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165화 태평양, 반격의 시작 작전명 질식(suffocation) (06)
투투투투투~.
한차례 미군 함재기들의 공습이 지나가고 잔해를 정리하던 일본군들은 하늘을 울리는 요란한 소음에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소리지 ”
다들 의아해 하는 가운데 수많은 점 같은 것들이 점점 커져갔다.
마침내 제대로 된 모습을 보게 된 일본군들은 삽자루를 내던지고는 방공호와 대공포 진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공습이다!(空襲である!)”
“공습!(空襲!)”
사방에서 공습이란 외침이 튀어나오고 일단의 병사들은 옆에 있던 수동식 사이렌의 크랭크를 돌려대기 시작했다.
에에에에엥~
그렇게 일본군들이 헬리콥터를 상대로 대공전투를 시작하는 때를 맞추어 콜세어들이 달려들었다.
1차 공습 후 귀함하여 연료의 재보급과 재무장을 하고 다시 출격한 콜세어들이었지만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계획대로 때에 맞춰 헬리콥터 부대를 엄호 할 수 있었다.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콜세어들은 일본군들의 대공방어 진지에 20mm 기관포탄들을 때려 박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기관포탄들에 의해 대공포 진지들과 기관총 진지들이 폐허로 변하는 가운데 헬리콥터들의 선두 그룹이 지면에 착륙했다.
“나가! 움직여!”
“뛰어! 뛰어!”
“잽들을 쓸어버려!”
“우아아아!”
지휘관들의 명령과 함께 함성을 지르며 헬기에서 내린 해병들은 눈앞에 보이는 일본군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타타탕! 타탕! 타타탕!
점사로 맞춘 K-1라이플들의 집중사격을 받은 일본군들이 땅에 픽픽 쓰러지는 가운데 뒤이어 내린 해병들이 먼저 내린 해병들을 초월해 앞으로 돌격을 했다.
200대의 헬기가 단 한 시간 동안 비행장과 인근 지역에 내려놓은 해병대원들만 2000명이었다.
상공에는 계속해서 콜세어와 어벤저, 돈틀리스가 날아와 틈만 나면 일본군들에게 일반 폭탄과 네이팜, 20mm 기관포탄을 퍼부었다.
항공세력이 쏟아 붇는 화력을 빼더라도 일본군과 미 해병들 사이의 화력격차는 메울 수 없는 틈이 벌어져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보병용 소총의 경우만 하더라도 일본군이 5연발 수동 장전식인 99식 소총을 쓰는데 반해 미 해병대는 20발들이 든 탄창에 반자동과 점사, 자동사격까지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는 K-1라이플이 기본이었다.
지원화기도 성능과 수량 모두에서 미 해병대에 밀리면서 일본군은 패배의 수렁으로 밀려들어갔다.
결국 작전이 벌어지고 3시간 후, 비행장과 인근 지역에서 살아남은 일본군들은 백기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이곳저곳의 폐허에서 양팔을 위로 들은 일본군들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해병대원들의 꼼꼼한 몸수색을 거친 일본군들은 한곳에 임시로 만들어진 포로수용소에 들어갔다.
그렇게 항복한 일본군들을 수용하면서 미 해병대원들은 점점 점령지역을 차근차근 넓혀갔다.
산발적인 총성이 여기저기서 울리는 시가전 끝에 그날 오후 3시, 맥아더는 참모의 보고를 받았다.
“카쿵 비행장과 인근 지역의 장악이 완료되었습니다.”
“인근이면 어느 정도지 ”
“비행장을 중심으로 반경 3마일(약 4.8km)의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수고했군.”
맥아더의 담담한 평가 속에 참모가 말을 덧붙였다.
“그 헬리콥터라는 물건이 제대로 밥값을 했습니다, 적어도 정글전투에서는 최강의 조커가 될 것 같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그리고 쿠팡 지역은 어떠한가 ”
“상륙을 늦게 시작한 만큼 아직 진행 중입니다만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래 ”
담담한 맥아더의 목소리를 들으며 참모는 맥아더의 얼굴을 봤지만 선글라스에 가려진 맥아더의 얼굴에서는 아무 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
“아닙니다.”
