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56화 (256/464)

# 256

256화 본토진공(本土進攻) 그리고 내홍(內訌) (2)

임정의 각료들과 독립 운동가들이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여운규는 바로 그들이 짐을 푼 조선호텔로 달려갔다.

“주석!”

“오오! 몽인 선생!”

“어서 오시오, 몽인!”

“오랜만이오!”

김 주석과 임정의 각료들, 그리고 독립 운동가들은 여운규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었다.

“자, 들어갑시다!”

김 주석의 안내를 받으며 여운규는 조선호텔 대연회장으로 들어섰다.

군복을 입고 자리한 이청천을 비롯해 광복군 인사들과도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은 여운규는 주변을 살펴보고는 김 주석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 보는 젊은 친구들이 많군요.”

고 제독을 시작으로 21세기 출신들을 언급한 여운규의 말에 김 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숙원을 이루는 것에 가장 큰 과업을 이룬 이들일세. 잠깐 인사라도 나누도록 하지.”

김 주석은 여운규의 손을 붙잡고 직접 21세기 출신들과 상견례를 진행했다.

인사를 나누며 여운규는 점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벌레와 빨갱이까지 악수를 교환한 다음 자리로 돌아온 여운규는 김 주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들은 누구입니까 대한민국 해군 제독이라니… 저는 처음 들어봅니다.”

“처음부터 이야기하자면 긴 이야기네만….”

김 주석은 여운규에게 21세기 출신들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여운규의 표정은 당혹, 불신, 경악 등 온갖 감정으로 변해 갔다.

“…해서 결론을 말하자면 저들은 우리들의 몇 세대 뒤 후인(後人)들일세. 하늘의 뜻인지 농간인지 알 수 없는 일을 겪어 지금 여기로 와서 조국의 온전한 독립을 이루겠다는 일념에 목숨을 건 이들이지.”

“아….”

목숨이라는 말에 여운규는 저들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태극기를 수의로 삼아 총독부 청사 1층 홀에 모셔져 있던 전사자들의 시체들.

“저들이 있기에 미국이 우리를 경시하지 않았고, 중동에서 도조를 생포하는 대사(大事)를 성공시켰지. 저들이 아니었으면 나와 임정, 그리고 많은 동지들이 아직도 중국에서 더부살이 신세로 살고 있었을 걸세.”

“그렇군요.”

김 주석의 말에 여운규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    *    *

임정의 도착 이후, 여운규는 적극적으로 임정에 합류, 국정운영에 동참했다.

임정이 미국에서 준비를 해온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여운규와 임정, 특히 정 수석차관과 가장 심하게 충돌을 한 부분은 친일파 처리 문제와 공산당 문제였다.

“친일파들의 무조건적인 배제는 비현실적이오!”

“배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들이 구축한 기득권층을 계속해서 유지시킬 것이고, 그러면 답 없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 가운데 친일파 자신 또는 그 후손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서 하는 이야기인가 시쳇말로 친일파라고 다 빼 버리면 일자무식의 무지렁이들만 남아 버릴 거요! 그런 이들로 국가 운영이 될 것이라고 보는가 ”

“새롭게 교육을 받은 이들로 빈자리를 메우면 됩니다!”

“그 시간동안 나라 꼴은 개판이 될 것이오! 적어도 그 신세대가 나올 때까지는 친일파들이 필요하오!”

“그 빈자리를 메우자는 이유로 자리를 차지한 친일파들이 그 이후에 쉽게 물러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그때는 반대로 그들이 우리를 숙청하려고 들 것입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됐고 말입니다! 그 때 보시지 않았습니까!”

“…”

정 수석차관의 지적에 여운형의 입이 닫혀 버렸다.

김 주석과 만난 다음 날, 따로 초청되어 정 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여운형은 예의 한국사 동영상을 봤던 여운형이었다.

냉수를 마시며 끓어오르는 속을 가라앉힌 정 수석차관은 말을 이어갔다.

