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192화 마닐라 해전 (17)
탈출한 미군 조종사에게 접근한 제로센들-전형적인 3기1조 구성의 1개 편대-이 탈출한 파일럿을 표적으로 20mm 기관포를 발사했다.
그것도 1대씩 돌아가면서 확실하게.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에 조 소령은 바로 명령을 내렸다.
“여기는 레드2! 오덕과 모비딕에게! 저 잡것들을 죽여 버려!”
“Copy!”
조 소령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안 중위와 성 중위, 그리고 성 중위의 장기까지 모조리 문제의 제로센들을 향해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프로펠러 전투기들을 상대로 한 전투가 벌어진 이후 잘 사용하지도 않던 애프터버너(After Burner)까지 가동하며 고속으로 날아간 3기의 전투기는 문제의 제로선 편대를 말 그대로 공중분해 시켜 버렸다.
그리고 조 소령은 전체 통신망을 통해 명령을 내렸다.
이후 전쟁이 진행된 내내는 물론이고 전후 군사전문가들과 전쟁역사학자, 나중에는 여성운동가들까지 끼어들어 논쟁을 벌이게 만든 ‘조의 명령(Cho’s Order)’이 발령된 것이었다.
“여기는 레드2! 모든 제트 파이터에 알린다! 목격한 이도 있겠지만 잽들이 터부(Taboo,금기)를 깼다! 놈들이 이젝션(Ejection, 탈출)한 아군 파일럿을 사살했다! 명령한다! 더 이상의 페어 게임(A Fair Game)은 없다! 건 사이트(Gun Sight, 조준기)의 레티클(Reticle. 조준선)을 미트볼이 아니라 칵핏에 맞춰라! 미트볼에 구멍을 내지 말고 칵핏 안의 잽들을 미트볼로 만들어 버려! 겁쟁이어서, 아니면 운이 좋아서 살아 돌아간 잽들 빼고는 단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오버!”
-Sir! Yes, Sir!
조 소령의 통신망 내에 있던 모든 파일럿-한국군이고 미군이고 가리지 않고-들이 사관학교 생도처럼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더욱 특이한 것은 조 소령에게 ‘sir.’라는 경어(敬語)를 붙인 것이었다.
선더캣의 파일럿이 될 이들은 미 해군에서도 우선적으로 고르고 고른 인재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제트엔진을 장착한 전투기의 전투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9전단 소속의 파일럿들이 교관으로 단기 속성교육을 했다.
엘리트 의식에 절은 미군 파일럿들과 탑건 출신에 육군 십자 무공훈장까지 받은 조 소령이 충돌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맴(Maam)’이 아니라 ‘Sir’라고 부르도록! 이것은 교관의 명령이다!”
조 소령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수료과정이 끝날 때까지 많은 이들이 ‘Sir’대신에 ‘Maam’이라는 호칭을 고집했던 미 해군 파일럿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조 소령의 명령에 ‘Sir!’라고 대답을 한 것이었다.
조 소령의 명령에 선더캣의 파일럿들이 바로 대답을 한 이후, 전투는 일방적인 학살로 변해갔다.
제로센과 라이덴을 합쳐 아직까지 살아남은 80여기의 일본기를 상대로 60기의 제트엔진 전투기와 120여기의 콜세어들이 더욱 끈질기고 잔인하게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었다.
날개나 동체에 불이 붙으면 물러나던 미 해군의 전투기들은 피격된 일본군 전투기들이 완전히 공중분해 될 때까지 20mm기관포탄을 퍼부어댔다.
수세에 몰린 일본군들의 사투는 눈물겨웠다.
항속거리와 근접선회능력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제로센은 말 그대로 공중에서 ‘찢겨’ 버렸다.
더욱 안 좋은 일은 한국군과 미군이 ‘끝장전투’를 벌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수의 라이덴들이 기수를 돌려 전투공역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기수를 돌린 라이덴들은 최고속도로 전장을 벗어났고, 완벽한 수적 열세에 빠져 버린 제로센들은 이리저리 밀려다니며 하나씩 공중분해로 그 생을 끝내야 했다.
* * *
“야메로(やめろ, 그만 둬)!”
