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
233화 지름길(Shortcut)작전 (20)
공습을 요청하기는 했지만 한국군이 무조건 손을 놓은 채 공군만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박격포들의 사거리에 일본군들이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박격포들이 일제히 포탄을 날리기 시작했다.
“적의 포격이 거셉니다!”
“1중대 출격 시켜! 처음 명령대로 전력을 다해 총독부 청사의 담장을 향해 달리라고 해!”
“핫!”
하리모토의 명령을 들은 전령이 1중대를 향해 달려갈 때, 하리모토는 또 다른 전령을 불렀다.
“포병대에 가서 빌어먹을 포격이 언제부터 가능한지 확인해!”
“핫!”
명령을 들은 전령이 포병대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하리모토는 전장의 상황과 돌격을 준비하는 1중대의 상황을 살폈다.
박격포탄과 기관총탄의 비가 쏟아지는 동안에도 말에 오른 1중대의 기병들이 곧 함성과 함께 저 멀리 보이는 총독부 청사의 닫힌 정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도오츠게끼!(突擊! 돌격!), 마에!(前! 앞으로!)”
“하아! 핫!”
1중대장의 명령에 1중대의 기병들은 전력을 다해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곧 그들을 향해 기관총탄의 집중사격이 쏟아졌지만 1중대의 기병들은 말과 기병들이 쓰러지면서도 계속해서 전방을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하리모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요시!(良し! 좋았어!) 그대로 달리는 거야!”
적지 않은 희생을 감내해야 하지만 저렇게 쓰러진 군마들의 사체는 총독부 청사를 향하는 길에 훌륭한 엄폐물이 되어 줄 것이었다.
투쾅! 투쾅!
그 때, 하리모토의 등 뒤에서 커다란 폭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하리모토는 포병대의 92식 70mm 보병포들이 총독부 청사를 향해 포격을 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쾅! 콰쾅!
“포격이다! 엄폐하라!”
“파편을 조심하라!”
일본군이 쏘아 댄 포탄들이 중앙청 청사에 격돌하자 일본군을 공격하던 병사들은 고개를 숙이며 엄폐물을 찾았다.
“피해 확인!”
“부상자들을 옮겨!”
“드론! 일본군 포대의 좌표 따서 박격포대에 전달!”
일본군들이 제법 매섭게 포격을 때리자, 창기와 빨갱이, 벌레는 바쁘게 움직이며 지휘를 했다.
드론 관제팀이 전달한 좌표를 받자마자 박격포들이 해당 좌표에 폭탄을 쏟아 붇기 시작했다.
핑! 챙강! 핑!
이쪽의 대응포격으로 일본군의 포격이 조금 약해졌다 싶었을 때, 청사를 둘러싼 담벼락에 도착한 일본군 기병들이 청사를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일본군의 사격에 건물 앞마당에 만들어진 참호에서 포격을 하던 81mm 박격포의 운용요원들과 기관총팀은 참호 바닥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상황을 살피던 벌레가 헤드셋의 마이크를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K11 뭐하냐!”
-조준 끝냈습니다!
투팡! 투팡! 투팡!
대답과 동시에 청사 제일 꼭대기 층과 첨탑에서 k11의 20mm탄들이 발사되었다.
팡 파팡! 팡!
k11이 발사한 20mm 포탄들이 담벼락 위에서 폭발했고, 그 아래 있던 일본군 기병들은 파편에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졌다.
담장에 있던 일본군들을 제압하고 이쪽의 박격포 공격으로 일본군의 포격이 한산해진 틈을 타서 부지런히 피해상황을 확인하던 빨갱이와 창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예상보다 쏘아 대는 숫자가 많아서 피해가 클 것 같았는데 적었어.”
“다행이야.”
“그래서 피해는 ”
“사망3. 경상 5, 중상 2.”
“중상자들을 옮길 수 있을까 ”
“이따가 밤이 되면 한번 시도를 해 볼까 생각중이야.”
피해상황과 부상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창기가 청사의 벽을 가볍게 두들겼다.
“그건 그렇고, 이 건물 예상보다 단단한데 옥상에 떨어진 포탄들 때문에 아래층에 피해가 발생할 줄 알았는데 그 포격을 견뎠어. 일본군 포탄이 예상보다 화력이 떨어지는 건가 ”
“벽면도 마찬가지야. 꽤 크게 부서질 줄 알았는데 버티더라고. 강화 콘크리트인가 ”
빨갱이의 말에 벌레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들은 말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쎄에엑!
