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37화 (237/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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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화 망국(亡國)의 왕자들 (1)

이우 공이 왔다는 말에 이병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갈 준비를 하던 그는 21세기 출신 지휘관들을 돌아봤다.

“자네들도 같이 나가 보도록 하세나.”

“예 알겠습니다.”

“특히 벌레와 빨갱이, 자네들은 꼭 나오도록….”

“…알겠습니다.”

이병석의 명령에 21세기 출신 지휘관들 대부분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특히나 벌레와 빨갱이의 얼굴은 완전히 뭐 씹은 얼굴이었다.

미적거리며 일어나는 21세기 출신들을 보는 이병석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하지만 작금 군의 핵심은 21세기 출신들이었다.

물론 좌우익을 망라한 광복군 출신들도 군의 핵심 간부진들이었지만 병사들의 훈련을 비롯해 실전에 관련된 부분들은 다들 저들이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었다.

이번 조선총독부 청사 점령 작전은 물론이고 지난 중동에서 도조 히데키를 잡을 때, 이들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광복군 출신의 초급 간부들과 부사관들의 수가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21세기 출신 인원들이 작전으로 빠져나갈 때마다 부대 운영에 애로사항이 만발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 총독부청사 점령 작전에서도 대한민국 육군 1사단은 그렇게 미친 듯이 속도를 내야 했던 것이었다.

21세기 출신들이 없는 시간을 줄이고, 그와 동시에 전사 또는 중상으로 인해 21세기 출신들의 손실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쨌거나 청사 밖으로 나오자 일단의 일본군들이 백기를 든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병석이 가까이 다가서자 제일 앞에 서있던 남자가 경례를 했다.

“2대 의친왕 이강 전하의 차자, 이우라고 하오.”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이병석 중장이오.”

짧게 대답한 이병석은 말을 덧붙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우 공.”

“나 역시 영광입니다, 중장 각하.”

화답을 한 이우는 뒤에 서 있던 이를 소개했다.

훤칠한 이우와 달리 단신의 통통한 체격을 한 남자를 본 이병석의 눈이 있는 대로 커졌다.

“영친왕 전하십니다.”

이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병석의 손이 자동으로 올라갔다.

“대한민국 육군 중장 이병석, 황태자 전하를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이병석의 극진한 환대 속에 이우와 영친왕은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우와 영친왕, 그리고 이병석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옆에 앉아 그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송 소장과 원 준장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벌레와 빨갱이가 무지하게 씹어 대고 있겠군!’

그들의 생각 그대로 뒤쪽에서 보던 빨갱이가 벌레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양반 왜 저리도 서비스가 좋지 ”

빨갱이의 물음에 벌레는 짧게 대답했다.

“우리 개새끼니까.”

벌레의 짧은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잠시 고민을 하던 빨갱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 저 양반 세대에서 보자면 ‘우리 개새끼’가 맞겠다.”

지금 한반도에 있는 이청천이나, LA에서 출발 준비를 끝내고 배에 오르고 있을 임정의 간부들, 그리고 창밖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1사단의 조선인들까지.

그들에게 조선황실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말 그대로 ‘그 개새끼가 개새끼인 것은 맞지만 우리 개새끼다.’의 그 ‘개새끼’와 같은 것이 조선황실이었다.

빨갱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벌레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 미우니 고우니 해도 우리 개새끼니까. 21세기 출신들인 우리들에게는 ‘우리 개새끼’가 맞는지 아닌지 궁금하지만 말이야.”

“우리 개새끼인지 알기나 했었냐 ”

빨갱이의 말에 주변에 있던 21세기 출신 부사관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 경성에 계신 것이옵니까 ”

이병석의 물음에 이우가 대답을 했다.

“소관(小官)은 새로운 임지로 발령받기 전에 잠시 휴가차 경성에 있는 본가에 온 것이었고, 황태자 전하 역시 마찬가지십니다.”

이우의 설명에 이어 영친왕이 말을 덧붙였다.

“전황이 기울어지면서 히로히토는 나라는 존재가 걱정이 되는 것 같았소이다. 그래서 제2총군으로 옮기라는 명령이 떨어졌소. 그래서 옮기기 전에 선황과 형님의 묘에 참배를 드리기 위해 잠시 휴가를 받아 돌아온 것이오.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오.”

“그러셨습니까….”

영친왕의 대답에 이병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병석이 잠시 입을 다물자 옆에 앉아 있던 송 소장이 질문을 던졌다.

“바로 전 임지가 어디셨습니까 ”

송 소장의 물음에 이우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이보시게, 장군.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겠나 ”

“대한민국 제1사단 사단장 송일한 소장이다.”

“황태자 전하시다. 예의를 갖춰라!”

이우의 말에 송일한 소장 역시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박했다.

“민주주의 공화국인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자라왔다! 망국에 가장 큰 원인이 된 자들에게 표할 예의는 없다! 그리고 어디서 일개 중좌가 소장에게 반말을 하는 거야! 여기는 군대야! 계급에 대한 예의를 지켜라! 왕자 대접 받고 싶으면 경복궁에나 가!”

“이보게, 송 소장! 좀 참아!”

송 소장의 거친 반응에 이병석이 송 소장을 말리고 나섰다.

주변에 앉은 광복군 출신 고위 지휘관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과 달리 원 준장이나 뒤에 앉은 21세기 출신 간부들은 모조리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벌레는 실실 웃으며 빨갱이를 돌아봤다.

“저 양반도 우리 과였지….”

“아하.”

이우와 송 소장의 대립으로 인해 회의실 안의 공기는 차갑게 냉각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병석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영친왕이 입을 열었다.

