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181화 마닐라 해전 (6)
조태식의 보고를 들은 고 제독이 이를 악물었다.
“이 미친 변태 놈들… 그래서 규모는 ”
“이곳 민다나오에 오게 된 강제노동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마닐라에 같이 도착한 이들이 약 1000명입니다. 문제는….”
잠시 말을 멈춘 조태식은 숨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이들과 같이 온 이들이 3차였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 이미 2번의 수송이 있었고, 그 이후에 몇 번이나 더 왔을지는 확인 불가입니다. 결론은 최하 3000입니다.”
조태식의 보고에 고 제독은 이마에 손을 얹었다.
“미치겠다… 그럼 그들이 다 필리핀에 있는 것인가 ”
“남방사령부에 배속된다는 풍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작전을 바꾸자고 주장할 수도 없고… 뭐가 연합국이고! 뭐가 핵심전력이야!”
고 제독은 자신들의 무력함에 분노했다.
필리핀의 수복이 끝나자마자 다음 행선지는 인도차이나였다.
필리핀과 인도차이나를 점령해 일본군의 수송망을 막아 버리고 중국으로 향하는 보급로를 확보한다는 계획을 바꾸자고 하기에는 9전단의 지분이 너무 약했다.
분노와 무력함에 휩싸인 고 제독을 보며 조태식이 마무리를 지었다.
“저는 지금 즉시 임정에 보고서를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강제 노동자들의 건의가 있습니다.”
“건의 ”
“국군에 지원하고 싶다고 합니다.”
조태식의 말에 고 제독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지원이라고 ”
부지런히 관련 보고서를 찾은 고 제독은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
“평균연령 32세. 최고령이 43세. 가장 어린 사람이 19세. 수는 현재 약 240명… 조 사무관. 내가 따로 보고서를 작성하겠지만 이 말을 덧붙이도록. 나는 찬성한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루손에는 혹시 몇 명이나 있는지 아나 ”
“적어도 4000이라고 들었습니다.”
“4000이라….”
“어쩌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이런저런 계산을 하는 고 제독의 얼굴에는 희망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 * *
조태식이 작성한 보고서는 장거리 무선통신을 이용해 LA에 도착했다.
미국의 텔레타이프라이터를 써야 하는 덕에 번역이라는 부가 작업까지 이어진 보고서를 받아 든 이들은 모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왜놈들은 모조리 변태라는 말이로군.”
김 주석의 짧은 말 한마디가 보고서를 받아든 모두의 생각이었다.
김 주석은 조영려와 정 수석차관을 바라봤다.
“외무부장, 정 수석차관. 이 빚은 톡톡히 받아 내야 할 걸세.”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는 대로 펄 벅 여사를 찾아갈 것입니다.”
“펄 벅 여사를 ”
“예. 펄 벅 여사와 엘리너 루스밸트 여사를 찾아갈 것입니다.”
“지금 대선 캠페인이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방문을 환영할까 ”
“그러려고 만든 인맥입니다. 잘 활용해야 합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겠네.”
“명심하겠습니다.”
김 주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송 소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이번 전쟁에서 우리 군의 역할이 더욱 커져야 합니다. 지금가지 적지 않은 공을 세웠고, 미국인들에게도 인지도도 많이 올라갔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양념 이상의 역할은 아닙니다. 우리의 지분을 키워야 합니다.”
“지분을 키우려 해도 사람이 없지 않은가 ”
“사람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조선인 노동자들 말입니다. 보고서에 있는 내용대로라면 정글에서 탈출에 성공해 살아남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국군에 지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 다음 내용을 보시면….”
