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
257화 본토진공(本土進攻) 그리고 내홍(內訌) (3)
여운규로서도 작금(昨今)의 상황에 대해 할 말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었다.
여운규가 계속해서 꿈꿔왔던 조선은 조선인민(朝鮮人民)들 스스로의 손으로 자주(自主), 자강(自强)하는 조선이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일본이 진주만 기습의 성공을 대대적으로 알리며 대미개전(對美開戰)을 공식 선언했을 때, 기쁨에 겨워 만세를 불렀었다.
“만세! 이제 일본이 스스로 멸망의 길로 들어섰구나!”
여운규는 일본과 미국의 국력이 천양지차(天壤之差)인 만큼, 전쟁은 무조건 미국의 승리로 끝이 날 것이라고 예상하고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구상했다.
-미국은 일본에게 항복을 받아 낼 것이고, 중국에 있는 임정과 연결된 장개석의 영향력이라면 이 조선은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
-미국은 지난 세계대전의 종전협상 과정에서도 상당한 온건파였다. 그러니 이번 전쟁에서도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협상을 조율해 갈 것이다.
-패전의 책임을 물어 일본의 호전적(好戰的)인 강경파(强硬派)들은 몰락할 것이고, 그 빈자리를 온건파(穩健派)들이 장악을 할 것이다.
-온건파들이 정권을 장악한다면 그들과 여러 인연이 닿은 조선의 친일파들을 이용할 수 있다. 그들을 잘 이용한다면 독립이후 발전을 위한 배상이나 지원을 얻어 내는 협상과정에서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매우 악질적인 친일파들은 숙청을 해야 하지만 그런 악질들은 지극히 일부이다. 대부분의 친일파들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으니만큼 이번에도 생존을 위해 적극 협력을 할 것이다. 특히나 악질 친일파들의 처벌을 목도(目睹)한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협력을 할 것이다.
-지금 이 조선반도의 고급 지식인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친일파들이 조국 발전에 적극 협력하게 한다면 신생 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여운규는 이미 망국(亡國)인 대한제국의 ‘대한’이라는 단어가 국호(國號)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했다-의 기틀은 더욱 빠르게 다져지게 된다.
-조선의 자본가들과 고급 지식인들, 우익들과 노동자, 농민의 지지가 강한 공산당이 제대로 연정(聯政,연합정치)을 하게 된다면 이 조선은 반드시 자주(自主), 자강(自强)하게 될 것이다.
-좌우연정(左右聯政)의 조율은 여운규 자신이라면 능히 가능하다. 자신을 향한 조선인민(朝鮮人民)들의 지지는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 여운규는 조선의 자주(自主), 자강(自强)을 이룩하는데 큰 역할을 한 이 조선의 국부(國父)로 불릴 것이다.
여윤규 사후(死後) 오랜 시간이 지나 발간된 자서전을 통해서 이 계획이 공개되었을 때, 노년의 시간으로 접어들던 21세기 출신 한국인들, 특히 정 수석차관과 벌레, 빨갱이는 냉소가 가득한 얼굴로 평가했다.
“호가 몽인(夢人)이시더니 진짜 꿈 한번 거하게 꾸셨군.”
“이건 꿈이 아니라 망상(妄想)이야. 영웅주의(英雄主義)에 찌들은 망상.”
“왜 이렇게 국부라는 단어에 집착들을 하는지….”
“이 양반은 자기 자신이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되고 싶으셨나 보네.”
하지만, 여운규의 이 계획은 한미 연합군이 예상과 달리 조선반도에 대규모로 상륙하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직접 보지 못했지만 대한민국 해군의 이름이 달린 해군함대-말로는 대형 항공모함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소문까지 들리는-를 위시로 전차와 장갑차들로 중무장한 1개 사단의 육군 병력, 그리고 총독부 청사를 점거한 채 몇 배의 일본군들을 상대해 수많은 일본군들을 저승으로 보내 버린 정예의 특수병들을 앞에 세우고 임정이 당당하게 들어온 것이었다.
