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178화 (178/464)

# 178

178화 마닐라 해전 (3)

다음날 동이 막 틀 무렵, 다바오 비행장과 인근의 가설 비행장들이 요란한 폭음에 휩싸였다.

항공모함에서 내려진 함재기들과 수송선에 실려 도착 후 재조립과 정비를 끝낸 육군항공대의 B-25 폭격기들이 일제히 시동을 걸면서 난 폭음들이었다.

임시로 만든 가설 관제탑에서 각 비행대의 비행대장들이 손목시계를 보며 오른손을 들었다.

작전시각이 되자 비행대장들은 오른손을 아래로 내렸다.

“시작해.”

타아앙!

비행대장의 명령에 관제탑에 서 있던 병사가 하늘을 향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부아아앙!

신호탄을 보자마자 활주로에 대기하고 있던 항공기들은 일제히 브레이크를 풀고는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바오의 하늘은 미군의 항공기들로 가득 찼다.

각자의 기지 상공에서 편대를 구성한 공격대는 지정된 목표를 향해 기수를 돌렸다.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민다나오 섬의 중부 정글 지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들로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수백 대의 함재기들이 떨어트린 폭탄들이 만들어 낸 폭연이 채 가시기 전에 미군 해병대와 육군의 전투병들을 태운 헬리콥터들이 폭탄들이 만들어 낸 빈터와 인근의 초원에 병사들을 내려놓았다.

일명 ‘쥐 사냥’이 시작된 것이었다.

*    *    *

아포 산에 연결된 작은 야산 중턱에 있는 동굴.

“… 상황은 ”

“전령을 추가로 보내고 있습니다만. 좋지가 않습니다.”

카도카와의 대답에 요시카와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동이 트자마자 진행된 미군의 폭격에 정글 속에 만들어진 일본군들의 주둔지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동굴 속에 은신한 덕에 상처 하나 없이 폭격에서 목숨을 건진 요시카와는 진심으로 궁금한 것이 생겼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있는 곳을 알아낸 거지 ”

정글 깊숙한 곳에 최선을 다해 위장에 공을 들여 만든 주둔지였다.

취사를 시작으로 연기와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공을 들였고, 이동로도 친일파 원주민 게릴라들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드러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미군이 상륙한 이후 적잖은 전투를 벌였지만 정글은 일본군의 것이라고 자신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치명적인 공습을 당한 것이었다.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이고, 어이! 카도카와! 아직도 피해보고가 도착하지 않은 것인가 ”

“죄송합니다.”

“무선 보고는 ”

“무선 통신망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곳이 얼마 없습니다.”

“통신망이 살아있는 곳에서 주변으로 전령을 보내서 피해를 알아보라고 해! 우리가 직접 전령을 보내는 것보다 그게 더 빠를 거야.”

“알겠습니다.”

“빌어먹을 무전기!”

명령을 내린 요시카와는 동굴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걷어차며 분통을 터뜨리고는 답답한 가슴을 풀기 위해 동굴 입구로 걸어갔다.

미군이 가진 무기와 장비들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 일본군의 무기들과 장비들이었지만 무전기는 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결국, 말단 부대로 갈수록 무선통신이 아닌 전령에 의지하면서 한시가 급한 대응은 언제나 미군보다 반 박자 느린 상황이었다.

타타탕! 탕! 쾅!

“그럼 그렇지! 양키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사령부가 은신한 동굴과 다바오 사이의 정글 지대에서 들려오는 총성과 포성에 요시카와는 이를 부득 갈며 몸을 돌렸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온 요시카와는 선임참모인 카도카와를 찾았다.

“카도카와!”

“핫!”

“양키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통신망이 아직 살아있는 부대에 즉시 연락해서 미군의 주공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대응하라고 해!”

“핫!”

요시카와의 명령을 들은 카도카와가 무전기 앞에 앉은 통신병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을 때, 동굴입구로 전령이 달려 들어왔다.

“베이군(米軍)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강도가 매우 강합니다!”

역시나 반 박자, 아니 몇 박자가 느린 전령의 보고에 요시카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미 알고 있어! 그래서 주공이 어디야!”

“남쪽 전 지역입니다!”

“남쪽이라….”