송 소장의 발언에 각료들은 서둘러 보고서의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다음 페이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렇게 지원한 이들이 240명. 현재까지 수용된 조선인 노동자들 전원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알려 준 바에 따르면 이들이 민다나오에 오기 전까지 루손 섬에 있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수는 약 5,000, 이 가운데 일본군의 남방전선으로 빠져나간 이들이 꽤 있겠지만 방금 전 읽었던 정신대 관련 보고와 마찬가지로 몇 차례 더 왔을지도 모릅니다. 남방 전선에 빠진 이들을 빼더라도 최소한 3,000에서 4,000정도 있고 그 가운데 절반만 지원한다고 해도 우리 육군은 지금 규모에서 2배로 늘어나게 됩니다. 이들을 충분히 훈련시키고, 중동 전선에서 활동할 수준의 무장만 갖춘다면, 우리의 숙원인 본토진공에서 우리는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봤자 2개 여단 규모인데 주연으로 활동이 가능하겠나 ”
김 주석의 물음에 이청천이 대신 대답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의병들을 비롯한 무장 세력들이 중국으로 밀려난 이후 왜놈들이 조선에 주둔시킨 육군은 겨우 2개 사단입니다. 중동전선에서 천하의 독일군조차 우리의 화력을 사단 급으로 계산했습니다. 그런 화력을 가진 2개 여단이면 독자적인 교전은 무리일지라도 주력의 자리는 꿰찰 수 있습니다.”
이청천의 설명에 각료 하나가 문제점을 지적했다.
“확실히 좋은 생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병사로 훈련시키는 것에 드는 시간을 생각하면 작전 시간표에 맞출 수 있겠습니까 ”
“충분합니다. 다음 작전의 개시 시점은 필리핀이 안정화되고 3개월 후입니다. 3개월이면 충분히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이청천의 말에 이어 원 준장이 부연설명을 했다.
“12주 훈련 계획이 잡힌 것은 병사들을 단순한 소총수가 아니라 각 병과별로 훈련을 시키고 능력을 심사해 합당한 계급을 부여하기 위해 필요한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급하다면 4주 만으로도 병과별로 기본 능력은 갖추게 됩니다. 이후 계급 할당은 실전을 통해서 거를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좀 무서운 말이로군.”
“현실입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조선에 있는 2개 사단만을 상대하는 것이 다가 아니지 않습니까 만주에는 ‘세계최강’이라는 60만의 관동군이 있고, 일본 본토에는 100개 사단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주역으로 나서면 우리 피해가 너무 커지지 않겠습니까 ”
문제점을 지적당하자 원 준장은 즉시 해답을 내놓았다.
“필리핀을 안정화 시키고, 인도차이나 반도로 미군이 진격하게 되면 일본은 관동군을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필리핀에 이어 인도차이나 남부지역이 미군 손에 떨어지게 되면 일본군의 해상수송망은 끊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육로로 이동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가장 먼저 관동군에서 병력을 빼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 본토에 있는 100개 사단은 아직 완편이 된 것이 아닙니다. 미군 정보망이나 일본 천황참모본부의 발표, 그리고 일본의 경제력을 감안할 때 100개 사단의 편제가 완료 되는 시점은 1946년입니다. 만약 우리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본토진공을 하게 된다면 일본군은 현재 파악된 30개 사단 가운데 일부만을 동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부라고는 해도 적어도 10개 사단은 될 것 아닙니까 ”
“잊으셨습니까 일본군은 바다를 건너와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바다를 건너올 때쯤이면 바다는 우리 9전단과 미 해군이 장악하고 있을 시점입니다.”
원 준장의 거침없는 대답에 문제점을 지적하던 각료는 입을 다물었다.
원 준장의 발언이 끝나고 잠시의 침묵이 흐른 다음 송 소장이 입을 열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을 국군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생기는 이점은 단순히 규모만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 역시 향후 군과 경찰의 확대과정에서 최대한 핵심세력으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일본과 일본군에 적대적인 이들이 군과 경찰의 빈 자리를 채움으로써 일본군 출신자나 친일 세력들이 군과 경찰에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또한 군에서 행정업무를 익힌 다음 행정조직에 중간과 하급 간부로 집어넣으면 행정조직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행정조직 문제는 적어도 5년의 시간이 걸려야 투입이 가능해질 것이기는 합니다만… 이렇게 해서 적어도 10년의 시간을 잘 이용한다면 대한민국의 군, 경, 행정조직에 친일 세력은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송 소장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김 주석이 의문을 표시했다.
