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216화 지름길(Shortcut)작전 (3)
“미국이 2천장이나 뿌릴 일 있겠냐 뿌리자면 원자로 관련 쪽 성 부장 일행하고 엔지니어들에게만 쫌 뿌리면 될 일 아냐 ”
“군바리들이 무슨 이득이 있어서 뿌리겠냐 그리고 그렇게 뿌린다한들 몇이나 넘어가겠냐 ”
벌레에 이어 빨갱이까지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지만 정 수석차관은 오히려 두 사람을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둘 다 순진한 거냐 세상을 너무 긍정적으로만 보는 거 아냐 ”
“난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 ”
“나도.”
벌레와 빨갱이의 대답에 정 수석차관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우선 하나하나 짚어 보자고. 너희들 말대로 1순위는 성 부장 팀과 KAI와 H조선 소속의 엔지니어들이 1순위겠지. 그리고 그 다음은… 아마도 한반도에 탑승한 군의관들이겠고. 동의하냐 ”
“동의.”
“그리고 다음은 내 자랑 같지만 나와 국무원에서 일하는 내 부하들. 동의 ”
정 수석차관의 말에 벌레가 목소리를 높였다.
“길게 끌지 말고! 그래! 너하고 네 부하들 다 똑똑한 유학파들이니까 인정하마! 그런데 군바리들에게까지 뿌릴 이유는 없잖아 ”
벌레의 목소리가 커지자 옆에 있던 빨갱이가 벌레를 붙잡았다.
“목소리 좀 낮춰라. 남들 듣는다!”
“들으라지! 우리가 무슨 역적모의하고 앉아있냐 ”
“잘못하면 역적모의로 몰릴 수 있어!”
“썅!”
빨갱이의 지적에 벌레는 욕설을 뱉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방금 마신 걸로도 부족했는지 벌레가 맥주를 찾자 빨갱이가 일어나 새로운 맥주병들을 들고 왔다.
빨갱이가 돌아와 앉자 정 수석차관은 말을 이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군바리들이 다들 보통 군바리들이냐 해군 쪽은 미국이 앞으로 찍어낼 슈퍼 캐리어들을 운용할 수 있는 기술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고, 육군 쪽은 앞으로 무엇을 개발해야할지 길잡이는 물론이고 어떻게 운용할지 다 꿰고 있는 이들인데 특히, 너 벌레. 네가 주절거린 것들이 ‘금언’이랍시고 거의 바이블 레벨로 취급당하는데 군바리 우습게보냐 ”
맥주로 가볍게 목을 축인 정 수석차관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미국이 이들에게 시민권을 뿌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 단지 사용을 해 봤거나 간단한 개론 수준의 지식이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앞으로 어떤 전자 제품들을 만들어야 돈을 버는지 잘 알고 있다. 그것도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가진 수천 명이야. 돈이 안 될 것 같아 ”
“그건 이해하는데, 네 말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미국이 시민권 뿌린다고 애들이 넙죽넙죽 ‘감사합니다!’하면서 받겠냐고 ”
벌레는 계속해서 반론을 내밀었고, 정 수석차관은 차근차근 그 이유를 설명했다.
“벌레 너 같으면 전구도 아닌 호롱불로 어둠을 몰아내고, 진드기와 이, 벼룩이 우글거리는 초가집, 상하수도 시설도 없어 푸세식 화장실에 오염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불분명한 우물물을 마시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냐 ”
“그런 환경 한두 번 겪나 출장 나가면 그런 환경에서 업무 뛰는 것이 일상이야.”
“그렇겠지. 하지만 네 말대로 그것은 출장이야. 1년 365일 그런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런데 한반도로 돌아가면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 가까이 그런 환경에서 살아야할 수도 있어. 내 밑의 애들은 벌써부터 그거 걱정하더라. 나도 걱정 돼서 한반도 돌아가면 바로 적산가옥(敵産家屋)이라도 한 채 강제징발해서 살아야 하나 고민을 할 정도라고. 지난 백신 사건 때를 생각해 봐. 필리핀에 가기 전에 했던 대회의에서 성 부장이 했던 말들을 왜 다들 떠올렸겠냐 ”
정 수석차관이 성 부장을 언급하자 벌레와 빨갱이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 * *
‘선상반란’으로 벌어진 회의가 거의 끝나갈 때 즈음해서 해군 수병 하나가 질문을 했다.
“이 건은 주제에서 많이 벗어난 이야기입니다만, 우리가 시간이동을 했다면 단일 차원으로 이동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평행차원일까요 ”
수병의 질문에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성 부장에게 집중되었다.
무언의 압박에 성 부장이 마이크를 입에 가져갔다.
