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
251화 대전공방전 (12)
한창 헬기 착륙장이 만들어지는 동안 벌레와 부하들은 열심히 항공사진들을 뒤져가며 유력한 후보지들을 골랐다.
“각 구역별로 마당이나 적당한 공간이 있는 건물들은 다 표시해.”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표시된 구역은 어디야 ”
“C구역입니다.”
“C면… A구역 바로 옆이지 ”
“그렇습니다.”
부하의 보고를 받은 벌레는 배치도를 확인했다.
한미연합군의 출구에서 대전역으로 가는 가장 크고 넓은 도로가 있는 곳을 A구역으로 잡고 좌우로 구역을 배분한 결과 E-C-A-B-D의 구역으로 배치가 이루어져 있었다.
붉은 색연필로 C구역에 동그라미를 친 벌레는 옆에 자리한 참모들에게 보고를 했다.
“C구역에 헬리콥터 배치 수량을 늘리겠습니다.”
“그게 가장 합당해 보이는군. RED ”
참모의 물음에 옆에서 지도를 살피던 빨갱이가 바로 대답을 했다.
“메인 진출로 외에 보조 진출로로 쓸 만한 곳은 A구역을 돌파한 다음 바로 남으로 돌아 복수동, 산서동을 지나 대전역으로 가는 도로입니다. 길이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주변의 민가들을 적당히 민다면 충분한 공간이 나옵니다.”
“보문산에 들어가 있는 아군들을 합류시킬까 ”
“잽들이 완전히 대전에서 나가기 전까지는 보문산에서 감제를 해야 합니다.”
“그렇군. 알았네.”
고개를 끄덕거리며 메모를 하던 참모들은 텐트 기둥에 걸린 시게를 보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벌써 시간이 점심시간이로군. 식사부터 하고 다시 진행을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오늘도 여기 앉아서 레이션으로 해결하지 말고 나가서 식사라도 하게. 그러고 있으면 건강에 안 좋아.”
“알겠습니다.”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고 나간 벌레와 빨갱이 일행은 장교 전용 식당으로 향하는 참모들과 헤어져 급식소로 향했다.
급식소 입구에 걸린 ‘오늘의 점심’ 식단을 본 벌레와 빨갱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거 뭐라고 읽어야 하냐 ”
“스팸 마언탱 매이운탱 ”
둘이 헷갈려 하자 옆을 지나가던 미군이 발음을 정정해줬다.
“매운탕.”
“매운탕 ”
“잉 ”
미군들이 득시글거리는 장소 한복판에서 전혀 나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음식을 접하게 된 벌레와 빨갱이 일행은 순간적으로 공황상태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이어지는 미군병사의 말은 더욱 혼란을 부추겼다.
“원사님. 저거 어제부터 나오기 시작했는데 아주 인기 좋습니다. 늦게 가면 못 먹어요! 아주 스파이시(Spicy)한 게… 아! 한국말로 ‘칼칼’하다고 해야 하나 먹고 나면 정신이 확 납니다!”
‘칼칼’하다는 표현까지 쓰는 미군의 추천을 받으며 급식소에 들어선 벌레와 빨갱이 일행은 반합에 가득히 담기는 붉은 국물의 음식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스팸 김치 칼국수 ”
헬리콥터 착륙장을 만들기 위해 민간인들과 협상에 나선 첫날.
협조를 해 주는 것에 대한 보답으로 대량의 레이션과 스팸을 주민들에게 나눠 주었다.
보상을 명시한 증서와 함께 받아든 스팸, 콘비프와 레이션에 마을 주민들은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곧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고기 간스메(통조림)라고 해서 좋다고 받기는 했는데 이걸 어떻게 먹지 ”
고민에 빠진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본 통역장교의 기지(奇智)로 깡통따개가 곧 나눠졌고, 스팸과 콘비프의 깡통을 따서 맛을 본 마을 주민들은 곧장 눈살을 찌푸렸다.
“짜다! 소태네! 소태여!”
“이걸 어떻게 먹지 ”
마을 사람들은 스팸과 콘비프 깡통을 보며 고민에 잠겼다.
짜기는 엄청나게 짰지만 1년에 몇 번 명절 때, 아니면 누가 죽거나 결혼을 하는 날 외에는 구경하기도 힘든 고기였다.
스팸과 콘비프 주변에 잔뜩 엉긴 기름을 보며 침을 삼키던 가운데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냈다.
“탕 어때 ”
“아하!”
그 뒤로 곧장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마을의 농부들은 천렵을 하던 때의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곧장 마을 앞마당에 커다란 가마솥들이 장작불 위에 놓였고, 여기저기서 각종 채소류들이 들려 나왔다.
“간이 짜니께 된장은 조금만 넣어유!”
“고추장 가져와, 고추장!”
“고추가루도 좀 가져오고!”
약간의 된장과 대량의 고추장이 풀어진 국물에 잘 말려 두었던 토란대와 머윗대를 비롯한 채소들이 가득 들어가고 곧이어 대량의 스팸과 콘비프가 가마솥에 들어갔다.
