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212화 Hell (in) March (10)
드디어 새벽 3시. 한반도에서 다시 한 번 함재기들이 출격했다.
그들이 목표로 한 곳은 교토의 이화학 연구소와 산업단지들이었다.
한반도의 관제실에서 함재기들의 출격을 확인하던 박 대령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뇌리에는 지난 작전회의가 끝나고 헤어지기 직전 장 대령이 퍼부었던 독설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어이고~. 내가 그동안 선비들을 몰라보고 있었네
그 뒤로도 약간의 설전이 있었지만, 모든 주제는 다음의 짧은 말에 다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이라는 똥통에 빠졌으면 자기 손에도 똥 묻을 각오를 해야지.
“그저 내 손 더럽히기 싫다는 이기심의 발로라는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렇다고 선을 넘을 수는 없는 법이지.”
월남전 버전으로 더욱 독하게 만든 네이팜탄들을 주렁주렁 탑재한 함재기들이 출격하는 모습을 본 박 대령은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한반도에서 폭격대가 출발하고 10분 뒤, 곽재우에서 현무들이 발사되었다.
현무의 뒤꽁무니에 달린 부스터에서 나오는 커다란 화염이 주변의 수면과 하늘을 밝게 물들였다.
순간적으로 환하게 밝아지는 주변을 보던 고 제독이 강 대령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발사화염을 보고 많이들 몰려올 것 같으니까 슬슬 움직이자고.”
“알겠습니다.”
고 제독의 명령에 강 대령은 수화기를 들고 함교와 연락을 했다.
* * *
-11시 방향! 섬광 확인!
“섬광 섬광이라고 ”
문제의 유령선을 잡기 위해 밤바다를 헤매던 전함 하루나의 함교, 밖에서 주변을 살피던 견시의 보고가 전성관을 울리자, 함장 고다 대좌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함장이다! 섬광이라고 했나 ”
-핫!
“섬광을 발한 존재가 무엇인지는 확인이 가능한가 ”
-수면너머입니다! 섬광만 확인 가능합니다!
견시의 보고에 고다 대좌는 해도를 펼쳐 놓고 부장과 머리를 맞댔다.
“11시 방향의 수면 너머라면… 토쿠시마 쪽인데 ”
“그쪽에는 폭격을 가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렇지 어이! 나미카와! 혹시 적선을 발견 했다던가 적함선과 접촉해서 교전에 들어갔다는 통신이 들어온 적 있나 ”
“아직 없었습니다!”
통신장교의 대답에 고다 대좌는 팔짱을 낀 채 고심에 잠겼다.
“도대체 저 섬광의 원인은 무엇일까 견시의 실수 ”
“매일같이 맹훈(猛訓)을 한 우리 하루나의 견시들입니다. 절대로 그런 실수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쫓는 유령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장의 의견에 고다 대좌는 고개를 저었다.
“야간 작전의 생명은 등화관제(燈火管制)와 기도비닉(企圖秘匿)이다. 저런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어.”
“그동안 승승장구(乘勝長驅)해 와서 허술해졌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미 천황참모본부에서도 그 점을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
작전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황참모본부에서 온 전문을 언급했지만 고다 대좌는 수긍을 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고다 대좌의 부정적인 반응에 부장은 말을 덧붙였다.
“이건 제 사견(私見)입니다만, 항모 한 척만이 지금 움직인다고 들었습니다. 보급도 없이 단 한척이 지금까지 움직인 것이라면….”
“물자가 떨어졌을 거라는 건가 ”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연합함대가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다는 것도 예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도망가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흐음….”
콧소리를 내며 고심을 하던 고다 대좌가 결정을 했다.
“항해장!”
“핫!”“지금 즉시 11시 방향, 전속으로 움직인다!”
“핫!”
“나미카와! 연합함대 사령부와 천황참모본부에 보고! 원인 미상의 섬광 발견! 거리, 위치 불명, 추적 중!”
“원인미상의 섬광 발견! 추적 중!”
“그리고 현재 위치와 이동방향도 같이 보고하도록!”
“핫!”
통신장교에게 명령을 내린 고다 대좌는 마이크를 잡았다.
“함장이다! 하루나는 지금부터 원인 미상의 섬광이 발견된 곳으로 움직인다! 전원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유령선은 하루나가 잡는다!”
“오우!”
