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
227화 지름길(Shortcut)작전 (14)
미군 함재기들의 공습으로 시간을 번 벌레와 빨갱이 일행은 총독부 청사의 방어를 강화하는 데 더욱 공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총독부 청사로 들어오는 정문과 현관 사이에 펼쳐진 화단에 크레모어를 설치하고, 총독부 청사 현관으로 올라오는 차량용 경사로에 모래주머니들을 쌓아 바리게이트를 침과 동시에 1층 사방에 만들어진 보조 출입구에도 바리게이트를 쌓고, 기관총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총독부 청사의 3면을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부속건물에 C4와 TNT를 설치해서 파괴공작에 들어갔다.
“폭파! 폭파! 폭파!”
콰쾅! 쾅! 와장창! 쨍그랑!
폭발의 충격파로 총독부 청사의 유리창들이 다 박살난 가운데, 솟아오르는 먼지구름을 손부채질로 흩으며 벌레와 빨갱이, 그리고 창기는 파괴공작의 결과물을 살폈다.
“야! 여기 유리 좀 치워라! 다치겠다!”
“알겠습니다!”
“어라 생각보다 덜 부서졌다 폭약이 불량인가 설마 중국제 ”
아직도 상당 부분이 버티고 서 있는 부속 건물들이 있는 것에 창기가 의문을 표시하자 벌레가 입을 열었다.
“저거에 관해서는 나도 살짝 얻어들은 풍월이 있어. 그 풍월이 맞는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상황이야.”
“풍월 무슨 풍월 ”
“카더라인지라 100% 확신은 못하겠고, 나중에 일본 애들이 와서 중앙청 청사에 총알 몇 발 박아보면 알게 되겠지. 그건 그렇고 무너뜨리기 전에 일본 애들 무기들은 잘 챙겨뒀지 ”
벌레의 물음에 창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챙겨뒀어. 그거 쓰기 전에 전차들이 도착하기를 바라야 겠지.”
“영감하고 사장이 36시간이면 떡을 친다고 장담했고, 몰라서 72시간 동안 전력으로 싸워도 될 정도의 물자를 챙겨왔잖아.”
빨갱이의 말에 창기는 검지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그건 모르는 법이야. 윗동네 애들이 밀고 내려올 때 38선에서 어택 땅 찍었는데도 서울까지 사흘이 걸렸다. 그건 모르는 일이에요. 이 공산당 자슥아.”
“아예 늦게 오라고 굿판을 벌여라. 굿판을. 네가 그러니까 승진을 못한 거야. 이 비관론자야.”
“그래! 그래서 네가 도조 잡을 때, 난 창고에서 불장난이나 했다! 썅!”
탕! 타탕! 탕! 탕!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를 나누던 세 사람은 갑작스레 들려온 총성에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벌레다! 어디서 난 총성인가 ”
“전투준비! 전투준비!”
“외곽에서 작업하던 애들 다 청사로 들어오라고 해! 그리고 인원확인 다시 하고!”
-여기는 첨탑! 계동방향에서 총성!
“계동 ”
“계동이라고 ”
헤드폰을 통해 ‘계동’이라는 단어가 들려오자 빨갱이와 창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벌레는 침착하게 명령을 이어갔다.
“벌레다! 저격수를 계동방향에 배치! 드론 추가로 띄워서 상황 확인! 이상!”
-접수!
명령을 내린 벌레는 빨갱이와 창기를 돌아보며 손을 내밀었다.
“옥상으로 올라갈게. 아래쪽을 부탁한다!”
“걱정 말고 올라가라!”
“몸조심하고!”
서로 악수를 교환한 세 사람은 각자 있어야 할 곳으로 흩어졌다.
* * *
“갑자기 무슨 총격전이야 미국 애들이 시가지 진출이라도 한 거냐 ”
옥상으로 올라온 벌레는 우선 상황부터 확인했다.
벌레의 물음에 드론을 관제하던 부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미국 애들 역시 총독부에 단단히 틀어박혀 있습니다. 아! 통신이 왔었습니다. 총독관저를 장악한 미군의 호출부호는 알라모입니다.”
“알라모 하고 많은 호출부호 가운데 알라모는 또 왜… 21세기나 지금이나 미국 애들 센스는 알 수가 없어.”
