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172화 태평양, 반격의 시작 작전명 질식(suffocation) (13)
미군의 헬리콥터들이 향한 곳은 다바오의 서북 지역이었다.
다바오와 토릴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인 탈로모에서 좀 더 북쪽에 있는 지역으로 다바오 외곽에서 아포산의 밀림지대에 가장 가깝게 지나가는 도로가 자리한 곳이었다.
헬리콥터들의 편대의 가장 선도기에는 해병대 지휘관 머독 중령이 공용통신망을 통해 훈시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최전선에 있는 것이 해병대다! 해병대가 최전선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해병대가 있는 곳이 최전선이다! 아그들아(Boys)! 쫄지 말고 당당하게 싸워라!”
머독 중령의 훈시가 끝나갈 무렵, 헬기들의 선두그룹이 땅에 착륙을 시작했다.
머독 중령은 공용 통신망으로 고함을 질렀다.
“Let’s go, Marine!”
“우와아아아!”
머독 중령의 외침을 들으며 해병대들은 함성과 함께 밖으로 뛰쳐나갔다.
특유의 정신론으로 인해 ‘미친놈들’소리를 듣던 일본군들조차 ‘미친놈들’이라고 치를 떨던 몇 안 되는 부대-다른 부대로는 한국군 제1기계화 사단, 제3보병사단, 제6산악사단, 미 제8군-들 가운데 하나인 해병대가 드디어 제대로 된 똘끼를 보이기 시작한 전투였다.
일본군이 300기라고 관측한 헬리콥터들은 실은 350기였고, 그 가운데 40기는 탄약과 포탄 상자들을 가득 실은 헬리콥터들이었고 다른 40기는 헬기 강습 부대나 공수부대 전용으로 개발한 ‘보니 짚(Bony Jeep)’을 매달고 있었다.
마지막 탄약 상자들을 내린 헬리콥터의 기장은 무전기를 통해 머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상외에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다음 배달은 오후 5시입니다! 즐거운 사냥을 하시기 바랍니다!”
“고맙다! 오후 5시에 보도록 하지!”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무전을 보내십시오! 바로 날아오겠습니다!”
짧은 대화를 끝으로 머독 중령에게 경례를 한 기장은 헬리콥터를 이륙시켰다.
마지막 헬리콥터들을 배웅한 머독 중령은 병사들을 재촉했다
“탄약과 포탄들을 빨리 분배하고, 남은 것은 안전지대에 치장(治裝)하라!”
“알겠습니다!”
“보니(bony)들은 뭐하고 있는 거야! 어서 움직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민다나오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다 들을 정도로 시끄럽게 왔으니 일본군이 환영을 해 주러 올 것이다! 제대로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지! 어서 움직여!”
머독 중령의 재촉에 해병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모든 해병들이 바쁘게 물자들을 나르고 전투준비를 하는 동안 가장 발군의 효과를 보인 것은 ‘보니’였다. 윌리스 짚의 차체를 모두 걷어내고 가장 필수적인 프레임과 엔진, 조향장치만 단 상태에 운전석과 조수석, 그리고 평상 형식의 후방 짐칸만을 달아놓은 경량화의 극치를 이룬 차량이었다.
하지만 그 경량화 덕에 H-19 헬리콥터에 매달아 수송할 수 있는 유일한 차량이었다.
보니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역시나 한국군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떻게 만들다 보니 죄다 중장비만 만들었네….”
개조 차량들을 보던 한국군들은 죄다 무거운 놈들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한국 도로들이 그다지 좋은 상태는 아니겠지 ”
“저 차량들이 정규전에는 최적이지만….”
의견을 나누던 한국군들은 이번에는 아주 정반대의 개념을 가진 차량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바로 보니였다.
물론 보니를 본 미군 엔지니어들은 혀를 찼다.
“무슨 개념이 이렇게 극단적이야 극과 극이네 도대체 한국이 어떤 지형을 가진 나라이기에 이렇게 극과 극으로 노는 거야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엔지니어들과는 달리 보니를 보고 무릎을 탁 친 병과가 여럿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곳이 해병대와 공수부대였다.
“닥치고 저거 사줘!”
그리고 보니는 민다나오에서 자신의 값어치를 증명하고 있었다.
평상 형식의 화물칸에 탄약과 포탄들을 가득 실은 40기의 보니들이 해병대가 진을 친 곳 여기저기를 빨빨거리고 돌아다닌 덕에 일본군들이 모습을 보일 때쯤에는 예비탄약과 박격포탄, 기타 물자들을 충분히 준비한 해병대들이 살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일본군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 * *
민다나오의 일본군들 가운데 헬리콥터 강습에 가장 먼저 움직인 부대는 탈로모 지역의 일본군들이었다.