고다 대좌의 선언에 하루나의 승조원들은 모두 주먹을 위로 번쩍 쳐들며 함성을 질렀다.
“총원 전투 배치! 유령선을 사냥한다!”
“총원 전투 배치!”
“총원 전투 배치!”
* * *
“교토 폭격에 성공했다는 보고입니다.”
박 대령의 보고에 고 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군.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알려 줬나 ”
“통보했습니다. 정기적으로 본 함의 위치좌표를 통보해 주고 있습니다.”
“수고했어.”
박 대령과 대화를 끝낸 고 제독은 강 대령을 돌아봤다.
“일본 함대의 움직임은 잘 파악하고 있지 ”
“예. 수상 감시 레이더로 빠짐없이 살피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분발하라고 해. 잘못해서 선체에 구멍 나지 않게 말이야.”
“알겠습니다.”
고 제독과 강 대령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정보 장교가 다급한 걸음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
“하루나가 보낸 전문을 해독했습니다.”
정보 장교의 대답에 고 제독은 급히 통신문을 잡아채서는 내용을 확인했다.
“줘봐. 11시 방향. 미확인 섬광 발견, 거리, 위치 불명, 추적 중.”
전문의 내용을 확인한 고 제독은 강 대령을 찾았다.
이미 대형 전술 모니터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 강 대령이 하루나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다.
“일몰(日沒) 직전까지 이어졌던 항공 정찰에서 마지막으로 표시도니 좌표들과 비겨해 봤을 때, 우리 한반도를 11시 방향에 놓을 수 있는 함은… 거기에 대형인 함은….”
후보를 추리던 강 대령은 수많은 표적마크 가운데 하나를 지적했다.
“하루나로는 이 표적이 가장 유력합니다. 표적번호 42.”
“거리는 ”
“마지막으로 추적한 위치는 본 함으로부터 60해리(약112k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곽재우 함의 미사일 발사 섬광을 발견했다고 눈도 좋군.”
고 제독의 평가에 작전통제센터 내에 있던 모든 이들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였다.
전문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고 제독은 전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강 대령을 찾았다.
“강 대령. 이미 말했던 것처럼 남쪽 지역에 일본 놈들이 좀 덜 몰린 곳을 찾아서 움직이자고,”
“알겠습니다.”
“제독님. 니미츠 제독이 보낸 전문입니다.”
“줘 봐.”
받아 든 전문의 내용을 확인하던 고 제독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 양반, 진짜 기회는 잘 잡아.”
“무슨 일입니까 ”
“이쪽 지역으로 미 해군의 잠수함 24척이 더 배치된다. 그럼 30척이 이 바다를 헤집고 다니는 거지.”
매번 작전이 끝날 때마다 한반도는 장파통신을 이용해 전과 보고서와 상황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LA로 송신했다. 그렇게 도착한 정보는 바로 임시정부와 미 태평양 함대 사령부로 들어갔다.
천황참모본부가 출범한 이후 일본군의 암호체계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면서 암호분석반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미 해군의 암호분석반은 한반도가 보내는 보고서와 감청한 일본군의 통신을 교차 확인하면서 새로운 암호체계를 분석해 나가고 있었다.
필리핀 전선이 다시 불붙을 때부터 시작되었던 교차 검증 작업은 한반도가 일본의 본토를 엉망으로 휘젓고 다니면서 더욱 방대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암호 해독반이 데이터를 붙잡고 교차 검증에 바쁜 동안, 니미츠는 한반도가 보내온 데이터를 토대로 일본을 상대로 한 더욱 효과적인 작전을 세우기 위해 머리를 굴려댔다. 그렇게 새로운 수를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던 니미츠는 일본의 연합함대가 전부 몰려나왔다는 보고를 받아들자마자 바로 잠수함 사령부를 연결했다.
항구 깊숙이 숨어 골치를 썩이던 일본 연합 함대의 함선들이 몰려나왔다는 소리에 잠수함 부대 사령관은 근처에서 패트롤 중이던 잠수함들 24척을 모조리 연합함대가 몰려나온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 * *
일본의 연합함대와 한반도와 곽재우 사이의 숨바꼭질이 막 벌어지려 하고 있을 무렵, 구레.
“이거 참 스산하구먼…
함선들이 다 빠져나가 텅 비어버린 군항을 순검(巡檢)하던 일본 해군 소속의 오장이 뒤따르던 상등수병에게 말을 걸었다. 오장이 말을 걸자, 상등수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바로 며칠 전만 하더라도 접안을 할 곳이 없을 정도로 배들이 미어터졌는데 말입니다.”
