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161화 (161/464)

# 161

161화 태평양, 반격의 시작  작전명 질식(suffocation) (02)

한국군과 미국 해군이 총기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정기 재고 검사 때였다.

1개 대대를 무장시킬 수 있는 수량의 소총들이 사라졌다는 보고에 한국군은 물론이고, 미 해군까지 발칵 뒤집혔다.

미군 헌병대는 물론이고, 한국군의 얼마 안 되는 헌병들과 기무대 소속 인원들, 거기에 FBI까지 가세해 전방위 수사가 벌어졌다.

수사 결과, 민간인들의 암시장으로 흘러 나간 것은 없고, 군 내부의 소행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단 한번이라도 LA에 있는 미 해군의 물자보급창고 근처를 지나갔던 모든 부대에 전수조사 명령이 나간 것이었다.

그 조사 결과, 반데그리프트 장군 휘하의 미 해병1사단에서 총기들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본국의 소환령일세.”

시드니에 있는 미 해군 헌병대 건물에서 헌병대 대령은 문제의 ‘네다바이’-한국군이 쓰던 은어가 어느새 미군까지 들어갔다-사건을 일으킨 소령에게 전문을 내밀었다.

“오늘 출항하는 수송선이 있으니 바로 타고 LA로 가게나.”

“알겠습니다.”

사건의 장본인 에이던 헌트 소령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전문을 받아들었다.

LA에 도착한 헌트 소령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해병대 사령부로 끌려갔다.

“내 경력은 이걸로 끝이로군.”

작게 푸념을 한 헌트 소령이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은 해병대 인사위원회였다.

별을 단 해병대 장성들이 앉아서 헌트 소령을 노려보고 있었다.

“헌트 소령.”

“예!”

바짝 군기가 들어 칼같이 서 있는 헌트소령을 보며 해병대 장성 하나가 작은 나무 상자를 내밀었다.

“열어보도록.”

“예!”

헌트 소령이 열은 상자 안에는 중령 계급장이 들어 있었다.

생각지 못한 의외의 사건에 헌트 소령이 멍한 눈으로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자 장성들 가운데 하나가 입을 열었다.

“소령, 귀관이 한 일이 잘한 일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범죄지, 그런데 우리로서는 속이 시원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자네에게 전투부대 지휘권은 줄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부터 자네가 가서 할 일은 해병대 보급을 책임지는 일이다! 해병대가 제대로 싸울 수 있도록 뒤를 받치는 것. 그것이 자네의 임무고 자네의 전장이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지 ”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일 보도록.”

*    *    *

대형 사고를 친 간부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승진을 시켜 버렸다는 소식에 워싱턴의 최고 지휘부는 발칵 뒤집혀졌다.

호출을 받아 올라온 해병대 사령관은 마셜 장군의 질책에 벌컥 화를 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습니까! 우리 애들 들고 다니는 소총부터 말해 볼까요 육군이 개런드를 받아 들고 다닐 때, 우리는 1차 대전에서나 쓰던 스프링필드를 가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육군이 신형 개런드와 신형 기관총을 받아 들었을 때, 우리는 육군이 쓰던 구형 개런드와 물통달린 기관총을 받아 들었습니다! 군복은 어떻습니까! 육군 애들이 신형 위장군복을 배급받았을 때 우리 애들은 창고에서 썩고 있던 냄새나는 구형 제복에 각반 차고 다녀야 했습니다! 어째서! 언제나 선봉에 서야 할 해병대가 가장 낙후된 장비를 받아 써야 하는 겁니까!”

해병대 사령관의 항변에 킹 제독은 강하게, 리히 제독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킹 제독은 원래 마셜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리히 제독은 최고 상급자로서 중립을 지켜야 했지만 해병대 사령관의 말에 동감을 했기 때문이었다.

슬쩍 뒤로 물러난 두 사람 때문에 해병대 사령관의 직접적인 표적이 된 마셜 장군은 진땀을 흘리며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말일세, 절도는 좀….”

“절도가 아니라 전술적인 행동입니다! ‘항상 승리를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 이것이 제가 사관학교 때부터 귀에 못이 배기도록 들어온 말입니다! 그리고 해병은 언제나 신속 과감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래도 타국군의 물자를 함부로….”