전령의 보고에 요시카와는 지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군들과 가장 많은 충돌을 벌인 곳이었기 때문에 이해가 가는 지역이었다.

“그렇다면 다바오 동북 지역에 위치한 병력들을 동원해서….”

요시카와가 미군의 공세에 대한 대응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때, 전령들이 계속해서 동굴로 뛰어 들어왔다.

“적습! 적습입니다! 다바오 동북지역의 아군이 베이군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폭격으로 인한 피해 때문에 빠른 대처가 힘듭니다! 예비대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적의 공격입니다! 아포 산 동쪽지역에 양키들이 대규모로 공수되었습니다! 예비대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공수 ”

“공수라고!”

‘공수’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요시카와와 카도카와는 동시에 외쳤다.

“오토자이로!”

“오토자이로입니다!”

*    *    *

민다나오 중부 정글지대에 똬리를 튼 일본군을 상대로 미군이 취한 전술을 극히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점, 선, 면’이었다.

해군 함재기들과 육군항공대의 폭격으로 만들어진 점에 헬리콥터로 공수된 해병대와 육군의 전투병들이 점점 점의 크기를 넓혀가는 동안 외곽에서는 미군의 기갑장비들이 밀림을 뭉개 버리면서 전진을 시작했다.

퍼싱 전차들과 보병들의 엄호 속에 불도저가 밀림을 구성하는 나무들을 밀어 버리거나 아니면 전차나 자주포들이 불도저들을 대신해 밀림을 밀어 버렸다.

수 십t의 무게를 자랑하는 전차나 자주포의 무게를 버틸 정도로 큰 거목들이 자란 곳에서는 공병들이 나서서 도폭선, 다이너마이트, C4 등을 이용해 나무들을 ‘벌목’했다.

“Fire in the hole!”

쿠콰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굵기를 자랑하는 열대의 나무들의 밑동이 부서지며 쓰러졌다.

“밀어버려!”

“Yes, Sir!”

명령을 받은 시비즈(Sea Bees)의 병사가 불도저를 앞으로 몰고 나갔다.

두터운 철판으로 운전석을 둘러친 불도저는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거목을 한쪽으로 치웠다.

바로 뒤에서 상황을 살피던 퍼싱 부대의 지휘관이 무전기 마이크를 붙잡았다.

“길이 뚫렸다. 전진!”

“전진!”

쿠르릉!

땅을 울리는 거대한 진동음과 함께 퍼싱 전차들이 불도저의 옆을 지나 전진을 재개했다.

전진하는 퍼싱의 좌우로 보병들이 걸음을 옮겼고, 뒤이어 병사들을 가득 태운 하프트랙들과 프리스트 자주포들이 뒤를 따랐다.

이렇게 중장비들이 만드는 선들은 헬리콥터들로 공수된 병사들이 만든 점들을 연결했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이 진행되면서 면을 만들어냈고, 선도부대가 만든 선을 따라 들어온 후속부대가 만들어진 면으로 병사들을 밀어 넣어 일본군 잔존 병사들을 정리했다.

*    *    *

“순조롭군.”

한반도의 대형 모니터에 나타나는 진행 상황을 보면서 맥아더는 느긋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맥아더의 옆에 앉은 니미츠는 반대로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커맨드 쉽은 왜 안 써먹는 건데!’

차마 직설적인 말은 못하겠기에 니미츠는 서덜랜드 장군을 상대로 우회전술을 시전했다.

“작전이 언제쯤 안정화될 것 같나 ”

“적어도 앞으로 사흘이면 안정화 단계에 들어설 것 같습니다.”

서덜랜드 장군의 대답에 니미츠는 자신의 참모들을 돌아봤다.

“루손 섬 작전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겠지 ”

“사흘 정도면 괜찮습니다.”

참모들의 대답에 니미츠는 말없이 맥아더를 바라봤다.

말은 안했지만 니미츠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했다.

‘사흘 이내에 방 빼!’

서덜랜드와 니미츠, 그리고 니미츠의 참모들 사이에 대화를 듣던 맥아더가 입을 열었다.

“루손 작전에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만약 늦어질 것 같으면 이곳 민다나오에 배치된 병력을 빼서라도 시한을 맞춰 주겠소.”

