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00화 (200/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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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화 마닐라 해전 (25)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있던 히로히토가 이노우에에게 물었다.

“제독, 지금 당장 이 두 곳의 방어시설을 강화하는 일을 착수해도 문제가 없겠나 ”

“문제없습니다.”

“그럼 당장 실행하도록.”

“핫!”

히로히토의 결정에 따라 오키나와와 이오지마의 방어태세 강화가 결정되었다.

그 때 가장 말석에 앉아 있던 육군 대위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말 있는가, 대위 ”

이노우에의 물음에 육군 대위가 입을 열었다.

“육군 대위 가마타 이치로!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하도록!”

“양키들이 태평양을 가로질러 바로 신주에 상륙할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까 ”

“불가능하다. 신주에 바로 상륙해서 우리를 굴복시키려면 적어도 200만 이상의 병력이 필요하다. 제 아무리 양키들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병력을 단번에 수송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렇다면 양키들이 조선을 이용해 신주를 침공할 가능성도 없는 것입니까 ”

“조선을 이용한다 ”

“그렇습니다. 조선반도에 상륙해서….”

“하하하하!”

“하하하!”

가마타 대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회의실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너무 웃어 눈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이노우에가 입을 열었다.

“하~. 대위덕에 오랜만에 웃었다. 대위가 무슨 발언을 하고 싶었는지 이해가 가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입니까 ”

“그래. 미국이 조선을 전진기지로 삼으려면 남쪽에서 밀고 올라오던가. 북쪽에서 내려오던가, 아니면 중국을 통해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도록. 남쪽이나 북쪽을 통해서 들어올 것이면 차라리 우리 제국의 신주, 본토를 침공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다면 중국 전선에 있는 우리 제국의 육군은 물론이고 만주에 있는 관동군과 그 지원군인 만주국군을 상대해야 한다.”

“제독님의 설명에 덧붙이자면 관동군은 세계최강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비록 지금 남방전선의 문제로 병력이 많이 빠져나가 60만에서 40만으로 줄었지만 그 정도의 병력으로도 양키들의 콧대를 꺾기에는 충분해!”

이노우에 제독에 이어 육군 출신 대좌의 말이 덧붙여지자 문제의 발언을 한 가마타 대위는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했다.

“죄송합니다! 소관의 생각이 미욱했습니다!”

가마타 대위가 사죄를 하자 히로히토다 손을 저었다.

“괜찮다. 귀관이 그런 생각을 한 것도 다 제국을 수호하고자 한 의지의 발현이었을 테니까. 앞으로 더욱 정진하도록.”

“핫!”

가마타 대위의 발언과 그에 대한 비판을 끝으로 회의는 끝이 났다.

히로히토를 시작으로 고급 참모들이 차례차례 회의실을 나가고 남은 하급 참모들이 부지런히 속기록과 메모지들을 취합하여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할 일은 속기록과 메모지에 적은 내용들을 기초로 명령문을 작성해 전선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    *    *

“제독. 알아봤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이노우에 제독의 사무실을 은밀히 찾은 시바타 중좌의 말에 이노우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사실이던가 ”

“사실이었습니다.”

시바타의 짧은 대답에 이노우에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빌어먹을….”

두 사람이 비밀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만든 것은 시바타 타케오 대위가 보낸 전문이었다.

이노우에의 심복이자, 해군 항공대에서 겐다 미노루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시바타 타케오 중좌와 동명이인(同名異人)인 시바타 대위는 같은 이름과 같은 전투기 파일럿이라는 특징 덕에 시바타 타케오 중좌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스스로의 유능함과 시바타 중좌와의 인연을 통해 출세 코스에 오른 시바타 대위는 필리핀의 방어를 위해 신설된 라이덴 부대를 이끌고 남태평양으로 배치되었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바로 소좌로 진급이 예정되어 있던 시바타 대위가 보낸 전문을 받아든 시바타 중좌는 바로 명령을 내렸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도록. 만약 사실이면 이시하라 소좌를 우선 연금시키도록.”

