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04화 (204/464)

# 204

204화 Hell (in) March (2)

SSK가 모습을 드러내자 냉큼 한국군에 ‘공동구매’하자며 달려드는 미군 병과들이 생겼다. 그들은 공수, 기갑, 공병, 수송, 통신 등의 병과였다.

특히나 가장 열성적인 병과는 공수와 기갑이었다.

“개런드의 길쭉한 몸체는 공수작전에 걸림돌이다! 낙하 전 개런드를 분해해 주머니에 담은 다음, 낙하 후 다시 조립을 해서 전투에 들어가야 한다! 이건 매우 비효율적이다! 어차피 똑같은 30-42탄을 쓰는 거, 우리는 SSK를 원한다!”

“카빈이 있잖나 ”

“위력이 약하다! SSK를 달라!”

기갑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위용으로 전차에 싣는 그리스 건은 위력이 너무 약하다! SSK를 달라!”

“화염과 소음이 심한데 ”

“어차피 밖에 대고 쏘는 거 화염은 문제없다! 그리고 소음 원래 시끄러운 게 전차다!”

각 병과에서 올라오는 이야기를 들은 최고지휘부의 장성들은 다들 고개를 가로저으며 푸념을 했다.

“누가 양키들 아니랄까봐 ‘큰 거 한방’을 너무 좋아해.”

서부 개척시대 야생동물과 인디언들, 무법자들을 상대하면서 확실한 살상력을 선호하게 된 미국인들이었다.

상술한대로 SSK를 원하는 병과는 많았지만, 원하는 병과마다 SSK를 지급하는 것은 미국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치열한 설전과 경쟁 끝에 공수부대만이 ‘공동구매’에 동참할 수 있었다.

선택의 이유는 가장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주요 총기 제조사에 오더가 떨어졌다.

“개런드를 대체할 신형 소총을 개발하라! 적어도 20발 이상이 들어가는 탄창을 장착할 수 있고, 개런드보다 가벼운 놈으로! 단, 한국군 것과 비슷한 외형의 것이 나오면 우선적으로 떨어트리겠다!”

미국 정부의 오더에 총기 제조사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정답지 놔두고 오답을 쓰라는 말이냐!”

이런 총기 개발 소동으로 인해 뜻밖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피해자는 개런드 소총의 개발자인 존 C. 개런드로 원래 역사와 달리 큰돈을 벌지 못하게 되었다.

*    *    *

육군과 군부가 여군들의 문제로 이런저런 홍역을 앓는 동안 해군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해군본부-라고는 하지만 한국군이 세 들어 사는 미 해군기지 건물의 사무실 몇 개-의 회의실에서는 고 제독과 함장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해군으로 지원한 이들의 수준은 어떠한가 ”

“다들 기본적인 학력은 가지고 있습니다. 체력도 꽤나 우수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훈련은 ”

“우선적으로 광양 프론티어3호의 선원들이 함선 운용에 관한 기초훈련을 맡아 진행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거주 한인 교민회의 자원봉사자들이 영어교육을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정치적 성향은 필터링이 된 이들이 맞지 ”

“예.”

고 제독이 언급한 ‘정치적 성향’은 리숭민 계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9전단이 오기 전부터 안창호 계열과 리숭민 계열로 갈라섰던 교민 사회는 9전단의 도래 이후 확실하게 척을 졌다.

리숭민이 ‘반(反)임시정부, 반9전단’의 기치를 내걸면서 리숭민 계열은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누가 뭐래도 독립운동에서 가장 대표성이 강한 단체가 임시정부였고, 9전단은 실제로 존재하는 무력으로서 존재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알게 모르게 진행된 정 수석차관의 공작으로 인해 경제적인 문제까지 겹쳐지면서 리숭민이 이끄는 세력은 골수지지층만이 남은 상태였다.

훈련을 받는 이들의 정치성향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들을 걸러 냈다는 보고에 고 제독은 다소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주의를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육군은 광복군 노인네들도 있고, 필코세이프티 출신자들까지 있어서 인력풀이 넘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이번 일이 우리에게는 첫 단추인 셈이야. 최대한 살피고 최대한 걸러야 한다.”

“알겠습니다.”

해군 신병 훈련에 관한 일들을 얼추 정리한 다음 고 제독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함선들의 정비는 어떻게 되어 가나 ”

“선체 외부의 정비는 수월하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만, 기관부가 문제입니다.”

