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
197화 마닐라 해전 (22)
상공에서 저속으로 움직이는 헬리콥터의 도어 거너(Door Gunner)들의 기관총 엄호사격을 받으며 지상에 전개한 제4기병대대 소속 병사들은 빠르고 신속하게 일본군들을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2차원 개념의 전술에 익숙했던 일본군들에게 3차원으로 이동하는 미군의 전술은 대처하기 힘든 전술이었다.
아니 전술은 부차적인 문제였고, 가진 개인화기부터 성능의 우열이 심각하게 갈렸다.
여전히 5연발 수동 장전식에 착검하면 자신들의 키보다 더 긴 소총이 주력무기였고, 보병들을 엄호할 기관총 역시 30발들이 보탄판(保彈板)을 사용하는, 20kg은 가볍게 넘어가서 쉽게 이동조차 못하는 애물단지였다.
체코의 ZB26을 일본식으로 개조한 99식 경기관총이 있기는 했지만, 정수(定數)를 채운 부대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에 미군은 가장 기본적인 보병들의 개인화기가 30-42(7.62x51mm)탄을 사용하는 M1개런드였고, M42기관총이 분대마다 기본 1정, 많으면 2정이 배치되어 있었고, 거기에 유탄발사기와 SMG(Sub Machine Gun), 그리고 LAW까지 넘치게 들고 다니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중동전선의 경험을 살려 아예 짚이나 닷지의 화물칸에 탄약과 LAW 등을 넘치게 싣고 다니며 물량공세를 펼쳐 버리는 것이 기본전술이었다.
아예 ‘공구’를 통해 기본소총부터 시작해 한국군과 동일한 무장체계를 채용해 버린 해병대와 마찬가지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공수부대는 논외였고.
결국, 필리핀인들을 이용한 인간방패와 생체 부비트랩 전술과 민간인들이 주축이 된 테러로 미군을 막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결국, 마닐라 시가지의 60%가 미군에게 넘어가고, 성인이 된 일본 민간인들 가운데 70%가 죽어 나가면서 일본군의 저항은 급격하게 기세가 줄어들며 본격적인 패주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일본군과 일본 민간인들이 향하는 곳은 일본 육군이 방어선을 친 곳이었다.
-플라리델 지역과 산타마리아, 발리에그 지역에 일본군이 대규모로 모여 있다.
“규모를 확인하라!”
-적어도 3개 사단이다.
“알았다.”
커맨드 쉽에서 보고를 받은 통신장교는 맥아더의 참모장 서덜랜드 장군을 돌아봤다.
대형 테이블에 설치된 루손 섬의 모형을 보며 생각을 하던 서덜랜드 참모장은 맥아더를 돌아봤다.
“일본군의 1차 방어선인 것 같습니다.”
“그럼 분쇄해야지. 해당지역을 장악해야만 루손의 남과 북을 가로막을 수 있다. 필요한 전력을 계산해보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행사가 언제지 ”
“이틀 후입니다.”
서덜랜드 참모장의 대답에 맥아더는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약속을 지킬 수 있겠군.”
호주로 탈출할 당시 맥아더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필리핀인들에게 딱 한마디를 했다.
“I shall return.”
‘반드시 돌아오겠다.’가 맥아더가 마닐라에서 탈출할 당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마닐라의 장악이 거의 끝난 지금, 맥아더는 그 약속을 실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틀 뒤, 마닐라 시청.
사진기자들과 극장용 뉴스 촬영사들이 대거 집중한 가운데 헬리콥터가 도착했고, 맥아더와 케손 대통령이 헬리콥터에서 내렸다.
오랜 타지 생활과 심력의 소모로 병색이 완연한 케손 대통령을 부축해 땅으로 내린 맥아더는 미리 설치해 둔 연단으로 걸어갔다.
운집한 기자들과 마닐라 시민들을 바라보며 맥아더는 짧게 한 마디를 했다.
“People of the Philippines, I have returned.(필리핀 국민들이여, 나는 돌아왔다.)”
“와아아!”
맥아더의 간결한 한마디에 마닐라 시민들은 함성을 지르며 환영했다.
