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14화 (214/464)

# 214

214화 지름길(Shortcut)작전 (1)

LA. 대한민국 임시 청사.

‘모스크바 함락’이라는 커다란 이슈로 인해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 각료와 이청천을 필두로 한 군부의 지휘관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렇게 다 모인 회의실에서 정 수석차관이 회의를 진행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정보에 의하면 카프카스 산맥을 경계로 남쪽 지역은 미군과 아랍 종족 연합군이 거의 다 점령을 한 상태입니다. 이런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해당 지역의 독일군은 대량의 포병 세력과 공군 세력을 동원, 스탈린그라드를 지워버렸습니다.”

찰칵!

슬라이드가 바뀌고, 스크린에는 거대한 열차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바스토폴 공략전과 스탈린그라드 공략에서 가장 큰 공훈을 세운 열차포 ‘구스타프’입니다.”

찰칵!

“그리고 이것과 앞으로 이어지는 사진들이 퇴각하기 직전 소련군이 촬영한 스탈린그라드의 모습입니다.”

찰칵! 찰칵!

정 수석차관은 말없이 슬라이드의 스위치를 조작했다.

정 수석차관이 슬라이드를 넘길 때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사진들 속에는 제대로 서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보시다시피 스탈린그라드는 완벽한 평탄화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스탈린그라드는 더 이상 군사적 가치가 없게 되었습니다. 스탈린그라드와 볼가강을 사이에 둔 맞은편 지점까지 완벽한 평탄화 과정이 이뤄진 탓에 해당 지역의 소련군은 약 100km를 후퇴해야만 했습니다. 이 평탄화 작업이 완료된 것이 작년 12월 중순입니다. 스탈린그라드를 지우는 것으로 옆구리를 찔릴 위험을 피하게 된 독일군은 휘하의 병력 가운데 고속 기갑군단으로 재편성하여 동절기의 혹한을 이용, 바로 북진을 해 버렸습니다. 북진한 독일군은 이미 모스크바 인근까지 진군한 독일군들과 호응. 2개 방면에서 모스크바를 타격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4월 2일 히틀러는 모스크바 점령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흐음….”

짝짝짝!

다들 심각한 얼굴로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박수를 쳤다.

박수의 주인은 이병석이었다. 이병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역시 독일이야! 누가 뭐래도 군대는 저래야지! 용맹하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밀어붙여야지! 우리 군도 저렇게 만들어야 해! 본받을 것은 본받아야지!”

이병석의 말에 김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의 각료들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고, 송 소장과 원 소장을 비롯한 21세기 출신들은 대놓고 인상을 구겼다.

“소련군 포로들과 민간인들을 상대로 한 독일군들의 전쟁범죄 보고서 안 읽으셨습니까 ”

“그 정도야 전쟁이 벌어지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들 아닌가 그런 거 다 따지면 승리는 남의 것이 되어 버리네! 독해야 이길 수 있어!”

“훗날 지독한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기면 돼! 이기면! 도덕적으로 우월해도 패자는 패자일 뿐이야!”

“그건 좀 과격한….”

“그러다 나라를 잃었다!”

잔뜩 흥분해 얼굴이 붉어진 이병석은 목소리를 높였다.

“문약해진 심신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어! 어렸을 때부터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교육해야지만 망국의 설움을 피할 수 있어! 본토에 들어가면 바로 조직해야 할 것이 히틀러 유겐트와 같은 청소년 교육단체야!”

이병석의 발언에 원 준장이 발끈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들이 시간이동을 하면서 바뀐 덕에 유대인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만, 그 유대인 탄압에 가장 앞장 선 이들이 히틀러 유겐트와 같은 조직에서 교육을 받은 이들입니다! 장군님의 지금 그 발언은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공화국의 이념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는 모든 것에 앞선다!”

“민족과 국가, 사상은 인간보다 앞서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다가 나라를 잃었다!”

