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08화 (208/464)

# 208

208화 Hell (in) March (6)

무사시노에 있는 항공기 제작공장을 폭격한 다음 날. 출격시간이 가까워 오자 한반도 격납고에서는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출격 순서가 미군 애들, 그 다음에 스팅레이, 그 다음이 KF-1C네. E-2D는 오늘 출격에서 빠지나 ”

“정기점검.”

“그러다 공습이라도 오면 ”

“곽재우 있잖아.”

함재기에 장착할 폭탄들 앞에서 잡담을 나누던 무장사들은 함재기의 최종정비를 하는 정비사들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정비 쪽 애들 곡소리 나겠네. 정기점검에 모조리 다 출격이니 돌아온 다음에도 정비할 것이 산더미일 텐데 말이야.”

“그 전에 우리부터 곡소리 나겠다. 스팅레이에 2000파운드 2발씩 달아야 해.”

납작한 동체, 길이가 짧은 랜딩기어와 맞물려 가장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하는 스팅레이의 기체를 보며 무장사는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다른 것은 다 인체공학 따지면서 스팅레이는 왜 그 꼴로 만들어 놨는지.”

*    *    *

12시 정각이 되자 한반도의 비행갑판에서 함재기들이 이함을 시작했다.

썬더캣 편대가 폭격대의 호위를 맡은 가운데 폭탄을 만재한 폭격대는 도쿄를 향해 곧장 날아갔다.

도쿄를 향해 직진을 한 폭격대는 동경만의 입구인 우라가수도(浦賀水道)상공에서 3그룹으로 편대를 나누었다.

편대를 나눈 폭격대는 각자 지정받은 목표를 향해 기수를 틀었다.

에에에에에엥!

“공습이다!”

“공습이다!”

요란한 공습 사이렌과 동시에 공습을 알리는 사람들의 외침이 튀어나왔고, 막 점심시간이 되어서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혼비백산해서 방공호를 찾아 이리저리 뛰기 시작했다.

폭격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요코하마에 있던 대형 정유시설은 거대한 화재를 일으키며 석유생산단지 전체를 불덩어리로 만들어 버렸고, 일본 육군의 병기창 또한 커다란 유폭을 일으키며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이 셋 중에 가장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던 일본 제강의 제철소 역시 심각한 손상을 입고 검은 연기를 피어 올렸다.

공습이 시작되자마자 요코스카에 있던 일본 해군항공대 기지를 비롯해 도쿄에 있던 일본 육군과 해군의 항공대 기지에서 전투기들이 새까맣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빠르게 몰려들었던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폭격대는 퇴각을 했고, 많은 일본군 전투기들은 폐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만을 바라봐야만 했다.

요코스카 해군 항공대 기지의 전투기들처럼 거리가 가까웠던 덕에 공격대와 조우를 할 수 있었던 소수의 일본군 전투기들은 미 해군의 썬더캣의 점심식사거리로 변해 버렸다.

벌건 대낮에 벌어진 폭격에 천황참모본부는 발칵 뒤집혀졌다.

“당장 놈들의 뒤를 쫓아!”

“속도가 느린 것은 나도 알아! 하지만 놈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계속해서 가다보면 놈들의 항모가 나올 거다! 가다가 연료가 떨어져 추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찾아!”

“도쿄 만에 있던 모든 해군 함대들을 다 밖으로 내보내! 전탐기들로 놈들의 뒤를 쫓으라고 해!”

“대공포 진지들은 뭐했던 거야! 벌건 대낮에 날아드는 폭격기들조차 놓치는 멍청한 놈들! 헌병대를 보내! 지휘관들을 끌고 와!”

사방에서 전화기를 붙잡은 참모들의 고함과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노우에는 상석에 앉은 히로히토에게 고개를 숙였다.

“신의 불찰이옵니다! 망극하옵니다!”

“제독, 오늘 일은 실망이 좀 크다.”

“망극하옵니다!”

나직한 목소리로 히로히토가 질책을 하자 이노우에는 사색이 돼서 머리를 조아렸다.

“1차 보고서입….”