맥아더의 일성(一聲)을 기점으로 루손 전역에서 미군에 합류하는 필리핀인들이 엄청난 규모로 늘기 시작했다.
특히 마닐라 시민들의 반응은 격렬했는데 시가전이 벌어지는 동안 가족이나 친족 가운데 한명 이상은 일본군 손에 죽은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닐라와 루손 지역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대학살은 전쟁이 끝나고 21세기가 될 때까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극렬한 반일국가를 꼽으라면 필리핀이 가장 먼저 입에 오르내리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필리핀인들이 대거 군에 지원하면서 미군은 의외에 소득을 올렸다.
필리핀을 탈환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30만을 동원했고, 추가로 40만을 더 동원할 생각까지 했던 미국이었다.
하지만 필리핀 반일게릴라들의 수는 전국적으로 26만 루손에만 18만이라는 엄청난 규모였고, 거기에 더해 탈출하는 과정에서 해체되었던 필리핀 육군 출신의 병사들이 대거 군으로 돌아왔다.
일본에 대해 철저한 항전의지를 가진 인력들이 엄청나게 모이면서 물자만 준비하면 되는 상황이 되어 버린 미국은 쾌재를 불렀다.
물론, 이것은 1944년 2월의 이야기였다. 1943년 12월 초인 지금 마닐라를 틀어쥔 미국은 마닐라에 상륙시킨 병력을 모두 그러모아 일본군의 방어선을 분쇄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 작전의 이름은 ‘슬래지해머(Sledgehammer, 양손망치)’라고 한다.”
작전을 앞두고 공격에 나설 부대의 지휘관들을 모두 모아 놓는 회의에서 맥아더는 작전명을 밝혔다.
“목적은 간단하다. 벽을 부수는 망치처럼 플라리델, 산타마리아, 발리에그 지역에 만들어진 일본군의 방어벽을 부수는 일이다.
방법 또한 간단하다. 우리가 가진 장점, 압도적인 항공세력과 포병세력, 그리고 기갑세력을 이 방벽에 집중시킨다.
그런 말이 있다지 ‘대포는 언제나 옳다.(Cannons are always right.)’ 내가 생각해도 아주 옳은 말이다. 옳은 말이니 그 말을 잘 따라야지.”
“하하하하!”
맥아더의 농담에 지휘관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파이프를 입에 문 채 특유의 표정을 한 맥아더는 말을 이어갔다.
“마닐라에서 겪어봐서 알겠지만 잽들은 천하의 잡놈들(God damn bastard)이다.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우리 미군들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전쟁은 군인만이 해야 한다.’라는 철칙을 아주 우습게 보는 미친놈들이다. 우리 미군을 죽이고 죽으면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독종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죽어 줄 수는 없는 일이겠지 ”
“그렇습니다!”
“당연합니다!”
지휘관들의 대답을 들은 맥아더는 파이프를 한번 쭉 빨고는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저 빌어먹을 잽들이 우리의 피 1리터를 뽑아 갈 때, 우리는 1톤의 폭탄을 퍼부어 준다!”
“우와아아!”
맥아더의 결정에 지휘관들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밴 플리트 탄약량(Van Fleet Day of Fire)’보다 먼저 ‘맥아더 탄약량(MacArthur Day of Fire)’이라는 문구가 세상에 나온 것이었다.
맥아더의 탄약량에 대한 개념은 간단했다. 그전까지는 일선에서 싸우는 분대들 가운데 몇몇에서나 사용했던 무제한 물량전을 전투에 참가하는 모든 부대에 적용한 것이었다. 프리스트 자주포를 비롯한 모든 포대들에는 간단한 명령이 떨어졌다.
-포격을 중지하는 경우는 단 2가지. 아군이 해당지역을 점령했거나 쏘다가 망가질 경우, 그 외에는 포격을 멈추지 말 것! 포탄 발사 수량 제한 없음!
작전을 취재한 기자들이 모두 ‘오로지 미국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이라고 기록한 전술이었다.
그리고 훗날 많은 진보주의 역사학자들이 ‘증오에 눈이 멀어 벌인 가장 잔인한 작전 가운데 하나.’라고 비난한 작전이었다.