멕시코-텍사스 독립전쟁에서 미국인들이 전멸한 요새 이름을 오히려 애용하는 미국인들의 습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던 벌레는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양키 센스는 나중일이고, 그러면 저 총격은 도대체 어디서 나는 거야 ”
“지금도 드론으로 찾고 있습니다만, 아직….”
탕! 타탕!
“좀 빨리 찾아 봐! 혹시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곧장 무장봉기를 한 이들이 있을 수 있어!”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린 벌레는 첨탑에 있는 관측조를 호출했다.
“벌레다! 찾았나 이상.”
-아직 못 찾았다! 잠시 대기! 경찰로 보이는 인원들의 이동 확인! 좌표 보내겠다! 이상!
“찾았습니다! 지금 일본 경찰로 보이는 약 20 명의 무장 세력과 교전을 벌이는 정체 미상의 인원 확인!”
“정체 미상 ”
벌레의 물음에 드론이 보내는 영상을 확인한 부하가 말을 덧붙였다.
“우리 한국군 군복을 입었습니다!”
“좌표 확인!”
부하에게 명령을 내린 벌레는 바로 빨갱이와 창기를 호출했다.
“여기는 벌레! 아군 밀정이 일본 경찰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거리는 왕복 40분 거리. 구조 가능한가 이상.”
-여기는 창. 경찰의 수는 이상.
“현재 확인 중. 이상.”
-여기는 레드. 현재 일본군의 상황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가 없으면 움직이기 힘들다, 이상.
“여기는 벌레. 바로 확인하겠다. 이상.”
빨갱이의 요청을 받은 벌레는 바로 부하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드론을 통해 들어오는 일본군의 정보를 확인한 벌레는 다시 무전기의 키를 눌렀다.
“여기는 벌레. 일본군의 규모는 약 2개 대대. 거리는 남쪽으로 4km지점. 현재 체제를 재정비하고 있다. 곧 다시 이동을 시작할 것 같다. 이곳까지 오는 도로의 형상과 이동 속도를 따지면 약 1시간 정도의 여유는 있다. 이상.”
-여기는 창. 2개 그룹을 내보내겠다. 이상.
“여기는 벌레. 저격수와 박격포를 지원하겠다. 이상.”
-여기는 창, 접수.
잠시 후, 총독부 청사의 동쪽 쪽문을 통해 일단의 병사들이 밖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 벌레의 눈에 들어왔다.
구출에 나서는 병사들을 확인한 벌레는 바로 무전기의 키를 눌럿다.
“벌레다. 아군과 합류를 시도하는 밀정과 아군 지원조를 보호할 것, 이상.”
-접수.
* * *
탕! 핑! 퍽! 타탕! 탕! 핑!
1대20의 격렬한 사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종로경찰서 소속 미나미(南)순사는 38식 소총의 노리쇠를 당기며 분통을 터뜨렸다.
“칙쇼! 무슨 놈의 소총이 탄이 떨어지지를 않아!”
백여 미터 떨어진 골목에 숨은 후레이센진(不逞鮮人)이 쏘아 대는 탄에 벌써 열에 가까운 경찰들이 목숨을 잃은 상황이었다.
우회를 하려고 했지만 저 후레이센진은 영악하게도 막다른 골목을 등지고 틀어 앉은 상황이었다.
“멍청한 야나기 녀석! 그러니까 조센진은 경찰로 쓰면 안 되는 거였어!”
다급한 손짓으로 비어 버린 탄창에 클립을 갖다 끼우며 이미 저 쪽에 시체가 되어 누워있는 조선인 출신 경찰을 향해 분통을 터뜨리는 미나미였다.
총독부 청사와 총독부에 괴변이 벌어졌다는 말에 비상이 걸린 종로경찰서였다.
막 출동준비를 하던 경찰서로 자전거를 탄 야나기가 헐레벌떡 들어와 보고를 했다.
“소총으로 중무장한 후레이센진이 발견되었습니다!”
“수는 ”
“하, 한명입니다!”
야나기의 보고에 기동대를 조직하던 마쓰이 순사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같이 나간 류자키 순사는 어떻게 되었나 ”
“총격을 받은 것까지만 확인했습니다!”
야나기의 보고에 마쓰이 순사부장은 야나기의 뺨을 올려쳤다.
“멍청한 자식! 갸우 후레이센진 하나에 겁을 먹고 도망을 쳐 이 나약자(懦弱者!)”