1차로 정리된 보고서를 가지고 사무실로 들어서던 참모는 히로히토의 사나운 얼굴과 사색이 된 이노우에의 얼굴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런 참모의 모습에 히로히토가 손을 내밀었다.

“이리 주도록.”

“핫!”

히로히토의 명령에 참모는 허리를 90도로 꺾고는 머리 위로 보고서를 내밀었다.

보고서를 받은 히로히토는 손을 내저었다.

“나가서 짐의 명령을 전하도록. 최대한 빨리 정확한 피해를 집계해서 짐에게 제출하고. 사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적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찾아서 공격하라고 말이야.”

“핫!”

명령을 들은 참모는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디 보자….”

히로히토는 이노우에를 세워둔 채 방금 올라온 보고서를 펼쳐 들었다.

“요코하마 정유시설 완전 소실(燒失, 불에 타서 사라짐), 일본 육군 병기창 심각한 손상, 일본 제강 제철소 중파… 아주 깔끔하게 당했군. 아주 깔끔하게 당했어.”

“신의 불찰….”

“조용.”

이노우에의 입을 막은 히로히토는 보고서의 페이지를 넘겼다.

“아군의 가장 최신형 전투기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적 고속폭격기를 추격하기에는 아군 대공포의 성능은 매우 열악하다. 도이치에서 보내온 것과 같은 우수한 성능의 전탐기를 대량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다… 흠… 이봐, 이노우에.”

보고서를 읽던 히로히토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노우에를 불렀다.

“핫!”

“지난번에 내게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도이치가 전탐기 완성품 외에도 설계도면도 같이 보내줬다고 하지 않았나 ”

“핫! 보내줬습니다.”

“결과는 ”

“미츠비시 전자와 도시바 전자에서 생산을 시작했습니다만….”

“다만 ”

“국내에서 생산한 부품들의 질이 열악해….”

이노우에가 말을 얼버무렸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은 히로히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참동안이나 창밖을 바라보던 히로히토가 입을 열었다.

“참으로 원통하군. 참으로 원통해. 상황이 이런데도 전쟁을 벌이고 죽은 놈들을 ‘군신(軍神)’이라고 불러 줘야 한다는 것이 말이야.”

“망극하옵니다.”

“제독이 망극할 일은 아니다….”

창밖을 보며 중얼거리던 히로히토가 고개를 돌려 이노우에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기에는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이노우에 ”

“그렇습니다, 폐하!”

“발악을 해 보도록 하지. 이 신형터빈엔진을 장착한 전투기, 우리도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

“설계 작업이 끝났다고 했습니다.”

“설계 담당자들에게 말해. 어차피 도이치에서 보내준 설계도면을 기반으로 설계를 한 것. 2주 안에 시제품까지 만들어서 내놓으라고. 만약 도이치에서 만든 것보다 성능이 우수하지 않다면 무조건 도이치 설계안대로 생산에 들어갈 것이라고. 그리고 반년 안에 100기 이상을 뽑아내지 못하면 기군망상(欺君罔上)의 죄를 묻겠다고 말이야.”

“핫!”

“다른 장비들의 설계자들에게도 같은 명령을 전해, 도이치가 ‘승리소총’이라고 이름붙인 신형 소총을 비롯해 ‘4식중전차(4式重戰車)’까지. 그동안 시간을 충분히 줬으니까 2주 안으로 시제품을 내놓을 것!”

“핫! 전달하겠습니다!”

히로히토는 창밖 멀리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국의 신민들에게도 알려라. 오늘 일을 겪어서 알겠지만 전쟁이 코앞까지 왔다! 승자가 되느냐, 패자가 돼서 부인과 딸을 귀축영미의 노리개로 내줄 것인지 결정을 하라고 말이야!”

“핫!”

히로히토의 명령에 이노우에는 목에 핏줄이 서도록 큰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히로히토는 피식 웃었다.

“오늘 제독의 목은 참으로 아슬아슬했다. 그 빌어먹을 늙은이들에게 고마워하도록. 두고 보겠다.”

“폐하의 하해(河海)와 같은 은혜 망극하옵니다!”

*    *    *

히로히토의 명령이 통했는지, 아니면 반쯤은 사형대 위에 섰다는 절박함 때문인지 장거리 수색을 하던 H6K 비행정이 한반도와 곽재우를 발견했다.

