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250화 대전공방전 (11)
일본군의 분진포 공격에 적지 않은 손실을 입은 한미 연합군은 잠깐 뒤로 물러나 대책을 논의했다.
처음 보고가 들어왔을 때, 지휘관들이 생각한 것은 대구경 야포들이었다. 하지만 바로 반론이 튀어나왔다.
“중포(重砲)는 아닙니다. 잽들의 중포들은 폭격으로 거의 다 제압을 한 상태입니다.”
“열차포는 ”
“잽들이 열차포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는 입수한 적이 없습니다. 설혹 열차포가 있다고 한들 그것은 아군 전투기들에게 훌륭한 표적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피해가 커지고 목격자들의 증언을 기록한 보고서들이 올라오면서 미군 지휘관들은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로켓 ”
자신들의 선봉을 두들긴 무기가 무엇인지를 알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을 찾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잽의 로켓 발사대가 있는 곳을 찾기가 힘이 듭니다.”
“잽이 발사를 한 다음 항공기들을 보내도 흔적을 못 찾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차라리 야포들을 있는 대로 동원해서 밀어 버릴까 ”
‘야포 전력을 최대한 동원해 대전 시가지를 밀어 버린다’라는 의견이 가장 먼저 해결책으로 올라왔지만 리지웨이는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안이기는 한데 우리가 있는 이곳이 동맹국의 영토임을 잊지 말도록. 귀관들이 밀어 버리고 싶은 저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동맹국의 시민들이다. 어쩔 수 없이 간수해야 하는 민간인 사상(死傷)과 쓸데없는 민간인 살상(殺傷)은 구별하도록.”
“… 알겠습니다.”
리지웨이의 명령에 작전을 계획했던 참모들은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돌파구를 열기 위한 전술을 고민하던 도중 참모들 가운데 하나가 자신들이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우리에게는 시가전의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들이 있었잖아!”
“워커 장군의 부대들은 다 지금 북쪽에 있는데 불러내자는 거야 ”
“그 사람들 말고, 한국군!”
“한국군 그 사람들도 별 수가 없어 보이던데 ”
“Bug & Red!”
“아!”
그렇게 해서 한국군 신병들을 훈련시키던 벌레와 빨갱이, 그리고 그들의 팀원들이 대전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었다.
“어서 오게!”
“자네들이 필요했어!”
이병석을 비롯한 한국군 지휘부를 찾아 신고를 하고 나온 벌레와 빨갱이를 본 한미 연합군의 참모들은 격하게 환영했다.
열렬히 환영을 하는 분위기를 본 빨갱이가 벌레를 돌아봤다.
“좀 심하게 깨진 모양인데 ”
“그런 것 같다.”
“좀 편하게 지내나 했더니… 또 뭐 빠지게 뛰어야 하나… 팔자도 더럽지.”
“팔자 더러운 게 어제 오늘 일이었냐 일이나 하자.”
‘포기하면 편해.’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며 벌레와 빨갱이는 자신들에게 배정된 자리로 향했다.
“가장 최근의 항공정찰 사진 있습니까 ”
“어느 지역 ”
“대전 전체. 거기에 각 구역별 확대사진들까지.”
벌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테이블 위로 수십 장의 사진들이 놓여졌다.
벌레는 대전 지도와 대전 전체를 찍은 항공사진을 가운데 놓고 각 구역별 확대사진들을 주변에 펼쳐 놓고는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사진들을 살핀 벌레는 불발된 덕에 입수할 수 있었던 일본군 로켓탄의 사진을 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로켓이라고는 하지만 사정거리가 긴 로켓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로켓탄은 복잡한 발사장치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발사할 로켓의 무게를 견딜 수만 있으면 됩니다.”
“빌어먹을 다에시 놈들이 생각나는 무기지.”
빨갱이의 추임새 속에 벌레는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지점을 짚었다.
“지금 우리가 갑갑한 이유가 대전으로 진입하기 위한 출구가 표적이 되면서 발이 묶였기 때문입니다.”
