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53화 (253/464)

# 253

253화 대전공방전 (14)

리지웨이에게 한 대답처럼 대전 시내로 진출하는 한미 연합군은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정보에 따라 대응을 변화시켜가면서 일본군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했다.

“레드팀. 부사동 진출. 후속부대 대사동에서 원동 방향으로 진출.”

“원동 인근에 있는 일본군 움직임에 대한 데이터 알려 주도록.”

“알겠습니다.”

“선봉대 태평동을 지나 오류동 방면으로 진출 중,”

“후속부대에게 전달 변동과 가장동과 연결되는 다리를 점령할 것. 뒤통수 맞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전달합니다.”

“제2진에 전달. 유등천을 따라 북진하면서 적들의 연계를 끊을 것.”

“전달합니다.”

“제3진은 시내로 진입하는 즉시 원동방향으로 진출, 대전천을 따라 북진, 유등천을 따라 이동하는 2진과 함께 갑천의 제어권을 장악할 것.”

“전달합니다.”

리지웨이가 자리한 한미 연합군 지휘본부의 상황실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상공에 떠 있는 드론들과 어벤저들에게서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은 대형 모니터와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 위에 바로바로 표시가 되었다.

그렇게 변하는 상황에 따라 벌레가 단독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도 있었지만 벌레에게 경쟁심을 느낀 한미 연합군의 참모들 역시 좀 더 적극적으로 작전 지휘에 심혈을 기울였다.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기반으로 새롭게 변경이 된 명령들은 벌레에게 모두 전해졌고, 벌레는 모니터를 보며 그 명령들을 취사선택해서 바로바로 일선 부대에 전달했다.

“전투에 나선 모든 부대에 공통으로 전달. ‘눈에 보이는 모든 전신주와 전선들을 절단할 것.’”

“전달합니다.”

벌레의 명령에 뒤에 앉아서 돌아가는 상황을 관찰하던 리지웨이가 참견을 했다.

“현재 아군 병력의 이동을 보면 대전을 잘게 쪼개는 것이로군 ”

“그렇습니다. 크게는 3등분이고, 여기서 더 잘게 쪼개 나갈 것입니다. 잘게 쪼개지면 쪼개질수록 병력과 화력 모두 열세인 일본군은 더욱 약해질 것입니다.”

벌레의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던 리지웨이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통신선을 끊으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가 ”

“그렇습니다. 통신선을 끊어 놈들의 머리와 팔다리를 끊어 내야 합니다. 일본군 지휘부가 이레귤러라고 해도 말단은 아직 전통적인 일본군의 모습 그대로일 것입니다. 머리가 끊어지면 말단의 일본군들은 전통적인 방법대로 움직일 것입니다.”

“전통적인 방법 ”

“반자이 차지(Banzai Charge.만세돌격. 萬歲突擊) 아니면 자살.”

“아아.”

벌레의 대답에 리지웨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했다.

“어느 쪽이든 우리 수고를 많이 덜어 주겠군.”

“그렇습니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응속도가 빠른 곳이 나온다면 ”

“그곳에는 적의 머리가 있을 겁니다. 손쉽게 적의 지휘부를 찾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군. 아주 좋아. 좋은 방법이야.”

“감사합니다.”

리지웨이의 칭찬에 벌레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모니터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날 해가 질 무렵, 빨갱이의 부대에서 통신이 올라왔다.

“레드에게서 올라온 보고입니다! 경부선 철도 점령!”

순간 주먹을 불끈 쥔 벌레는 바로 명령을 전달했다.

“철로를 따라 대전역으로 향해 접수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명령을 전달하던 통신병이 순간 멈칫하더니 벌레를 돌아봤다.

“무슨 일이야 ”

“레드로부터 답신입니다. ‘위스키(W) 탱고(T) 폭스트롯(F)’입니다.”

1944년 당시 음성기호가 아닌 21세기의 음성기호로 날아온 빨갱이의 답신에 벌레는 쓴웃음을 지으며 모니터를 살폈다.

모니터를 통해 상황을 확인한 벌레가 명령을 변경했다.

“내가 너무 급했군. 레드에게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전달. 그리고 바로 뒤에 있는 휘틀리 준장에게 연락해서 레드와 임무를 교대하라고 전달.”

“알겠습니다.”

“어째서 레드를 정지시킨 것이지 ”

뒤에서 들려오는 리지웨이의 물음에 몸을 돌린 벌레는 상황을 설명했다.

