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
246화 대전공방전 (7)
‘부셔버리기 아주 좋게’ 만들어진 덕에 의당면과 귀산리를 연결해 만들어진 일본군의 1차 방어선은 손쉽게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었다.
“지휘관이 누군지 얼굴 한번 보고 싶군!”
전선의 상황을 살피던 리지웨이는 분통을 터뜨렸다.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일본군은 ‘발로 뛰는’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방어선의 한쪽이 무너지면 잽싸게 물러난 다음 측면으로 돌아 한국군과 미군의 측면을 타격했다.
한국군과 미군이 진격선의 측면 방어를 강화하자 이번에는 슬금슬금 방어선의 안쪽으로 끌어들인 다음 2식 척탄통들과 99식 경기관총의 화력을 집중해 피해를 입혔다.
지금까지 겪은 무조건 돌격을 하거나 19세기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면 대결이 아닌 지독하도록 교활한 전술을 사용하는 일본군이었다.
전투의 선봉에 섰던 퍼싱 전차들은 교묘하게 깔린 대전차지뢰에 적지 않은 수가 주저앉아 버렸다.
그 결과 5월 24일 동틀 무렵부터 시작한 전투는 그날 해가 질 때까지, 21세기의 쌍신동과 금흥동을 잇는 2차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금강교를 점령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전으로 넘어갈 수 있어!”
리지웨이의 닦달에 거버너 준장을 비롯한 일선의 사단장은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우선 이쪽 쌍신 지역은 포기한다. 물이 가득 담긴 농경지는 늪이야. 퍼싱이 움직일 수 없어. 이쪽 금흥과 신관 지역의 시가지를 돌파한다.”
“하지만 그쪽 역시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잽들의 자폭공격이 매섭습니다.”
“하지만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보다는 나아! 퍼싱들을 이쪽으로 보내!”
“차라리 신월과 월송쪽으로 크게 우회를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
일선의 사단장들이 진로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통신 장교들이 다급히 사단장을 찾았다.
“무슨 일이야 ”
“한국군 독립1기갑대대가 뚫었습니다!”
“응 ”
* * *
“우리가 나서야겠다.”
비전동 전투 이후 2선에 머무르고 있던 제1독립기갑대대 지휘관 원 준장은 지휘관들을 불러 모아 놓고 자신의 결심을 전했다.
원 준장의 결심을 들은 남궁 소령이 우려를 표했다.
“이병석 총장이나 송 소장이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습니다만 ”
“두 양반 다 숫자에 취해 실수를 하고 있어. 그동안 배웠던 것을 까맣게 잊어 버렸단 말이지. 그 유명한 ‘벌레의 금언’말이야.”
원 준장의 말에 남궁 소령을 비롯한 부하 지휘관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허가를 상신할 테니 준비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그럼 해산.”
원 준장의 명령에 지휘관들은 서둘러 자신들의 부대로 돌아갔다.
그들 가운데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은 K105HT를 비롯한 105mm 차륜형 자주포들을 운용하는 부대의 지휘관들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
“그들이라면 수를 낼 것입니다.”
송 소장의 대답을 들은 이병석은 회의실에 모인 연대장들과 대대장들을 돌아봤다.
“1기갑대대를 좀 아끼려고 했더니 좀이 쑤신 모양이다. 앞서서 나갈 테니 따라오라고 하는데, 누가 바로 뒤를 따를 것인가 ”
이병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중령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제 부대가 맡겠습니다!”
중령의 말에 이병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호오 독사들이 ”
“독사들이라면 뚫은 구멍을 확실하게 넓힐 수 있습니다!”
“정말 자신하나 ”
“목숨을 걸고!”
중령의 단호한 대답에 이병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제1독립기갑대대가 구멍을 뚫으면 제3여군대대가 그 구멍을 확대한다. 나머지는 그 뒤를 따라 그 구멍을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만들어 버리도록. 알겠나 ”
“알겠습니다!”
“그럼 즉시 움직이도록!”
이병석의 물음에 지휘관들은 본부 텐트를 빠져나갔다. 그런 지휘관들의 모습을 보던 이병석이 송 소장을 돌아봤다.
“그 친구들 좀 아껴서 오래 써먹으려고 했더니 무슨 성질이 이리도 급해 ”
이병석의 핀잔 아닌 핀잔에 송 소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제1독립기갑대대의 장비들은 거의 대부분이 21세기의 장비들이었다.