“조카의 무례를 사과하지. 비록 적군의 계급이기는 하나 나의 계급이 중장이니 하대를 해도 괜찮겠지 ”

“괜찮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 조카의 무례를 용서해 주기를 바라네. 아직 혈기가 넘치는 나이라 그런 거니 말일세. 이우 공, 사과하도록. 송 소장의 말에 틀린 건 없다. 여기는 군대고 계급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잠시 말을 끊은 의친왕은 침묵을 지키다 말을 이었다.

“망국에 대한 책임에서 우리 황실이 벗어날 수 없음은 확실하니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도록.”

망국에 관해서 조선황실도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영친왕의 충격발언에 회의실 안의 시선이 모두 영친왕에게 쏠렸다.

모두가 놀란 눈을 하고 있을 때, 정작 당사자인 영친왕은 큰 짐을 하나 벗은 표정이었다.

“뭐하나 ”

“…알겠습니다, 전하.”

영친왕의 채근에 가까스로 대답을 한 이우는 송 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나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우와 송 소장 사이에 사과가 오가고 나서 회의실 안의 공기는 일단 좋아졌다.

조금은 부드럽게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영친왕이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전까지 지휘를 맡았던 곳은 일본 육군 제1총군 휘하 제1항공군 사령관이었네. 제1총군의 임무는 본토, 특히 도쿄에 상륙하려는 적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고 있지.”

영친왕의 대답에 이병석을 비롯한 군의 고급간부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도조 히데키 이후 일본군의 핵심 기밀에 가장 근접한 이가 바로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친왕과 이우를 살피던 송 소장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남으신 것입니까 ”

“응 ”

송 소장의 질문에 이병석이 잠깐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송 소장이 말을 이어갔다.

“준장님은 일본 본토를 방어하는 일본군의 핵심기밀을 알고 있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을 본토가 아니라 바다 건너 이 한반도까지 휴가를 보내 준다 상식적으로 불가합니다. 거기에 더해 원산 상륙이 있기 전에 일본의 북방열도와 홋카이도에 공격이 있었습니다. 일본군의 최고상층부가 제대로 생각을 하는 이들이라면 그 정보가 들어오는 즉시 바로 준장님을 일본으로 불러들였을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원산에 상륙작전이 벌어지고 이곳 조선총독부가 공격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만약 일본군 지휘관이라면 그 즉시 인천 또는 부산으로 이동해 일본 본토로 준장님을 이동시키거나, 그렇지 않으면 제거라도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송 소장의 질문에 한국군 소속 지휘관들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항공군 사령관까지 지낸 고급 장교를 그냥 놔뒀다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송 소장의 질문에 영친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해도 송 소장의 질문이 틀린 것은 아니지. ‘어떻게 살아남았나’라… 우선, 우리를 보호한다고 나선 부대는 겨우 1개 소대 병력뿐이었고, 그 병력을 지휘하는 지휘관에게 외부 명령이 빠르게 전달되는 상황은 아니었소.”

“겨우 1개 소대였단 말입니까 ”

송 소장의 지적에 영친왕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조선은, 특히 경성은 이미 일본의 확고부동한 영향력 아래에 있는데 무얼 걱정하겠나 후레이센진들은 모조리 바다 건너에 있고 말이야. 공산주의자들은 일본인들을 죽이고 싶은 만큼이나 우리를 죽이고 싶어 했으니 많은 병력이 필요하겠나 그런 상황이니 총독도 가끔씩 와서 알현이나 하고 가는 상황이었지. 덕분에 총독부 청사가 공격받기 전까지 나는 원산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소.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면서 내가 있던 창경궁과 조카가 있던 운현궁은 완전히 고립이 되어 버렸지. 아니 우리가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던 것일지도.”

영친왕의 대답에 지휘관들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상식적으로 주요 기밀을 알고 있는 이를 잊었다는 것이 이해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후 기록을 찾아본 결과 용산에 주둔한 일본군들은 진짜로 이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을 좌우하는 최우선 순위는 총독의 구출과 총독부 청사를 탈환하는 것이었다.

천황 참모본부에서 영친왕과 이우의 행적에 관한 명령을 전달받은 시기는 그들이 이미 한강다리를 끊은 이후였다.

“아무리 1개 소대의 병력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준장님께 위해를 가하기에는 충분한 규모입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일본군들의 특징이 뭔지 아나 위에서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아무 생각도 안 해. 거기에 더해 조선총독부나 천황 참모본부가 미군의 한반도 침공을 알고 있었을까 내 생각에 미군이 홋카이도를 공격했을 때, 천황 참모본부는 홋카이도를 병참기지로 삼아 남진해 올 것이라고 예상했을 걸 ”

영친왕의 지적에 송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군의 경직성은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영친왕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총독부 전투로 인해 연락망이 끊어지자마자 일본군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하더군. 그래서 내가 명령을 내려 운현궁과 합류를 했고, 그대로 눈만 내놓고 있었지. 그러다가 채 하루도 안 가 자네들이 오는 것을 보고는 무장해제 시킨 다음에 이곳에 온 것일세.”

“일본군이 명령을 따랐습니까 ”

“이래도 명색이 일본육군 중장일세. 명예직(名譽職)이 아닌 실직(實職).”

영친왕의 대답에 송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적시에 제대로 행동을 하신 것 같습니다.”

송 소장이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자 분위기는 조금 더 좋아졌다.

이병석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영친왕과 이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두 분이 알고 계신 것을 다 알려 주시겠습니까 ”

이병석의 물음에 영친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 아니겠소 ”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원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

이병석의 물음에 영친왕이 바로 대답했다.

“나와 내 조카 모두 전투에 참여하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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