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
247화 대전공방전 (8)
일본군을 상대로 한 제1독립기갑대대와 제3여군대대의 치열한 전투의 결과로 한국군은 금강교를 지척에 두고 있었다.
현대적인 시가전 전술을 기반으로 한 제1독립기갑대대가 화력의 우세를 더해 깔끔하게 진격로를 열었다면 제3여군대대는 그야말로 한과 악에 받친 이들의 복수전이었다.
교육받고 훈련받은 전술대로 움직였지만 투지라기보다는 광기에 이끌린 전투였다.
이들이 얼마나 과격하게 전투를 벌였는지 당시 제3여군대대의 지휘관이었던 장한복 중령은 훗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국인 조선반도에서, 만주에서, 그리고 중국 본토에서 난 수없이 많은 일본군들의 얼굴을 봤었다. 하지만 하늘에 맹세코 공주 전투에서 봤던 일본군들만큼 공포에 질린 얼굴들을 본 적이 없었다.”
일본군들이 공포에 질릴 정도로 여군들은 독하게, 그리고 똑똑하게 전투를 벌여 갔다.
자신들이 신체적으로 열세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여군들은 절대로 혼자 움직이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여군들은 자신들의 장비를 튠(tune)하는 것에도 많은 신경을 썼던 것이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었다.
여군들 덕에 만들어진 SSK(Super short K)라이플의 상부에는 모두 나이더(Nydar) 조준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군 제식 장비로 대량 도입된 장비였다. 하지만 21세기 출신들이 달 수 있는 총기에는 다 달은 것과 달리 광복군 출신을 비롯해 상당수가 전통적인 조준방식이 더욱 익숙하고 효율적이라며 중동에서 실전을 치르기 전까지는 거부를 한 장비였다.
도트사이트를 달아서 교전거리 내의 명중률을 상승시키는 동안 여군들은 자신들의 총기에 또 다른 꼼수를 부렸다.
그것은 한미 양국군 공용으로 사용하는 랜턴-ㄱ자로 목이 꺾인-을 자신들이 사용하는 라이플의 전방 손잡이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랜턴손잡이 덕에 여군들은 총의 반동제어는 물론이고 야간에 벌어지는 각종 모의전에서도 훌륭한 교란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야! 저건 우리도 생각 못했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거다!”
그 모습을 본 21세기 출신 한국군들은 물론이고 중동전선에서 돌아온 미 육군들, 한국군이 사용하는 것이라면 거의 무조건 카피해 가던 해병대들 역시 랜턴을 개조해 자신들의 라이플에 전방 손잡이로 부착했다.
물론 개런드를 쓰는 미 육군들은 자신들의 총에 욕설을 한 바가지씩 퍼부은 것은 덤이었고,
랜턴을 이용한 전방 손잡이를 사용하는 병사들이 엄청나게 늘면서 미국 가전업체에는 특별한 오더가 접수되었다.
그것은 총격의 반동에도 견딜 수 있는 질기고 오래가는 전구 필라멘트의 개발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여군들이 무섭게 전투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투지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제 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통과한 병사들이라도 실제로 살아 있는 적을 향해 처음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쉽지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여군들은 별다른 주저함도 없이 일본군들이 사선에 들어오는 즉시 방아쇠를 당겼고, 수류탄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적들이 손을 들거나 살려달라고 말을 하지 않는 이상 상대가 부상을 입었더라도 방아쇠를 당겨 확실하게 무력화 시켰다.
그렇게 죽어 나간 일본군들의 시체들과 잔뜩 겁에 질려 두 팔을 번쩍 든 채 후방으로 끌려가는 일본군들을 본 장한복 중령은 마침 근처에 있던 여군 중대장 하나를 붙잡고 이야기 했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좀 심한 것 아냐 ”
“전혀 아닙니다. 나중에 뒤통수 맞는 것보다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러다 너희들 나중에 좋은 소리 못 듣는다.”
장 중령의 우려에 문제의 여군 중대장은 코웃음을 쳤다.
“흥! 악마라고 불리는 거 하나도 겁 안 납니다. 저 남방 필리핀과 베트남의 지옥에서 살았던 우리들입니다. 지옥에는 악마들밖에 안 살아요!”