“타국군은 넘치도록 쓰게 넘겨주고, 자국군은 거렁뱅이 신세로 돌아단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저 디트로이트의 산업단지에서 넘치게 나온 물량의 절반은 지금 바다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머지 절반으로도 영국과 프랑스, 소련이 넘치게 쓰고 있습니다. 우리 해병대는 1차 대전 때 장비를 쓰고 있는 상황에 말입니다!”

“그건 좀 과장이….”

“과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우리 해병대에 한번 와 보십시오!”

해병대 사령관에 거센 반발에 마셜 장군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울분과 한이 가득 섞인 해병대 사령관의 외침이 통했는지, 아니면 또다시 창고가 털리는 일이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국방부는 해병대에게 총기와 피복 한정으로 독자적인 예산집행권한을 주었다.

“부르셨습니까 ”

호출을 받고 해병대 보급단 본부장실을 방문한 헌트 소령에게 보급단 대장은 짧게 명령을 내렸다.

“사령관이 이겼다. 애들을 위해서 최대한 챙겨 봐.”

“Yes, Sir!”

헌트 소령이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오자, 당번병이 들어와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손님 ”

“예, 중령님. 한국 정부에서 왔다고 합니다.”

“크흠!”

‘한국 정부’라는 말이 나오자 헌트 중령의 표정이 묘해졌다. 헛기침으로 불편한 표정을 감춘 헌트 중령이 당번병에게 손짓을 했다.

“들어오시라고 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동양인이 헌트 중령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조달부 국방1과 과장 임백천이라고 합니다.”

임백천이 내민 명함을 받아 읽은 헌트 중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소개를 하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헌트라고 하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악수를 하며 통성명을 한 두 사람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먼저 입을 연 이는 헌트 중령이었다.

“예… 우선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겠습니다. 총기 도난 사건은 심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존슨 라이플 사장님은 좋아하시더군요. 매출이 늘게 생겼다고 말입니다.”

임백천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헌트 중령은 그제야 얼굴이 편안해졌다.

“그런가요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

“소문을 듣자하니 해병대는 총기류와 개인 피복류에 관해서는 독자적인 조달 권한과 예산 집행권한을 획득했다고 들었습니다,”

“소문이 참 빠르군요, 사실입니다. 해병대가 독자적으로 총기류와 피복구매를 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 우리 군이 사용하는 총기류와 피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임백천의 물음에 헌트 중령은 망설임이 없이 바로 대답을 했다.

“K-1라이플과 카빈의 경우에는 매우 좋은 총기요. 우리 역시 존슨 라이플 컴퍼니에 오더를 넣을 생각이고, 피복은… 잘 생각해보지 않았소.”

헌트 중령의 대답에 임백천은 잽싸게 가방을 열고 파일을 꺼내 헌트 중령에게 내밀었다.

“우리 군이 사용하는 전투복과 개인장비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사진은 해당 전투복과 개인장비를 착용한 상태로 정글 전투를 상정한 사진입니다.”

선명한 컬러 사진이 첨부된 파일을 보던 헌트 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구려, 그런데 말이요. 나도 이 일을 맡으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말이요. 군복 원단에 색이 하나 더 들어가고, 주머니가 하나 더 늘수록 구입단가는 올라가지. 비록 해병대가 독자적인 예산집행권한이 있다지만, 그것도 정부에서 배정한 예산 이내에서만 독자적으로 쓸 수 있다는 소리요.”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하나 여쭙고 싶은 것은 전투를 벌여야 할 군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입니다.”

“그야 있으면…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예산이 문제요 소총은 어떻게 한다고 쳐도”

여전히 예산을 들먹이는 헌트 중령의 말을 끊으며 임백천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공동구매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공동구매 ”

“대량생산은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단가가 싸지지요. 만약 해병대와 우리 군이 공동으로 구매를 한다면 조금 더 싼값에 구매를 할 수가 있습니다. 대충 예를 들자면 K-1라이플 두 자루 살 돈으로 세 자루를 사기는 무리겠지만, 10자루 살 돈으로 12자루나 13자루를 살 수가 있게 됩니다. 피복 역시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잠깐, 잠깐만!”