“레드가 전진한 거리는 오늘 전투에 참가한 부대 가운데 가장 긴 거리입니다. 벌레의 직할 부대와 한국군 제1독립 기갑대대를 비롯한 한국군 모두 체력을 많이 상실한 상태일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 통신도 방금 왔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체력을 비축한 부대를 초월시키는 것이 더욱 효율적입니다.”

벌레의 대답에 리지웨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이면 무슨 뜻인가 ”

“음성코드입니다. 조금만 생각하시면 바로 아실 겁니다.”

벌레의 대답에 궁리를 하던 리지웨이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What the f...큼! 크흠!”

작게 헛기침을 한 리지웨이는 시선을 돌려 지도를 바라봤다. 대전의 남쪽 경계선을 따라 움직인 벌레와 그 뒤를 이어받아 움직이는 휘틀리의 부대표식이 자리한 곳과 다른 부대들의 표식들이 있는 곳을 살핀 리지웨이는 작게 혀를 찼다.

“쯧!”

유등천과 대전천을 따라 북진을 시작한 부대들은 그 몇 배나 되는 병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갑천까지는 절반 이상의 거리가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이거야 원…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비교가 되는군.”

미군의 느린 진격속도에 푸념을 하던 리지웨이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참모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30분 이내에 완전히 해가 진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멈출까 계속 몰아붙일까 ”

“병사들이 많이 지쳤을 텐데 야간경계를 강화한 다음 휴식을 주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팔팔한 부대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야간전 장비는 이미 충분하게 배치했으니 적을 계속 몰아붙여야 합니다. 적이 체력을 회복할 틈을 줘서는 안 됩니다!”

작전의 지속이냐 정지냐를 놓고 참모들은 둘로 나뉘어 설전을 벌였다.

양쪽 다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리지웨이는 벌레를 바라봤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

“두 가지를 동시에 실행하는 것이 가장 낫다고 생각합니다. 주간 작전을 벌인 부대는 교통로를 확보한 상태에서 방어에 들어가고 체력을 유지한 부대가 야간전을 벌이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아직 대전을 조각내지 못했습니다. 일본군의 발을 묶어야 합니다.”

벌레의 의견까지 다 들은 리지웨이는 최선의 수를 찾기 위해 심사숙고에 들어갔다.

근 10분 가까이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따져 보던 리지웨이가 결론을 내렸다.

“송정과 금암에 대기하고 있는 모든 부대에 명령을 보내. 야간전을 맡아 진행하라고.”

“알겠습니다.”

“참모들은 지금 즉시 어느 구역에 어느 부대를 배치할 것인지 계획표를 짜서 나에게 가지고 와.”

“알겠습니다.”

참모들에게 명령을 내린 리지웨이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워싱턴에서 받은 명령은 최대한 빨리 한반도 남부를 정리한 다음, 일본 본토로 진격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본토에 있는 원숭이들이 준비할 시간을 줘서는 안 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

“알겠습니다!”

1시간 뒤, 계룡산의 서쪽 그늘에 숨어서 준비를 하고 있던 미군부대의 모든 차량들이 시동을 걸었다.

저녁 식사가지 끝낸 미군 병사들을 가득 태운 트럭들과 하프트랙들, 그리고 전차들과 자주포들의 헌병들의 교통 통제 아래 질서정연하게 대전 시내로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전 시내로 진출한 팔팔한 부대들이 주간전투를 통해 만들어진 전선을 넘어 일본군들을 쪼개고 들어갔다.

“통신망이 계속 붕괴되고 있습니다.”

“복구 가능성은 ”

나오토 사단장의 물음에 보고를 하던 장교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언의 대답에 나오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지도를 바라봤다.

“후우~. 대구로 향하는 철로는 막혔고… 대전은 지금 3등분으로 조각나기 직전이군.”

지도를 보며 고심을 하던 나오토는 참모를 돌아봤다.

“75사단. 81사단장과 아직 통신 가능한가 ”

“아직은 가능합니다.”

“그래 ”

참모의 대답에 잠시 고민을 하던 나오토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은 75사단장과 연결해. 설득이 쉬운 인간부터 설득을 해야겠지.”

“알겠습니다.”

잠시 후, 75사단장과 전화가 연결되자 나오토가 설득에 들어갔다.

“오이! 야마다! 나 나오토다! 상황은 어때 ”

-죽을 맛이지! 그쪽은 어때

“우리라고 다르겠나 ”

-저 빌어먹을 양키들은 잠도 없나 병력을 더 투입했어!

“그래서 말인데. 슬슬 물러나는 것이 어때 ”

-물러나자고

“응. 물러나자고. 보병사단으로 기갑사단을 상대하라는 것 자체가 무리 아닌가 이미 철로도 빼앗겼어.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라고 봐.”