그 이유로 이병석은 아껴 쓰려고 그런다고 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음을 송 소장은 잘 알고 있었다.
이병석과 이병석 라인의 광북군 출신 지휘관들은 제1독립기갑대대가 너무 눈에 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있었다.
중동 전선에서도 미군은 한국군이 아닌 제1독립기갑대대만을 인정하는 분위기였고, 제1독립기갑대대는 항상 그에 맞는 결과물들을 가지고 왔었다.
카나저의 전투도 그러했고, 도조를 납치해 오는 엄청난 업적도 제1독립기갑대대 소속의 병사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김원봉과 이청천은 중립적이거나 제1독립기갑대대에 호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병석과 그의 라인에 속한 지휘관들은 호의보다는 경쟁심과 질투가 더욱 컸다.
그 결과, 비전동 전투가 끝나고 1사단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제1독립기갑대대는 뒤로 물러난 것이었다.
1사단의 운용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사단장은 송 소장이었지만 이병석이 쥐고 흔드는 상황이었다.
회의를 끝내고 나온 송 소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차이고, 저기서 차이고… 못해먹겠군….”
이병석과 그쪽 라인에 속한 광복군 출신 지휘관들에게는 견제를 받아야 했고, 원 준장을 비롯한 21세기 출신 동료들에게는 ‘별 달고 나서 사람이 변했다.’라는 말을 듣는 상황 때문이었다.
“하기야 저 양반도 신경이 좀 쓰이기는 하겠지….”
원망을 하면서도 나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이병석을 대표로 한 우파가 보기에 21세기 출신들의 사상은 ‘죄다 빨갱이 새끼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군과 국가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문제는 한국군이 쌓은 실적들의 대부분이 다 그 ‘빨갱이 새끼들’이 만든 것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 결과를 뒤엎기 위해 이병석이 이번 전투를 직접 지휘를 하고 나섰지만 별다른 실적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 * *
제3여군대대와 제1독립기갑대대가 합류를 한 지점은 21세기로 치면 금흥동지역이었다.
주민들이 다 피난을 떠나 비어 버린 마을의 한쪽 공터에서 제3여군대대와 제1독립기갑대대의 지휘관들이 모여 회의를 가졌다.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한 것을 잘 이해했나 ”
“옛!”
원 준장의 물음에 공터에 모인 남녀지휘관들은 한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런 지휘관들의 모습을 보며 원 준장은 말을 이어갔다.
“다시 말하지만 방탄 닷지들을 시작으로 방탄장비들을 확실하게 사용하고, 화력을 아끼지 마라. 통신은 언제나 끊겨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잊지 말고. 또 하나, 대포는 언제나 옳고 수류탄은 좋은 대화수단이라는 것을 잊지 말도록. 알았지 ”
“예, 알겠습니다.”
“그럼, 10분 후 작전을 개시한다. 그때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 놓도록.”
“알겠습니다.”
지휘관들이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갈 때, 원 준장은 제3여군대대 지휘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첫 전투지 행운을 비네.”
“감사합니다.”
악수를 교환한 중령은 지프에 올라 자신의 대대로 돌아갔다.
지휘관들을 보낸 원 준장은 근처에 대기한 드론 관제 차량으로 자리를 옮겼다.
“드론은 ”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관제차량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는 드론의 적외선 카메라가 찍은 공주 중심가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모니터의 영상 화질을 확인한 원 준장은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쾅!쾅! 콰콰쾅!
10분 후, 준비하고 있던 K105HT들과 차륜형 105mm자주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그들이 첫 번째 표적으로 잡은 곳은 공주 군청이었다.
공주 중심가에서 가장 외곽에 자리한 군청은 몇 안 되는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었기에, 일본군의 중요한 방어거점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단단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라 할지라도 야포의 집중사격에는 견뎌 낼 수가 없었고, 군청 건물은 순식간에 산산이 흩어진 폐자재 더미로 변해 버렸다.
“가자!”
군청 건물이 무너지자 대기하고 있던 장갑형K151들과 방탄 닷지들이 앞서서 달려 나갔다.
부아앙! 콰직! 콰작!
엔진소리도 요란하게 달려 나간 방탄 닷지들과 K151들은 도로를 따라 자리한 일본식 가옥들과 초가집들의 담벼락을 부수며 계속 전진을 해 나갔다.
