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228화 지름길(Shortcut)작전 (15)
조칠현과 그를 구하러 나갔던 이들이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들이 사거리 안에 들어섰다.
벌레의 연락을 받은 빨갱이와 창기가 서둘러 옥상으로 올라왔다.
“81mm 사거리 안에는 들어왔는데.”
“조금 더 끌어들이자. 지금은 81mm밖에 안 돼. 조금만 더 끌어들여서 60mm 까지 써먹게 만드는 것이 나아.”
일본군에게 선제 타격을 가하기 적당한 위치를 놓고 설왕설래하던 빨갱이와 창기는 말없이 모니터를 관찰하는 벌레에게 질문을 던졌다.
“일본군들에게 야포는 있어 ”
“아직 보이지는 않아.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보병연대마다 4문의 산포(山砲)가 배치되어 있고, 또 기병연대와 포병 연대가 남아있지. 지금은 안 보이지만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해.”
벌레의 말에 빨갱이와 창기가 자신들이 생각한 대안을 이야기했다.
여러 옵션들이 꺼내지면서 이야기가 오간 끝에 셋은 결론을 내렸다.
-지금 오는 보병들을 최대한 청소해야, 남아 있는 기병연대와 포병 연대를 상대하기 수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적을 최대한 끌어들여야 한다. 불필요한 총격전은 지양한다.
-일본군의 포병대가 장거리 포격을 하게 된다면 ‘닥치고 공군’으로…
결론을 내린 셋을 서둘러 자신들의 지휘 구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빨갱이는 창틀 밑에 웅크리고 몸을 숨긴 부하들에게 주의를 줬다.
“일본군들이 소총 사거리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다. 방어에 만전을 기해라. 쓸 데 없이 눈먼 총알에 맞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대로 대기….”
퐁! 퐁!
바로 그때 옥상에 설치한 60mm 박격포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잠시 후, 총독부 청사 외벽을 따라 만들어진 진지에 설치된 81mm 박격포들까지 사격에 가세했다.
약 1km 전방에서 터지는 폭발을 보며 빨갱이는 비릿하게 웃었다.
“지금 거기 서울 시청에서 여기까지는 뻥 뚫린 직선도로다. 돌격을 해야겠지 ”
“돌격이다!”
경성 시청 인근에 도착하자마자 후레이센진들의 포격을 받은 시무라는 군도를 뽑아 들고는 돌격을 명령했다.
“지금 이 위치에서는 돌격만이 정답이다! 돌격! 돌겨억!”
목이 터져라 외치는 시무라의 명령에 병사들은 돌격을 준비했다.
메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고 소총에 착검을 한 병사들은 총독부 청사를 향해 구보를 시작했다.
시청 청사 모퉁이에 선 시무라는 병사들에게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달려라! 죽더라도 달려! 총독부 청사를 탈환하는 것만이 천황폐하의 은덕에 보답하는 길이다!”
시무라의 말에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구보의 속도를 높였다.
주변에 엄폐물로 쓸 수 있는 민가와 상점 건물들이 있었지만 돌격명령을 받은 일본군들은 이를 무시해야만 했다.
총독부 청사를 최대한 빨리 탈환해야 한다는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으로 쭉 뻗은 직선도로의 끝에는 총독부 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총독부 청사와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 초급장교들과 부사관들이 일제히 군도를 뽑아 들고 소리를 높였다.
“돌격!”
“덴노헤이까 반자이!”
“반자이!”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소총을 앞으로 쭉 내민 채 만세를 외치며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온다!”
“대기! 대기! 대기!”
일본군 병사들이 내지르는 만세 함성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총독부 청사에 틀어박혀 방어를 준비하고 있는 한국군 병사들도 긴장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옥상의 발코니와 3층, 4층에 자리한 기관총 사수들은 개머리판을 어깨에 좀 더 단단히 고정시켰고, 부사수들은 아예 미리 뚜껑까지 열어 놓은 여분의 탄약통과 예비총열을 가까운 곳에 놓은 채 명령을 기다렸다.
“대기… 대기….”
기관총 사수들은 미리 준비해 놓은 기준점에 조준을 맞추었다.
그들이 미리 준비한 기준점은 총독부 청사를 둘러싼 담장에서 100m 떨어진 곳에 갖다 놓은 페인트 통들이었다.