“카쿵 지역이 완료되었으니 작전의 초반은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에 변경이 있기는 있었지만 쿠팡 지역도 최대한 빨리 점령해서 교두보를 확보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작전이 최종 실행준비 단계까지 올라가면서 한 가지 변화가 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상륙지점이 한곳에서 2곳으로 늘었다는 것이었다.
수아이에서 쿠팡까지는 직선거리로 200km가 살짝 넘는 거리였다.
거기에 우거진 밀림과 마이라우 산맥이라는 천혜의 장애물 때문에 빠른 진격은 도저히 무리라는 결론이 참모들과 실행부대의 지휘관들에게서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네덜란드 놈들!”
역시나 일을 추가하게 만든 제일 큰 원인이 빈약한 지리정보였던 탓에 맥아더의 참모들은 네덜란드를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작전계획을 손봐야 했다.
그런 수정 작업 끝에 쿠팡을 목표로 한 상륙지점은 타블로롱(Tablolong)이었다.
티모르섬의 남서쪽을 돌아 조금 더 북상한 지점이기 때문에 다윈에서 가장 먼저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륙은 수아이보다 1시간 늦게 시작되었다.
거기에 더해 헬리콥터의 지원도 없었기 때문에 쿠팡을 점령하는 병력들은 장갑 트럭과 LVT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려 쿠팡으로 향해야 했다.
그런 일들이 겹쳐 쿠팡을 점령하기 위한 전투는 카쿵 비행장의 전투보다 약 2시간 늦게 시작되었다.
* * *
순조롭게 진행되던 작전 덕에 평온하던 분위기가 단박에 뒤집어진 것은 저녁 무렵 올라온 보고 때문이었다.
“참모장님! 큰일이 생겼습니다!”
다급히 사무실로 들어온 참모의 외침에 참모장 서덜랜드 장군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큰일 무슨 일인데 ”
“우리가 점령한 비행장이 카쿵 비행장이 아니랍니다!”
참모의 보고에 서덜랜드 장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
‘인지하지 못한 실수로 인한 착오가 불러온 대형사고’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된 사고-한국군들은 ‘이 산이 아닌가벼.’사고라고 풍자한-가 드디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미군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인지한 것은 전장 정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손재주가 좋은 몇몇 해병대원들이 비행장 건물에 붙어있던 일본어 간판을 떼어내고 ‘카쿵 비행장(Cakung Airfield)’라고 써놓은 대형 나무판자를 건물 벽에 매달았다.
일본군을 몰아내 준 것을 환영하기 위해 나왔던 네덜란드인 목사가 판자를 보고는 해병에게 질문을 던졌다.
“카쿵이 어떤 사람인가요 ”
미군들이 일반적으로 주요 시설물에 사람 이름을 붙인다는 것을 알고 있던 네덜란드 목사는 카쿵이 누구인지 물은 것이었지만, 정작 해병대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예 이 비행장의 이름이 카쿵 아니었습니까 ”
“예 이 비행장의 이름은 딜리(Dili) 비행장인데요 ”
“예 예에 ”
네덜란드 목사의 대답을 들은 해병대원들은 급히 자신들의 소대장을 불렀다.
사정을 들은 소대장은 지도를 꺼내 들고 자신들의 있는 곳을 가리켰다.
“지도에는 카쿵 비행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
소대장과 함께 지도를 살피던 네덜란드 목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도에 잘못 적혀 있네요, 이곳이 딜리인 것은 맞는데 이 비행장의 이름은 딜리 비행장에요. 카쿵은….”