“그게 과연 중요한 것인가요 ”
“예 ”
“평행차원이면 우리가 지금 벌이려 하는 짓은 우리가 원래 있던 차원에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것은 단일차원이라고 한들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 우리가 지금 시간이동을 해온 1941년은 시간이동 전의 우리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이미 한참 전의 과거입니다. 지금 우리가 역사에 개입해 역사를 바꾼다한들 미래의 우리는 그 바뀐 역사를 배우겠지요. 아… 이러면 조금 어렵고, 예를 하나 들어보죠. 예전에 유명했던 시간여행 영화 가운데 자신으로 인해 틀어진 부모로 인해 자신의 형제들이 사라지는 이야기가 나왔던 영화가 있었죠 하지만 실제로 시간이동이 이뤄졌고 부모 사이가 틀어졌다면, 바로 그 순간, 그 시점에서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서서히 사라지고 이런 거 없어요. 존재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서서히 사라집니까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가 이미 넘어왔다면, 미래가 뒤틀어지고 어쩌고 이런 거에 대해 신경 끄세요. 지금 당장 우리들의 생존만 신경 쓰세요.”
성 부장의 단호한 대답에 수병은 머쓱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뒤를 이어 다른 수병이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을 했다.
“역시 주제에서 벗어난 질문이겠지만, 지금 우리가 이대로 살다가 나중에 미래에 태어난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
“하하하하!”
수병의 질문에 성 부장은 커다랗게 웃음부터 터뜨렸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성 부장이 다시금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매우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질문하신 분은 미래에 대해 아주 낙관적인 비전을 가지신 분인가 봅니다. 지금 당장 총탄이 퍼부어 대는 전쟁터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먼 미래까지 보니 말입니다. 지금 우리들 가운데 가장 젊은이들이 20대 초반이지요 그럼 그 수병이 태어날 때까지 적어도 65년. 쉽게 60년 잡고 거기에 지금 나이를 더하면 80대가 됩니다. 우리가 시간이동을 할 당시의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수명이 77세였습니다. 질문하신 분이 그때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이 전쟁이 끝나고 돌아갈 한반도의 주거 위생은 최악이라는 것을 잘 알아두셔야 합니다. 거기에 여러분은 이제 성장의 단계가 아닌 노화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유념하시고요. ‘과잉위생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의 위생환경에서 생활하던 이가 1940년대 한반도에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일지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만 60세만 되도 장수했다고 큰 잔치를 벌였던 것이 1990년대 초반까지의 일입니다.”
* * *
“성 부장의 말처럼 위생상태가 개차반일 것이 확실한 한반도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마냥 희망에 찬 일은 아니야. 지금 만들고 있는 국초 개발 및 기타 계획에서 가장 먼저 진행해야 한다고 정해진 일이 뭔지 아냐 21세기 출신 군인들이 생활할 주거 공간 건설이야. 고속도로를 깔고 공장을 짓는 게 가장 먼저가 아니라 아파트 짓는 일이 최우선이 됐단 말이다.”
“…”
정 수석차관의 말에 벌레와 빨갱이는 입을 다물었다.
말없이 맥주만 비우던 벌레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다들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을 텐데.”
“애정 ‘헬조선’이라는 별명에 애정이 있냐 다들 자포자기했던 거잖아. 다들 희망이 없었기에 헬조선이라고 부른 것 아니었냐 애정이 있었으면 미국에 유학 가서 미군으로 자원입대하고.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하는 일이 벌어졌겠어 ”
정 수석차관의 말에 빨갱이가 가슴을 두들기며 항변했다.
“그래서 다들 이번에는 바꿔 보자고 했잖아!”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지. 하지만 막상 한반도 땅에 돌아가서 눈앞에 펼쳐진 개판 5분전의 상황을 보면 잘도 그 말이 튀어나오겠다 지금 가장 큰 걱정이 한국군만의 단독 본토진공을 한 다음이야. 제대로 리셋하려면 최대한 많이 부셔야 하는데 겨우 1개 사단으로는 역부족이야.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눈앞에서 살랑살랑 시민권을 흔들어 대면 어떨 것 같냐 너희 둘이 부상으로 퇴역한 친구들을 죄다 박 사장한테 붙여 놓은 것도 같은 이유 아냐 한반도에 돌아가면 적응을 못할 것이 빤하니까!”
정 수석차관의 지적에 벌레와 빨갱이는 침울한 얼굴이 되었다.
정 수석차관의 지적에 트린 것은 없었다. 그들 역시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부상으로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입은 동료들을 박인수에게 맡긴 것이었다.
맥주병을 다 비운 정 수석차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 혈압 올려가며 이야기 했던 것은 미국이 그런 행동을 했을 경우에 일어날 일들에 관한 이야기야. 그걸 아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군인들에 대한 처우도 현실화하고 그 빌어먹을 아파트도 지을 준비를 하는 거다. 너희들은 동료들이나 잘 다독여 줘. 다들 신생(新生) 대한민국의 귀중한 인적자원이다. 오늘 술 잘 마셨다.”