-적함 발견. 우라가 수도 남서쪽 1….

통신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H6K의 통신이 끊겼다. 하지만 통신을 접수한 모든 이들은 모두 같은 결론을 내렸다.

“최소 100해리, 최대 199해리 이내를 모두 뒤진다!”

“모든 항공 전력을 다 출동시켜!”

“모든 공격기에 어뢰를 장착해라!”

잠시 후, 요코스카를 비롯해 도쿄 인근과 해당지역을 작전범위 안에 넣을 수 있는 모든 항공기지에서 전투기들과 폭격기들이 벌떼와 같이 이륙을 했다.

하지만 문제의 위치에 도달한 일본군의 항공기들은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뭐지 왜 없는 거야!”

“범위를 넓혀라! 범위를 넓혀!”

“본부에 연락해!”

해당 공역에 도착한 일본군의 항공기들은 넓게 산개를 해서 수색을 시작했다.

‘적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라는 보고를 받은 각 항공부대 지휘관들과 천황참모본부 역시 혼란에 빠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비행정이 위치를 잘못 보낸 것이 아닐까 ”

“최고로 숙련된 인원들이 타고 있었어.”

“방위를 잘못 잡은 것이 아닐까 ”

“그래서 미쿠라지마와 시마 사이 공역에 배치를 시킨 거잖아. 적들도 꽁지가 빠져라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 빤하니까, 좀 더 아래쪽으로 수색 범위를 넓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그게 제일 합리적이겠지.”

참모들은 의견을 정리해 이노우에에게 상신했다.

이노우에는 히로히토에게 상신을 했고, 히로히토가 결정을 내렸다.

“그대로 실행을 하도록.”

“핫!”

하지만 해가 질 때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문제의 ‘적함’은 발견되지 않았다.

어둠과 연료부족을 이유로 기지로 귀환한 파일럿들과 그들을 출동시킨 지휘관들, 천황참모본부의 참모들 모두 혼란에 빠져 버렸다.

“잘못된 통신이었을까 ”

“그렇다면 H6K는 왜 통신을 끝맺지도 못하고 사라진 거야 격추가 아니면 이유가 없잖아 ”

“정비불량의 가능성은 ”

“남방의 최전선도 아니고….”

이런저런 갑론을박이 이어진 끝에 대부분이 내린 결론은 ‘통신은 오보, 문제의 H6K는 원인미상의 사고로 실종’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H6K의 실종은 사고가 아니었다. 비운의 H6K는 한반도의 레일건에 의해 단 한방으로 공중분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위치는 오마에자키 곶에서 약 70km 떨어진 곳, 우라가수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106해리 떨어진 곳이었다.

-비상경계 해제. 전 승무원 2급 경계태세로 전환한다. 반복한다. 비상경계 해제. 전 승무원2급 경계태세로 전환한다.

“후우~.”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방송에 한반도와 곽재우의 승무원들은 모두 지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당직을 맡은 승무원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선실로 돌아가는 동안,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던 미 해군의 파일럿들이 한국군 파일럿들을 붙잡았다.

“이건 뭡니까 이건 ”

“이 미친 장비는 뭡니까 ”

“글쎄요….”

미 해군 파일럿들의 질문에 한국군 파일럿들도 난처한 얼굴로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시연을 했을 때부터 당사자인 한국군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들 모두 한목소리로 ‘제정신 가지고는 못 만들 장비’라고 평가를 받은 장비였고, 오로지 미군만이 지갑을 챙겨들고 달려온 장비였다.

지금 미 해군 파일럿들이 기함을 하게 만든 장비는 ‘투명망토’였다.

나노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메타물질과 굴절이 가능한 초고해상도 모니터를 이용해 적외선부터 가시광선대역까지 스텔스가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장비였다.

투명망토를 이용해서 한반도와 곽재우는 남하가 아닌 북상을 한 상태에서 일본군의 추적을 벗어난 것이었다.

한반도의 작전통제센터에서 고 제독은 연신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내가 명령을 내렸고, 그리고 그 덕을 보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망토’는 도대체 무슨 약을 빨았는지 알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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