“맞아. 외곽으로 벗어나 우회를 하고 싶어도 산들에 가로막혔고, 후속하는 병력의 수송과 병참의 문제를 생각하면 철로를 반드시 장악해야 하는 상황일세.”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이는 미군 참모의 말에 벌레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가로세로 날줄씨줄 천 짜듯이 얽히고설켰던 21세기 도로가 그리울 줄은 몰랐는데…’
1944년인 지금 대전의 외곽을 빙 둘러싸면서 만들어진 도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있기는 해도 도보이동만 가능한 오솔길 수준이었다.
차량이 운행 가능한 대형 도로는 대전 시가지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잠시 이런저런 계산을 하던 벌레는 컴퍼스로 한미연합군이 진출한 지점을 중심으로 원호를 그렸다.
“사진과 보고서로 올라온 일본군의 로켓탄을 보면 그 구조가 매우 단순합니다. 궤도 조정을 위한 최소한의 컨트롤 유닛도 없습니다. 이런 로켓이 제대로 된 위력을 가지려면 두 가지 경우 가운데 하나입니다. 많이 쏘거나, 가까이서 쏘거나. 제 예상으로는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약 3마일(4.8km)안에 잽들의 로켓 발사대들이 숨어있을 것입니다.”
“숨어있다는 것이 문제야. 그 지역을 모조리 무인지대로 만들 수는 없는 법 아닌가 ”
“항공기들을 사용해야지요.”
“그건 우리도 생각해 봤는데 주간 작전에만 동원한다고 해도 적어도 항공기 120대는 필요해.”
참모의 지적에 벌레는 짧게 대답했다.
“지금 가장 좋은 장비는 전투기나 폭격기보다 헬리콥터입니다. 80기 정도만 로테이션으로 운용할 수 있다면 바로 제압 가능합니다.”
* * *
벌레가 참모들에게 설명한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어쩔 수 없지만 민간인의 피해를 감수하고 출입구 반경 1마일(1.6km)이내의 시가지를 무인지대로 만든다.
-드론과 어벤저를 중심으로 한 항공정찰 세력을 반경 10마일(16km)이내에 조밀하게 배치한다. 3마일(4.8km)이내는 드론을 이용하고 그 외곽지역은 어벤저가 맡아 지상을 감시한다.
-진격이 시작되면 반경 3마일 이내 상공을 5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헬리콥터들을 분산배치 한다.
-주변 주요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아군부대에 통보해 잽들이 로켓을 쏘는 즉시 위치를 보고할 수 있게 한다.
-드론 또는 어벤저가 잽들의 로켓 발사대를 발견하거나 아군 부대의 보고가 오면 즉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헬리콥터들에게 통보, 발사대를 제거한다.
“헬리콥터에는 기관총밖에 달린 것이 없네만 ”
“로켓발사대가 장갑차가 아닌 이상,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유탄발사기 사수도 동석시킨다면 더욱 좋겠지요.”
벌레의 제안을 들은 한미연합군 참모들은 타당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비슷한 작전을 필리핀 전선에서 했었다는 보고서를 본 적이 있어.”
“결과는 ”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맥아더가 헬기를 안 내놓는 것 보면 알 수 있잖아 ”
의견을 교환한 참모들은 곧 결론을 내렸다.
“자네의 의견이 가장 합당한 것 같군! 곧 계획을 짜서 결재를 맡겠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드론 관제팀에 가 있겠습니다.”
‘유레카!(Eureka!)’라도 외칠 것 같은 표정을 한 참모들을 뒤로 한 채 벌레와 빨갱이는 자신들의 부하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뭐하냐 시동 안 걸고.”
지프의 핸들을 잡은 채 갑자기 생각에 잠긴 빨갱이를 본 벌레는 채근을 했다.
벌레의 채근에 지프의 시동을 걸며 빨갱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이상한 게 말이지. 이곳에 영감도 있고, 사장도 있는데 헬기를 써먹을 생각을 한 사람이 왜 없었던 거지 ”
“19세기 출생자들하고 계속 놀다보니, 그 양반들 머리에 기름칠을 안 한 모양인가 보지.”
* * *
“아차!”
“이런!”
