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30화 (230/464)

# 230

230화 지름길(Shortcut)작전 (17)

“젠장할….”

앞에 굴러다니는 신체의 일부분들을 보며 김덕환은 또 다시 올라오는 욕지기를 참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    *    *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해서였는지 영 개운하지 않은 기분을 풀기 위해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갑자기 부하가 뛰어 들어왔다.

“오야붕! 난리가 났습니다! 지금 원산이 공격을 받고 있답니다!”

“뜨신 밥 먹고 무슨 헛소리야 원산이 왜 공격을 당해 ”

“오야붕! 헛소리가 아니라니까요! 지금 종로통의 일본인들이 다 난리가 났다니까요!”

발이 넓어 이러저런 소문이나 좋은 정보를 잘 물어오는 부하였기에 김덕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커피 잔을 내려놓은 김덕환은 부하를 똑바로 바라봤다.

“누가 원산을 공격한 거야 소련 미국 ”

“미국이라는 것 같던데요 ”

“미국이 에이~.”

‘미국’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김덕환은 손을 내저었다.

김덕환은 무식했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미국이 공격을 한다면 중국이나 일본 본토를 목표로 하지, 이 좁아터진 조선반도를 목표로 삼기에는 밑지는 장사였다.

“미국이 왜 조선을….”

투다다다다!

김덕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요란한 소음이 하늘에서 들려왔고, 김덕환은 커피 잔을 손에 든 채 다방 밖으로 튀어 나왔다.

아니, 김덕환만이 튀어 나온 것이 아니었다.

종로통(通)에 있는 건물들 안에 있던 이들이 모두 다 밖으로 튀어 나왔다.

난생처음 보는 비행기들이 북한산을 넘어 내려오고 있었다.

“새까맣게 날아오는구먼.”

“저게 다 몇 대야 ”

사람들의 시선을 막는 고층건물들이 없었던 덕에 사람들은 그 신기한 비행기들이 향하는 곳을 금방 알아챘다.

“어라 방향이 ”

“저곳으로 가면 총독관사하고 총독부 청사가 나오는데 ”

“내려간다! 내려간다!”

총독관사와 총독부청사 머리위에 도착한 헬리콥터들이 줄지어 고도를 낮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순식간에 개미떼처럼 흩어졌다.

“꺄아악!”

“난리다! 난리가 터졌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김덕환과 그의 부하들도 있었다.

자신들의 본거지인 우미관으로 돌아오자마자 김덕환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분간은 절대 밖으로 돌아다니지 마라. 상황이 안 좋아. 잘못하면 종로경찰서 순사들에게 잡혀갈 거다. 그냥 잡혀가기만 하면 다행인데 치도곤이 날 확률이 높아. 이럴 때는 바짝 엎드려 있는 것이 최고다.”

“예, 오야붕!”

“다시 말하지만 절대 밖으로 나대지 마!”

“예, 오야붕!”

부하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 김덕환은 셔츠의 목을 느슨하게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게 무슨 난리인지. 야! 가서 시원한 냉수 한 사발 가져와라!”

“예, 오야붕!”

함부로 밖에 나가지 말라고는 했지만 발 넓은 부하들과 호기심이 강한 부하들은 실시간으로 새로운 정보나 풍문을 김덕환에게 가져다주었다.

“원산 쪽은 아예 전화 연결이 안 된다고 ”

“총독관사와 청사는 완전히 점령을 당한 것 같다 ”

이리저리 들리는 소문을 들으며 김덕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비록 서출(庶出)이기는 하지만 자신은 유명한 독립운동가의 자식이었다.

“머리 아프네….”

‘독립운동가의 자식’이라는 간판은 김덕환에게 있어서 양날의 검이었다.

일본 경찰에게 있어서 그는 특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관찰을 할 필요가 있는 인물이었다.

덕분에 일반 형사뿐만이 아니라 고등계 형사까지도 그에 대한 감시의 눈을 늦추지 않는 상황이었다.

반면, 지역 상인들에게 접근하거나 부하들을 늘리는 쪽으로도 ‘독립운동가의 자식’이라는 간판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이런 문제로 인해 김덕환은 지금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김덕환은 자기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원산이 문제로군….”

“예 오야붕, 무슨 ”

“아무 것도 아니야!”

김덕환의 고함에 질문을 했던 부하는 합죽이가 되어 버렸다.

김덕환은 쉽게 해결책이 안 나오는 상황으로 인해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징용이 본격화되면서 징용을 피하기 위해 ‘경성특별청년지원단(반도의용정신대)’을 조직하는데 일익(一翼)을 담당한 것이 그였다.