잠시 말을 멈춘 네덜란드 목사는 전장정리를 돕던 티모르 원주민을 불러 테툼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덜란드 목사와 대화를 나누던 티모르 원주민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또 다른 원주민을 불렀고, 그런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고 나서야 네덜란드 목사는 해병대 소위와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카쿵이 당신네 쪽 인명이나 지명이 아니고 이곳 동티모르와 관련이 있다면, 카쿵이라는 지명을 쓰는 곳이 있긴 있어요. 여기서 동쪽으로 더 가야 하는데 이 사람들 말에 의하면… 적어도 90km는 더 가야 하겠군요 ”
네덜란드 목사의 설명에 해병대 소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호, 혹시… 그곳에도 비행장이 있습니까 ”
소위의 물음에 네덜란드 목사는 예의 원주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고개를 가로젓던 원주민은 잠시 후, 다른 원주민들을 더 불러왔고 그들의 설명을 들은 네덜란드 목사가 소위에게 대답했다.
“있다는데요 일본군이 만든 작은 비행장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목사의 대답에 해병대 소위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Fuck…….”
일이 터졌다는 것을 확인한 소위는 바로 자신의 상급자에게 사실을 보고했다.
기겁을 한 상급자 역시 자신의 위로 보고를 했고, 그렇게 지휘선을 타고 올라온 보고가 서덜랜드에게 도착을 한 것이었다.
쾅!
“빌어먹을! 엿 먹을! 좆같은! 빌어먹을 똥 같은!(Damn it! Fuck you! Fucking! Fucking shit!)”
거칠게 책상을 내려치며 욕설을 내뱉은 서덜랜드 장군은 참모들에게 명령했다.
“1시간 주겠다! 당장 무슨 일이 어떻게, 왜 벌어졌는지 파악해 와! 1분이라도 늦으면 네놈들 모두 군사재판에 넘겨 버리겠다!”
“알겠습니다!”
서덜랜드 장군의 명령에 참모들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달려 나갔다.
참모들이 지도 제작을 담당한 이들을 쥐 잡듯이 닦달해 알아낸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사건의 발단은 문제의 네덜란드 지도였다.
1902년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비행장 같은 것이 존재할 리가 만무했다.
결국 미군들은 항공정찰을 통해 입수한 사진들을 통해 지도에 내용물을 기록해야 했는데 이 작업을 위해 촬영한 사진만 무려 5000장이었다. 그리고 티모르 섬에 인맥이 있는 네덜란드 인들을 활용해 획득한 지리정보가 A4서류용지로 1000장이 넘었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나게 한 원인 가운데 하나인 일본군이 만든 비행장은 원주민들이 보기에는 커다랬지만 미군들의 관점에서 보기엔 초소형이었다는 점이었다.
5000장의 사진과 1000장의 지리 정보들은 몇 부씩 복사되어 지도 제작을 맡은 이들에게 분배되었다.
수많은 이들이 작업에 매달리면서 중복과 의도치 않은 탈락, 오기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라면 몇 번의 검토가 이뤄졌겠지만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배경 덕에 원래의 카쿵 비행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딜리 비행장이 카쿵 비행장이 된 것이었다.
보고를 받은 맥아더는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가 입을 다물고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잠시 동안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화를 삭인 맥아더는 서덜랜드 장군에게 상황을 확인했다.
“그래서 문제의 비행장 위치는 확인했나 ”
“확인했습니다, 매우 작은 비행장이었습니다.”
“작기는 해도 언제든지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곳이다. 해군에 연락해 그곳을 폭격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예비대에서 병력을 빼서 해당지역을 장악할 수 있는지 가늠해보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즉시 워싱턴에 보고하도록.”
맥아더의 명령에 서덜랜드 장군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워싱턴에 말입니까 좋은 말이 안 나올 텐데요 각하에게 안 좋은 말이 나올 것이 확실합니다.”
“내 실수인 것은 인정해야겠지. 하지만 이런 일이 우리만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아닌가 당장 유럽 침공을 한다면 같은 일을 또 겪을 수 있어. 거기에 필리핀 빼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지리 정보는 하나도 없지 않은가 기껏 상륙하고 나서 장님마냥 한 발자국씩 확인하면서 갈 수는 없는 일이야. 워싱턴에 이야기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해.”
“알겠습니다.”
맥아더의 말이 합당했기 때문에 서덜랜드 장군은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욕을 피하지 못하고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화를 참지 못한 서덜랜드와 참모부로 인해 지도 제작 담당자들은 한동안 시달려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