* * *
1943년 12월 8일. 새벽 05시 정각.
군단 포병대 소속의 155mm M1918M1을 얹은 M12자주포들이 방열을 끝낸 가운데 손목시계를 보던 포대 지휘관 허트 중령이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사격.”
중령의 명령에 사격지휘소의 모든 통신병들이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포격 개시!”
“포격 개시!”
콰콰쾅!
포격명령이 발동됨과 동시에 155mm는 물론이고 시간에 맞춰 가까스로 조립을 끝낸 240mm M1블랙 드래곤 곡사포, 프리스트 자주포는 물론이고 105mm 견인포와 76mm산포(山砲)까지 박격포를 제외한 모든 포들이 지정된 좌표를 향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미군의 폭격은 그야말로 해당지역을 무인지대(無人地帶)로 만들어버렸다.
참호를 파고 대기하고 있다가 참호와 함께 먼지로 분쇄되어 버린 일본군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양키들이 미쳤습니다!”
“어차피 전쟁 자체가 미친 짓이야!”
마닐라 북쪽에서 미군의 진격을 막는 임무를 맡은 5개 사단 가운데 하나의 지휘를 맡은 아베 하치로 준장은 참모의 외침에 고함을 질렀다.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의 부하들이 철저하게 당화고 있었다.
그것도 병사와 병사들의 전의(戰意)가 부딪치는 맞대결이 아닌 일방적인 포격에 의해서 분쇄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상황을 파악해 보고하라!”
“보시다시피 미군의 포격이 거셉니다!”
“그건 나도 보고 있어! 하지만 숫자로 된 정확한 보고가 필요하다! 당장 파악해!”
“하, 하이잇!”
“전령들을 보내! 상황을 파악해 오는 것과 동시에 내 명령도 전하도록! 천하의 미국이라도 물량이 무한정일 수는 없다! 조금만 참아라! 조금만 참으면 이긴다!”
“하잇!”
아베 준장의 외침에 참모는 다급히 전령들을 불러 명령을 전달했다.
문제는 그 ‘조금’이 거의 1시간이 넘는 것이었다.
포신의 과열이 문제가 되면서 미군의 포병대는 포격을 멈췄다. 포격이 멈추자, 참호 속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일본군들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주변은 지옥이었다.
“키히! 키히히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집중포격이 만든 쉘 쇼크(Shall Shock)로 인해 실성을 해서 웃고만 있거나 바닥에 납작 엎드려 나무아미타불만 외우는 병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저 새끼들 치워!”
지휘관의 명령에 가까스로 제정신을 유지하던 병사들이 폐인이 되어 버린 병사들을 뒤로 옮겼다.
명령을 내린 지휘관은 군도를 지팡이처럼 짚은 채 창백해진 얼굴로 전방을 바라봤다. 순식간에 수많은 구덩이들이 만들어진 전방을 보며 지휘관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현대전의 ‘정도(正道)’라는 것이냐 이 비인간적인 풍경이 ”
“소좌님! 위험합니다!”
집요할 정도로 이뤄진 포격이 만들어 낸 황량함에 지휘관이 몸서리를 칠 때, 뒤에 서 있던 병사가 잽싸게 그를 참호로 밀어 넣으며 고함을 질렀다.
“공습이다! 공습이다!”
하늘에서 폭탄을 만재한 B-25 폭격기들이 그들을 향해 폭탄창을 열었다.
집요한 포탄의 비가 그치자 이번에는 폭탄의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B-25와 머스탱, 그리고 B-17과 어벤저, 돈틀리스까지 동원된 대규모 폭격이 끝나자 다시 한 번 포격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모든 포격과 폭격이 끝나고 나자 미군의 신예 전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차다!”
“전차다!”
“양키들의 초중전차(初重戰車)가 나타났다!”
포격과 폭격에 시달리는 것만으로도 탈진한 일본군 병사들은 참호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미군의 퍼싱 전차들을 바라봤다.
전투개시 후 단 5시간 만에 마닐라 북부를 막아서고 있던 일본군 5개 사단이 말 그대로 ‘먼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미군은 북부로 올라가는 길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틀 뒤, 니미츠가 이끄는 상륙부대가 랑가옌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