어제 밤늦도록 마신 술이 덜 깼는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본부에 들어선 다카야마 소좌는 바쁘게 움직이는 장교들을 붙잡고 상황을 확인했다.
“출동준비는 ”
“병사들은 끝냈습니다만, 트럭들이 문제입니다.”
“트럭들이 왜 ”
“지금 주둔지에 있는 트럭들을 다 끌어 모았지만 병사들의 1/3만을 태울 수 있을 뿐입니다.”
“칙쇼!”
숙취로 인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욕설을 뱉은 다카야마 소좌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씁! 어쩔 수 없지! 우선 트럭들에 태울 수 있을 만큼 태워서… 가만! 미군의 신형 항공기들이 향한 곳은 확인했나 ”
“지금 정찰병들과 민다나오 섬의 원주민들이 수색에 나섰습니다.”
“최대한 빨리 알아내라고 해! 그래야만 보고를 할 수 가 있다!”
“핫!”
다카야마 소좌가 부하들을 닦달하는 동안 통신장교가 들어와 다카야마 소좌에게 전문을 건넸다.
“뭐야 ”
“사령관께서 보내신 전문입니다.”
“줘봐!”
전문을 건네받은 다카야마 소좌는 소리를 내어 전문의 내용을 읽었다.
“‘양키들의 오토자이로의 착륙지점을 확인하는 즉시 사령관에게 보고하고, 제압에 나설 것.’이라….”
전문의 내용을 확인한 다카야마 소좌는 몸이 달아올랐다.
“정찰병들을 더 풀어! 차량이 모자라면 인근에 있는 지주들이 가지고 있는 차량들을 다 징발해!”
“지주들의 차량을 징발하는 것은 금지한다는 천황참모본부의 명령이….”
천황참모본부의 명령을 언급하며 부하 장교 하나가 반대를 하자 다카야마 소좌는 반대를 부하 장교의 정강이를 냅다 걷어찼다.
“상황이 안 좋잖아! 지금은 비상상황이야! 당장 실행해! 아무리 봐도 양키들이 착륙한 곳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부대가 우리 부대야! 그런 부대가 다른 부대들보다 늦으면 참 보기 좋겠다! 어서 징발해!”
“하, 하잇!”
정강이를 걷어차인 부하 장교가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가자 다카야마는 다른 부하들을 닦달했다.
“트럭을 못 구한 부대들은 우선 도보로라도 출발을 시켜! 목적지를 확인하면 중간에 방향을 틀면 된다! 우리 부대는 경보병 부대야! 도보로 움직여도 얼마든지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어서 움직여!”
“하잇!”
다카야마의 닦달에 부하들은 서둘러 병력들을 출동시켰다.
잠시 후, 일본군의 숙영지에서 완전무장을 한 일본군들이 줄지어 행군을 시작했다.
‘3보 이상은 구보’라는 말로 유명한 일본군들답게 숙영지를 나온 일본군들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본부에서 좌불안석하며 조바심을 부리던 다카야마에게 통신장교가 달려왔다.
“정찰병의 보고입니다! 드디어 확인했습니다!”
“어디야!”
“이곳, 탈로모의 북쪽 7.5km 부근입니다!”
“요시! 가자!”
군도를 챙겨든 다카야마는 대기하고 있던 쿠로가네(くろがね四起,九五式小型 用車,95식 소형승용차)에 올라탔다.
“출발!”
“출바알~!”
다카야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사이드카(93식 측차결합 자동이륜차)의 선도아래, 94식6륜트럭(九四式六輪自動貨車,94식6륜화차)들과 미군에게서 노획한 GMC트럭들이 일본군을 가득 태운 채 줄줄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 * *
“일본군들을 태운 트럭들이 오고 있습니다! 남동방향에서 접근 중입니다! 숫자는 대형트럭 약 20! 소형차량 3!”
통신장교의 보고에 머독 중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투준비! 해당 지역을 맡은 부대의 지휘관이 누구야!”
“베이커 대위입니다!”
“연결해!”
“연결했습니다!”
유선전화기의 수화기를 든 머독 중령은 베이커 대위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다! 그쪽으로 잽들이 오고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 ”
-들었습니다!
“첫 전투다! 제대로 환영해 줘라!”
-알겠습니다!
“건투를 빈다! 오버!”
-감사합니다, 오버!
통신을 끝낸 머독 중령은 참모를 돌아봤다.