“그것은 모든 일이 다 잘 맞물려 돌아갔을 때의 이야기고, 너무 밝은 면만 보는 것은 아닌가 ”
“최대한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송 소장의 말을 끝으로 군부의 입장표명이 끝났다.
이에 대해 의견 교환이 이뤄진 끝에 김 주석이 결론을 내렸다.
“군의 방침을 수용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민다나오에 연락을 해서 지원한 조선인 노동자들을 이곳으로 보내 달라고 하시오. 그리고 앞으로도 조선인 노동자가 탈출해 나오면 의사를 물어보도록 하고. 그리고 루손에서도 작업이 필요할 테니 조 특별 사무관에게 계속 9전단과 함께 하라고 전하고.”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각자 맡은 업무를 계속하시오.”
김 주석의 말을 끝으로 군부 인사들과 각료들은 다들 자리를 떴다.
김 주석 외에 단 두 사람만 남기고.
남은 두 사람은 김기식 부주석과 조영려 외무부장이었다.
“무슨 할 말들이 있소이까 ”
김 주석의 물음에 김기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군이 개입하는 범위가 너무 넓어지고 있소이다.”
“맞습니다. 경찰은 몰라도 행정조직에까지 군 출신들이 장악한다면 모든 일이 군부 위주로 돌아갈 것입니다. 잘못하면 작금의 일본 꼴이 날지도 모릅니다.”
“그 문제는 나도 고민을 하고 있소, 저기 정 수석차관을 비롯해 젊은 친구들도 고민을 하고 있고.”
“군에 필요이상의 힘이 실리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나 역시 조 외무부장의 말에 동감이외다. 미국 사람들 말처럼 군대에 대한 ‘시빌리언 컨트롤(Civilian Control)’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외다.”
김기식은 ‘문민통제(文民統制)’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조영려 역시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 주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 역시 문민통제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 하지만 군대 외에는 사람이 없소. 사람이… 정 수석차관 역시 그 부분을 걱정해서 답을 찾고는 있지만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답은 예산편성의 칼자루를 끝까지 지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말밖에는 못하고 있더군. 거기에 더해 짧으면 10년, 길게 잡아 15년만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킬 수 있다면 문민통제의 원칙은 자리 잡힐 것 같다는 말도 했고. 그리고 미래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군부 독재라면 아주 치를 떤다고들 하니 그걸 믿어 볼 수밖에….”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예산통제는 물론이고 끊임없이 군부를 감찰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말이로군요.”
“그렇지.”
* * *
LA에서 군부의 과도한 세력 확대를 걱정하는 이들이 고민을 하는 동안, 한반도에서 명령문을 수신한 조태식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통신실의 천정을 바라봤다.
“이런 씨발…
-특별 사무관은 9전단과 함께 루손 지역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구출, 국군 지원자들을 모집할 것.
조선인 노동자들을 찾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를 싸돌아다니라는 명령이었다.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텔레타이프 담장 병사는 무심히 새로운 명령서를 조태식에게 내밀었다.
“추가 명령입니다.”
“고맙습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 여성들의 현황을 최대한 파악할 것.
-민다나오 섬에 있는 조선인 지원자들을 즉시 LA로 수송할 수 있는 교통편을 확보할 것.
명령문을 확인한 조태식은 명령문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독님을 찾아봬야겠군.”
조태식이 가지고 온 명령문을 확인한 고 제독은 빠르게 움직였다.
작전통제센터의 망부석(望夫石)이 되어 버린 니미츠와 맥아더를 찾은 고 제독은 미국으로 가는 선편을 요청했고, 니미츠는 흔쾌히 물자 하역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수송선에 자리를 마련해 줬다.
“호위함대가 따라 붙으니 안전은 최대한 확보가 될 걸세.”
“감사합니다.”
“동맹국의 국민이 군인으로 나선다는데 당연히 도와줘야지. 우리도 신세를 많이 지고 있으니까. 출항일자는 이틀 후니 준비를 시키게나.”
“이틀 후라면 ”
“우리가 루손으로 떠나는 날일세. 근처에 얼쩡거리는 잽들의 눈들을 청소하는 일이 거의 마무리가 되었거든.”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