일본군들이 그곳을 지나면 벌레와 창기가 명령을 내릴 것이고, 그와 동시에 기관총 사수들도 방아쇠를 당길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사격!”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3층과 4층의 창문, 옥상의 발코니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관총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기관총의 화망에 갇힌 일본군들은 썩은 짚단들이 무너지듯 땅으로 쓰러졌다.
“아악!”
“반자이! 반자이!”
주변에서 계속해서 전우들이 쓰러졌지만 일본군 병사들은 반쯤은 겁에 질려서, 반쯤은 자포자기를 한 얼굴로 돌격을 계속했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훈련소에서 매일 같이 들었던 교관의 말이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관이 돌격을 명하면 돌격을 하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 마라! 정신은 육체를 이기는 법이다! 203고지에서 산화한 군신(軍神)들을 보라! 그들의 육신은 저 203고지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의 영혼은 군신으로 화(化)해 우리 일본을 수호할 영령(英靈)이 되었다.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위대한 일본제국을 위해 죽을 수 있음에 감사하라!’
“다 개소리지….”
전우들과 함께 돌격을 하면서 나루자와 이등병은 작게 중얼거렸다.
교토 대학 재학 중에 징집되어서 육군에 입대한 것이 나루자와 이등병이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에 학생 시절 사회주의 운동 서클에 가입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온갖 폭력에 시달려야만 했던 나루자와였다.
“다 개소리야….”
입으로는 계속해서 ‘개소리’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그가 계속해서 달릴 수밖에 없던 것은 그의 주변에서 달리는 전우들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전우들이 돌격하는데 뒤로 빠진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고, 살아남는다 해도 기다리고 있을 뒷감당을 당해 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착검한 소총을 꼬나 쥔 채 달리며 나루자와는 속내를 털어놨다.
“죽으면 신이 될 거라고 그러면 난 흉신(凶神)이 될 거다! 악신(惡神)이 될 거다! 그래서 나를 이렇게 만든 일본제국을 저주할 거다!”
자신의 조국인 일본에 대한 저주를 내뱉으며 달리는 나루자와의 눈에 노랗게 칠한 페인트 통이 들어왔다.
잠시 후 나루자와를 비롯해 적지 않은 수의 일본군들이 기관총탄의 소나기를 뚫고 노란색 페인트 통을 넘어 앞으로 달려갔다.
“일본군, 1차 저지선 돌파!”
“트랩1번 폭파!”
“트랩1번 폭파!”
기관총들의 거센 총격을 뚫고 앞으로 돌격을 하는 일본군의 수가 점점 많아지자 창기는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창기의 명령에 부하는 복창과 동시에 발화장치의 레버를 아래로 밀었다.
콰쾅!
발화장치가 격발되자마자 도로에 놓여있던 페인트 통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폭발과 동시에 안에 담겨있던 온갖 종류의 못들이 찢어진 깡통의 파편과 함께 주변의 일본군들을 덮쳤다.
길거리에 놓아두었던 노랗게 칠한 페인트 통들은 훌륭한 조준점인 동시에 급조 크레모어였다.
총독부 청사와 그 부속건물들의 점령이 끝난 다음, 벌레와 빨갱이, 창기의 부하들은 건물의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총독부 청사의 경비를 맡은 헌병대 숙소에서 다량의 수류탄을 확보하고, 총독부 청사와 부속시설들의 보수용 자재가 쌓여 있는 창고에서 페인트 통들과 크고 작은 온갖 종류의 못들을 찾아낸 벌레와 빨갱이, 창기는 IED(급조폭발물.Improvised Explosive Device.)의 제작에 들어갔다.
빈 페인트 통에 일본군의 수류탄들과 C4를 심으로 박아 넣고 그 주변에 못과 유리파편, 99식 소총의 탄환에서 뽑아낸 탄두 등을 섞어 채운 후, 빈 공간에는 탄두를 빼낸 탄환에 들어있던 화약까지 채운 무식한 놈이었다.
급조 크레모어를 만들라는 명령에 세 사람의 부하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가지고 온 크레모어와 기타 폭발물들의 양이 상당한데, 이런 것까지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
부하들의 질문에 세 사람의 대답은 똑같았다.
“아껴야 잘 산다는 말 모르냐 ”
말 그대로 ‘급조’였지만 문제의 페인트 통들은 제대로 위력을 발휘했다.