“그 말 믿어보겠소. 이는 우리 미국의 승전을 위해서니까 말이오.”

끝까지 팽팽하게 서로를 견제하는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우위는 니미츠가 가지고 있었다.

‘미 육군 극동아시아 사령관’이기는 했지만 필리핀에 발이 묶인 맥아더와 달리 니미츠는 태평양 전체, 특히나 일본을 포함한 지역을 관할로 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워싱턴의 지지까지 등에 업은 이가 니미츠였다.

*    *    *

한편, 한쪽에서 전투에 나선 미군들이 보내는 보고를 기록하던 한국군 통신장교가 고 제독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

“전투를 진행 중인 미군들이 일본군 포로들을 획득했는데 그들이 계속 특정단어를 외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말을 흐리며 통신장교는 고 제독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쪽지에 적힌 내용을 보던 고 제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쵸센(Chosen) 설마 조선 ”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통신장교의 대답에 고 제독은 맥아더와 니미츠를 다급히 돌아봤다.

“획득한 포로들을 심문하는 곳에 우리 장교들을 보내고 싶습니다!”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고 제독의 심각한 얼굴에 맥아더와 니미츠는 바로 요청을 수락했다.

두 사령관이 수락하자 고 제독은 바로 한반도의 부장 이 중령을 단장으로 한 기무대의 장교들과 법무관들, 그리고 정신과 군의관들로 구성된 조사단을 헬기에 실어 바로 다바오로 보냈다.

다바오에 도착한 조사단은 바로 업무에 착수했다. ‘조센’이라는 단어를 말한 포로들을 따로 모아 심문을 한 조사단은 바로 보고서를 고 제독에게 제출했다.

보고서를 받아 내용을 확인한 고 제독은 니미츠와 맥아더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센’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이들은 다들 우리 한국인들입니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네. 하지만 포로는 포로일세. 단, 제네바 협약에 의거해 인도주의적인 대우를 해 주겠다는 약속은 하겠네.”

니미츠의 대답에 고 제독은 고개를 저었다.

“군인이라면 저도 이렇게 따로 언급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군인들이 아닙니다.”

“군인이 아니다 ”

“강제징용(Forced labour)된 노동자입니다.”

“강제징용 ”

“잽들이 국제협약을 어겼습니다. 1930년에 결의되었고 1932년 발효된 ILO(국제노동기구)의 협약 말입니다.”

고 제독의 발언에 두 노장(老將)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    *    *

고 제독의 요청을 받아들인 맥아더는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을 따로 수용했다.

맥아더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고 제독은 바로 LA로 긴급전문을 보냈다.

고 제독이 보낸 전문을 받아 든 정 수석차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려운 난이도를 가진 문제가 드디어 나타났군. 역사가 바뀌면서 안 나타나기를 바랬는데….”

텔레타이프를 통해 보내진 영문 보고서를 번역해 새로 작성된 보고서를 챙긴 정 수석차관은 임정의 각료들을 찾았다.

정 수석차관의 보고를 받은 임정의 각료들은 모두 다 침중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역사가 많이 바뀌었기에 약간의 희망을 가졌었건만….”

“피할 수 없는 비극인 건가 ”

각료들의 얼굴에 우울함이 가득한 가운데 김 주석이 입을 열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해법을 생각해야 하는가 ”

김 주석의 발언에 이청천이 입을 열었다.

“분하지만 군사적인 부분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 육군이 지금과 같은 수준의 무장을 한 부대로 단 3개 사단만 되었어도 독자적인 본토진공 작전을 폈겠습니다만….”

잠시 말을 흐린 이청천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지금처럼 중국 공산당이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말입니다.”

“마오! 이 빌어먹을 새끼!”

“마오나 스탈린이나 이제는 우리 민족의 적이오! 적!”

임정의 각료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은 의외로 좌익인사들이었다.

그들이 미국에 오기 전까지 알고 있었던 것만으로 계산을 해도 이청천이 말한 3개 사단 가운데 2개 사단은 만들 수 있었을 조선인들을 마오가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오가 조선 출신 병사들을 거부했던 시점부터 쌓이기 시작한 앙금은 결국 강력한 적대감으로 변해 버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