-후퇴라…

수화기 너머는 침묵에 잠겼다.

수화기가 조용해지자 나오토는 옆에 있던 통신장교를 돌아봤다.

“끊어진 것인가 ”

“아닙니다.”

“그래 ”

통신장교의 대답에 나오토는 수화기를 입에 대고 소리를 높였다.

“오이! 야마다! 모시모시! 야마다!”

-듣고 있어!

“머뭇거릴 시간 없어. 차라리 최대한 빨리 대구로 내려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대구에는 독일에서 보내준 설계도로 만든 신형 중(重)전차가 배치되어 있잖아! 그리고 육군항공대도 아직 버티고 있고! 거기서 제대로 자웅(雌雄)을 겨루는 거야!”

-흠… 문제는 빠져 나갈 길이 없잖아 철로를 빼앗겼다며, 그러면 철로와 그 옆을 따라 달리는 도로도 넘어간 것 아닌가

“다른 길이 있어!”

나오토의 대답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야마다의 목소리가 커졌다.

-다른 길이 있다고 !

나오토는 바로 앞에 펼쳐 놓은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설명했다.

“고봉산과 꽃산 사이의 협로를 따라가면 옥천으로 빠질 수 있어! 선발대를 보내서 옥천에서 김천으로 연결되는 철로를 날려 버리고, 특공대를 편성해 양키들의 발을 묶어 놓은 다음, 부지런히 내려가면 대구에 도착할 수 있어.”

-잠시만… 흐음… 고봉산… 꽃산… 그렇군! 좀 좁고 험해도 충분히 지나갈 수 있겠군!

“그럼 후퇴에 찬성하는 것인가 ”

나오토의 물음에 수화기 너머 야마다는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였다.

-그런데 타니구치가 찬성을 할까

“셋 중의 둘이 찬성을 했는데, 어쩔 거야 ”

-그 자식. 제대로 된 육대라인이잖아.

3인 모두 일본의 육군대학을 나오기는 했지만 문제의 타니구치는 이른바 ‘군토쿠미(군도조,軍刀組.)였다.

천황이 직접 주는 은사의 군도를 가진 석차 1등에서 6등까지 속하는 이들이 만든 파벌에 있던 이가 타니구치였다.

대전방어를 위해 도착했을 때부터 심하게 잘난 체를 하던 이가 타니구치였기 때문에 야마다는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타니구치는 내가 맡지!”

-그런가 그러면 바로 결과를 알려 주게.

야마다와 통화를 끝낸 나오토는 바로 타니구치에게 전화를 연결했다.

내용을 들은 타니구치는 바로 대답을 했다.

-좋아. 너희 둘이 도망치는 동안 후위는 내가 맡지.

“자네가 모든 부담을 다 질 필요는 없어.”

나이토의 말에 수화기 너머 타니구치는 코웃음을 쳤다.

-흥! 너희들 같이 굴러다니는 기와쪼가리가 되기보다는 부서진 옥이 되겠다.

‘옥쇄(玉碎)전술’의 원형이 되는 ‘와전옥쇄(瓦全玉碎)’를 빗대어 말하는 타니구치의 비아냥거림에 나오토는 이를 악물었다.

뻗쳐오는 화를 억지로 참은 나오토가 타니구치에게 확약을 받아냈다.

“그럼 이 기와쪼가리들이 열심히 도망치는 동안 고귀한 옥께서 확실히 우리 뒤를 받쳐 줄 것인가 ”

-확실하게.

“좋아! 준비가 되는대로 바로 연락을 주지! 나중에 야스쿠니에서 만나도록 하지!”

거칠게 통화를 끝낸 나오토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자식! 나중에 야스쿠니에 걸려 있는 나무쪼가리나 되어 버려라!”

*    *    *

그로부터 2시간 후, 미군이 아직 잘라 내지 못한 공간을 통해 일본군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움직이는 일본군들의 뒤를 좇아 미군들도 조금씩 집중되기 시작할 무렵, 고봉산과 꽃산 사이의 골짜기 길을 따라 일본군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오토와 야마다의 부대가 줄줄이 빠져나가는 동안 타니구치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천황폐하를 위해! 조국의 안녕을 위해! 그리고 너희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너희들의 목숨으로 저 귀축들을 막아라! 막지 못하면 너희들의 아내와 딸, 여동생들이 저 귀축들의 노리개가 될 것이다! 목숨을 걸고 막아라!”

“우와아아! 반자이(萬歲)! 덴노헤이까 반자이(天皇陛下 萬歲)!”

타니구치의 부하들은 함성을 지르고는 미군을 상대로 옥쇄전술을 벌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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