탈출한 미군 조종사를 향해 사격을 하는 제로센들을 본 이와모토는 마이크를 붙잡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제로센들은 낙하산에 매달린 미군 파일럿을 죽여 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실물로는 처음 본 미군의 신형 전투기들의 철저한 보복에 공중분해가 되어버렸다.
“칙쇼!”
욕설을 내뱉은 이와모토는 전장의 상황을 살폈다.
미군의 공세가 갑자기 느슨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와모토는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놀라서가 아니다! 무엇인가 명령을 받고 있는 거다!”
이와모토의 본능은 공포를 느끼고 이곳에서 벗어날 것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와모토는 자신의 본능이 원하는 선택을 거부했다.
“칙쇼!”
욕설과 함께 이와모토는 조종간을 힘껏 틀어 콜세어의 꽁무니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사투는 계속 이어졌지만, 전세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제로센에 비해 속도와 화력, 방어력 모두 우월한 라이덴이었지만 콜세어의 성능은 라이덴보다 우수했다.
한술 더 떠서 독일이 개발했다는 터빈전투기와 비슷해 보이는 전투기들은 콜세어보다 더욱 우수한 성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한수, 두수 위의 전투기들이 작심하고 일본기들의 조종석만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결국, 이와모토는 다급히 자신의 지휘관인 시바타 대위의 전투기를 찾아 그 옆으로 날아갔다.
“대위! 후퇴해야 합니다! 이건 전투가 아닙니다!”
-전투에서 후퇴란 있을 수 없다!
“이건 전투가 아닙니다! 아까 저 멍청한 제로센들이 낙하산을 쏜 다음부터 전투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이 수라장을 벗어나야 합니다!”
-이와모토!
“전사는 두렵지 않습니다만 개죽음은 싫습니다!”
-후퇴는 안 된다니까! 함대를 엄호해야 한다!
“지금의 전력으로는 함대 엄호는 불가능합니다! 후퇴해야 합니다!”
이와모토의 말에 시바타는 주변의 창공을 바라봤다.
사방에서 공중분해 되거나 화염과 함께 추락하는 전투기들 대부분은 아군기들이었다.
“지금 후퇴해서 상부에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잘못하면 우리가 똥물을 뒤집어씁니다!”
이와모토의 말을 들은 시바타는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확 들었다.
자신 역시 조만간 소좌로 승진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지만 이시하라는 소좌였고, 비행기지의 지휘관이었다.
희생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알고 있던 시바타는 곧 이를 악물었다.
-후퇴한다!
“핫!”
시바타 대위는 라이덴 부대에게 후퇴할 것을 명령하며 기수를 돌렸다.
뒤이어 이와모토도 기수를 돌렸다.
시바타와 이와모토가 기수를 돌리자 살아남은 라이덴들이 줄줄이 기수를 돌리기 시작했다.
* * *
팔라완의 기지에 착륙한 이와무라와 시바타는 곧장 이시하라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한가로이 자신의 군도를 닦던 이시하라는 성난 기세로 쳐들어온 두 사람을 나무랐다.
“이 무슨 무례인가!”
“출격하기 전에 부하들에게 무슨 명령을 내린 것입니까!”
“무슨 명령이라니 최선을 다해 싸워 적에게 공포를 안겨 주라고 명령을 했을 뿐이야.”
“그래서 낙하산으로 탈출한 미군 파일럿을 쏘라고 한 것입니까 ”
시바타의 질문에 이시하라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그거 아까 말했던 적에게 공포를 주기 위한 작전이다. 전장의 잔혹함을 눈으로 보게 해 전의를 상실….”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분노에 찬 이와모토의 고성이 이시하라의 설명을 끊었다.
“전의를 상실 그 일로 인해 양키들의 눈이 돌아갔습니다! 그건 금기를 깨는 일이란 말입니다!”
“그 금기를 누가 정한 것인가! 전장은 잔혹한 법이야! 잔혹해야 이기는 법이란 말이다!”
“금기를 깨지 않아도 어차피 잔혹한 전장입니다! 그리고 그런 짓을 시키고 싶었으면 성능 좋은 전투기라도 가지고 일을 벌이던가!”
이와모토의 항변에 이시하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빠가야로! 네 놈이 전장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드는 거야! 그리고 제로센의 성능은 세계제일이다! 여태까지 무패의 전적을 쌓아왔어! 제로센의 성능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초심자들의 변명이야! 이제 갓 본토에서 온 초보….”