“왔다!”
벌레가 막 설명을 하려던 바로 그 순간, 날카로운 엔진음이 하늘을 울렸다.
공군이 온 것을 직감한 벌레 일행들은 반색을 하고는 옥상으로 뛰어올라갔다.
옥상에서는 이미 벌레의 부하들이 공군기들에게 폭격을 해야 할 곳의 좌표들을 전달하고 있었다.
투쿵! 쿵! 콰쾅!
공군기들의 폭격은 시청과 그 일대에 집중되었다.
폭격이 끝나고 났을 때, 벌레 일행은 시청의 일부분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을 확인했다.
“시청, 꽤 단단한 건물 아니었냐 ”
“과연 1000파운드 폭탄이 세기는 하네….”
“이로써 한숨 돌린 것일까 ”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청을 보며 벌레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대로 1사단이 올 때까지 조용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벌레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밤이 새도록 일본군들과 한국군 사이에서는 격렬한 포격전과 사격전이 벌어졌다.
“저 빌어먹을 똥포는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낸들 아냐! 좌표 땄으면 보내!”
“아오! 저 바퀴벌레 같은 똥포!”
박격포탄을 이용해 파괴를 해도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92식 보병포를 보며 이를 박박 갈아대는 벌레 일행들이었다.
‘이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튀어나오는 일본군의 똥포’는 일본군의 집념이 만들어 낸 물건이었다.
처음부터 분해를 해서 군마로 옮기는 방식을 채택한 포가 92식 보병포였다.
그 덕에 처음에 군마가 끌고 오던 포-도착하자마자 포격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조립을 끝낸-들 외에도 더 많은 수량의 포들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분해, 조립을 할 수 있다는 점은 한국군의 포격과 공습으로 파괴된 포들에서 멀쩡한 부분을 찾아내 새로운 포를 조립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 결과 일본군들은 사용가능한 포의 수가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었지만 밤새 한국군과 포격전을 벌일 수가 있었다.
“지금 일본군을 지휘하는 새끼, 일본인 맞아 ”
전황을 살피던 벌레는 욕설을 내뱉었다.
시간이동 이후 처음 교전을 했던 필리핀에서, 그리고 중동에서, 마지막으로 총독부 청사를 사이에 두고 부딪친 일본군의 경우도 돌격‘만’을 고집했었다.
첫 돌격이 실패하면 바로 다음 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병력이 완전히 전멸할 때까지 돌격에 돌격을 거듭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다.
하지만 지금 전투를 지휘하는 지휘관은 그게 아니었다.
처음은 지금가지 상대해 왔던 일본군 지휘관들처럼 돌격을 했지만, 그것은 다른 노림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첫 번째 돌격에서 죽어 나간 군마들의 시체와 뒤이어진 공습, 그리고 포격전으로 만들어진 구덩이들을 이용해 착실히 전진을 하면서 사격전을 유도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총독부청사의 정문 좌우에서 밤이 늦은 지금까지 불타오르고 있는 2대의 전차(電車)는 지금 상대를 하고 있는 일본군 지휘관이 동원한 것이었다.
총독부 청사와 면한 실내에 모래주머니까지 쌓아 방어력을 높인 다음 옆에서 말들이 끌어서 이동하는 이동식 토치카로 개조된 전차를 이용해 총독부 청사를 방어하는 한국군을 애먹였다.
결국 LAW의 집중사격을 통해 모로 쓰러진 전차는 아직도 불에 타고 있었다.
계속해서 상황을 살피고, 빨갱이와 창기에게 연락해 수시로 병력을 재배치하면서 벌레는 자신들이 있는 총독부 청사의 벽을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놈이 생각 이상으로 잘 버텨줘서 다행이군, 다행이야.”
“무슨 놈의 건물이 부서지지가 않아!”
벌레가 생각보다 튼튼한 총독부 청사를 칭찬하고 있었다면, 반대쪽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하리모토는 예상보다 튼튼한 총독부 청사를 보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처음 전투가 벌어졌을 때부터 대부분의 상황은 하리모토가 예상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적들의 공습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병력들을 최대한 분산시킨 다음 안전한 곳에 대피시켰고, 보병포들 역시 최대한 재활용해 갔다.
