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207화 Hell (in) March (5)
9전단의 야간폭격이 벌어지자마자 이노우에는 천황참모본부로 달려왔다.
“현재 상황은 ”
“무사시노에 있는 항공기 제조공장이 맹폭(猛爆)을 당하고 있습니다!”
“근처 항공기지에 요격기를 출격시키라고 해!”
“이미 출격을 시키고 있습니다!”
“천황폐하와 황태자 전하께서는 어떠하신가!”
“황궁 도서관 지하에 있는 방공호에 무사히 대피하셨습니다!”
“그런가 다행이로군.”
가장 중요한 히로히토 일가가 무사히 대피를 했다는 말에 안도의 표정을 지은 이노우에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폭격을 가하는 적기의 수는 ”
“약 30기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서치라이트가 요란하게 하늘을 비추고, 대공포의 포탄들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던 이노우에가 혀를 찼다.
“쯧! 한 대도 못 맞추는군.”
“죄송합니다!”
“도이치에서 엔진보다 대공포들을 먼저 들여왔어야 했나….”
1942년 미국이 벌인 ‘무엄한 폭거(暴擧)’인 ‘황궁폭격사건’ 이후, 일본군은 대대적으로 방공망을 손봤다.
중국에서 노획한 독일제 88mm SK c/30 대공포들을 우선적으로 배치하고, 역설계를 통해 새롭게 만든 99식 88mm 대공포들을 대량으로 도쿄와 주요 산업지대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후, 진정한 육상용 대공포라고 할 수 있는 88mm FLAK의 설계도면을 지원받아 생산에 들어갔지만 독일군이 사용하는 원본에 비해 낮은 성능이 나오는 물건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일본으로서는 그거라도 감지덕지하며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문제였다. 결국, 황거(皇居)주변은 독일에서 직수입한 88mm FLAK36으로 대공망을 완성해야만 했다.
빈약한 대공포 문제로 뒤늦은 후회를 하던 이노우에의 눈에 불덩어리가 되어서 떨어지는 항공기가 들어왔다.
“드디어 격추했군!”
좋아라하는 이노우에와 달리 육군 항공대와 해군 항공대 출신 참모들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이노우에의 발언을 수정했다.
“저거 아군기입니다.”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에 진행된 폭격이 끝나자마자 폭격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를 제압하고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소방대가 바쁘게 움직였다.
“더 이상의 폭격은 없는 것 같군.”
“그렇습니다.”
“최대한 빨리 피해보고서를 작성해서 가지고 오도록.”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참모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며 이노우에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또 한소리 듣겠군….”
* * *
함재기들의 귀환까지 무사히 끝나자 한반도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남하를 시작했다.
느린 속도로 남하를 하는 한반도의 작전통제센터에서는 평가회의가 한창이었다.
“무사시노에 있는 항공기 제조공장의 피해정도는 ”
“다시 사용하자면 새로 지어야 할 겁니다.”
고 제독의 물음에 박 대령은 모니터에 영상을 재생하며 짧게 대답했다.
폭격에 나선 KF-1C들의 적외선 카메라에는 폭격으로 파괴되는 공장의 모습이 똑똑하게 잡혀있었다.
“도쿄의 방공망 평가는 어떤가 ‘도쿄 핫’덕에 많이 강화되었을 것 같은데 ”
“확실히 강화는 되었습니다만, 제트 전투기들 상대로는 무용지물입니다.”
“그런가 ”
박 대령의 대답을 들으며 고 제독은 곽재우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확인했다.
-도쿄 상공을 감시하는 레이더의 활동 미약.
전통적인 대공포라도 레이더가 연계된다면 매우 위험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은 쓸데없는 자원낭비였다. 하지만 고 제독은 박 대령에게 주의를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 먼 총알에 맞는 게 가장 아픈 법이야. 조종사들에게 주의를 주도록.”
“알겠습니다.”
“자, 그럼 내일 주간 목표를 한번 정해보지. 나고야로 갈까 아니면 도쿄에 조금 더 불장난을 칠까 ”
“파일럿들 사이에서는 도쿄에서 사골국을 끓이는 것이 제일 좋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 해군이 제공한 정보와 이번 폭격 영상을 확인한 미군 파일럿들도 비슷한 의견입니다.”