“핫!”

그리고 한미 연합함대가 인도차이나와 홍콩, 대만을 신나게 두들기고 다니는 동안 ‘사실임이 확실하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올라온 것이었다.

시바타가 내민 보고서를 읽은 이노우에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멍청한….”

포로 또는 탈출한 적의 병사를 죽여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적의 사기를 떨어트린다는 전술은 사용 가능한 시기와 방법을 주도면밀하게 살핀 다음에도 어지간하면 쓰지 말아야 할 전술이었다.

만약 때와 장소를 잘못 선정한 상태에서 시행한다면 오히려 적의 전의(戰意)만 고양(高揚)시키는 악수(惡手)가 되는 도박에 가까운 전술이었다.

그리고 이시하라의 행동은 때와 장소를 잘못 골라 실패한 전형적인 예가 되어 버렸다.

독이 바짝 올라 버린 미군들은 수적 우위만 확보되면 집요하게 일본기들의 조종석을 노렸다.

그 결과, 일본군 파일럿들의 생환율은 절벽에서 미끄러지듯이 급경사를 그리며 떨어졌다.

“이와부치와 오자와도 그렇고… 대체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보고서를 앞에 놓고 이노우에는 마른세수를 하며 투덜거렸다.

마닐라 시가전에서 일본 민간인들이 미군에게 죽어나가면서 일본은 미군의 잔학성을 소리 높여 떠들어 댔다.

일본의 주장에 적십자가 진상조사에 들어갔을 때, 미군은 자신들이 입수한 서류를 조사단에게 내밀었다.

일본 민간인들에게 일본군을 도와 미군에 대한 적극적인 전투를 벌이라는 명령이 적힌 명령서였다.

해당 명령서에는 사령관인 오자와와 부대 지휘관인 이와부치의 날인이 확실하게 찍혀 있었다. 산티아고 요새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미처 파기하지 못하고 획득된 명령서였다.

명령서가 진본(眞本)임을 확인한 적십자는 미군의 일본 민간인 사살이 전투 중에 벌어진 정당한 대처였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와 동시에 일본에는 이것과 유사한 비인도적인 명령을 민간인에게 강요하지 말 것을 요청해 왔다.

이에 일본 정부는 처음 소리 높여 떠들 때와 달리 적십자의 요청을 묵살했고, 국내에는 ‘미군의 학살을 적십자가 덮었다!’라는 식의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국민들에게 군부에 적극 협조할 것을 강요했다.

‘제국군이 무너지면 당장 너의 부인과 딸이 강간당하고 죽을 것이다! 이런 시국(時局)에 전쟁 수행을 거부하거나 종전(終戰),반전(反戰)을 운운(云云)하는 자들은 천황폐하에 대한 반역이며, 일본 제국에 대한 반역을 하는 비신민(非臣民)들이다!’

대본영 발표에 시민들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문 채 전쟁 물자를 생산해야 했다.

보고서를 앞에 놓고 고민을 하던 이노우에는 곧 명령을 내렸다.

“관련된 공식 기록이 있으면 찾아서 즉시 소각하라고 해.”

“핫!”

“그리고 이 빌어먹을 이시하라는 죽으라고 해! 안 그래도 포로살해 사건이 있어서 주의를 줬던 인물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라이덴 부대는 즉시 본토로 귀환하라고 해. 안전보다는 시간에 우선순위를 두고….”

“제독!”

이노우에 제독이 말하는 바를 알아챈 시바타가 놀라서 이노우에를 바라봤다.

안전보다 시간에 우선순위를 두라는 말은 최단거리로 이동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지금 미군의 전투기들이 득실거리는 루손섬을 지나야 한다는 것이였고, 달리 말하면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였다.

놀란 시바타가 만류를 하려 나섰지만 이노우에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어. 승전은 불가능하고 협상만이 유일한 생로(生路)인 상황이야.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하려면 양키들에게 빌미를 줘서는 안 돼. 이시하라의 멍청한 명령을 아는 이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유리하다는 거지.”

