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
183화 마닐라 해전 (8)
“1시간 후에 함재기들이 출격할 것이고, 3시간 뒤에는 본격적인 상륙작전이 시작될 거다. 시간에 맞출 수 있겠지 ”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인기 통제실에서는 작전관들이 파일럿들에게 계속 시간엄수를 강조하고 있었다.
문제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모니터를 바라보던 조종사들이 갑자기 이상반응을 보였다.
“목표지점 도… 허!”
“저게 뭐야!”
“무슨 일이야 ”
스팅레이 조종사들의 반응에 작전관이 허겁지겁 달려오자 조종사들이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목표물을 한번 보시죠.”
“뭔데….”
조종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던 작전관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목표인 드럼 요새의 포탑 지붕에 아주 대문짝만하게 일장기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정 중앙에 정성스럽게.
화면 속의 일장기를 바라보던 작전관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쟤들 뭐하자는 거냐….”
전쟁이란 것이 생겨난 이후 가장 문제가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피아식별이었다.
전장에 나서는 군인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피아식별을 해야만 했었다.
투구의 모습이라던가 투구에 꽂은 깃털, 아니면 갑옷의 색이나 모양, 군복의 색 등등. 그것은 2차 대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2차 대전 초기 제공권을 휘어잡았던 독일군은 포탑 후부나 전차 엔진룸 지붕에 대형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매달았고, 일본 해군의 많은 함장들은 주포탑 지붕에 일장기를 그려 넣었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잠시 넋이 나갔던 작전관과 파일럿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진행해 나갔다.
“일본 애들이 저렇게 성의를 보이는데 제대로 해야겠지 저 일장기의 미트볼 한 가운데에 정확히 집어넣어라.”
“기왕 도와주는 거. 욱일기면 더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페인트가 모자랐나 보지.”
농담 반 진담 반의 대화를 나누면서도 조종사들은 폭탄 조준기의 십자선을 일장기의 붉은 원에 맞췄다.
잠시 후, 스팅레이의 FCS(화기통제시스템)에서 조준이 완료되었다는 신호가 떴고, 조종사들은 트리거를 당겼다.
“Bombs away!”
2대의 스팅레이에서 투하된 2발의 GBU-28 벙커버스터는 유도레이저를 따라 일장기의 붉은 원 한 가운데 정확하게 박혔다.
처음 설계 당시 270mm, 드럼 요새에 설치하면서 300mm로 증가된 포탑의 상부장갑이었지만 2.1톤의 무게를 자랑하는 벙커버스터는 깨끗하게 관통해 포탑 내부로 들어갔다.
잠시 후, 엄청난 폭발이 드럼 요새에서 일어났다.
2700톤이 넘는 육중한 주포탑이 공중으로 떠올라 1m나 옆으로 밀려날 정도의 대폭발이 발생하면서 드럼 요새 내부에 있던 모든 일본군들이 전사했다.
폭발을 확인한 작전관은 아주 만족한 듯 조종사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오늘은 샴페인 없는 겁니까 ”
“야마토를 잡으면 원 없이 주마!”
“그 말 잊지 마십쇼!”
조종사들과 작전관의 대화 속에 무인기 조종실 문에는 새로운 전과마크가 그려졌다.
* * *
마닐라에 있는 필리핀 대통령궁.
필리핀 점령 이후 이곳은 필리핀 주둔 일본군 사령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민다나오에 있는 미군들에 대한 걱정으로 불면증에 걸렸던 다나카 시즈이치 필리핀 주둔군 사령관은 폭음이 들리자마자 침대에서 튕기듯이 일어났다.
허겁지겁 밖으로 튀어나온 다나카 사령관의 물음에 급하게 달려온 당직 장교가 상황을 설명했다.
“타이코(太鼓, 큰북) 요새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개수 후 ’Fort Drum’을 일본식으로 개명한 ‘타이코 요새(太鼓要塞)’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보고에 다나카 사령관은 상황을 확인했다.
“폭발의 규모는 심각한가 ”
“주포탑 2기 다 상실한 것 같습니다.”
