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10화 (210/464)

# 210

210화 Hell (in) March (8)

사진들을 확인한 이노우에는 편집장과 언론사 수장들에게 엄한 목소리로 당부를 했다.

“이는 매우 기밀을 요하는 일이오.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되오. 만약 이 일이 세간에 알려졌다고 파악되면 제국군은 당신들부터 의심할 수밖에 없소.”

“절대로 발설치 않겠습니다!”

이노우에의 경고에 편집장과 언론사 수장들은 하얗게 질려서 발설치 않을 것을 약속했다.

그 뒤로 한참동안 어르고 달래 혼이 쏙 빠진 민간인들을 내보낸 이노우에는 참모들을 소집했다.

“다들 모였나 ”

“핫!”

“문제의 양키항모 사진을 구했다.”

이노우에는 ‘부인구락부’ 편집장이 가져온 사진들을 참모들에게 내밀었다.

“이런….”

“아….”

사진들을 본 참모들은 장탄식을 터뜨렸다.

얼마 전 히로히토에게 이노우에가 비통하게 외쳤던 심정에 동감이 갔기 때문이었다.

“이제 진실로 남은 것은 종말뿐이란 말인가….”

“쉿!”

“이걸 어떻게 이기냔 말이야….”

비관적인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이노우에가 입을 열었다.

“지금 구레에 대기하고 있는 연합함대의 나머지 함선들도 모조리 불러 모으도록. 이 유령선을 포획한다.”

“포획 말씀이십니까 ”

재차 확인을 하는 참모들의 질문에 이노우에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포획한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항모 1척과 경순양함 1척이야. 연합함대의 전력을 투입해서 이 유령선들을 몰이사냥으로 포획한다.”

“이 두 척이 다일까요 ”

“요 근래 당한 폭격의 횟수와 규모를 기반으로 계산해 보면 항공모함은 이 1척이 다일 것이다. 아마 양키들도 이것 1척 외에는 더 이상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도 시마카제(島風)를 건조하면서 겪어보지 않았나 ”

“아아….”

이노우에의 말에 참모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갑(甲)형 구축함 수준의 무장에 40노트 급의 속도를 가진 최강의 구축함을 목표로 만들었지만 결국 단 1척만 만들어지고 건조계획이 백지화된 구축함이었다.

“양키들 역시 만들기는 했지만 제대로 써먹을 곳이 없었을 것이다. 저런 장비는 제조비는 물론이고 유지비도 어마어마하게 드는 물건일 것이 빤하니까. 그러니까 이런 게릴라 작전에나 쓰는 것일 테지. 만약 문제의 장비가 제작비용은 물론이고 전력향상에 확실한 도움이 되었으면 양키들의 항공모함들은 다 저 장비를 달았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노우에의 설명에 참모들은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참모들이 동의를 하자 이노우에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무리 저 2척의 함선들이 뛰어나다 못해 신묘막측(神妙莫測)에 가까운 장비를 달았다고 하지만 폭격작전을 벌여야 한다는 점에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한정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연합함대의 함선들을 총동원해서 저 함선들을 포획한다! 양키들이 저 함선들을 이용해 이런 작전을 벌였다면 우리 역시 같은 작전을 벌일 수 있다! 포획해서 우리가 써먹는다!”

이노우에의 말에 참모 하나가 문제점을 지적했다.

“만약 포획에 성공한다 해도, 제가 양키들이라면 저 장비들부터 파기한 다음 항복할 것입니다. 아니면 자침을 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장비들을 쓰지 못해도 항모는 건질 수 있지 않나 고속 중형 폭격기를 30대 이상 운용할 수 있는 대형 항공모함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지. 그리고 자침한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이득인 것이다. 양키들의 귀중한 항공모함이 1척 줄어드니까 말이야.”

이노우에의 말에 참모들은 말이 없어졌다.

어떻게 보면 무조건 낙관적인 가정만을 그러모은 백일몽과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백일몽이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필리핀과 인도차이나가 양키들에게 넘어간 이후, 남방자원지대에서 오는 물자의 양은 기존에 비해 1/3만 와도 대성공이라 불리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제대로 된 물자의 보급을 받은 장개석이 황군을 서서히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필리핀에서는 사냥감의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다.

“성공만 하면 아메리카 본토를 공격할 수도 있지만 남방전선의 상황을 순식간에 뒤바꿀 수 있다. 지금 저 항모가 보여준 신출귀몰한 움직임을 이용한다면 말이지.”

“아!”

이노우에의 말에 참모들은 탄성을 터뜨렸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함재기들이 방심한 양키들이 모여 있는 항구와 군사기지들을 타격한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양키들이 서둘러 적을 찾지만 모습을 감춘 항공모함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양키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불타는 항구와 군사기지들을 바라본다….

“당장 계획을 짜겠습니다!”

상상만 해도 속이 시원해지는 장면에 참모들은 크게 대답을 하고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작전명 ‘인어 사냥’의 시동이었다.

인어의 고기를 먹으면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영생(永生)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처럼 저 항모를 포획할 수만 있다면 수세(守勢)를 지나 열세(劣勢)로 바뀌어 버린 전세(戰勢)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터였다.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수를 찾았다는 생각에 참모들은 거의 광기에 가까운 기세를 뿜으며 작전을 짰다. 그리고 그 작전은 일본본토에 남아있는 모든 연합함대의 함선들을 모조리 도쿄에서 가고시마까지 이어진 일본의 동남부 해안에 투입해 수색작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너무 도박에 가까운 수 아닌가 ”

“작금(昨今)의 상황이 도박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노우에의 대답을 들은 히로히토는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에 한번 꼴로 중요 산업시설이 폭격을 당했다.