“그런가 ”
박 대령이 파일럿들의 의견을 전달하자 고 제독의 눈이 반짝였다.
한반도에 있는 한국군 파일럿들이 승진에서 물을 먹어서 그렇지 만만치 않은 실력들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동승한 미 해군의 파일럿들 역시 신무기인 제트 전투기를 가장 먼저 할당받을 정도로 경험과 실력이 보장된 이들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고 제독이 결론을 내렸다.
“그럼 도쿄를 좀 더 괴롭히도록 하지. 어디를 때리면 일본 애들이 많이 아파할지 추천해 보도록.”
“미리 준비했습니다.”
박 대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패드를 고 제독에게 내밀었다.
고 제독은 손가락으로 패드의 모니터를 스크롤하며 중얼거렸다.
“목록이 꽤 많군 ”
“이 작자들도 수도권에 미친 듯이 집중해놨습니다.”
“우리 꼰대들이 어디에서 배웠겠나 ”
실없는 대화가 이어지던 가운데 고 제독이 적당한 후보지들을 골랐다.
“일본육군 병기창. 요코하마의 원유 정유 시설, 그 다음 일본 제강 제철소… 이 3곳을 우선적으로 날리고 싶은데 주간 폭격만으로 가능하겠나 ”
잠시 계산을 하던 박 대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팅레이까지 동원한다면 가능합니다.”
“파일럿들이 피곤하지 않겠나 ”
“야간출격은 스팅레이만 하면 됩니다.”
박 대령의 대답에 고 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실행하게. 출격 시각은 ”
“정오입니다.”
“계획서 작성해서 올리도록. 바로 결재를 하겠다.”
“알겠습니다.”
박 대령이 나간 다음, 고 제독은 강 대령과 장 대령에게 변경된 사항을 전달했다.
“도쿄에서 하루 더 묵도록 하겠다.”
강 대령과 장 대령에게 명령을 전달한 고 제독은 한쪽에 놓아둔 서류철을 펼쳤다.
이번 작전에 나서기 전 정 수석차관이 그에게 전달한 ‘반드시 폭격을 해야 하는 곳’에 대한 명령서였다.
“김 주석의 결재사인이 있지만… 누구 생각인지는 빤하지.”
필수 폭격 목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이는 고 제독이었다.
한참동안 명령서를 내려다보던 고 제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교토(京都)라…한다고는 했는데….”
* * *
한반도와 곽재우가 일본을 향해 출항하는 날, 출정식이 벌어지기 전 정 수석차관이 고 제독을 찾아 명령서를 내밀었다.
명령서를 확인한 고 제독은 정 수석차관을 바라봤다.
“교토를 폭격해야 한다고 이곳에는 별다른 산업시설이 없지 않나 ”
“산업시설은 없지만 문화(文化)가 있습니다.”
“응 ”
정 수석차관의 설명에 고 제독이 의문을 표시했다.
고 제독의 반응에 정 수석차관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흔히 말하는 와패니즈는 일본 오덕문화에 중독된 미국의 하층계급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네 K-pop에 열광하는 이들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가장 영향력을 가진 이들은 오덕문화가 아닌 역사라던가 유물에 중독된 이들입니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이 다시금 세계에 나서면서 가장 잘 이용해 먹은 곳이 교토입니다. 우리 목표는 일본을 아예 농업국가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국토면적이나 인구규모를 생각하면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세계에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때 써먹을 카드를 없애고 반대로 우리가 그 카드를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우리에게 그 카드가 있는가 영상매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나로서는 그 효용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네.”
“사극 드라마가 꽤 히트를 치고는 있습니다만 ”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 실재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
고 제독의 지적에 정 수석차관의 얼굴에는 미소가 짙어졌다.
“왜 없습니까 교토는 겨우 ‘천년고도(千年古都)’일 뿐입니다. 한반도에는 5백년 묵은 왕도(王都)도 있고, 1000년 묵은 왕도(王都)도 있고, 2천년을 묵은 왕도(王都)도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500년을 매일같이 기록한 사서(史書)도 존재하지요. 학자들이나 식자층들은 칼의 문화보다는 책의 문화에 더욱 중독이 잘 되는 법입니다.”