그렇게 들어온 임정은 조선반도에 남아 있던 조선인민들에게 강하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수십만의 병사들을 지휘하는 미국의 장군들이 임정의 김 주석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고, 1만이 넘어가는 정예병들이 임정에 절대적인 충성을 보이고 있었다.
경성의 종로 한복판을 커다란 태극기를 앞세운 채 당당하게 행진하는 거대한 전차들과 대오(隊伍)를 맞춰 행군하는 육군 제1사단의 모습은 경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거기에 더해 베갯머리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주인공 신세였던 김 주석과 이청천, 이병석과 같은 독립군의 영웅들을 실제로 보게 된 이들은 열화와 같은 호응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해방정국(解放政局)의 주도권은 채 싹도 피우기 전에 순식간에 임정이 휘어잡게 되었다.
정권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임정의 움직임은 경성에서만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았던 것이 아니었다.
지방에서도 임정의 움직임은 쾌속(快速), 그 자체였다.
북으로는 미군이, 남으로는 한미 연합군이 진주하는 곳마다 가장 먼저 제압되는 곳들은 관공서와 경찰서, 일본군 주둔지였다. 관공서에 들이닥친 한국군들은 해당 관공서에 있는 모든 기록물들을 다 수거해 경성으로 옮겼고, 경찰서에는 일본 경찰과 조선인 경찰보조원들 대신에 미군 헌병들과 한국군 헌병들이 자리했다. 그리고 군 주둔지는 샅샅이 수색해서 혹시라도 일본군들이 챙기지 못하고 남긴 무기들이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모조리 고철로 만들어 버렸다.
무기 수거는 전투가 벌어진 장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투가 끝나거나 아니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이 확실하게 장악한 지역에서는 즉시 일본군들의 시체와 포로들의 몸을 샅샅이 뒤져 무기들을 수거해 폐기해 버렸다.
행정과 치안을 장악한 임정은 그 다음으로 인민들의 주머니를 장악하는 일에 들어갔다.
비행기지의 확장 공사와 연합군 주둔지 건설 공사, 전투로 파괴되거나 손실된 철도와 도로의 보수 작업에 많은 이들을 임금 노동자로 고용을 하면서 달러를 풀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미군 수송선을 통해 들어온 여러 생필품들을 시장에 풀었다. 그리고 군의 검정을 통과해 한국군 병사가 된 이들이 급료로 받은 달러들과 PX에서 구매한 물건들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본이 강요한 전시경제(戰時經濟)로 인해 꽁꽁 얼어붙었던 조선반도의 경제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임정에 의해 돈이 돌기 시작하자 조선인민들의 임정에 대한 지지도는 그때까지 조선본토에 남아 있던 인사들의 지지도를 웃돌기 시작했다.
임정의 지지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자신이 점점 조연으로 밀려가는 것을 느낀 여운규는 점점 초조해져 갔다.
임정을 견제하기 위해 여운규는 조선본토에 남아 있던 자본가들과 우파 정치인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간 이들의 상당수는 이미 임정과 선을 연결하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었고, 적잖은 이들은 이미 부산을 넘어 일본으로 도망을 간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임정이 ‘친일파 처벌’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건 막아야 해! 잘못하면 무분별한 숙청(肅淸)의 광풍(狂風)이 몰려온다! 조선반도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협상과 관용이 필요하다! 잘못하면 이후 조선반도 발전의 기틀이 될 이들까지 모조리 쓸려 나간다!’
여운규는 ‘친일파 처벌’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협상과 토론을 통한 조율이 필수요! 친일파 처벌은 반대세력을 없애려는 비민주적인 폭거(暴擧)외다!”
여운규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임정은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비민주적 매국노와 협상을 하라는 것이오 매국노들은 적이오, 적! 그것이 비민주적인 일이 될 수는 없소이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오! 하나, 그 국민에 매국노를 끼워줄 수는 없는 일이외다!”
임정, 특히 군부의 반대는 매우 거셌다.
결국, 여운규의 반대는 묵살되었고, 임정이 운영하는 인쇄소들에서는 ‘친일 부역자 처벌에 관한 포고령’이 인쇄되어 차곡차곡 쌓여 나갔다.