“… 알겠습니다. 제독.”

“시바타, 자네의 인연은 아깝게 생각하고, 라이덴 부대의 정예들을 생각해도 아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대승적(大乘的)인 관점에서 봐야 하네.”

“알겠습니다. 명령 전달하겠습니다.”

*    *    *

“도쿄에서 명령이 왔다.”

“무슨 명령입니까 ”

방금 전 출격에서 돌아와 목을 축이던 이와모토의 물음에 시바타는 말없이 명령서를 내밀었다.

명령서를 받아들고 내용을 읽은 이와모토는 자신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끙… 이거 우리보고 죽으라는 소리입니까 ”

“그래. 입막음하겠다는 거지.”

“입막음 ”

이와모토의 물음에 시바타는 턱짓으로 사령부 건물을 가리켰다.

“이시하라가 자결했다.”

“그렇군요.”

“어떻게 해야 할까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이와모토의 물음에 시바타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불운한 전사(戰死)는 운명이라 받아들이겠지만 모살(謀殺)은 받아들일 수 없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비행계획을 잘 짜 봐야겠군. 애들 계기비행 실력은 어때 ”

시바타가 던진 질문의 의미를 파악한 이와모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제가 가르친 놈들입니다. 무월광 상태에서도 계기만으로도 아무 이상 없이 날 수 있는 놈들입니다.”

“좋아!”

이와모토의 대답을 들은 시바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와모토!”

“핫!”

“살자! 우리, 끝까지 살아남자!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명령을 내린 이들이 어찌 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자!”

“핫!”

“이제부터는 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다!”

“핫!”

이틀 뒤, 밤 9시.

팔라완에 배치된 이후 살아남은 34대의 라이덴들이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대만의 가오슝 해군기지.

팔라완의 해군기지에서 멀리 떨어지자 시바타 대위는 무선침묵을 깨고 무전기의 키를 눌렀다.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자신들만의 주파수로 연결된 통신망을 통해 시바타 대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격 전에는 말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모살의 위기에 빠져있다.”

“모살 이유가 뭡니까 ”

“이시하라.”

“칙쇼!”

시바타 대위가 ‘이시하라’라고 대답하자 통신망 내에는 욕설이 난무했다.

부하들 역시 이시하라가 무슨 이유로 자결을 했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욕설이 가라앉자 시바타는 말을 이어갔다.

“기수를 좌로 틀어 직진을 하면 미군진영이다. 그쪽으로 가도 말리지 않겠다. 도착하면 비행도중 실종이라고 보고해 놓겠다.”

“대위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

“나 나는 도쿄로 갈 거다. 그리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끝까지 살아남을 거다.”

“…”

시바타의 말에 통신망은 침묵에 잠겼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이와모토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울렸다.

“지금 무사히 도쿄에 도착해도 계속해서 죽을 때까지 최전선만 돌아다닐 가능성도 높아. 나와 대위님은 실력이 있으니까 끝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지만 너희들 가운데 몇몇은 그렇지가 못하다. 잘 생각해 봐라.”

“…”

이와모토의 말에 라이덴 부대 파일럿들은 모두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만약 팔라완에 배치되었을 무렵 저런 말을 들었다면 당장 시바타나 이와토의 라이덴을 조준했을 이들이었지만, 도착하자마자 벌어진 이시하라의 미친 짓과 공중전에서 벌어진 미친 짓으로 인해 다들 전쟁에 대한 회의(懷疑)만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긴 침묵 끝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오시와라 일비조(一飛曹)입니다. 죄송합니다. 왼쪽으로 가겠습니다.”

“괜찮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 보자.”

“무운(武運)을 빕니다!”

오시와라가 이탈하자 그 뒤로 꽤 많은 수가 이탈했다.

이탈을 결정한 파일럿들은 편대에서 벗어날 때마다 작별인사가 이어졌고, 최종적으로 남은 수는 28대였다.

남은 부대원들을 호가인한 시바타 대위가 마지막으로 키를 잡았다.

“그럼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의 땅으로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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