당직 장교의 대답에 다나카 사령관은 분통을 터뜨렸다.
“칙쇼! 지금 같은 상황에 가장 중요한 방어수단인 타이코 요새를 상실하다니! 이 멍청한 해군 자식들!”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며 해군에 대한 온갖 욕설을 퍼붓던 다나카 사령관은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히고는 원인을 물었다.
“해군에서는 뭐라고 그래 테러인가 ”
“그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것이 아니면 뭐야 또 어떤 미친놈이 탄약고에 불이라도 질렀다는 것이야 ”
다나카 사령관이 ‘또’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일본해군에 전례-해군은 아직도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전함 무츠의 침몰사건이었다.
해군은 계속해서 원인불명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가혹행위에 앙심을 품은 수병의 자폭테러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었다.
다나카 사령관의 물음에 당직 장교는 고개를 저었다.
“타이코 요새에서 아직도 유폭이 일어나고 있어서 아직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접근조차 못했다면서 테러는 아니라고 이게 무슨 헛소리야 ”
“민다나오에 미군이 상륙한 이후, 타이코 요새에는 일본군 이외에는 그 누구도 접근을 못하게 막았다고 합니다.”
“쓸모없는 해군 녀석들! 언제 미군이 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혹시 모르니 마닐라만 인근을 방어하는 부대에 비상경계령을 하달해! 만약 테러라면 게릴라들의 후속 공격이 있을 거다!”
“핫!”
다나카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통신실이 바쁘게 움직였고, 곧 마닐라 인근의 육군 부대에 비상이 걸렸다.
* * *
한편, 예상하지 못한 사건에 발칵 뒤집힌 것은 일본 해군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해군 사령부가 자리한 산티아고 요새도 온갖 소란에 정신이 없었다.
“지금 당장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모든 함선에 비상령을 하달해!”
“핫!”
필리핀 주둔함대 사령관 오자와 자사부로의 명령에 통신장교는 전령을 불러 명령을 전달했다.
밝아 오는 하늘을 배경으로 저 멀리 드럼 요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본 오자와 자사부로는 고개를 돌려 장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직도 타이코 요새에 접근은 무리인가 ”
“오전 8시에 조사반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늦어! 지금 당장 투입시켜!”
“하지만 지금은….”
“어차피 몇 분 후면 해가 뜬다! 당장 투입 시켜!”
“핫!”
명령을 내린 오자와 자사부로는 연기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테러나 사보타주는 아니라고 했지만….”
테러나 사보타주의 가능성을 물어 오는 육군의 질문에 단호하게 부정을 한 오자와 자사부로였지만 스스로는 자신할 수가 없었다.
해군의 사적제제는 장교들 사이에서도 선임 장교가 후임 장교에게 사적 제재를 가하는 말로 ‘수담(手談)’이라는 바둑 용어가 쓰일 정도로 일상인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테러를 대비한답시고 정박한 함선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상인들이 술과 음식, 과일, 여자 등을 가지고 함선들을 들락거리고 있다는 것은 알만한 이들은 다 아는 일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일어난 폭발사고였고, 그 발생 원인으로 온갖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 통신장교가 오자와 자사부로에게 달려왔다.
“각하! 투입된 조사반의 1차 보고가 왔습니다!”
“말해 봐!”
“내부에서 진행 중인 화재로 인해 현재까지 내부 진입 못하고 있음! 생존자 전무(全無)로 추정! 주포탑 2기 전부 상실 확인!”
“칙쇼! 보고는 그걸로 끝인가 ”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칙쇼! 칙쇼!”
오자와 자사부로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칙쇼’를 연발했다.
발로 바닥을 내려치며 분통을 터뜨리던 오자와는 다른 상황을 확인했다.
“정박 중인 함선들에 비상령은 확실하게 내려졌나 ”
“핫! 확인했습니다!”
“지금부터 허가 없이 함선에 접근하는 외부인들은 무조건 사살하라고 해!”
“핫!”
“외부 감시망에 통신을 연결해서 수상 감시를 강화하라고 전하도록!”