그렇게 일이 진행되면서 여운규는 어느새 자신이 홀로 고립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선의 독립과정과 독립 이후 자신의 힘이 되기 위해 구성했던 조직의 조직원들 대부분이 임정이 만든 경찰예비대에 들어가 임정의 충실한 손발이 되어 가고 있었다.
자신이 고립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한 여운규는 결국 공산당과의 합작을 경심했다.
이미 조선 본토의 독립 운동가들 가운데 우파들은 거의 다 임정과 협조를 하고 있거나 협조할 것을 밝힌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임정 내 좌익파벌은 점점 압박을 받고 있었고, ‘조선공산당’이라는 조선반도 내 최대의 단일 정치단체를 배경으로 손을 내민다면 임정 내부의 좌익파벌들은 자신과 협력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선공산당은 여운규의 제안을 거절했다.
* * *
박헌양에게 있어서 여운규의 제안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드는 제안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의 독립’이 아니라 마르크스 이론에 가장 충실한 ‘조선의 적화(赤化)’였다.
마르크스의 가르침에 따라 ‘공산주의 조선인민공화국’을 세우면 이미 적화에 성공한 소련에 이어 두 번째로 적화에 성공한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이는 아직도 장개석과 일본을 상대로 힘겨운 투쟁을 벌이는 중국보다 더욱 앞선 것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지도하는 ‘공산주의 조선인민공화국’은 세계적화에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고작 몽인, 그 사람은 우리가 자신의 장기말이 되라고 했단 말이지 흥!”
코웃음을 친 박헌양은 두 장의 문서를 꺼내 다시 한 번 내용을 확인했다.
한 장은 스탈린에게서, 다른 한 장은 모택동에게서 온 것이었다.
스탈린에게서 온 답장은 아주 짧고 간단했다.
-협조를 하지도 말고, 반항도 하지 말 것.
반면,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날아온 모택동의 문서는 아주 과격했다.
-미제(美帝)의 움직임에 적극 저항하라! 자본주의의 개들에게 저항하라!
“저항하라고 지금 조선의 시류(時流)를 모르는군.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작게 중얼거린 박헌양은 자신과 같이 테이블에 둘러앉은 공산당 조직-재건파로 통칭되는-의 간부들을 바라봤다.
“스탈린 서기장과 모택동 서기장에게서 온 서한이오. 잘 읽고 동무들의 의견을 이야기해 주기 바라오.”
박헌양의 말에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은 돌아가며 문서의 내용을 숙지했다.
문서들이 일순(一巡, 한 바퀴 돎)한 이후에도 한참동안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왜 아무도 말이 없소 ”
박헌양의 재촉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스탈린 서기장의 명령은 이해가 가지만, 모 서기장의 명령은 위험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무장투쟁을 벌일 역량이 부족합니다.”
“그건 그렇지.”
박헌양이 고개를 끄덕이자 곧 이어 그와 비슷한 말이 줄지어 튀어나왔다.
간부들의 의견을 끝까지 들은 박헌양이 입을 열었다.
“동지들, 동지들의 의견은 모두 훌륭한 의견들이오. 맞소. 지금 우리에게는 저 자본주의의 개들과 변절자들을 쓸어버릴 무력이 부족하오. 이 상태에서 서툴게 저항하다가는 오히려 저들이 우리를 쓸어버릴 빌미를 주는 법이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말이오. 그렇다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있다가는 역시나 저들에게 쓸려나가기는 마찬가지요. 위대한 적화혁명(赤化革命)으로 조선을 적화하기 위해서는 저항은 반드시 해야 하오.”
“무장투쟁을 위한 준비가 아직은 미약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작도 못한 상태입니다. 우리 공산당조차 하나가 되지 못한 상황이란 말입니다!”
간부 하나가 현실을 지적하자 박헌양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해서 우리는 전술을 바꿔야 하오.”
“전술을 바꾼다면 ”
“선전전(宣傳戰).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선전전을 벌일 좋은 소재가 있지 않소 ”
박헌양의 말에 간부들의 시선이 박헌양에게 고정되었다.
“무엇입니까 ”
질문을 받은 박헌양은 짧게 대답했다.
“대구”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