“그런 나라를 되찾겠다고 나선 이들이 히틀러 유겐트 교육을 받은 이들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자네가 말한 나라를 되찾겠다고 나선 이들 가운데 하나가 나야! 내가 현장에서 경험하고 동지들의 죽음을 통해 피로 값을 치르며 배운 거야!”

“그렇다면 그건 잘못 배우신 것입니다!”

이병석과 원 준장은 서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충돌했다.

분위기가 과열되자 김 주석이 손으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탕탕탕!

“그만! 그만! 두 사람 다 그만하도록! 이 무슨 추태인가!”

김 주석의 질책에 이병석과 원 준장은 입을 다물었다.

“이 장군! 방금 자네의 말은 잘못되었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야! 독재정권의 정권유지 수단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네!”

“죄송합니다.”

“그리고 원 준장! 자네도 잘못했어! 이 장군이 과격하기는 하지만 젊어서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청산리 전투에서도 공훈을 세운 사람이다! 그런 이가 긴 시간동안 독립운동을 하면서 겪은 경험을 무시하면 안 돼! 그것은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늙은이들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버린 수많은 동지들을 다 무시하는 일이야!”

김 주석의 질책에 원 준장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이 자리는 독일의 모스크바 점령으로 이한 앞으로의 변화를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찾는 자리이다! 그것만을 생각하도록!”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김 주석의 말에 이병석과 원 준장은 자리에 앉은 다른 이들에게 사과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호의라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한편 회의실 뒤편에 앉아 돌아가는 상황을 보던 빨갱이가 벌레를 돌아봤다.

“잘하면 나라 되찾자마자 삼족오 소년단부터 만들어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

빨갱이는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얻자 그에 편승해 출범했던 단체를 언급했다.

문제의 그 단체는 창단식에서 히틀러 유겐트와 비슷한 제복, 갈고리 십자가 대신에 삼족오를 그려 넣은 붉은 완장,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거수경례까지 나오는 퍼포먼스로 인해 대차게 까이고 사라진 단체였다.

빨갱이의 말에 벌레는 이를 갈며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그런 인간들 때문에 내가 어디 가서 보수주의자라고 말을 못했었는데….”

“후우~.”

두 사람을 한바탕 혼내고 길게 한숨을 내쉰 김 주석은 정 수석차관을 돌아봤다.

말없이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정 수석차관의 모습을 발견한 김 주석이 정 수석차관을 불렀다.

“정 수석차관.”

“예. 주석님.”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빠졌네만,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지.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이 올 것 같나 ”

김 주석의 물음에 정 수석차관은 슬쩍 이청천과 김원봉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군사적인 부분은 전문가가 아니라 제가 뭐라 언급하기는 힘이 듭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부분을 주로 하고 군사적인 부분을 옵션으로 했을 경우에는 다음과 같습니다.”

찰칵!

새로 바뀐 슬라이드에는 적색과 청색, 회색과 갈색으로 크게 칠해진 세계지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저와 임정 국무원의 인원들이 예상한 이번 전쟁 이후 전 세계의 세력 판도입니다. 예상을 하게 된 기준은 미국이 지금과 같이 ‘일본 우선’ 정책을 계속해서 지킬 경우입니다. 적색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청색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갈색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파시스트 정권들의 세력입니다. 중국으로 상징되는 회색은 예측불가 지역입니다.”

사람들은 슬라이드에 시선을 집중했다.

프랑스를 경계로 그 위쪽 지역과 이탈리아 반도와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우랄산맥 서쪽의 소련 영토와 우크라이나 지역이 독일 세력권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소련은 우랄 산맥 동족에 몰려있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세력은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중동과 아프리카, 마지막으로 아시아에 몰려 있었다.

슬라이드를 살펴보던 김 주석은 정 수석차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중국은 왜 회색지역인가 자네들의 역사에서도 그랬고, 중국에서 지냈던 우리들 역시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적색이 아닌 회색이라니 말이야.”