여군 중대장의 대답에 장 중령은 할 말을 잃었다.
멍하니 굳은 그 모습을 보던 여군 중대장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
자신이 제대로 결혼을 했다면 얻었을 딸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중대원들과 중대장의 뒷모습을 보던 장 중령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다 우리 어른들이 못나서 만들어진 비극이로구나….”
역사가 만들어 낸 비극의 주인공들을 보던 장 중령은 방금 전 중대장이 했던 말이 낯설지가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기억을 더듬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장 중령은 혀를 찼다.
“쯧! 조 소령이었군.”
미국 LA에서 체력검정을 통과하고 훈련과정까지 무사히 끝내 정식으로 배치가 결정된 여군들을 위한 작은 축하행사가 벌어졌었다.
축사를 위해 연단에 많은 이들이 올라왔지만 가장 많은 호응을 받은 이는 공군의 조 소령이었다.
일반적인 축하의 문장으로 시작한 조 소령의 축사는 뒤로 갈수록 험악해졌다.
“사회라는 것이 다 그렇지만, 군은 특히나 결과를 중시한다. 너희들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위에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느냐 그렇지 않느냐다! 그것만을 명심하라! 자신의 여성성을 지키고 싶고, 특별한 대우를 바란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퇴역신청 해 버려!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그것을 배려해 줄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폭언에 가까운 조 소령의 말에 행사장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전투병과를 자원한 여군들’이라는 소재를 취재하기 위해 온 미국 언론사들의 기자들만이 열심히 펜을 놀리고 있는 가운데 조 소령은 연설을 이어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존들은 활을 더 잘 쏘기 위해, 창을 더욱 잘 던지기 위해 자신들의 오른쪽 가슴을 도려냈다고 한다. 이것은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이제부터 너희들이 가야할 곳은 야만과 비인간성이 넘쳐나고 약육강식이 최고의 미덕인 전장이다! 적들에게서 악마라고, 마녀라고 불리는 것을 겁내지도 말고 창피해하지 마라! 적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너희들을 향한 최고의 찬사다! 전장은 지옥이다! 지옥에 사는 것은 악마들뿐이야! 악마를 악마라 부르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너희들….”
잠시 말을 멈춘 조 소령은 도열한 여군들을 바라봤다.
21세기에 두고 온 자신의 막내 여동생만큼이나 어린 여성들이 대부분인 여군들의 얼굴을 보던 조 소령의 목이 조금씩 메어 왔다.
“그리고 너희들은 이미 저 필리핀에서, 베트남에서 또 다른 지옥을 겪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이들이 같은 지옥을 겪고 있다. 그러니 전장이라는 지옥에 들어서는 것과 살인을 하고 악마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 말아라. 앞으로 다가올 전장에서 악마라 불릴 만큼 치열하고! 잔인하고! 잔혹하게 적을 제압하라! 그래서 명예를 얻어라! 솔직하게 말한다! 이미 너희들의 몸과 마음에는 주홍문자가 새겨져 있다! 그 주홍문자가 무엇인지 너희들은 잘 알 것이다! 명예를 얻어라! 그 명예로 그 누구도 그 주홍문자들을 입에 올릴 수 없게 만들어라! 그것만이 너희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그것만이 너희들의 인생을 비틀어 버린 세상을 향한 가장 강렬한 복수다! 목숨을 걸어라! 너희들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어라! 이상!”
이후 새롭게 배치된 부대에서 이어진 훈련에서 여군들은 한층 더 독기를 품으며 훈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 결과 붙은 것이 ‘독사들’이라는 별명이었다. 하지만 한국군들 가운데 그녀들을 비웃는 이들은 없었다.
여담으로, 이날 조 소령의 축사는 LA의 주요 일간지를 시작으로 미 전국의 주요 언론사들을 통해 미국 사회로 퍼져나갔다.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혀를 찼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특히나 대공황기의 참담했던 시간을 지나온-은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살아 나가기 위한 매우 적절한 금언이라고 평가를 했다.
더불어 조 소령을 향한 젊은 미국 여성들의 추앙은 그 정도가 더욱 강해졌다.