“핫!”
오자와의 명령을 전달받은 통신장교가 전령을 부르자 오자와는 통신장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윽!”
“이 자식아! 네놈이 직접 갖다 와!”
“하, 핫!”
정강이를 걷어차인 통신장교가 밖으로 달려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장교가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각하! 코레히도르 섬에서 긴급 보고입니다! 대규모 적 항공기 출현! 이곳으로 직행 중!”
“적 항공기라고 확실한가!”
“굽은 날개의 전투기 확인! 보우토가 틀림없습니다!”
제조사가 ‘보우트(Vought)’였기에 ‘보우토’라는 별명이 붙은 콜세어를 확인했다는 보고에 오자와는 새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모든 부대에 공습경보 발령! 모든 함선들은 바다로 대피하라!”
“핫!”
“육군에게도 알려!”
“핫!”
오자와의 명령에 전령들이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갔다.
잠시 후, 산티아고 요새는 물론이고 마닐라 시내 여기저기에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 * *
“마닐라가 눈에 들어왔다!”
-항구에 함선들 확인!
어벤저의 항법사 자리에 앉은 마닐라 공습 제1차 공격대 지휘관 핸더슨 중령은 망원경으로 마닐라 시내와 연기가 올라오는 포트 드럼을 확인하고는 무전기의 키를 붙잡았다.
“여기는 핸더슨이다. 진주만의 복수전이다. 최선을 다해 맡은 임무를 달성하라, 오버.”
-카피!
-카피!
핸더슨 중령의 명령에 1차 공격대의 돈틀리스와 어벤저들은 두 개의 그룹으로 분리 되어 각자의 목표로 기수를 돌렸다.
작은 그룹은 코레히도르로 향했고, 덩치가 큰 다른 그룹은 마닐라 항구로 직진했다.
그들의 목표는 코레히도르에 자리 잡은 일본군 방어부대와 지금 마닐라 항구에서 허둥거리고 있는 일본의 필리핀 함대였다.
“총원! 전투준비! 총원 전투준비!”
“대공전투를 준비하라! 대공전투를 준비하라!”
시꺼먼 매연을 줄줄이 내뿜으며 기관실의 수병들이 보일러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전함 이세(伊勢)의 갑판 수병들은 바쁘게 대공전투를 준비했다.
개장을 통해 증설된 2연장 127mm 대공포 4기와 2연장 25mm 대공포10기의 조작을 맡은 수병들은 포신을 높게 위로 쳐든 채 상공을 살폈다.
“10시 방향! 왔다!”
“보우토다!”
“사격 개시!”
투투투퉁!
포반장들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이세의 갑판에서 하늘을 향해 예광탄들이 솟아올랐다.
이세의 옆에 있던 휴우가(日向)와 전함 야마시로(山城) 역시 대공사격을 개시했다.
뒤를 따라 사방에 흩어진 순양함들과 구축함들 역시 대공사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군은 불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해야 했다.
진주만 공습을 실행했던 당사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해군은 함선들의 정박위치를 선정할 때 대공전투를 예상하지 않고 효율적인 정박을 우선으로 배치를 한 것이었다.
그 결과 함선들 사이의 간섭으로 인해 제대로 된 대공사격이 불가능한 사각들이 대량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공격해 오는 미 해군의 어벤저와 돈틀리스들은 그동안 가상적 역할을 해줬던 일본 해군의 99식 함폭이나 97식 함상공격기에 비해 속도가 빨랐다.
아군기의 속도에 익숙해졌던 일본군들은 미처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잽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있는 대로 두들겨 버려! 저 탑들을 철거해라!”
-카피!
핸더슨 중령의 명령에 돈틀리스와 어벤저들은 일본 해군의 전함들에게 달려들었다.
높이 솟아 있는 일본 해군 특유의 ‘파고다’ 함교는 돈틀리스와 어벤저들이 폭격 진로와 각도 등을 손쉽게 가늠할 수 있는 최고의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일본 전함들은 점점 만신창이로 변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