“기관부 ”

“개스 터빈의 정비에 시간이 좀 걸립니다.”

“터빈에 아! 처음 열어 보고 백기를 흔들었다가 이번에는 자신 있다고 재도전하는 것 아니었나 ”

고 제독의 물음에 구축함 함장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 있게 나선 것까지는 좋았는데 기술진이 부족합니다. 우리만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함대의 태반이 같이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설명을 들은 고 제독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하의 미국이 기술진이 부족하다고 ”

“네, 천하의 미국이 말입니다.”

미 해군의 함선, 특히 주력인 전함이나 항공모함에 사용되는 고압 증기 터빈 부분에서 미국 기술력의 수준은 당대 최고였다.

이것은 미국만의 자화자찬이 아니라 타국, 특히나 자존심 강한 영국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였기 때문에 한국군 구축함에 장착된 가스 터빈 엔진에 대한 정비 의뢰에 아주 흔쾌히,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응했다.

하지만 막상 터빈의 케이스를 열어보고 난 후, 미국은 백기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미 해군이 사용하는 증기 터빈 역시 고온, 고압에 견디는 물건이었지만 한국 해군이 사용하는 가스 터빈은 그보다 더욱 높은 온도와 압력에 견뎌야 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백기를 흔들며 나가떨어지자 9전단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기초 정비만으로 기관이 버틸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참가했던 전투에서 9전단의 함선들이 기관을 최대로 돌릴 일이 없었기에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하늘의 도우심인지, 필리핀에서 돌아온 9전단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구축함에 사용되는 가스터빈용 터빈 블레이드와 볼 베어링을 완성했다!

눈물 나게 반가운 소식에 만세를 부르면서도 어떻게 그 짧은 시간 안에 가능했는지 연유를 캐물었다. 그리고 연유를 알게 된 이후 고 제독 이하 모든 장교들이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인신공양이었냐 ”

52구역으로 넘어간 KF-5전투기에 탑재된 제트엔진을 바탕으로, ‘공밀레’라고 불리는 엔지니어들의 혹사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미국 엔지니어들의 피, 땀, 눈물이 배어 든 부품들이 도착했지만 관련 기술자들의 수급 문제로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보고에 잠시 생각을 하던 고 제독이 한반도의 함장 강 대령을 돌아봤다.

“한반도의 정비는 잘 진행되고 있나 ”

“예. 원자로는 성 부장의 팀이 제대로 정비를 하고 있고, 다른 곳들의 정비 역시 수월하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캐터펄트에 들어가는 초전도체 부분은 어떠한가 ”

“보장수명 20년이라고 하더니 아직 멀쩡합니다.”

“다행이로군. 그렇다면….”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하던 고 제독이 말을 이었다.

“우선적으로 곽재우부터 정비를 하도록 하지. 이번에 진행할 ‘헬 마치’ 작전에서 한반도와 같이 움직일 배는 곽재우니까, 우선적으로 정비를 하고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고 제독의 말에 강감찬의 함장인 조 대령이 입을 열었다.

“작전에 대해서 다시금 건의를 드립니다만, 한반도의 호위함으로 곽재우만 동행하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다른 구축함들도 다 동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헬 마치’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 놈들에게 혼란을 안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학 위장이 가능한 함선을 동원해야 한다. 거기에 더해 곽재우는 이지스 레이더가 있지 않나 ”

“광학 위장이라고 한다면 강감찬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레이더 문제라면 지금 이 시기에는 다른 구축함들의 레이더도 최고 수준입니다.”

“‘헬 마치’와 연계해서 벌어질 메인 작전의 주력인 우리 육군과 미 육군을 수송할 수송선단의 안전을 책임질 이가 필요하다. 그래서 강감찬과 김문휴가 그 일을 맡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항모 1척과 구축함 1척으로 일본 영해를 헤집고 다니는 일은 지극히 위험합니다!”

“일본 놈들의 감시 능력이라면 그 위험도가 매우 떨어진다. 그리고 어떤 보급도 없이 벌이는 작전인데, 한반도에서 보급할 합성 JP연료로 100% 출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함선이 곽재우 말고 더 있나 더 이상 내 결정에 토를 달지 말도록.”

고 제독의 단호한 대답에 함장들은 입을 다물었다.