“친일파는 반드시 그 정도에 따라 합당한 죄과(罪科)를 받아야 합니다. 그 처벌이 있은 다음에야 재활용을 하던 배제를 하던 해야 할 것입니다.”

전 수석차관의 단호한 말에 여운규는 김 주석을 바라봤다.

“주석!”

“몽인. 지금은 정 수석차관의 말이 가장 정답이오. 첫 단추를 제대로 꿰어야 옷을 바로 입는 법 아니겠소 ”

“반발이 거셀 겁니다.”

“흥!”

몽인의 말에 군부 인사들이 일제히 코웃음을 쳤다.

군부의 냉소적인 반응에 당황한 여운규는 이청천을 바라봤다.

여운규의 시선을 받은 이청천은 냉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몽인 선생. 반발이라 했소 조선 총독부에 우리 특공대가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따리를 싸서 도망친 비겁자들이오! 당장 반역죄를 물어 목을 매달아도 할 말이 없는 종자들이 무슨 반발! 이 조선의 젊은 남녀들에게 일본을 위해 죽으라고, 몸을 더럽히라고 나발을 불어 댄 인간들이 무슨 염치가 있어서!”

이청천의 뒤를 이어 김원봉이 말을 덧붙였다.

“자기 땅에 소작을 하는 이들이 굶어 죽던 말던 가혹하게 도지세를 매겨 소출을 빼앗고, 그렇게 걷은 피땀 어린 곡식을 왜놈들 배불리는데 앞서서 내놓은 놈들이 무슨 염치로 반발을 한단 말인가! 지금은 전시(戰時)요! 적국에 협조한 자들은 모조리 죽여도 무방하다는 말이외다!”

군부 인사들의 살벌한 말에 여운규는 필사적으로 항변을 했다.

“이보게들! 현실을 보시오! 임정은 아직 정부가 아니지 않소! 그런데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다가는 더욱 큰 반발을 불러올 것이오! 한 발짝….”

자제를 요청하는 여운규의 말을 정 수석차관이 끊어 버렸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임시정부는 더 이상 단순한 정치단체가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정 수석차관은 재차 여운규의 말을 끊으며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지금 일본을 비롯한 추축국과 전쟁을 벌이는 연합국의 모든 국가들은 임시정부를 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몽인 선생님이 부정하실지 모르겠지만 임정은 지금 당장 ‘임시’라는 간판을 떼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주석! 이 말 사실이오 ”

당황한 여운규는 주석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여운규의 요청에 김 주석은 바로 답을 했다.

“사실일세.”

“아아….”

김 주석의 확답에 여운규는 쓰러지듯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정 수석차관은 한쪽에 있던 서류가방을 열고 잘 정장된 문서철을 꺼내들었다.

“이것들은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의 조지6세 황제, 중국의 장개석 총통, 프랑스 임시정부 수장 드골,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 서기장이 친필로 사인한 협정서 원본입니다. 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는 우리 임시정부뿐이며, 그 외의 다른 단체들은 정부로 인정을 하지 않겠다는 확약이 담긴 협정서입니다.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정 수석차관의 말에 여운규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하나씩 협정서의 표지를 펼쳤다.

“취급에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훗날 국립박물관이 완성되면 전시품으로 들어갈 귀중한 것들입니다.”

“…알, 알겠네.”

떨리는 손으로 내용을 확인한 여운규는 정 수석차관에게 협정서들을 돌려줬다.

그 짧은 시간동안 여운규는 10년은 더 늙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협정서들을 돌려받으며 정 수석차관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종이들에 적힌 서명들을 얻어 내기 위해 워싱턴을 수없이 드나들었고, 많은 이들이 전장(戰場)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이 한반도 땅에서 호의호식하던 이들의 반발 해 보라고 하십시오. 우리가 지불해야 했던 그 모든 것들 확실하게 돌려받겠습니다.”

“…알겠네.”

마침내 여운규는 백기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지친 얼굴을 한 여운규는 김 주석에게 호소를 했다.