만약 친일파에 관련된 소문이 사실이고, 원산에 임정이 들어왔다면 화를 당하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만 했다.

반대로, 총독부청사와 총독관저 점령, 원산 공격이 일본의 눈을 어지럽히기 위한 위장 공격이라면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 김덕환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밖에 나가서 상황을 수집하던 부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오야붕! 총독부청사에 태극기가 올라갔습니다!”

“태극기 ”

“태극기라고!”

“이야아!”

김덕환과 같이 사무실에 앉아 있던 부하들은 태극기가 올라갔다는 소리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하지만 그 환호성이 높아갈수록 김덕환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쾅!

“조용!”

테이블을 내리치며 김덕환이 지른 일갈에 사무실 안은 조용해졌다.

“지금 당장 해방이 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소란이야! 누가 나가서 용산 쪽 상황 알아봐!”

“제가 가겠습니다, 오야붕!”

“저도 갔다 오겠습니다!”

발 빠른 몇몇이 사무실을 나간 다음 김덕환은 빈 사발을 들어 올리며 소리 질었다.

“야! 누가 가서 냉수 한 사발 더 가져와라!”

‘총독부청사에 태극기가 올랐다.’라는 소문에 들뜬 것도 잠시, 용산에서 일본군들이 출동을 했다는 말에 사무실은 극도의 긴장상태가 되어 버렸다.

“용산에 있는 황군이 나오면서 총독부 청사로 가는 길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모조리 피난을 가는 중이랍니다.”

“그리고 또 ”

“총독부 청사와 관사 주변에 살던 이들도 일찌감치 집을 비우고 도망쳐 나왔답니다.”

“나와서 어디로 갔다고 하던가 ”

“조계사로 피한 이들도 많고, 사직동 쪽으로 움직인 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렇군….”

부아아앙!

부하들에게서 이야기를 듣던 그때 어마어마한 엔진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뭐야 ”

“오야붕! 비행기들이 또 새까맣게 몰려왔습니다!”

부하의 외침에 김덕환은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짙은 회색으로 칠해진 크고 작은 항공기들이 하늘을 새까맣게 매운 채 날아가고 있었다.

“방향이… 왜 저쪽으로 가지 용산은 이쪽인데 ”

“아! 두 패로 갈리네 ”

“이쪽으로 가면 용산이고… 저쪽이면 한강인데 한강엔 왜 가지 ”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있을 때 일본 유학파 출신의 부하가 손바닥을 쳤다.

“여의도 비행장을 공습하는 거로구나!”

“여의도 아! 여의도!”

김덕환을 비롯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용산 쪽에서 요란한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공습이다!”

“공습이야!”

까만 점으로 보이는 항공기들이 땅으로 내리꽂혔다 다시 솟아오를 때마다 커다란 폭연들이 솟아올랐고, 폭음이 하늘을 울렸다.

“이야! 장관이군! 장관이야!”

“그렇지! 그렇지!”

우미관의 옥상에서 폭격장면을 보던 김덕환의 부하들은 손뼉을 치고 주먹을 휘두르며 흥분했다.

생애 처음으로 공습장면을 본 그들로서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부하들을 보던 김덕환은 주변을 돌아봤다.

종로통의 어지간한 건물 옥상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바로 옆 건물 옥상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한 상황이었다.

옥상에 올라온 사람들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이들과 화색이 만면한 이들.

근심을 안은 이들은 일본인 또는 일본인들과 친한 조선인들이었고, 화색이 만면한 이들은 보통의 조선인들이었다.

폭격이 끝났지만 사람들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당장 해방이라도 된 듯 흥분해 날뛰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부숴라!”

“쪽발이들을 끌어내라!”

삐이익!

일본인들의 가게를 부수고 일본인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약탈을 하던 이들을 본 일본 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와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휘두르는 곤봉에 두들겨 맞은 이들은 피투성이가 돼서 끌려갔다.

“그래… 이게 현실이지….”

사무실 창문을 통해 그 광경을 보던 김덕환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직 경성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다.

태극기가 걸린 곳은 오로지 총독부 청사뿐이었다, 그 외의 지역은 아직도 일제의 영역이었다.

“오야붕! 일본군이 왔습니다!”

“어디에 있나 ”

“경성시청까지 와 있다고 합니다!”

부하의 말에 김덕환은 급히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밖으로 나가지 마라. 잘못하면 순사한테 잡히는 것이 아니라 애먼 총알에 맞아 죽는다!”

“예, 오야붕!”

“문 단단히 걸어 잠그고!”