거기에 무모한 돌격을 금지시키고 엄호와 전진을 교대로 하면서 최대한 총독부 청사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보병포들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도 총독부 청사 건물이 꿋꿋하게 버티고 서 있는 것이었다.
보병포의 집중사격을 받아 벽에 구멍이 뚫린 곳은 있었지만 무너져 내린 곳은 없었다.
그런 튼튼한 건물을 방패삼아 저 빌어먹을 후레이센진(不逞鮮人)들은 아직까지도 전투력을 보유한 채 아군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
교착상태에 빠진 전황을 보다 못해 한쪽에 멈춰 선 전차들을 동원해 공략해 들어갔지만 생전 처음 보는 로켓포의 공격에 전차 2대와 40여 명의 병사들만 잃어야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리모토는 저 총독부청사를 만든 일본인 건축가들을 상대로 저주를 퍼부었다.
그는 저 총독부 청사에 얽힌 비화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을 합병한 다음, 일제는 조선을 억누를 수 있는 대형 건축물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모든 조선인들이 볼 수 있는 자리인 경복궁의 정문이 있는 자리에 총독부 청사를 건설하게 되었다.
‘아시아 최초, 그리고 최고의 선진국이 일본임을 조선인이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다.’는 명분하에 초대형 근대식 건축물을 짓기로 마음먹었지만 일본에게도 초대형 근대식 건축물은 처음이었다.
그 결과, 독일인 건축가 게오르그 데 라란데(George de Lalande)가 맡았다가 설계도중에 사망한 다음 일본인 건축가들이 그 설계를 떠맡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인 건축가들은 자국이 생산한 건축 재료-철근, 콘크리트-의 품질을 자신하지 못했기에, 할 수 있는 한 굵고 두껍게 건물을 설계했다.
그 결과 예상보다 많은 시간과 자원, 자금을 소모해 만든 건물이 저 총독부 청사였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서 총독부 청사는 자신의 튼튼함을 마음껏 자랑하고 있었다.
“중좌도노(中佐殿, 중좌나리!), 도쿄에서 전문입니다!”
“도쿄에서 ”
용산에서 달려온 전령이 내민 전문을 읽은 하리모토는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
“칙쇼!”
- 나남의 19사단 전멸.
- 미군이 경성으로 진격할 것이 확실함.
- 경성에서 준동하고 있는 후레이센진들을 즉각 진압하고 경성의 방어태세를 확고히 할 것.
- 현재, 부산에 육군 3개 사단이 도착완료. 바로 상경(上京)할 것임.
“칙쇼! 말이 쉽지! 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거성을 어떻게 즉각 진압하라는 거야!”
명령문을 보며 분통을 터뜨리던 하리모토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전령을 불렀다.
“가서 야마무라 대위를 불러와!”
“핫!”
잠시 후, 야마무라 대위가 도착하자 하리모토는 입을 열었다.
“대위, 보병대가 공으로 과를 덮을 기회를 주겠다. 하겠나 ”
“핫!”
“백건대(白 隊)를 조직해라. 수는 40명.”
하리모토의 명령에 이를 꽉 깨문 야마무라 대위가 억지로 입을 열었다.
“목표는 어디입니까 ”
“저 총독부 청사의 정문과 그 담벼락이다. 저 문만 열 수 있다면 바로 밀어붙일 수 있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직하겠습니다.”
야마무라 대위의 대답으로 저 뤼순공방전에서 러시아군의 요새로 돌진해 전멸한 백건대가 다시 만들어졌다.
자정 무렵, 어깨에 흰 끈을 묶은 병사들이 한곳에 모였다.
모인 병사들에게 4명당 1명꼴로 두툼한 주머니가 주어졌다.
주머니 안에는 10kg의 다이너마이트가 들어있었다.
병사들을 바라본 하리모토는 손을 들어 병사들에게 경례를 했다.
병사들의 답례를 받은 하리모토는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덴노(天皇)께서 지켜보시고 있다. 제군들의 용전분투(勇戰奮鬪)를 기대하겠다.”
하리모토의 말에 40명의 병사들은 말없이 총을 들어 집총 경레를 했다.
답례를 한 하리모토는 야마무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운을 빈다.”
“핫!”
잠시 후, 40명의 특공대는 큰 길이 아닌 파괴된 건물들이 몰린 뒷골목으로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