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18화 (218/464)

# 218

218화 지름길(Shortcut)작전 (5)

니미츠가 돌아가고 긴급 호출된 성 부장을 상대로 일의 연유까지 알게 된 다음에도, 임정의 각료들과 군부의 지휘관은 회의를 이어갔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이는 정 수석차관이었다.

“제가 군사적인 부분은 잘 모르지만 군사 외적인 부분만으로 봤을 때, 미국의 노림수는 간단합니다. 전후 세계역학 판도에서 소련의 배제입니다.”

정 수석차관의 말에 송 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실어 주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등으로 치고 올라가면 독일에게는 치명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독일과 함께 ‘추축국의 조병창’이라 불리며 체코슬로바키아와 독일의 연료를 책임지고 있던 루마니아가 넘어가게 되면 독일은 그야말로 말라죽을 가능성이 생깁니다. 하지만 거기서 살짝 옆으로 한발만 틀면 폴란드를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소련에게 허락된 것은 독일에게 빼앗겼던 서쪽 국경까지의 러시아 영토뿐입니다.”

“그 부분 역시 미국이 허락했을 경우입니다. 미국이 진격 속도를 어떻게 조절하느냐, 또는 독일의 내부 상황이 어떻게 변하냐에 따라 우크라이나와 모스크바 서쪽 지역은 따로 분리 독립할 수도 있습니다. 모스크바는 어쩔 수 없이 내주더라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금은 레닌그라드로 불리고 있습니다만, 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수도로 한 반공, 또는 파시즘의 러시아 국가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송 소장과 뒤이어 원 준장까지 정 수석차관의 말에 힘을 실어 주자 김 주석과 각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김 주석은 문제를 지적했다.

“지금 당장 화급한 것은 한반도 본토진공에 관한 것일세.”

김 주석의 지적에 군부 지휘관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본토진공에 관한 문제라고는 했지만, 솔직히 뭐라 예단을 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본토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 육군의 병력은 2개 사단, 그 가운데 ‘나남사단’이라고 별명이 붙은 19사단이 나남(지금의 청진)에 있고, 20사단이 경성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80개 사단이 투입되는 것입니다.”

“관동군과 일본 본토에서 건너올 지원 병력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관동군은 지금 약 40만으로 줄었습니다. 만주군이 있기는 하지만 관동군의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니미츠 제독의 말에 따르면 2차로 추가 증원될 부대가 있다고 했으니 관동군은 그다지 큰 장해물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21세기 출신인 송 소장과 원 준장의 대답에 김 주석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미군이 80개 사단을 동원한다는 것이 놀랍기는 하지만 자네들이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드네.”

김 주석의 우려에 원 준장과 송 소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여러 가지 안 좋은 사전 요소들이 겹쳐지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기계화 사단에 보병부대가 어떻게 녹아나갔는지 경험이 있으니까요.”

두 사람이 말한 경험이라는 것은 한국전 초기 국군의 처참한 패배였다. 그리고 그 뼈아픈 경험으로 인해 한국 육군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거운 군대, ‘대포중독자’ 군대가 되게 만들었다.

원 준장과 송 소장의 말을 듣고 있던 김기식이 김 주석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심이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것이 있소이다. 미군과 우리가 한반도로 진공을 하면 일본은 반드시 지원군을 보낼 것이 확실한데, 그로 인해 한반도 남부 지역의 우리 동포들이 피해를 많이 볼 것 같아 걱정이오.”

미군이 새롭게 작전을 바꾸면서 상륙지점도 변경을 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미국이 새로 설정한 상륙지점은 원산이었다.

일이 아무리 잘 풀린다고 해도 한반도 남부 평야 지역과 북부의 두만강과 압록강 부근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그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피해를 입을 동포들을 걱정하는 김기식의 말에 가만히 앉아있던 정 수석차관이 입을 열었다.

“부주석께는 죄송합니다만, 오히려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

“대한민국이 식민지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산업국가 체제로 발전하는 길을 막는 가장 큰 방해 세력을 가장 빠르게 없앨 수 있는 방법입니다. 친일파 척결은 물론이고 말입니다.”

정 수석차관의 말에 21세기 출신들은 무엇인가 감을 잡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무슨 말인지 쉽게 감을 못 잡겠네.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해줬으면 하네.”

“국권을 회복한 다음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이미 예전에 설명을 드렸었습니다.”

“그랬었지. 그 때 대규모로 외채를 들여와야 할 필요성도 자네가 설명을 했지. 그리고 순수 국내 자본을 양성하기 위한 종자돈을 만들기 위해 코람 캐피탈을 만들었고 말이야.”

역시나 ‘수금(收金)’이라는 새로운 호를 지을 정도로 경제에 관심이 많아진 김기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 수석차관의 말을 받았다.

가볍게 목을 축인 정 수석차관은 말을 이어갔다.

“산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자본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본토에 있는 국민들 대부분이 땅에 묶여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들의 땅이 아닌 소작농의 신세로 말이지요. 이 사슬을 끊어 내기 위해서는 전쟁만큼 빠르고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가 ”

“거기에 더해 국권회복 이후, 지금까지 종이 위에 써놓은 공상 수준이었던 경제개발계획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임정이 꽤 긴 시간동안 정권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적 라이벌이 될 한반도 토착 지주 세력들의 힘을 줄여야 합니다. 아니, 피 흘려 되찾은 조국이 제대로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짧게는 조선시대, 길게는 고려와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지방의 토착지주 세력을 없애야 합니다. 굳게 닫힌 작은 사회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세칭 ‘지역 유지’들을 제대로 손보지 않고는 기초를 튼튼히 다질 수 없습니다.”