“예, 오야붕!”

*    *    *

김덕환과 부하들이 우미관에 단단히 틀어박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군과 일본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반자이~.

-덴노헤이까 반자이.

멀리서 들려오는 만세 소리에 부하가 김덕환에게 말했다.

“일본군이 공격을 시작했나 봅니다.”

“그렇군.”

쾅! 콰쾅!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탕!

만세소리가 울려 퍼지기가 무섭게 요란한 폭발음과 기관총 사격음에 창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폭음과 총성에 김덕환과 부하들은 사무실 바닥에 냉큼 엎드렸다.

투콰쾅!

요란한 총성이 계속 이어지던 가운데 한층 커다란 폭음이 울렸다.

창문이 금방이라도 깨질듯이 요란하게 흔들리자 김덕환과 부하들은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비병을 질렀다.

“아이고!”

“엄마야!”

한차례의 강한 충격파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도 총성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끝이 나는 거야 ”

총성들이 울릴 때마다 쨍하고 흔들리는 유리창을 보며 김덕환이 투덜거리고 있을 때,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쿠콰쾅!

챙그랑!

“어무이!”

“아이고!”

두 번째 일어난 폭발이 만든 충격파에 우미관 사무실의 유리창들이 마침내 깨져 버렸다.

유리창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들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근처에 있던 부하들은 비명을 지르며 안쪽으로 잽싸게 몸을 피했다.

*    *    *

30분 정도 지나자 총성도 멈추고 사방이 고요해졌다.

“끝난 것 같다.”

김덕환의 말에 바닥에 엎드려 있던 부하들이 슬금슬금 몸을 일으켰다.

“오야붕! 오야붕!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누구 ”

“종로 의원의 강 선생님이십니다!”

“안으로 모셔라! 너희들은 자리 좀 만들고!”

“예, 오야붕!”

부하들을 소파에서 일으켜 세운 김덕환은 가운을 입고 왕진 가방을 든 초로의 의사가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강 선생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 난리통에 어디 왕진(往診) 가십니까 ”

“오야붕 말대로 이 난리통에 왕진을 가야 하오. 그래서 오야붕의 도움이 좀 필요하오. 힘 좀 잘 쓰는 이들 좀 빌려주시오. 오야붕이 나서면 더욱 좋고.”

종로의원 원장인 강상태의 말에 김덕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같은 시국에 왕진도 위험한 일이었다.

“선생님께 신세진 것도 많으니 도와드리지요.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벗어 놓았던 양복 윗저고리에 모자까지 챙겨 쓴 김덕환은 부하들과 함께 강상태의 뒤를 따라 우미관을 나섰다.

“어디로 왕진을 가시는 겁니까 ”

“총독부 청사로 가네.”

강상태의 대답에 김덕환은 걸음을 멈춘 채 강상태를 바라봤다.

“거기가 어딘지 아시고 가시는 겁니까 ”

“총독부 청사가 총독부 청사지 뭐 있나 ”

“지금 이 난리통 한복판으로 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

“다친 이들이 많을 걸세. 가서 치료해야지.”

“선생님!”

“거 참! 종로 협객(俠客)들의 오야붕이 겁쟁이인 것인가 ”

“겁쟁이라니! 저 김덕환입니다! 김덕환!”

“그러면 따라 오게나!”

강상태의 명령에 김덕환은 뒤를 따라 움직였지만 그의 입은 계속해서 강상태를 설득했다.

“선생님. 거기는 지금 전쟁터 한복판이란 말입니다. 위험하단 말입니다. 그냥 돌아가시지요.”

김덕환의 말에 강상태는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그가 가는 곳에는 다른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모여 있었다.

“하다못해 간호부(看護婦)들까지 사람을 구하겠다고 나서는데 뒤로 빠지자는 말이 나오는 것인가 ”

“…”

강상태의 질책에 김덕환은 입을 다물었다. 강상태는 엄한 눈으로 김덕환을 바라봤다.

“자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인가 자네의 선고장(先考丈, 타인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높이 부르는 말)이 어떤 분이신지 잊은 것인가 지금 같은 때라면 남들보다 앞서 나가야 할 이가 뒷걸음질이라니 이 무슨 추태(醜態)인가!”

강상태의 질책에 김덕환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사나운 표정을 한 김덕환은 가래침을 길바닥에 내뱉었다.

“카아아악! 퉤! 그 잘난 아비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보고 똥바닥을 구르며 자란 게 나요! 그래! 갑시다! 가! 그 잘난 아비의 자식 김덕환이 아니라 종로 오야붕 김덕환이 앞장서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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