“돌아오면 그것도 또 그것대로 골치가 아프겠군.”
“예 ”
“배라는 것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퍼먹는 것이 기름이야. 돌아오면 급유하는 순서 정하는 것부터가 골치 아프겠군.”
“아아….”
오장의 말에 상등수병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아무리 불붙기 힘든 중유라고는 해도 기름은 기름.
화재에 취약한 면을 보이는 것이 중유였다. 따라서 항구와 배들의 안전을 위해 급유를 하는 장소는 정해져 있었다.
지금처럼 한 번에 몰려 나간 배들이 한 번에 들어오면 급유를 위해 들고나는 배들로 인해 항구가 어떤 모습이 될지 아찔해지는 상등수병이었다.
쿠우우우우~.
“응 이게 무슨 소리지 ”
부두에 흩어진 밧줄이나 굳게 닫힌 창고들의 문들을 살피던 오장은 멀리서 들리기 시작하는 낯선 소음에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돌렸다.
“에 무슨 소리 말씀하시는 겁니까 ”
“이 소리 안 들려 ”
“소리 말씀입니까 잘….”
고개를 저으려던 상등수병은 고갯짓을 멈추었다.
“뭐가 날아오는 것 같습….”
상등수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레의 야트막한 산마루를 따라 위장무늬가 덕지덕지 칠해진 채 늘어선 중유저장 탱크에 현무 순항 미사일 2발이 내리 꽂혔다.
잠시 후, 어마어마한 폭발이 산마루를 휘감았다.
투콰앙!
와장창! 쨍그랑!
중유저장 탱크가 폭발하면서 일어난 충격파에 아래쪽 부두에 있던 건물들의 창문이 일시에 다 깨져 나갔다.
이윽고 현무 미사일의 직격을 받고 폭발한 중유저장탱크에 이어 근처에 있던 유류 저장탱크들이 차례차례 폭발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서 불타는 연료저장소를 바라보던 오장이 화급히 정신을 차리고는 사이렌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경보를! 경보를 울려야 해!”
에에에에엥~.
오장이 있는 힘껏 크랭크를 돌리자 수동식 사이렌 경보기가 요란하게 경보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구레군항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은 곳은 히로시마의 남서쪽, 야마구치 인근에 자리한 도쿠야마(德山)제3해군 연료공장이었다.
함선이 사용할 중유는 물론이고 항공유와 정유를 해야 할 원유까지 가득한 이곳에 떨어진 2발의 현무 순항 미사일은 연료공장의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 * *
‘1일 1회’가 아니라 오사카에 이어 교토가 폭격 당했다는 소식에 발칵 뒤집혀졌던 천황참모본부는 하루나가 보낸 전문에 기세가 살아 올랐다.
“놈들이 하지도 않은 행동을 한 덕에 드디어 꼬리를 잡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세가 살아 오른 참모들이 이미 잡은 것처럼 말을 하자 이노우에가 손을 내저었다.
“진짜 잡을 때까지는 잡은 것이 아니야. 하루나가 보낸 보고는 단지 ‘추적 중’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발견’,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는 안심하면 안 돼. 하루나의 고다 대좌가 실수를 하지 않고 현재 위치까지 보내줬으니 인근의 함선들에게 명령을 보내 하루나와 합류하라고 전해.”
“핫!”
이노우에의 명령을 받은 참모가 통신실로 달려간 사이, 이노우에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여태까지 그렇게 조심에 조심을 하던 놈들이 왜 갑자기 이런 실수를 한 것이지 ”
“여태까지 잘 해왔으니 긴장이 느슨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
참모 가운데 하나가 의견을 내놓았지만 이노우에의 찌푸려진 얼굴은 쉽게 펴질 생각을 않고 있었다.
“그런 단순한 이유라면 좋을 텐데 말이지. 뭔가 불안해….”
이노우에는 가슴 속 저 밑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약 5분 후, 통신장교가 회의실로 들어서며 악을 썼다.
“급보(急報)입니다! 구레의 연료기지와 도쿠야마의 연료공장이 폭격을 당했습니다!”
“뭐!”
“뭐라고!”
급보에 놀란 참모들은 튕기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던 이노우에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이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