“이제 시작이야, 다른 구역의 애들에게도 긴장 놓지 말라고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방어진지의 공사도 최대한 빨리 끝내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예비대는 제대로 준비하고 있겠지 ”
“대기하고 있습니다!”
“좋아! 모두에게 알려라! 본진이 상륙하기 전까지 우리가 최전선이다! 우리가 물러서면 상륙은 없다! 최선을 다해서 잽들을 뜯어 발겨라!”
“알겠습니다!”
* * *
미 해병대가 진을 친 곳에서 1km 떨어진 곳에서 다카야마는 자신을 막아서는 일본군들과 원주민들을 마주했다.
“미군을 발견한 니시카와 오장(伍長, 하사)입니다!”
“수고했다! 특이사항은 ”
다카야마의 치하를 받은 니시카와 오장은 바로 보고를 했다.
“우선 적의 수는 3,000을 조금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화포는 보이지 않지만 도로를 감제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화포는 보이지 않았다고 ”
“그렇습니다!”
“알았다, 수고했다. 돌아가 보도록!”
다카야마의 명령에 니시카와는 경례를 하고는 자신의 부하들과 원주민들을 이끌고 뒤로 물러났다.
쿠로가네에서 내린 다카야마는 전령을 통해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상황을 설명한 다카야마가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 했다.
“다행히 적들도 우리와 같은 경보병들인 것 같다. 지금 즉시 돌격해 양키들을 도륙한다!”
“하지만 천황참모본부의 명령은….”
또다시 부하 하나가 천황참모본부의 명령을 들먹이려하자 다카야마는 냅다 부하장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이 자식아! 도쿄는 도쿄고 여기는 여기다! 현장에서는 현장만의 임기응변이 필요한 법이야! 조만간 더 많은 미군이 상륙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저곳에 웅크리고 있는 미군들은 우환거리가 될 거다! 그렇게 되기 전에 쳐서 지운다! 500m 거리가 되면 하차해서 돌격을 준비한다! 황군의 혼을 보여 주는 거다!”
“하, 핫!”
반발을 잠재운 다카야마는 명령을 내렸다.
“우리 황군의 장기인 돌격을 건다! 모두 날카로운 창검이 되어 저 서양돼지들의 뱃가죽을 난도질해 버린다!”
“핫!”
“병사들이 하차한 다음 트럭들은 즉시 돌아가 도보로 이동하는 병사들을 실어온다! 그렇게 해서 1파와 2파가 준비되면 바로 돌격을 시작한다! 마지막 3파는 예비대로 준비한다!”
“핫!”
“그럼 움직여!”
다카야마의 명령의 부하장교들은 자신들의 부하들이 탄 트럭으로 자리를 옮겼다.
멈춰 섰던 차량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카야마가 말한 지점에서 병사들을 부리기 시작했다.
* * *
미 해병대가 웅크리고 있는 곳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도로변의 풀 숲.
“1파의 돌격준비는 끝났습니다!”
부하장교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다카야마는 쌍안경으로 500m 너머에 자리한 미 해병대 진지를 관찰했다.
“참호와 모래주머니로 방어진지를 구축하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않군….”
군데군데 야트막하게 쌓아놓은 방어진지들과 야트막한 참호에 웅크린 해병들을 관찰하던 다카야마는 슬그머니 욕심이 동하기 시작했다.
“아직 제대로 방어준비가 끝나지 않은 상태인데…. 바로 시작을 할까 ”
“병력이 부족합니다. 지금 있는 병사들은 다해서 300이 조금 안 됩니다! 3000을 상대로 300은 무리입니다!”
“아직 방어선이 제대로 구축이 안 되어 있어! 여기서 눈치만을 살피는 것은 적들에게 시간만 벌어주는 꼴이 될 것이다!”
“병력이 열세입니다!”
부하장교의 반발에 다카야마의 욕심은 결심으로 변해 버렸다.
물론 다카야마라고 무조건적으로 돌격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필리핀 점령과정에서 미군이 가진 제식소총은 자신들이 가진 99식 소총과 별반 다를 바 없는 5연발 수동장전식의 스프링필드 소총이었고, 기관총 역시 무겁디무거운 수냉식 기관총이 전부였다.
결국 다카야마는 확실하게 결심을 했다.
“이 정도는 야마토혼(大和魂)과 군인정신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어! 중국에서 이미 익숙하게 겪은 일 아니던가! 어차피 저들도 경무장이야! 기관총과 같이 무거운 것들은 얼마 없을 거다! 기능성은 충분하다! 돌격 준비해! 척탄통을 준비시켜라!”
“하이.”
다카야마의 명령에 부하장교는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전령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