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206화 Hell (in) March (4)
8기의 제트 전투기가 뛰어들자 18기의 제로센들은 그 즉시 3기 1조의 전통적인 편대를 유지하며 산개를 시작했다. 하지만 제트 엔진 전투기의 빠른 속도와 급강하를 통해 얻은 가속도로 인해 타이밍을 놓친 6기의 제로센들이 불덩어리로 변해 바다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12기의 제로센이 산개를 하자 붐앤줌의 전술로 다시금 에너지를 얻은 제트 엔진 전투기들은 제로센의 꽁무니를 쫓아 흩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산개를 했던 축에 속하던 오야마 대위는 전황을 살피며 성대 마이크를 움켜쥐고 소리를 질렀다.
“놈들이 다 흩어졌다! 선회전으로 유인해서 놈들을 하나씩 각개격파 한다!”
그 순간 2기의 제로센이 추가로 격추되었다.
자신의 뒤를 노리던 썬더 캣의 사격을 절묘하게 피하고 오버 슛한 적기를 조준하던 오야마는 본능적인 느낌으로 제로센을 옆으로 미끄러트렸다.
바로 직후, KF-1C가 쏘아댄 20mm 예광탄의 빛줄기가 그의 기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체 없이 제로센을 옆으로 빼낸 오야마는 다시 한 번 상황을 살폈다.
생존을 위해 정신없이 러더와 조종간을 움직이면서도 다른 한 쪽으로는 쉴 틈 없이 상황을 살피던 오야마는 드디어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이놈들! 도이치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2기1조의 로테(Rotte)와 4기1조의 슈밤(Schwarm)을 기본으로 아군의 보호와 적을 상대로 한 화력 우세를 점하는 전술을 양키들이 써먹고 있었다.
“1대씩 흩어진 것이 아니었어….”
양키들의 신형 항공기들은 오야마가 흩어졌다고 오판할 정도로 넓은 간격을 두고 짝을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살피던 오야마는 자신도 모르게 어렸을 때 배웠던 고전의 구절을 중얼거렸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성긴 것처럼 보이나 놓치는 것이 없다.)...”
-대위님! 위험!
자신도 모르게 넋을 놓고 있던 오야마는 헤드폰을 울리는 부하의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죽음의 위기에서 다시 한 번 한발 비켜갔다.
재빨리 공중전이 벌어지는 공역(空域)의 외곽으로 빠진 오야마는 자신의 현재위치를 살폈다.
“어느새 모함이 있는 곳까지 밀려왔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 오야마는 항모 치토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저 아래 푸른 바다 위에 치토세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호위를 하던 구축함들 가운데 2척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다른 2척의 구축함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틀렸다...”
상황을 파악한 오야마는 기수를 곧장 바다로 향하며 마이크를 붙잡았다.
“오야마다! 모함이 당했다! 지금 즉시 전력을 다해 요코하마로 돌아간다! 더 이상의 전투는 소용없다! 즉시 이곳에서 탈출한다!”
말과 동시에 수면에 닿을 정도로 고도를 낮춘 오야마는 엔진을 최대출력으로 가동시키며 요코하마를 향해 전력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 * *
“공격대 귀환하고 있습니다.”
“피해는 ”
“없습니다.”
박 대령의 보고에 고 제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홋카이도부터 치고 내려오겠다고 호기를 부리기는 했지만 부하들의 손실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굳은 몸을 푼 고 제독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실으며 명령을 내렸다.
“출격했던 전투기들과 E-2D의 귀환이 끝나면 전속으로 이 자리를 벗어난다. 도망간 일본군 전투기들이 있으니까 적어도 2시간 후에는 우리를 찾으려고 일본 해군들이 몰려나올 것이 확실하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투보고서도 최대한 빨리 받아 봤으면 좋겠군.”
“최대한 빨리 작성하겠습니다.”
“목적지를 어디로 잡을까요 ”
강 대령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던 고 제독이 행선지를 정했다.