정 수석차관은 계속해서 ‘토착지주’들을 없애야 할 당위성을 설명했다.

-지주와 소작농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소작농 지위에 있는 이들은 제대로 된 정치적 의사 표출을 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닫힌 사회에서 토착지주들은 얼마든지 전제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는 국가가 정당한 행정작용이나 사법 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행정조직의 공무원이나 치안을 담당한 경찰 또는 군인들은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토착지주들과 야합을 하게 될 것이고 이는 바로 부패로 직결된다.

-식량을 비롯한 현물 위주로 부를 저장한 토착지주들은 시장 경제를 교란하게 된다. 이는 공정한 부의 배분을 방해할 것이며 산업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이들의 자본은 지하자본으로 화할 것이다.

[중략]

-따라서 힘과 권력을 가지게 된 토착지주들은 세습구조를 가진 정치세력으로 변할 것이며 이는 향후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는 것에 가장 큰 방해물이 될 것이다.

“흐음… 나름 이해는 가는데….”

정 수석차관의 설명에 임정의 각료들과 독립 운동가들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세습구조를 가진 정치세력은 좀 과장한 것 아닌가 ”

김 주석의 지적에 정 수석차관이 바로 대답을 했다.

“실례(實例)가 있습니다. 21세기 일본의 정치인들입니다. 일본의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지역구에서 대를 이어 국회의원이 됩니다. 그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결국은 해당 지역의 지주들이었고 말입니다.”

“그런가 이해했네.”

김 주석이 한발 물러서자 이번에는 김기식이 입을 열었다.

“토착지주 세력이 지하자본 세력으로 변한다는 부분 말일세. 정부가 나서서 그들을 건전한 자본 세력으로 자라도록 유도하면 해결되는 부분 아닌가 ”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세금 내는 것 좋아하는 사람 없습니다.”

정 수석차관의 간단명료한 대답에 김기식은 입을 다물었다.

또 다른 반론은 21세기 출신인 고 제독이 내밀었다.

“새로운 체제를 정착하기 위해 기존의 체제를 부숴야 한다는 점은 이해했습니다. 가장 깊고 단단하게 박힌 돌멩이인 토착지주 세력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것도 이해했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지방의 토착사회가 붕괴되면서 흘러나온 이들을 어떻게 수용을 할 것인지 방책은 있습니까 산업화를 한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산업시설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입니다. 잘못하면 공산주의자들이 득세를 할 수 있는 최적의 기반을 만들어줄 수 있소이다.”

고 제독의 지적에 정 수석차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보셨습니다. 그 부분이 가장 큰 문제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부분에서 전쟁이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전쟁을 통해 많이 부서지면 부서질수록 재건을 위해 많은 인력과 자금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 부분을 정부가 통제를 하게 되면 시장 경제 체제를 빠르게 정착시킬 수 있습니다. TVA(Tennessee Valley Authority, 테네시 강 유역 개발 공사)로 상징되는 뉴딜 정책의 예를 보듯이 말입니다. 자고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돈맛을 보게 만드는 것에는 토목을 따라갈 것이 없습니다.”

정 수석차관의 대답에 고 제독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토목인가….”

뒷이야기지만, 사석에서 정 수석차관에게 이야기를 들은 벌레와 빨갱이는 고 제독과 비슷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새꺄. 토목도 좋은데 수로 판다고 지랄하지는 마라.”

정 수석차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고 제독은 계속해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수석차관의 말대로 국토 재건을 통한 대규모 토목공사를 이용해 사람들을 흡수한다는 것이 좋은 방책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토목공사만으로 그렇게 노동시장에 흘러나온 이들을 100% 흡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흡수되지 못한 이들은 결국 다시 농촌사회로 돌아가거나 불만세력이 될 겁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있습니까 ”

“우선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의 법칙과 토지소유 상한제를 기반으로 한 농지개혁법을 만들어 지주들이 소유한 대규모 토지들을 소작농들에게 나눌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소작농과 지주 사이에는 반드시 문서화한 계약서를 만들도록 법을 정함과 동시에 집중적인 세무감사를 통해 불법적인 이면계약을 막을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세무 공무원들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너무 부족하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대안을 찾았습니다. 땅을 찾는 농민들에게 새로운 땅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새로운 땅 ”

고 제독이 의문을 표하는 사이,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송 소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새로운 땅이라면 만주를 말하는 것입니까 ”

송 소장의 질문에 김 주석과 정 수석차관이 동시에 대답했다.

“만주는 안 되네. 사람이 너무 많아.”

“만주는 안 됩니다.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동시에 대답을 한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김 주석에게 가벼운 목례로 감사를 표한 정 수석차관이 설명을 했다.

“만주에 거주하는 중국인과 만주인의 규모가 벌써 4천만을 넘었습니다. 지금 한국 본토의 인구가 3천만을 넘는 상태. 잘못하면 대한민국이 아니라 조선성이 되어 버립니다.”

“그럼 어디에서 새로운 땅을 얻을 것입니까 설마 일본 본토는 아니겠지요 거기도 사람이 넘쳐나는 것은 마찬가지고 거기에 더해 미국이 작심하고 원폭들을 집어던질 땅입니다.”

송 소장의 지적에 정 수석차관은 벽에 걸린 세계지도의 한 곳을 짚었다.

“이것이 우리가 얻어야 할 땅입니다.”

“홋카이도 ”

“홋카이도라고!”

놀란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가운데 송 소장이 예의와 격식도 잊은 채 정 수석차관에게 반말로 따지고 들었다.

“확실히 챙길 능력은 있는 것인가 ”

송 소장의 물음에 정 수석차관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그동안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워싱턴에 들락거렸던 것이 무슨 이유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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