관련 보고를 받은 정 수석차관의 후일담에 따르면 ‘비틀즈 레벨’이었다고 한다.
* * *
제1독립기갑대대와 제3여군대대가 금강교를 지척에 두고 일본군과 맹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제3여군대대 2중대 2소대 소속의 여군들이 금강교의 입구에 도착했다.
정안천을 따라 내려온 덕에 일본군의 등 뒤로 들어올 수 있었던 2소대는 근처의 가옥들 그늘에 차량들을 숨기고는 다리로 접근을 시작했다.
무전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보고한 2소대장 이숙희 소위는 다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부하들을 돌아봤다.
“내가 받은 교육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다리에 아무 짓도 안 하는 놈들은 없거든 우리 소대에 수영에 능한 사람이… 은숙아.”
“상병 고은숙.”
“너, 해녀 출신이었지 ”
이 소위의 물음에 고은숙은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표준어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바다가 아니라 강이기는 하지만 저 다리를 따라가면서 살필 수 있겠어 ”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강의 잔물결을 보며 가늠을 해 보던 고은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겠습니다.”
“좋아, 그럼 지금 시작하자.”
이 소위의 명령에 고은숙이 포함된 분대원들이 조심스럽게 금강둔치로 내려갔다.
이 소위의 소대원들이 둔치와 바로 위 다리를 향해 총을 겨눈 채 감시를 하는 동안 장비를 풀어 내려놓은 고은숙은 군화까지 벗고는 조용히 강물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고은숙이 돌아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은숙은 이 소위에게 보고했다.
“폭약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위치는 금강 한복판입니다. 터지면 저 중간에 있는 다리의 바닥들이 다 떨어져 내릴 겁니다.”
“도화선은 어디로 연결되어 있어 ”
이 소위의 물음에 고은숙은 모래사장에 그림을 그려가며 보고했다.
“이렇게 다리를 건너가면 대전 방향으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교각을 방어하기 위한 벙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도화선은 그 벙커 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흐음….”
잠시 생각을 하던 이 소위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강의 수위는 어때 ”
“봄 가뭄이 심했는지 수위는 이 정도입니다.”
고은숙은 자신의 목 언저리를 가리키며 대략적인 수위를 설명했다.
“강물이 흐르는 세기는 ”
“그렇게 강하지는 않습니다. 걸어서 건널 수 있습니다.”
“그래….”
잠시 고민을 하던 이 소위는 결심을 하고는 부하들을 돌아봤다.
“옥자, 순자, 명자는 여기에 남아. 너희들 키로는 좀 무리다. 여기 남아서 점례하고 순례를 보호해.
점례하고 순례는 통신망의 연결을 끊지 말고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보고를 해. 알겠지 ”
“알겠습니다.”
뒤에 남을 이들을 정한 이 소위는 남은 부하들을 돌아봤다.
“우리는 강을 건너간다.”
“문제는 벙커입니다. 벙커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병력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소대장인 조분순 하사가 이의를 제기하자, 이 소위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나 역시 벙커까지는 욕심을 내지 않아. 목표는 벙커까지 연결된 도화선이야. 벙커에서 나오는 최초의 도화선만 잘라내면 다리를 손에 넣을 수가 있지. 문제 있어 ”
“그 정도면 우리끼리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부소대장까지 찬성을 하자 이 소위는 부하들을 돌아봤다.
“무거운 것들 다 내려놓고 움직인다.”
이 소위의 물음에 소대원들은 등에 지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고. 최소한의 무장만을 챙기기 시작했다.
“방탄조끼는 어떻게 합니까 ”
부하의 질문에 이 소위와 조 하사는 고 상병을 돌아봤다. 무언의 질문을 받은 고 상병은 바로 답을 했다.
“잘못하면 방탄조끼 때문에 물귀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방탄조끼도 벗는다.”
“입고 건널 자신 있습니다.”
“위험해도 구해 줄 여력이 없다. 그래도 자신 있으면 입고 가.”
소위의 말에 대다수의 병사들은 방탄조끼를 벗었지만 끝까지 입은 이도 몇 명이 남아 있었다.
“그럼 가자.”
부하들의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이 소위는 몸을 돌려 강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위의 뒤를 따라 소대원들도 조심스럽게 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