“도쿄로 가지. 오랜만에 다시 왔는데 인사는 하고 가야 예의 아니겠나 ”
고 제독의 말에 해도를 살피던 박 대령이 끼어들었다.
“야간공습을 준비할까요 ”
“시간이 되겠나 ”
질문을 받은 박 대령은 강 대령을 돌아봤다.
해도를 보며 잠시 계산을 하던 강 대령이 답을 내놓았다.
“자정 즈음에는 도쿄를 작전반경 안에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야간공습을 해야겠지. 박 대령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잠, 대공 경계를 철저히 하라고 해. 일본 놈들 화가 많이 났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 * *
비슷한 시각, 도쿄. 천황참모본부 건물.
“치토세가 격침 확실한 건가 ”
“핫! 현장에 출동한 지원함대가 확인을 했습니다.”
“빌어먹을….”
부하의 보고에 이노우에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이 더욱 깊어졌다.
몇 시간 전, 훈련에 나갔던 치토세에서 긴급 전문이 들어왔었다.
-적기 공습. 지원요망.
전문이 들어오자마자 연합함대 사령부는 발칵 뒤집혀졌다.
훈련 전 미리 작성한 계획표를 조사해 치토세와 그녀를 호위하는 구축함들이 있는 위치를 파악한 연합함대는 곧장 전투기들과 구축함들을 해당 지역으로 출동시켰다. 하지만 문제의 위치에 도착한 이들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수면 위에 떠돌아다니는 유실물들과 검은 기름띠들이 전부였다.
그러던 와중에 무사히 전투 현장을 빠져나온 소수의 전투기들이 요코하마 인근의 비행장에 착륙을 했다.
중상을 입은 파일럿들은 즉시 해군병원으로 실려 갔고, 상처 없이 착륙한 오야마 대위와 또 다른 한명의 파일럿은 바로 조사실로 연행되었다.
오후 8시, 오야마 대위와 다른 한명의 파일럿을 조사한 결과가 담긴 보고서가 이노우에에게 올라왔다.
보고서를 펼치고 난 후, 이노우에의 얼굴은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몇 번이고 보고서를 반복해 읽던 이노우에는 보고서를 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폐하께 말씀을 드려야겠군.”
“흐음… 이거 심각하군.”
“망극하옵니다.”
보고서를 읽고 난 후 나온 히로히토의 평가에 이노우에는 머리를 조아렸다.
“‘제로센은 더 이상 1선급 전투기가 아니다.’ 이거 참 뼈아픈 말이로군.”
“망극하옵니다.”
“제로센의 뒤를 이을 차기 전투기의 개발상황은 어떠한가 ”
“지금 개발 중입니다. 조만간 시제기를 내놓을 듯합니다. 또한 도이치에서 전투기에서 사용하는 고출력 공랭식 엔진의 설계도와 샘플들을 입수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양키들이 선보인 것과 같은 터빈 엔진을 사용하는 전투기의 시제품 조립도 이미 끝났다는 보고가 들어 왔습니다.”
이노우에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히로히토는 흡족하지가 않은 표정이었다.
“과연 시간에 맞출 수 있겠는가 벌써 양키들이 저렇게 코앞에 와서 설치는데 ”
“육상전투기는 호각의 성능을 갖춘 전투기들이 양산직전단계입니다. 문제는 함상전투기입니다.”
“미리미리 대비를 했어야….”
이노우에에게 계속해서 질책을 하려던 히로히토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들만의 잣대와 계산으로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일을 크게 만들었던 이들-대표적으로 지금은 페르시아 바다 속에 잠들어 있는 야마모토와 겐다 패거리-이 가장 먼저 날려 먹은 것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후우~.”
다시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쉰 히로히토는 이노우에를 바라봤다.
“지나간 일을 다시 후회해 봤자 시간만 아깝지. 도이치에 연락을 해서 필요한 기술자들을 초빙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진행을 하도록.”