정 수석차관의 설명이 끝나고 고 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네. 교토, 날려버리지. 개인적으로는 군사적으로 가치는 없는 곳을 폭격한다는 것이 좀 께름칙하지만 말일세.”
* * *
고 제독에게 ‘교토 폭격’ 명령서를 전달한 다음, 정 수석차관이 방문을 한 곳은 ‘아이비리그’로 통칭되는 미국의 유명 명문대학의 역사학과였다.
“안녕하십니까 전화로 인사를 드렸던 정길수라고 합니다.”
“환영합니다. 앉으세요.”
정 수석차관에게 자리를 권하고 맞은편에 앉은 중년의 백인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정 수석차관을 바라봤다.
“그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각료가 역사학자의 사무실에는 무슨 볼 일로 오신 겁니까 ”
“교수님의 전공이 동아시아 역사시죠 ”
“그렇소이다.”
“동아시아에는 가 보신 적 있으십니까 ”
“젊었을 때 중국에 가봤고, 일본의 교토에도 가봤지요.”
“한국(Korea)에는 가 보신 적 있으십니까 ”
정 수석차관의 물음에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중국에 갔을 때, 가볼까 했는데 국경에서 일본군이 막았었소. 덕분에 한국에는 가본 적이 없소이다.”
“그럼 한국은 잘 모르시겠군요 ”
“솔직히 그렇소이다.”
교수의 솔직한 대답에 정 수석차관은 가방을 열고 두꺼운 앨범과 지도를 꺼내들었다.
“이곳은 한국의 경주라는 곳입니다.”
“켱주 ”
“그렇습니다. 이곳은 기원전 57년부터 서기 935년까지 신라라는 국가의 수도였던 곳입니다.”
“가만… 그렇다면 거의 1000년이라는 소리인데 ”
“맞습니다.”
정 수석차관은 석굴암과 불국사, 그리고 거대한 능들의 사진을 펼쳐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 모든 유물들을 일본이 엉망으로 만들어놨습니다. 제대로 복원하고 연구하는 것에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
정 수석차관이 말을 했지만 이미 사진에 정신이 팔린 교수의 귀는 닫혀있었다.
한참동안 ‘놀랍군!’, ‘믿을 수 없어!’ 등을 연발하던 교수는 정 수석차관을 돌아봤다.
“나에게 이 사진을 보여준 이유는 무엇이오 ”
“우리가 우리의 국토를 되찾은 다음, 일본이 엉망으로 복원한 이 유물들을 제대로 연구하고 복원해야 합니다. 같이 하실 수 있겠습니까 ”
“당연히! 당연히 같이 하겠소! 만약 자금이 필요하다면 내가 책임지겠소이다!”
“감사합니다!”
그 뒤로 정 수석차관은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역사학 교수들에게서 전폭적인 협조를 얻어냈다.
500년 동안의 일을 기록한 ‘왕조실록’에 눈이 돌아간 학자들도 부지기수로 튀어나왔고, 각종 사찰 건축에 혹해 협조를 하겠다고 나선 건축학과 교수들도 있었다.
LA로 돌아온 정 수석차관은 김 주석과 각료들에게 출장의 결과를 보고했다.
“수고했네.”
치하를 하기는 했지만 김 주석은 의구심이 가득한 눈으로 정 수석차관을 바라봤다.
“그런데 과연 역사학자들이나 다른 학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큰 도움이 되겠나 ”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우리 시대에도 외국의 국가원수들이 일본을 방문하면 의례적으로 거쳐 가는 곳이 교토였습니다. 아시아 문화하면 일본 문화고 일본 문화하면 교토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부분은 이해가 가는데, 꼭 서양 학자들을 끌어들여야 하는지 이게 좀 걸리네.”
“공증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복원하고 ‘이렇게 오래된 유물이 있다.’라고 소리쳐도 제대로 공신력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저들을 초빙함으로써 그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국민들의 열등감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습니다. 외국의, 특히 그것도 서양의 유명대학 교수들이 인정을 했다고 하면 더욱 좋아하는 것이 우리네 인심이지요. 서글프지만 말입니다.”
정 수석차관의 지적에 김 주석과 각료들은 입맛을 다셨다.
“서글픈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