손을 들어 임백천의 말을 막은 헌트 중령은 계산을 해 보기 시작했다.

종이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손익계산을 해 보던 헌트 중령은 임백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군요.”

*    *    *

임백천의 제안이 좋다고 생각한 헌트 중령은 바로 상부에 보고서를 올렸다.

헌트 중령의 보고서를 받아든 해병대 장성들은 바로 OK 사인을 날렸다.

“좋아! 한번 제대로 추진해 보게! 만약 제대로만 한다면 이 일이 끝날 때쯤 자네는 독수리를 어깨에 달고 있을 걸세!”

“감사합니다!”

장교 계급에서 독수리는 바로 대령을 뜻하는 것이었기에 헌트 중령은 더욱 열심히 매달렸다.

‘공동구매’의 제안을 받은 존슨과 피복회사의 사장은 단가 인하에 합의를 했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존슨은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정 수석차관을 돌아봤다.

“이게 Mr.정이 말한 윈-윈 이로군요!”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특히나 품질에 신경 써 주시고 말입니다.”

“걱정 마시오! 내 보증하리다!”

계약서 작성을 끝내고 나온 정 수석차관은 임백천의 어깨를 두드리며 치하했다.

“수고했어! 주석님과 부주석님, 특히 수금 부주석께서 아주 좋아하시더군! 포상과 인센티브가 내려갈 거야. 잘했어.”

“감사합니다!”

‘인센티브’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임백천이었다.

‘공동구매’를 통해 해병대와 한국군에게는 예전보다 더욱 싼값에 그리고 더욱 빠르게 소총과 피복류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특히나 개발은 했지만 단가문제로 접어 뒀던 ‘나이더(Nydar)’형식-야간에도 사용가능하게 꼼수를 부린-의 도트 사이트가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절도문제로 골치가 아플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과, 지름이 동하기는 했지만 단가 문제로 손을 놨던 장비가 드디어 공급된다는 사실에 한국군이 만족했다면, 정부의 공무원들은 다른 문제로 더욱 열심히 각종 업무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을 독려한 것은 ‘인센티브’였다.

“인센티브 포상 공무원에게 그게 과연 필요한 것인가 ”

김 주석을 비롯한 각료들의 질문에 정 수석차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합니다. 공무원 급여의 현실화를 독립이후 선결과제에 넣기는 했지만, 여전히 박봉인 것은 사실입니다. 조선시대에 관리들, 특히 지방아전의 문제가 뭐였습니까 박봉, 또는 아예 무급이었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필수였습니다. 이 부분을 막기 위해서는 공무원 급여의 현실화는 필수입니다.”

“그건 그렇다 치세. 하지만 인센티브는 아무래도….”

“인센티브를 잘 이용하면 공무원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옛말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센티브는 고래가 하늘도 날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정부각료들은 부정적이었지만 정 수석차관은 끈질기게 설득해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첫 수혜자로 임백천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총기 절도 사건과 해병대의 독자적인 예산집행의 소문을 듣자마자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였다.

*    *    *

생산시설을 확충함과 동시에 시간외 근무까지 벌이면서 미 해병대와 한국군을 대상으로 한 물자보급은 빠르게 이어졌다.

새로운 피복과 총기를 전달받은 해병대는 가장 먼저 호주에 있는 해병1사단과 2사단에 우선적으로 공급했다.

새로운 총기와 피목을 전달받은 해병대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딱 봐도 육군의 개런드보다 우수해 보이는 소총에 육군과 다른 디자인의 전투복은 가뜩이나 남들과 다른 것을 좋아하는 해병대원들의 취향을 직격했다.

*    *    *

“작전의 개시일이 연기된 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관련 보고서를 손에 들은 헌트 중령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작전 개시일에 맞추기 위해 한국군이 빌린 창고에 쌓여있던 물자부터 빼내려고 했지만, 이는 본토진공작전을 준비하던 한국군이 강하게 거부를 했다.

덕분에 헌트 중령은 노심초사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로 작전이 늦어지게 된 것이었다.

맥아더의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영국과 영국에 더부살이하고 있던 네덜란드 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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