“이와모토 테츠조! 계급 상등비행병조(上等飛行兵曹)! 지나사변(支那事變, 중일전쟁)에서의 공로로 공5급금치훈장(功5級金 章)을 받았습니다!”
이와모토의 대답에 이시하라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그 모습에 시바타 대위가 한탄을 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인사기록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것보다도 이와모토의 얼굴조차 모르는 멍청이가 전선 지휘관이란 말이었던가….”
“그, 그건….”
“됐습니다. 도쿄에 바로 보고를 할 것입니다.”
“대위! 그건 월권이다! 보고는 내가한다! 입 다물어!”
이시하라가 계급을 내밀며 막으려했지만 시바타는 물러서지 않았다.
“우린 이 기지에 더부살이중이지 소좌의 부하들이 아닙니다.”“대위, 명령이다!”
“가자, 이와모토.”
“대위, 상비조! 이 발칙한 놈들!”
이시하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두 사람은 들은 척도 않고 이시하라의 사무실을 나갔다.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던 이시하라는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 * *
한편, 출격했던 전투기들이 돌아온 한반도의 상황도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무사히 착함하자마자 조 소령은 바로 전대장실로 불려갔다.
전대장 박 대령과 조 소령의 선임이자 또 다른 비행대의 지휘자인 김 중령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나서서 그런 명령을 내린 거야 ”
“현장에 있던 지휘관이라면 누군가는 확실하게 내렸을 명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럴 수는 있지. 그런데 왜 하필이면 자네가 ‘공개적으로’ 내렸다는 것이 문제야.”
“조금 과격했을 수는 있지만 부적절한 명령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관학교에서 배웠던 역사수업에서도 비슷한 명령들이 유럽 전선과 태평양 전선에서 발령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너처럼 대놓고 공개적으로 떠든 인간들은 없었어. 그게 문제야.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저는 군인입니다. 정치는 모릅니다.”
조 소령의 간단명료한 대답에 박 대령은 가슴을 두들겼다.
“아이고! 이 답답아! 앞으로 꽃길이 쫙 깔려있던 상황이란 말이다! 다른 녀석들 다 별 달 때, 너 혼자 대령으로 끝내고 싶냐! 영관급 장교 정도 되었으면 정치 쪽도 생각을 해야 할 것 아냐!”
“그렇게 정치를 생각했으면 한반도에 배치될 일도 없었을 겁니다!”
“아오! 이 답답이! 이걸 확! 아이고!”
분통이 터져 가슴을 두들기는 박 대령을 대신해 김 중령이 나섰다.
“문제는 네가 한 그 명령으로 인해 일본 놈들이 떠들어 댈 거리를 줬다는 것이야. 다른 부분이 아니라 마지막 문단이 문제가 될 거다, ‘도망간 놈들 빼고 살아있는 놈들을 남기지 말라.’는 명령 말이야. 그 명령대로라면 이젝션한 놈들도 다 죽이라는 말이 된다.”
“시작은 원숭이 놈들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그놈들이 언제 그런 거 먼저 인정하는 거 봤냐 지들이 한 짓은 싹 덮어 버리고 우리를 욕하고 다닐 거다. 그러면 네가 그 희생양이 될 수 있어. 그것을 생각했어야지.”
“전장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룰조차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서 저와 제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과감한 행동을 할 것을 명령해야 한다고 결정했을 뿐입니다.”
“이 답답아! 너 별 안 달 거야! 저 원숭이 새끼들이 똥덩어리 집어던진다고 너도 같이 집어던지면 어쩌자는 거야! 생각을 좀 했어야지!”
설명을 듣던 박 대령이 답답해 소리를 질렀지만 조 소령은 요지부동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정치는 잘 모릅니다. 그리고 공군에 들어온 것도 별 달고 싶어서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조국의 하늘을 지키고 싶어서 공사에 들어왔고, 전투기 파일럿이 되었습니다. 제 목표가 별이었다면 이곳에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스틱이 그년처럼 호텔방에서 딴 스틱 움켜주고 엉덩이를 흔들어서라도 더 좋은 곳에 갔을 겁니다.”
“아이고, 이 답답아….”
조 소령의 한결같은 대답에 박 대령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