함장들의 입을 막아 버린 고 제독은 강 대령을 돌아봤다.

“좀 더 원활한 작전수행을 위해 미 해군이 약간의 도움을 줄 예정이다. 썬더 캣 3개 편대, 12기와 예비기로 3기가 한반도에 배치될 것이다. 이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알겠습니다.”

강 대령의 대답을 들은 고 제독은 함장들을 돌아봤다.

“‘헬 마치’ 작전도 중요하지만 바로 이어서 진행될 ‘참수(Beheading)’작전의 성공이 우리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이 점 각별히 유의하도록.”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라는 말로만 끝날 일이 아니야. ‘참수’작전이 결행될 시점은 4월. 그때면 지금 훈련을 받고 있는 육군의 신병들이 드디어 실전에 투입된다. 실전에서 어느 정도 걸러지고 나면 바로 새롭게 출발할 대한민국 육군의 기반이자 핵심이 될 이들이다. 이들을 잃어서는 안 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

“예.”

함장들의 대답을 들은 고 제독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싣고는 함장들에게 손짓했다.

“그럼 나가서 내가 말한 대로 인력을 집중해서 곽재우부터 손을 보도록. 정비 후, 시험 항해에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함장들을 내보낸 고 제독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연병장에 만들어진 국기봉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었다.

말없이 국기봉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던 고 제독이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드디어 돌아간다….”

*    *    *

1944년 3월 중순. LA의 군항.

니미츠 제독과 킹 제독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출정식이 열렸다.

“제군들의 무훈을 빌겠다.”

고 제독의 훈시가 끝나고 한반도와 곽재우는 미군 함선들의 호위를 받으며 LA를 출발, 하와이로 향했다.

하와이에서 이틀간의 휴식 및 마지막 보급을 받은 한반도와 곽재우는 진주만을 빠져나왔다.

“계획대로 미드웨이를 향해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항해장! 미드웨이로!”

고 제독의 명령에 따라 한반도와 곽재우는 서진을 시작했다.

혹시라도 일본 잠수함이 발견하더라도 행선지를 미드웨이로 착각하게 만드는 위장작전이었다.

시속 15노트의 중간 속도로 항해를 한 지 3일 째 되던 날, 한반도와 곽재우는 함수를 북쪽으로 돌렸다.

한반도와 곽재우의 스피커에서는 고 제독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이제부터 일본본토를 타격한다. 일본 본토의 산업단지를 타격해 일본 본토에 남아 있는 일본 연합함대의 잔여 세력과 항공 세력들을 우리 쪽으로 유인해 하나씩 하나씩 소모시킨다.”

고 제독의 말에 승조원들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출발하기 전까지 작전의 중요사항에 함장 이하로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작전이 벌어질 때마다의 일상이었다. 해서 한반도와 곽재우의 승조원들은 하와이를 출발하고 계속 서진을 하는 동안 다들 필리핀에서 작전을 하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본토 타격작전이었다.

고 제독의 말을 들은 승조원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의를 높이는 승조원들의 귀로 고 제독의 말이 이어졌다.

“쉽지 않은 일이다. 연합함대의 잔존 세력이라고는 하지만 저들에게는 그 유명한 야마토를 비롯해 두터운 장갑으로 둘러싼 전함들이 아직 다수 남아있고, 항공모함은 물론이고 수천 단위의 전투기들과 만만치 않은 수의 잠수함들이 남아있다. 다행히 지금까지 별다른 피해 없이 전투를 수행해 왔지만, 이번 작전에서는 꽤 많은 죽음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고 제독의 발언에 승조원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적진 상공에서 전투를 벌이던 함재기 파일럿들과 달리 한반도와 곽재우의 승조원들은 전장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상황이 일상이었다.

중동 전선에서 귀환한 육군의 합동장례식에 참석은 했었지만 죽음은 그들에게는 아직 실감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작전은 반드시 실행해야 하며 성공해야 한다! 성공해야만 우리들의 비원(悲願)! 본토진공 작전이 진행된다! 우리 손으로 우리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다! 본 제독은 제군들 결사(決死)의 각오로 작전에 임해줄 것을 요청한다!”

고 제독의 마지막 말에 승조원들은 불끈 쥔 주먹을 힘껏 위로 쳐들었다.

무언(無言)의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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