가장 앞서서 조리를 담당했던 농부가 국물을 맛보고는 곧 함박웃음을 지었다.
“캬! 좋다!”
그렇게 벌어진 잔치에 근처에 있던 미군들까지 호기심을 가지고 끼어들었다.
그동안 레이션을 비롯한 전투식량과 급식소 음식에 질려 있던 미군들은 촌부(村夫)들이 만든 투박한 음식에 강하게 매료되었다.
그 이후, 헬리콥터 착륙장 공사가 진행되면서 몇몇 교섭력 좋은 미군들이 마을 주민들과 교섭을 벌였다.
분대 하나당 5$를 주고, 스팸 몇 캔 주면 큼지막한 가마솥 하나로 스팸매운탕이 만들어져서 전달되었다.
거기에 ‘Korean pancake’라 이름 붙은 부침개까지 곁들이로 왔고, 칼칼하게 자극적인 매운맛의 매운탕은 미군들의 점심과 저녁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리고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많은 미군들의 요청을 받은 각급 부대 취사반들은 조리법을 구해 ‘매운탕’을 주요메뉴로 내놓게 되었다.
특히나 한국군과 가까이 있던 미군부대는 칼국수까지 만들어 매운탕에 첨가하는 묘수까지 선보였다.
테이블에 앉아 주변을 살펴보던 빨갱이는 벌레를 쿡쿡 치며 말을 걸었다.
“이야, 미군 아저씨들 진짜 잘 먹네 ”
“맛있으면 잘 먹는 법이야.”
“미군이 이렇게 매운 것을 좋아했던가 ”
“병사들 개개인마다 핫소스나 각종 향신료 챙겨 다니는 사람들이다.”
어느새 식사에 몰입한 벌레는 짧게 단답형으로 대답했고, 빨갱이 역시 식사에 집중했다.
반합을 완전히 다 비운 빨갱이는 텅 빈 반합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러다 의정부 부대찌개가 아니라 공주 부대찌개가 태어나는 것 아냐 ”
* * *
화끈하게 뿌려진 스팸과 달러의 힘으로 헬리콥터 착륙장은 예정보다 하루 일찍 완성이 되었다.
완성되자마자 요청한 80대보다 20대가 많은 100대의 헬리콥터들이 착륙장을 채웠다.
헬리콥터 전력이 완비되자 다음 날 새벽 04시 정각, 리지웨이는 참모들을 돌아봤다.
“그럼 시작하지.”
“알겠습니다.”
곧이어 대기하고 있던 미 육군의 군단 포병들이 155mm ‘롱 톰’과 240mm ‘블랙 드래곤’의 방아끈을 당겼다.
어두운 새벽하늘을 새하얗게 밝히며 대량의 중포탄들이 교촌, 진장, 관저동 일대를 집중타격하기 시작했다.
미군이 대전으로 접근하면서 방어를 맡은 일본군들에 의해 소개(疏開)되거나, 한미 연합군의 진입시도가 있던 날부터 많은 수의 민간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간 덕에 해당 지역에 남은 민간인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의 생활터전을 떠날 수가 없어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은 미군의 집중 포격에 모두 목숨을 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들이 무명의 희생자가 되어 잔해에 파묻혀 버렸다.
먼동이 터오자 대기하고 있던 헬리콥터들이 일제히 시동을 걸었다.
천지를 깨우는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도어 거너(Door Gunner)와 유탄사수를 태운 헬리콥터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지상기지와의 통신 중계를 위해 대형 무전기를 실은 지휘 헬리콥터의 지휘 아래 헬리콥터들은 각자 자신들이 맡은 구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헬리콥터들이 막 자리를 잡을 무렵, 오산의 기지에서 출격한 어벤저들도 대전 상공에 도착했다.
주익은 물론이고 폭탄창 내부에까지 보조연료탱크를 달아 작전시간을 크게 늘리면서 전장감시 임무의 효율이 크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문제도 생겼는데 장시간 비행에 따른 수분섭취와 혈당유지를 위해 다량의 음료수 병들이 실렸고, 다량의 수분섭취에 의한 배뇨활동이었다.
어벤저는 대형이었지만 카탈리나나 B-17과 같은 기종에서처럼 간이 화장실까지 설치될 정도로 대형은 아니었다.
결국 전장 감시 임무를 맡은 어벤저의 승무원들은 기저귀를 차야만 했다. 그 결과 전장감시 어벤저 승무원들은 ‘기저귀들(Diapers)’이라고 불렸다.
“헬리콥터들과 기저귀들, 정해진 위치에 도착했습니다.”
“Bug은 ”
“한국군의 정찰장비들 역시 정해진 위치에 도착했다는 보고입니다.”
참모의 보고에 리지웨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핸슨에게 들어가라고 전해.”
“알았습니다.”
“사령부에서 통신입니다. 들어가라고 합니다.”
“알았어. 그럼 애들보고 밀고 들어가라고 해.”
“알겠습니다.”