몰이사냥을 해서 포획을 하든 아니면 격침을 하던지 간에 결말을 보지 않으면 민심의 동요는 물론이고 전쟁수행능력에 문제가 생길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히로히토는 다른 문제를 지적했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도주를 할 수도 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할 방도는 있는가 ”

“도쿄를 시작으로 동남방면에 있는 모든 항공기 부대에 명령을 내려 항공정찰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남아 있는 연합함대 전력의 약 60%가 이미 수색작전에 동원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남아 있는 40%라면 충분히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알류샨과 북방4도의 방비는 ”

“그쪽의 항공기지들과 경비용 소형 함선들은 이번 작전에서 배제했습니다.”

“후우~.”

이노우에의 설명에 히로히토는 다시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동안 작전 계획서를 내려다보던 히로히토는 옥새를 들었다.

“허가하도록 하지. 반드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도록.”

“핫!”

*    *    *

이노우에가 히로히토에게서 결재를 받아 낼 무렵, 심각한 얼굴을 한 고 제독은 박 대령과 함장들을 불러다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번 작전, 종료까지 얼마 안 남았지 ”

“항공폭탄의 재고량을 따지면 앞으로 1번 정도입니다. 물론 네이팜탄까지 계산한다면 2회 분의 재고는 됩니다. 혹시 추가로 오더가 내려온 것이 있습니까 ”

‘작전통제센터의 붙박이 가구’로 불릴 정도로 오래 머무르던 박 대령이었다.

통신이 왔다면 모를 리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던진 박 대령의 물음에 고 제독은 명령서를 내밀었다.

“출항 직전에 받은 명령서이네.”

명령서의 내용을 확인한 박 대령은 고 제독을 바라봤다.

“교토 폭격입니까 물론, 미국이 제공해 준 정보와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을 때 교토에도 날려 버리면 좋은 산업시설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명령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제 생각이 맞는 겁니까 ”

“불행하게도 촉이 좋군.”

박 대령의 질문에 고 제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해서, 그 자리에서는 수락을 했지만 계속해서 거부를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강하네.”

“거부하셔야 합니다! 이건 고쿄 폭격과 경우가 다릅니다. 고쿄 폭격은 갖다 붙일 당위성들이 몇 개는 나오지만 교토의 문화재 폭격은 범죄라고 불려도 할 말 없습니다! 정 수석차관, 그 인간은 똑똑한 것 같더니 왜 이리 생각이 없는 겁니까 이미 우리보다 먼저 일본 문화에 맛들인 서양입니다! 교토를 날리면 그들이 곱게 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왜 간과하는 겁니까 ”

“간과를 안 했으니까, 그런 두루뭉술한 명령서가 출항 한 시간 전에 내게 건네진 것이겠지.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주석을 붙잡고 명령의 철회를 요청했겠지만 불행하게도 시간이 없었어.”

“거부하셔야 합니다!”

박 대령이 강하게 거부의사를 밝힌 반면, 옆에 앉아있던 강 대령은 찬성의 뜻을 표했다.

“저로서는 명령이 내려왔으니 폭격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군인입니다. 군의 최고 사령관이자 국가의 수장이 내린 명령을 우리가 함부로 거부를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문화재를 골라서 폭격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것이 말이 돼 그건 범죄야!”

“2차 대전에서 폭격으로 문화재가 날아간 것이 한두 번이야 몬테카시노의 수도원을 누가 날렸는데 ”

“몬테카시노의 수도원이 정치적인 문제로 날린 것은 아니잖아! 경우가 다르다니까!”

“어차피 다 조지고 부술 일본 땅이고 일본 놈들이야! 뭘 그리 따지고 앉아있어!”

박 대령과 강 대령이 격론을 벌이는 동안 명령서를 찬찬히 살피던 장 대령이 입을 열었다.

“‘교토의 문화재들을 전부 파괴할 것.’이라는 명령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군요 ”

“맞아. 반드시 폭격할 도시에 교토를 포함시키라는 명령 외에는 없지. 문화재를 날리라는 명령은 정 수석차관이 구두로 전달한 것이고.”

고 제독의 대답을 들은 장 대령은 잠시 계산을 해보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가 군인인 이상 명령은 따라야 합니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은 군인의 가장 기본 덕목이니까요. 하지만 현장에서는 언제나 변수가 발생하는 법이고, 변수에 따라 계획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입니다.”

장 대령은 명령서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공식적인 명령은 ‘교토를 반드시 폭격하라.’입니다. 이건 공식적인 문제니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구두로 전달된 추가 명령이 문제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장 대령이 생각한 방법은 ‘화공(火攻)’이었다.

“네이팜탄을 교토 산업지구와 그 인근지역에 쏟아 붇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공식적인 명령은 확실하게 수행을 한 것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1940년대 일본의 방재(防災)능력이라면 꽤 큰 화재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문화재 몇 개는 날려 먹을 정도의 화재를 말이지요.”

“우발적 사고를 가장한 고의적인 방화인 건가 ”

“그게 제일 무난하지 않겠습니까 ”

장 대령의 말에 고 제독은 박 대령을 바라봤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한 박 대령이었지만 그도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는 아예 집어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장 대령의 방안이 제일 안전할 것 같습니다. 그 방법대로 폭격대의 공격루트를 조절하겠습니다.”

“부탁하지.”

“나중에 정 수석차관의 얼굴에 한 방 박아 넣더라도 좀 봐주십시오.”

“두 방까지도 봐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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