“죄송합니다! 하지만 놈이 중무장을 하고 있어서….”
“됐어! 출동한다! 혼자 돌아다니는 후레이센진부터 잡아 버린다! 움직여!”
“핫!”
마쓰이 순사부장의 명령에 경찰들은 소총을 어깨에 메고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야나기! 길을 잡아라!”
“핫!”
야나기의 선도 아래 마쓰이 순사부장과 그의 부하들은 홀로 돌아다니는 후레이센진을 잡기 위해 페달을 밟았다.
* * *
“빌어먹을! 멍청한 녀석! 무슨 호기로!”
새로운 탄창을 결합하며 조칠현은 스스로를 책망했다.
총독부청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와 급히 순찰을 멈추고 경찰서로 돌아가는 종로경찰서 경찰과 맞닥뜨린 것은 우연이었다.
훈련받은 그대로 총을 잡은 조칠현은 순사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거기서 그의 첫 번째 실수가 튀어나왔다. 소총의 조종간을 자동에 맞춰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긴 것까지는 성공적이었지만 20발의 탄환이 순식간에 발사되면서 2명의 순경 가운데 단 하나만을 제거할 수 있었다.
다급히 새 탄창으로 교환한 그가 목표물을 찾았을 때 남아있던 순경은 급히 자전거를 돌려 모퉁이 너머로 사라진 다음이었다.
추격을 포기한 칠현은 부지런히 총독부 청사를 향해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나 총독부 청사가 멀리 보이는 곳에서 칠현은 약 20명이 넘어 보이는 경찰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타탕! 타탕! 타타탕!
점사로 조정해 놓은 덕에 한 탄창으로 다섯의 순경을 잡은 조칠현은 거기서 두 번째 실수를 범하고야 말았다.
우왕좌왕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보고 전투를 선택한 것이었다.
우회공격을 막기 위해 막다른 골목을 등지고 자리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수적 열세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처음 교전 이후 다섯을 더 잡았지만 칠현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게 마지막 탄창인데….”
텅비어버린 탄창주머니를 보며 입술을 깨문 칠현은 조심스럽게 오른쪽 허벅지 부근에 매달린 콜트 권총을 쓰다듬었다.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는다! 항복이나 체포는 없어!”
결의를 굳게 한 조칠현이 저 멀리 보이는 경찰의 머리를 조준하고 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타타타타타타타. 타탕! 타타탕! 쾅! 쾅!
요란한 기관총의 발사음과 동시에 소총의 연사음, 거기에 수류탄의 폭음까지 겹쳐지며 저 멀리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던 곳이 박살이 나버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경찰들이 제압되자 골목은 조용해졌다.
“한국군인가!”
“한국군이다!”
조칠현의 대답에 저쪽에서 다시 외침이 들려왔다.
“총을 머리 위에 든 채 앞으로!”
명령을 들은 조칠현은 양손으로 소총을 높이 든 채 골목을 나서 한국군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정지!”
자신들이 모인 곳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조칠현을 멈춰 세운 한국군 가운데 두 명이 앞으로 나왔다.
조칠현에게 총을 겨눈 채 가까이 접근한 병사가 질문을 던졌다.
“머리 쓰는 일은 누구에게 ”
“벌레!”
“조지고 부수는 일은 ”
“빨갱이!”
“1사단 사단장은 ”
“송일한!”
문답을 통해 아군임을 확인한 한국군들은 그제야 총구를 내렸다.
“임정에서 파견되었던 분입니까 ”
“그렇소이다.”
“시간이 없습니다. 바로 움직입니다.”
“알겠소.”
조칠현은 가운데 두고 두 명의 병사는 바로 복귀를 했다.
구원병력을 이끌고 나간 그룹의 리더가 무전기의 키를 잡았다.
“여기는 넘버 식스. 신병을 확보했다. 임정의 요원이다. 즉시 귀환하겠다. 이상.”
-여기는 벌레. 수고했다. 오는 길은 아직 깨끗하다. 오염되기 전에 최대한 빨리 돌아올 것. 이상.
“넘버 식스. 접수, 이상.”
통신을 끝낸 그룹 리더는 부하들을 돌아봤다.
“아직까지는 안전하다. 최대한 빨리 움직인다.”
그룹 리더의 명령에 부하들은 재빨리 장비들을 챙겨 들고는 총독부 청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