페인트 통들이 폭발한 주변으로는 순식간의 죽거나 중상을 입은 일본군들이 산을 이뤘고, 순간적으로 돌격의 속도가 죽어 버렸다.
그렇게 돌격이 멈춰 버리자 후방에서 어깨에 수실로 된 장식을 한 고급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튀어나와 허공에 군도를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적 지휘관으로 추정되는 목표 발견.
-처리해.
벌레의 명령에 저격병은 M82바렛 저격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쾅!
찰나의 시간이 지나 50구경 탄을 정통으로 맞은 일본군 지휘관의 몸이 위아래로 갈라져서 땅바닥에 굴렀다.
조준경에서 눈을 뗀 저격수는 무전기의 키를 눌렀다.
“제거.”
-수고했다.
“이런!”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면서 죽어 버린 참모의 모습에 시무라는 경악을 했다.
“미친놈들! 대전차소총으로 사람을 쏜 거냐!”
* * *
돌격이 멈춰 버리자 시무라는 참모를 닦달했다.
“돌격이 멈춰서는 안 돼! 당장 돌격을 재개시켜!”
“피해가 큽니다! 물러서서 재정비를 해야 합니다!”
“재정비를 할 수 있는 여유병력이 우리에게 있나! 지금이 단 한 번의 기회야! 이 단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단 말이다! 어서 돌격을 재개시켜!”
“하지만….”
“죽고 싶은 것이냐!”
당장이라도 손에 든 군도로 목을 칠 것 같은 시무라의 분위기에 참모는 앞으로 나가 병사들에게 큰소리로 돌격을 강요해야 했다.
“돌격! 돌격하라!”
참모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이 주춤거리자 참모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총독부 청사가 코앞이다! 지뢰는 한번 터지면 끝이다! 돌격해! 돌격! 도….”
허공에 군도를 휘두르며 돌격을 명령하던 참모는 어느 순간 두 쪽으로 갈라져 뒤로 날아갔다.
참모의 시체를 본 시무라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중국에서 봤던 도이치의 대전차소총 정도는 되어야 저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창백해진 얼굴로 시무라는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잠시 멈췄던 돌격은 다시금 이어지고 있었지만 기세가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후퇴 후 재정비 아까 참모에게 말했듯이 병력의 여유가 없었다.
재정비를 위해서는 기병연대나 포병연대를 찾아가 고개를 숙여야 했는데 이는 시무라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원산에 미군이 상륙하는 상황이어서 기병연대와 포병연대는 그들을 막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컸다.
결국, 시무라는 이 한판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칙쇼(畜生)! 이치카바치카( 一か八か, 이판사판)다!”
군도를 손에 든 시무라는 곧장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돌격! 돌격! 병사들은 나를 따르라! 돌겨어억!”
연대장이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하자 주춤거리고 있던 병사들이 시무라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돌격!”
“돌격!”
“덴노헤이까 반자이!”
“우와아아아!”
“반자이!”
일본군 병사들은 거의 단말마와 같은 비명을 지르며 거리를 내달렸다.
총독부 청사에서 쏟아지는 기관총탄의 소나기는 역시나 거셌지만 일본군 병사들은 계속해서 죽어 나가면서도 돌격을 계속했다.
그렇게 이어진 질주 속에 일본군들은 다시 한 번 페인트 통들이 있던 자리를 넘어 전진했다.
병사들의 선두에는 시무라가 군도를 손에 든 채 미친 듯이 질주를 하고 있었다.
“돌격! 돌격! 죽음을 두려워 마라! 군신이 될 것이다! 돌격!”
“덴노헤이까 반자이!”
“제국의 영광을 위해! 돌격!”
“반자이!”
“돌격!”
병사고 장교고 할 것 없이 만세와 돌격을 외치는 가운데 총독부 청사는 점점 가까워졌다.
제일 선두에 선 시무라의 눈에 총독부 청사를 둘러싼 담장이 들어왔다.
네모난 국방색의 도시락 같은 물건이 매달린 철창살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시무라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고지가 코앞이다! 돌격!”
“우와아아아!”
“적, 2번 저지선에 도착했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창기는 짧게 명령했다.
“2번 트랩. 폭파.”
“2번 트랩, 폭파!”
그 순간, 총독부 청사 담장 창살에 매달려 있던 크레모어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투과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