송 소장과 원 준장의 반응은 벌레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작전 계획서를 보고 나서야 두 사람은 헬리콥터를 이용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 생각이 난 것이었다.
“두 녀석들이 아주 신나게 씹어 대고 있을 겁니다.”
원 준장의 말에 송 소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수송 헬리콥터라도 이럴 때는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을 깜박했어요.”
“참 나… 이 방법을 왜 잊었었는지… 이런 일은 당연히 공격헬기의 몫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송 소장의 말에 원 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푸념을 했다.
나중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벌레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따끔하게 한마디를 했다.
“하이고!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제가 군에 있을 때까지도 500MD를 퇴역시키지 못한 나라의 지휘관들이 무슨….”
“아, 쫌!”
* * *
벌레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참모들이 계획한 작전이 상신되자마자 리지웨이는 꼼꼼하게 작전계획을 살폈다.
“다 좋은데 말이지. 왜 작전 개시일이 닷새 뒤인가 ”
“공주에 임시 헬기 착륙장을 만들어야 해서 그렇습니다.”
“오산AB(Air Base)에서 바로 보내면 안 되나 ”
“거리가 꽤 됩니다. 작전 가능시간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서는 공주에 임시 착륙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군. 알겠네. 최대한 빨리 실행하도록.”
“알겠습니다.”
리지웨이는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바로 서류에 사인을 했다.
다음 날, 공주 쌍신동.
“…해서 저 논을 다 메워야 한다, 이 말이유 ”
“그렇습니다. 어르신.”
젊은 통역장교의 설명을 들은 촌노(村老)는 자신과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있던 논들을 바라봤다.
막 모내기가 끝나 파란 빛이 가득한 논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긴 촌노의 모습에 통역장교가 바로 말을 덧붙였다.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서는 보상금을…”
“뭐, 밀어 버리슈.”
“예 ”
“어차피 지어 봐야, 김 진사인지 가네다인지 하는 놈한테 도지세(賭地稅) 주고, 공출 내고 하면 남는 것도 없었슈. 이러나저러나 감자만 먹고 사는 거, 싹 밀어 버리슈!”
한미 연합군이 온다는 소리에 꽁지가 빠져라 도망간 지주 일가에 대한 원한 때문이었을까, 촌노는 바로 허락을 했다.
촌노 만이 아니었다. 같은 지주 아래서 소작을 하던 농부들 모두 별 다른 말없이 바로 허락을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허리를 굽히며 감사를 표하던 통역 장교는 대기하고 있던 미군 병사에게 뭐라 명령을 했다.
명령을 들은 병사가 무전기로 통신을 하는 동안, 통역 장교는 옆에 있던 미군 중사에게 다른 명령을 내렸다.
명령을 들은 중사는 부하들을 시켜 트럭들을 끌고 왔다.
트럭의 짐칸에는 레이션 박스들과 스팸박스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우선 감사의 뜻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게 뭐래유 ”
“먹을 겁니다. 레이션이랑, 스팸입니다.”
“레이션, 스팸 ”
통역장교의 말에 촌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얼마 전 군청 있는 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집을 잃은 이들을 통해 들은 적이 있는 음식이었다.
좀 짜기는 하지만 고기가 잔뜩 들은 아주 귀한 음식이라는 것이었다.
레이션 박스와 스팸 박스를 품에 안은 촌노는 통역 장교에게 연신 허리를 숙였다.
“이렇게 귀한 것을!”
“귀한 것은 아닙니다. 귀한 것 아니에요.”
난감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던 통역장교는 마을 사람들이 몰려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줄을 서세요! 줄!”
헬기 착륙장 건설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보상에 관한 증서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레이션과 스팸까지 받아든 마을 주민들은 착륙장 건설에 노동자로 자원했다.
“딸라도 준다고 ”
“예.”
“그거 미국 돈이지 ”
“예
“그럼 해야지!”
마을 주민들은 물론이고 공주 중심가에서까지 몰려든 일용 노동자들 덕에 착륙장 건설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척이 되었다.
그 결과 논에서 물을 빼는 시간까지 포함해 불과 나흘 만에 오산에 만들어진 것과 비슷한 규모의 헬기 착륙장이 건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