“그래. 수고했다. 쉬어라.”
“내일 보자.”
정 수석차관을 배웅하는 벌레와 빨갱이의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 * *
임정의 명령을 받은 고 제독이 돌아오는 동안 상황은 좀 더 비관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미군이 확실하게 유럽 쪽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확보한 정보가 기록된 보고서를 확인한 김 주석과 각료들은 다들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미군이 필리핀, 인도차이나, 중국에 투입한 육군의 규모는 총 110개 사단이었다.
필리핀에 50개 사단, 인도차이나에 20개 사단, 중국에 60개 사단이었다.
그 중에는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사단도 있었고, 이제 막 전장에 도착한 사단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스크바가 떨어지고 상황이 변하자 그 가운데 많은 사단들이 도로 짐을 챙겨 미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미군에게서 얻은 정보로 보자면 전선에 남겨진 부대는 필리핀에 10개 사단, 인도차이나 4개 사단, 중국에 20개 사단입니다.”
“그러면 76개 사단이 돌아오는 것인가 ”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 미 본토에 남아있는 사단들의 수를 생각한다면….”
김 주석이 말을 흐리자 다른 쪽에 앉아 있던 김원봉이 입을 열었다.
“유럽 전선에 힘을 실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렇군. 우리만의 독자적인 본토 진공작전에 대한 분비는 어떠하오 ”
“현재 육군은 거의 다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고 제독이 돌아오는 대로 미태평양 사령부와 수송선 지원에 대한 협의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고 제독이 태평양 함대 지휘관들과 사이가 좋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군.”
“희망적으로 관측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고 제독은 언제 돌아오나 ”
“내일 모레입니다.”
김원봉의 대답에 김 주석이 혀를 찼다.
“쯧!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하루가 그렇게 짧더니 지금은 지칠 정도로 길게 느껴지는군.”
“다 그런 것이겠지요.”
* * *
이틀 후, 한반도와 곽재우가 LA에 무사히 귀항을 했다.
성대한 환영식이 끝나고 수병들은 육지의 숙소로 향했지만 고 제독은 각료들과 함께 임시청사로 향해야만 했다.
“모스크바 함락 소식은 들었소 ”
“보내 주신 전문과 오는 길에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소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미국의 전략이 바뀔 것 같소. 정 수석차관.”
“예. 주석님.”
호명을 받은 정 수석차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단으로 걸어갔다.
“우선, 먼 길에 수고하신 고 제독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감사의 듯을 담아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시작으로 정 수석차관은 고 제독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행했다.
“… 이상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을 끝낸 정 수석차관이 자리에 앉자 김 주석이 고 제독을 돌아봤다.
“어떻게 생각하오 ”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럼, 우리만의 한반도 단독 진공 작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오 ”
“공군이 꽤 고생을 하겠지만… 저 역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고 제독까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자 김 주석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한결 편안해진 표정 속에 김 주석이 고 제독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럼 우선 휴식부터 취하시오. 만약 미국이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제독은 즉시 니미츠 제독과 협의에 돌입하도록 하고, 최대한 우호적인 결정을 얻어 낼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 바라오.”
“알겠습니다, 주석.”
* * *
사흘 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니미츠 제독이 두툼한 서류가방을 든 부관을 대동한 채 임시청사를 방문했다.
김 주석에게 깍듯하게 경례를 한 니미츠 제독이 주석을 비롯한 임정 각료들과 군 지휘관이 모인 자리에서 입을 열었다.
“우선, 작전에 차질을 빚게 만든 것에 대해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괜찮소. 그게 미국의 탓은 아니지 않소이까 심려는 거둬 주시오.”
“감사합니다.”
김 주석의 말에 가볍게 감사를 표한 니미츠 제독은 부관에게 눈짓을 했다.
니미츠 제독의 눈짓을 받은 부관이 두툼한 서류 파일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전황이 급변해서 새로운 작전이 필요해졌습니다. 이것이 이번에 우리 정부가 새롭게 작성한 작전입니다.”
‘일급비밀’이라는 붉은 스탬프가 뚜렷하게 찍힌 서류철의 표지에는 ‘Operation Shortcut’(지름길 작전)이라는 작전명이 뚜렷하게 찍혀 있었다.
작전 서류철을 주석에게 내민 니미츠는 말을 이었다.
“자세한 설명은 잠시 후에 드리도록 하고. 짧게 말씀드리자면 한 달 후, 한미 연합군은 한반도에 상륙합니다. 동원병력은 육군 80개 사단을 포함해 총 120만의 병력이 동원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