮겼다.
* * *
“목표까지 앞으로 5분!”
항법사의 보고에 ‘레이디 베티’의 기장은 성대마이크를 누르며 통신을 했다.
“목표까지 5분! 호위편대와 관측기는 이곳에서 대기한다, 오버!”
-카피.
통신을 수신한 호위편대와 관측기가 서서히 선회비행에 들어가는 가운데 ‘레이디 베티’의 기장은 조종간을 아래로 밀었다.
그에 따라 레이디 베티는 서서히 고도를 낮췄고, 최후의 순간까지 레이디 베티를 호위할 2기의 타이거 전투기도 따라서 고도를 내렸다.
“3만 피트(약9144m)까지 내려간다.”
“알겠습니다.”
“폭격수!”
“시작하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폭격수는 개량형 노든 조준기에 각종 수치들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현재 비행 속도와 저 멀리 후방에 떠 있는 한반도 소속의 E-2D가 전해 준 제트기류의 풍향과 풍속 데이터까지 입력한 폭격수는 뒤에 앉은 기장에게 소리쳤다.
“준비 끝났습니다!”
“좋아!”
폭격수의 대답을 들은 기장은 고도계의 눈금을 주의 깊게 살피며 고도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고도계가 3만 피트를 가리키자 기장은 자동조종장치를 가동했다.
지금부터 뒤에 싣고 있는 일급기밀의 폭탄이 투하될 때까지 그가 모는 ‘레이디 베티는’ 지금의 고도와 속도를 유지한 채 직선 비행을 할 것이었다.
“Target Insight!”
목표가 있는 구레 항(港)이 조준기에 들어오자 폭격수는 조준기 옆에 있는 스위치를 조작해 폭탄창의 문을 열었다.
폭탄 투하 스위치에 손을 올린 채 폭격수는 조준기에 표적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원하는 표적은 전함 야마토의 선수(船首,뱃머리) 갑판에 그려진 초대형 일장기였다. 마침내 그가 기다리던 커다란 붉은 점이 조준용 십자선 안에 들어왔다. 붉은 점이 십자가 정 중앙에 자리하자 폭격수는 폭탄 투하 스위치를 눌렀다.
“Bombs away!”
순간, 무게가 가벼워진 ‘레이디 베티’는 순간적으로 고도가 올라갔다.
재빨리 자동조종장치를 끈 기장은 급선회를 시작하면서 엔진의 출력을 있는 대로 올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탈출한다!”
* * *
스팟!
‘레이티 베티’에서 투하된 원폭은 고도 600m에 도달하자 눈부신 섬광을 내면서 폭발했다.
그 거대한 백색의 빛에 구레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이 순간적으로 멀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핵분열이 만들어 낸 거대한 열과 불의 폭풍이 연합함대와 구레를 덮쳤다.
9전단이 회귀하기 전의 역사와 달리 9전단의 손이 닿으면서 이 1세대 핵폭탄은 좀 더 완성도가 높아졌다.
그 말은 원폭의 설계자와 제작자들이 원했던 위력이 그대로 나타났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결과는 ‘소수의 전함들을 제외한 모든 것의 소멸’이었다.
적의 포격에서 견디도록 두꺼운 철판으로 온몸을 감싼 전함들을 제외한 일본 연합함대의 함선들은 생존하지 못했다. 그렇게 만든 것은 원폭의 힘도 컸지만, 구축함과 순양함들이 대량으로 싣고 있었던 ‘산소어뢰’가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뢰발사기의 얄팍한 장갑 안에 적재되어 있던 어뢰들이 수천도의 고열과 접촉하면서 일시에 폭발해 버렸고, 그 결과 구축함들과 순양함들은 그 자리에서 침몰해 버렸다.
항공모함들 역시 참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목재로 만들어진 갑판은 그대로 숯이 되어 버렸고, 비행갑판 위에 있던 함재기들은 그대로 불덩어리가 되어 날아올라 재가 되어 가루로 사라졌다. 또한 비행갑판을 받치고 있던 철제 구조물들이 폭풍에 휘말려 이리저리 휘어지면서 비행갑판들이 무너져 내렸다.
전함이라고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원폭이 만들어 낸 폭풍을 측면으로 받은 하루나와 히에이는 중심을 잃고 전복이 되어 버렸다.
운이 좋아 폭심지에서 600m를 벗어나 있었고, 폭풍을 전면으로 받은 후소는 전복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특유의 파고다(Pagoda, 탑)함교는 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 버렸다.
폭발에 바로 아래 있던 야마토는 핵분열이 만들어 낸 초고온의 복사열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주포탑 탄약고 내부에 있던 포탄과 장약들이 일시에 폭발하면서 야마토는 말 그대로 조각조각 분해되어 가라앉았다.
하지만 연합함대에 닥친 가장 큰 불행은 대공전투를 위해 대부분의 수병들이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니, 바깥에 나와 대공전투를 대비하고 있던 수병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폭발이 일어나자마자 발생한 초고온의 폭풍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대부분 사망했으니까.
두터운 전함의 함교와 외부와 가까운 선실에 있던 병사들은 3도 이상의 화상, 또는 심각한 수준의 방사능 피폭을 당해 고통스럽게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 * *
원폭으로 인한 피해는 구레도 마찬가지였다. 구레의 모든 항만시설이 모조리 파괴되었다.
거대한 크레인의 기둥이 마치 화롯불 위에 놓아두었던 엿가락처럼 휘어져 버렸고, 각종 건물들은 그 자리에 건물이 있었다는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사와모토 사령관이 그렇게 숨기려고 애썼던 비장의 전투기들 역시 모조리 재로 변해 버렸다. 아니, 재로 변한 것은 구레 전부였다.
폭발이 끝나고 난 다음 구레는 단지 건물들이 있던 흔적과 포장된 도로만을 남기고 모든 것이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이 사라진 무(無)의 공간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참혹한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무…물….”
“살려줘….”
대부분 3도 이상의 중증 화상을 입고 순간적으로 치사량에 가까운 방사선에 피폭된 사람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물을 찾아 헤매었다. 그렇게 헤매던 이들이 도착한 곳은 구레의 가운데를 지나가는 니코(二河)였다.
거기에서 몇 모금의 물을 마신 사람들은 그대로 탈진해 쓰러져 하나둘 숨이 멎어갔다.
그렇게 스러진 이들의 머리와 몸 위로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