“명을 받듭니다.”
“아! 도이치하니까 생각나는데 도이치에서 보낸 육군 장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
히로히토가 언급한 도이치의 육군장교들은 ‘독일 국방군 병기국(Heereswaffenamt.. HWA)’ 소속의 기술장교들이었다.
독일 국방군 병기국의 탄도 및 탄약 부서(Wa.Pruf.1) 소속 파울 니묄러(Paul Niemoller) 대령과 뒤이어 도착한 발터 메르켈(Walter Merkel) 소령이 일본군이 사용할 병기 개발에 도움을 주고자 협업을 하고 있었다.
“2식 척탄기(二式擲 器) 개발을 끝낸 다음부터 신형 대전차 장비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군.”
“그렇습니다.”
두 사람의 희망과 달리 니묄러 소령은 독일 본국에 ‘이곳에는 꿈도 희망도 없다!’라는 비관적인 내용이 가득 담긴 전문을 이미 보낸 상황이었다.
* * *
히로히토와 이노우에가 대책을 논의하고 있을 때, 고 제독은 전투보고서를 펼쳐 놓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치토세(千 )였어 ”
“예. 건캠에 찍힌 모습과 함선 도록을 비교해 본 결과, 치토세였습니다.”
“허, 거 참….”
생각지도 못한 우연의 일치에 고 제독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잠시 보고서에 동봉된 사진을 살피던 고 제독은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거나 치토세를 공격하기는 했군. 그래 다음 타격지는 어디지 ”
“무사시노(武 野)에 자리한 항공기 공장입니다.”
“몇 대나 동원할 생각인가 ”
“30기입니다. 호위기까지 포함하면 40기 전부 출격입니다.”
박 대령의 대답에 고 제독은 암산을 해보고는 박 대령을 돌아봤다.
“공장이 남아나지 않겠군 ”
“그렇게 만들 생각입니다.”
“기대를 해 보지.”
“알겠습니다.”
다음 타격 목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고 제독은 두 명의 함장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일본해군의 추격은 ”
“레이더 관측 결과로는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약 120해리(약222km)떨어진 곳을 중점적으로 수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본토에서 다이렉트로 왔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
“남쪽에서 올라왔다면 대만에서 놓쳤을 리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겁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했던 짓도 있으니 남쪽이 아니라 북쪽에 시선을 맞췄을 겁니다.”
장 대령의 대답에 고 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필리핀과 인도차이나가 미군의 손에 떨어진 이후, 일본은 대만에 초계전력을 집중했다.
잠수함들과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대형 비행정들이 대만의 북쪽과 일본 남부의 해역을 샅샅이 뒤지며 혹시라도 모를 미 함대의 진입을 경계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벌일 당시 사용했던 북태평양 항로를 미국이 사용할지 모른다는 말이 계속해서 일본 군부에 돌고 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치토세와 호위 구축함들이 모조리 격침당하고 난 이후, 일본 해군은 치토세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위치로부터 북쪽 해역을 뒤지고 있었다.
“저치들이 알아서 헛다리 짚어주는 것은 좋은데, 계속 북쪽에만 머물러서는 우리가 곤란해. 이번 야간작전 이후로 일본에 남아있는 함대의 눈을 남쪽으로 쏠리게 만들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작전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를 주지시킨 고 제독은 대령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럼 야간폭격을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날 새벽 2시.
무사시노에 있던 항공기 제작공장이 폐허로 변했다.
폭격에 나선 기체만 30기, 투하한 폭탄의 총톤수는 60톤에 달하는 폭격에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던 비행기 공장은 벽돌과 온갖 고철들이 뒤섞인 쓰레기장으로 변해 버렸다.
근처에 있던 요코타 비행장과 다치카와비행장에서 요격기들이 비상출격을 했지만 오히려 사냥을 당해 30기가 넘는 전투기들이 격추를 당했다.
그것도 도쿄 시민들이 모두 보는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