105사단 사단장 핸슨 소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가장 선봉에 대기하고 있던 105사단의 장병들을 태운 하프트랙들이 출구를 벗어나 대전 시내로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따르르릉!
대전 방어 임무를 맡은 3개 사단 가운데 하나인 일본군 제88사단의 사단본부.
“핫! 제88사단 본부입니다! 핫! 핫!”
수화기를 내려놓은 통신병이 옆에 있던 장교에게 보고를 했다.
“미군들이 예의 출구를 벗어나 진출을 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진로는 예상 진로 갑(甲)!”
“요시!(良し! 좋았어!)”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통신장교는 몸을 돌려 뒤에 있던 참모들과 사단장에게 보고를 했다.
“양키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움직이는 방향은 예상 진로 갑입니다!”
통신장교의 보고에 참모들 역시 화색이 돌면서 사단장을 바라봤다.
“사단장 각하의 혜안(慧眼)이 빛을 발했습니다!”
“이로써 적들은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좋아라하는 참모들과 달리 사단장 나이토 소장은 담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적이 우리 예상대로 움직인다고 좋아할 것은 아니다. 적의 수는 우리의 예상보다 많고….”
나이코 소장은 오른손 검지로 천정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특히나 제공권은 이미 적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기사회생(起死回生)의 역전(逆轉)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할 일은 최대한 적들의 진격을 잡아끌면서 무사히 대구에 있는 아군과 합류를 하는 것이다. 그 점을 잊지 말도록.”
“하이.”
승리는 아예 생각지도 않고 있는 상관의 심각한 어조에 참모들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참모들이 냉정을 되찾은 것을 확인한 나이토 소장은 다음 명령을 내렸다.
“분진포들을 움직인다. 놈들이 더 들어오기 전에 한번 기세를 꺾어야 한다.”
“핫!”
“통신선의 유지는 어떠한가 ”
“대전 전신국의 직원들까지 동원해서 유지하고 있습니다.”
“무전기는 열등하고 전령은 시간이 걸린다. 유선 통신망을 최대로 활용해야 한다. 통신선 유지에 각별히 신경을 쓰도록!”
“핫!”
공주 전투에서 곤도가 ‘발로 뛰는 전투’를 선보이며 미군을 골탕 먹였다면, 대전 방어의 최전선을 맡은 나이토는 거기에 더해 ‘빠른 통신’까지 곁들였다.
* * *
“A구역(Sector) 22지구! 로켓 발사대 확인!”
“C구역 12지구에서도 발견했습니다! 34지구에서도 확인!”
일본군들이 분진포의 발사를 준비하자 상공에 떠 있던 드론들이 바로 상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통해 발사대를 확인한 관제병들의 보고에 대기하고 있던 통신장교가 헬기그룹에 연락을 취했다.
“어서 움직여!”
“최대한 빨리 발사대를 조립한다!”
조장의 명령에 따라 일본군들은 분주히 4식 40cm 분진포의 발사대를 조립해 나갔다.
위가 좁아지는 사다리형태의 기본 나무틀에 튼튼한 강철 다리를 받치고 그 주변으로 튼튼한 나무토막들과 강철 프레임을 조립해 버팀틀을 만든 다음, 최종적으로 분진포의 발사를 지탱할 강철레일을 기본 나무틀에 고정시켰다.
“조립 끝!”
“좋아! 분진탄 가져와!”
조장의 명령에 10여명의 병사들이 끙끙거리며 손수레를 밀고 왔다.
간단하게 만든 도르래 기중기를 이용해 500kg이 넘는 분진탄을 발사 레일 위에 올려놓는 순간 요란한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타타타타타!
“응 ”
“양키 직승기(直昇機)다!”
빠르게 다가오는 2대의 헬리콥터를 본 일본군들은 혼비백산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 모습에 분진포 발사소대를 지휘하던 소위가 군도를 높이 쳐들었다.
“허둥대지 마라! 대공사격 준비!”
“대공사격 준비!”
소위의 명령에 허둥거리던 일본군 병사들은 한쪽에 놔뒀던 소총들을 잡고는 하늘을 향해 겨누었다. 하지만 그들보다 헬리콥터가 한발 더 빨랐다.
타타타타탕! 퉁! 퉁!
2기의 헬리콥터에 탑승한 도어거너들과 유탄 사수들이 분진포 주위에 있던 일본군들을 향해 집중 사격을 가했다.
“크아악!”
“아악!”
상공에서 가해지는 사격에 엄폐물을 찾지 못한 일본군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유탄사수가 쏜 유탄이 레일 위에 올라간 분진탄에 명중했다.
쿠콰쾅!
럭키샷에 명중당한 분진포는 요란하게 폭발했고, 그 주변이 순식간에 폭발에 휩쓸렸다.
상황을 확인한 부기장의 보고에 기장은 마이크를 붙잡았다.
“여기는 킬러 33. 표적 제압 완료. 이상.”
-수고했다. 대기위치로 돌아가 대기할 것. 이상.
폐허로 변한 가옥을 뒤로 한 채 헬기들은 기수를 돌려 자신들의 대기 장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