“친일파들을 단죄(斷罪)할 때, 최대한 공정한 기준으로 해 주시기를 바라겠소.”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시오. 아주 공정하게 할 것이오.”

하지만 여운규는 그 대답에서 아주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    *    *

임정이 앞으로 갈 방향을 확인한 여운규는 마음이 급해졌다.

“임정을 견제할 세력이 있어야 해! 그것도 임정이 세웠고 앞으로 세울 실적과 비슷한 실적을 세울 수 있는 이들로! 그렇지 않으면 임정의 독재를 막을 길이 없어진다!”

견제 세력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여운규가 찾아낸 이들은 공산당이었다.

“오랜만일세, 박 동지.”

“오랜만입니다. 몽인 선생.”

경성 외곽의 한 지하실. 어두컴컴한 호롱불 아래서 여운규는 박헌양과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자네들 공산당의 도움이 필요하네.”

“무슨 도움을 말입니까 ”

“자네의 젊은 동지들을 군에 넣어 주게.”

“군대 말입니까 ”

“맞아.”

여운규의 말에 박헌양은 팔짱을 낀 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여운규를 바라보던 박헌양은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저보고 제 동지들을 사지(死地)로 밀어 넣으라는 부탁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

“임정을 견제해야 하네. 지금 임정은 폭주의 위기에 서 있어. 이들을 견제할 이들이 필요하네.”

여운규의 대답을 들은 박헌양은 다시금 침묵에 잠겼다.

“이 문제는 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스탈린 서기장에게 답을 받은 이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스탈린 서기장도 임정을 인정했으니 좋은 답이 올 걸세. 그러니 미리 움직이는 것도 좋지 않겠나 ”

“스탈린 서기장께서 임정을 인정한 것은 단지 전술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확답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런 대답도 행동도 하지 않겠습니다.”

박헌양의 단호한 대답에 여운규는 지친 얼굴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네. 그럼 최대한 빨리 확답을 받아줬으면 좋겠네.”

“노력해보지요.”

작게 목례를 한 여운규가 모자를 쓰고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등 뒤로 박헌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전에 친일파들의 구명(救命)을 호소하셨다가 큰 욕을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노동자, 농민들의 적인 자본가, 지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프롤레타리아의 목숨을 원하시니 참으로 우습군요.”

문손잡이를 잡은 채 박헌양의 비아냥거림을 들은 여운규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그들은 단지 잘못된 선택을 했을 뿐이야. 우리 모두 잘못된 시대의 희생자들일세.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들의 힘도 필요하네. 단지 그뿐일세.”

대답을 한 여운규는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의자에 앉은 채 그 모습을 보던 박헌양은 코웃음을 쳤다.

“흥! 임정은 또 다른 타도의 대상일 뿐이야. 그런데 그 밑으로 들어가라고 헛소리!”

잠시 후 의자에서 일어난 박헌양은 또 다른 밀실로 자리를 옮겨 한 장의 문서를 작성하고는 대기하고 있던 공산당원에게 내밀었다.

“지금 즉시 소련 영사관으로 가서 이 문서를 전달해.”

“알겠습니다.”

*    *    *

보름 후, 여운규와 다시 만난 박헌양은 모스크바의 결정을 알려줬다.

“스탈린 서기장의 지도에 따라 우리 조선 공산당은 임정에 그 어떠한 협조를 하지도 않을 것이오!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제거한다는 명문 아래 미국 거대 자본주의자들의 용병이 되지 않겠다는 말이외다!”

“이보게, 박 동지! 용병이라니, 그건 아니야!”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필요 없소! 그만 나가 주시기 바라오!”

설득을 하려던 여운규는 박헌양의 강한 축객령에 어깨를 떨구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온 여운규는 공산당의 안가(安家)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박 동지. 판단을 잘못했네. 잘못했어….”

작게 중얼거리던 여운규는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조선공산당도 이제 끝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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