“인도차이나 반도가 미국에게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인도차이나 반도가 미국에게 넘어가면서 시간 이동전의 역사보다 월등히 많은 물자와 전투 병력이 중국 본토로 향했습니다. 물론 지금 들어오는 정보에 따르면 중국 본토에 갔던 미 육군 가운데 많은 수가 다시 본토로 돌아오고 있기는 합니다만, 워낙에 많은 전쟁 물자가 국민당 군에 들어갔기 때문에 앞으로의 결과는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렇군….”

김 주석과 임정의 각료들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정 수석차관은 슬라이드를 넘겼다.

찰칵!

새로 넘긴 슬라이드의 세계지도는 여러 색이 범벅이 된 요란한 상황이 되어 있었다.

“저와 국무원의 사람들은 ‘삼극체제’라 부르는 체제입니다. 저를 비롯한 국무원에서는 단기적으로는 3극 체제가 유지되겠지만 1960년대나 1970년대 정도 되면 미국이 가장 강한 일극(一極)인 상태에서 수많은 국가들이 세력 다툼을 하는 다극(多極)체제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불과 20년 만에 저렇게 된다고 어째서 ”

잠시 목을 축인 정 수석차관은 김 주석의 물음에 답을 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독일입니다. 독일 혼자서는 이 넓은 지역을 컨트롤할 능력이 없습니다. 지금도 해당 지역은 반독립 상태로 자치정부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물론 친독일 파시스트 인사들의 정권이기는 합니다만, 독일은 미국과 달리 이 지역 전체의 경제를 운용할 여력이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 현재 독일의 나치당 정권 자체의 치명적인 약점이 문제입니다. 히틀러의 뒤를 이을 인재가 없습니다.”

“그렇군!”

“일리 있어.”

정 수석차관의 설명에 각료들과 군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의 불가사의’라고 말할 정도로 독일의 나치당은 그 발생부터 정권의 획득까지 드라마틱했다.

그런 드라마틱한 모든 일의 중심에는 히틀러가 존재하고 있었다.

문제는 히틀러의 뒤를 이을 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목을 축인 정 수석차관은 설명을 이어갔다.

“히틀러의 나이가 지금 55세입니다. 그런데 유대스캔들의 불씨가 되었던 ‘처방전 사고’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건강상태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내가 히틀러라면 그 안에 후계자를 세우겠네만 ”

“지금 히틀러 측근들 가운데 후계가 될 만한 유능한 인재가 없습니다. 따라서 늦어도 1970년대가 되면 파시스트 세력권은 붕괴하게 될 것입니다.”

정 수석차관의 확신에 가득 찬 주장에도 불구하고 김 주석은 쉽게 수긍을 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히틀러라는 중심이 없으면 나치당이 와해될 것이라는 것은 동의하네. 지금 히틀러의 뒤를 이을 인재가 히틀러 주위에도 없다는 것 또한 동의하네. 하지만 히틀러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유력한 후계자들을 양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네.”

“내가 생각하기에 저 삼극체제부터 뭔가 가정이 잘못 된 것 같아. 이미 루스벨트는 일본과 독일에 조건 없는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네. 그런데 독일이 저렇게 자신의 세력권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나 ”

김 주석에 이어 부주석인 김기식까지 지적하고 나섰지만 정 수석차관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이제부터 드리겠습니다. 제가 처음 말씀드린 부분입니다. 미국이 ‘일본 우선’ 정책을 고집할 경우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세력판도입니다. 만약 루스벨트 정권이 처음 말한 대로 일본부터 먼저 공략해서 정리한다면 독일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째서 ”

“여러분 모두 아시다시피 일본은 직접 미국을 때렸습니다. 따라서 일본을 완전히 파멸시킨다는 것에는 미국 국민 모두가 동의를 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 후 독일과의 전투에서 희생이 예상보다 많이 나올 경우 미국 국민들은 바로 종전 또는 휴전 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정 수석차관의 말에 21세기 출신 인사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한반도에 휴전선이 생기는 데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그거였으니까. 그리고 처음 9전단 인사들을 만났을 때 봤던 영상과 그 이후 이어진 교육을 통해 한반도의 역사를 알고 있던 임정의 인사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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