길이 아닌 길을 가는 것은 닷지들과 K151들만이 아니었다.
K1E1전차들과 보조역으로 배치된 퍼싱들 역시 담벼락과 건물들을 부수며 직진했다.
쾅! 콰쾅!
방탄 차량들과 전차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길을 따라 차륜형 자주포들이 움직였다.
길이 아닌 길을 따라 움직이던 자주포들이 멈출 때마다 주변에 보이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돌무더기로 변했다.
제1독립기갑대대가 전진을 하면서 금흥동에서 금강대교를 향한 새로운 직선도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무식한 놈들!”
공주 방어를 담당한 일본 제 67사단의 사단장 곤도 소장은 상황판을 보며 치를 떨었다.
67사단으로서는 야습을 준비하던 가운데 당한 통렬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곤도 소장이 치를 떨게 만든 것은 지금 공격해 들어오는 적의 무자비한 통로개척 방법이었다.
지금 몰려드는 적들은 기존의 도로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아니 지금 그들의 하는 행동으로 볼 때, 그들은 도로를 또 하나의 진격방해용 장애물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덕분에 도로를 따라 만들어 놓은 지뢰지대가, 근처의 건물에 매복한 저격병들과 방어병력들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어쩔 수 없다! 공성추(功成錐) 역할을 하는 놈들의 옆구리를 친다!”
“핫!”
곤도 소장의 명령에 전령들이 전선을 향해 달음박질을 쳤다. 달려가는 전령의 뒷모습을 보며 곤도 소장은 이를 박박 갈았다.
“빌어먹을 양키들! 빌어먹을 조센징들! 그리고 이 빌어먹을 통신기들!”
곤도 소장의 분노가 마지막으로 향한 것은 눈앞에 놓인 무전기들이었다.
곤도 소장은 무전기를 발로 차며 분통을 터뜨렸다.
독일에서 선진 기술이 수입되었고 그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무선 통신기들은 그전 장비들에 비해 확실하게 성능이 좋아졌다. 하지만 정작 실전이 벌어졌을 때 먹통이 되어 버리는 것은 여전했다.
그것은 소재산업을 비롯한 일본의 기초 기술이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곤도 소장이 무전기를 발로 걷어차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 때, 전령의 명령을 받아서 아니면 공주에 배치되면서 받은 훈련대로 일본군들은 움직였다. 전진하는 한국군의 옆구리를 치기 위해 움직인 일본군들을 맞이한 것은 K151과 방탄 닷지들에 장착된 개틀링이었다.
바아아악!
총탄소리라기보다 천이 찢어지는 것 같은 파열음을 내며 개틀링이 총탄의 비를 쏟아내자 일본군들은 곧장 폐허의 그림자로 고개를 처박을 수밖에 없었다.
“사격이 멈췄다! 도츠게끼(突擊)!”
개틀링의 파열음이 멈추자마자 일본군들은 다시 돌격을 시도했다. 바로 그 때, 슬금슬금 다가온 또 다른 닷지가 일본군을 향해 개틀링을 겨누었다.
바아아악!
단 2정, 또는 3정의 개틀링으로 일본군의 돌격은 그 자리에 정지당했다. 그리고 그렇게 정지한 틈을 노려 미리 하차해 있던 한국군이 역으로 일본군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갔다.
드론이 보내는 영상을 통해 전투를 관찰하고 있던 원 준장은 개틀링의 활약상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자식들에게 또 서훈(敍勳, 훈장을 내림)을 추천해야 하나….”
한국군용의 장비를 선정할 때 끝까지 개틀링을 포기하지 않았던 벌레와 빨갱이를 떠올린 원 준장이었다.
- M60의 분당800발, MG3, 아니 MG42의 분당 1200발 발사속도는 아주 준수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놈들이 진짜 1분 동안 800발, 1200발을 쏘아댈 수 있냐하면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250발들이 탄통 하나 쉬지 않고 쏘면 탄통을 가네, 총열을 가네 난리가 납니다. 진짜 1분 동안 1300발, 2000발을 쉬지 않고 쏴댈 수 있는 녀석은 개틀링 밖에 없어요. 그건 수냉식 기관총도 못합니다.
- 앞으로 상대할 일본 놈들은 물론이고 또 다시 붙을 수 있는 중국 놈들을 상대로 한다면 개틀링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애들 상대로 총열 갈고 탄통 갈고 하다보면 익사해 버린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