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159화 (159/464)

# 159

159화 작전명 ‘알리바바’ (15)

시간을 달라고 요청을 한 사라코울루는 주미 터키 대사관을 통해 터키 본국에 향후 대처에 관한 질문을 했다.

사라코울루의 전문을 받은 이뇌뉘와 각료들은 긴급회의를 열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했다.

격론이 이어진 끝에 사라코울르가 받아든 회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쿠르드의 국가가 설립될 경우, 터키는 이 국가를 인정하겠다.

단, 터키 남부의 쿠르드인들이 분리 독립을 선언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회담 당사자들은 이에 대한 어떠한 방식의 지원도 하지 않을 것을 문서로 확약한다.

당사자에는 쿠르드 국가를 설립할 쿠르드의 부족들도 포함된다.

-앞으로 생길지 모르는 쿠르드 국가와 터키 거주 쿠르드 인들 사이의 통행의 자유는 보장하나, 통행로는 터키가 지정한 통로만을 사용해야 한다. 만약 지정된 통로 외의 지역을 이용하다 적발된 경우, 터키는 이들을 범죄자로 처벌을 할 것이다.

위의 조항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회담 당사자들이 문서로 확약을 받아낼 것.

-전쟁이 끝나고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터키를 지지할 것을 문서로 확약 받을 것.

-향후, 터키의 발전을 위한 자금 및 자원, 기술의 지원에 적극적인 협조를 해 줄 것을 문서로 확약 받을 것.

“적절하군.”

본국에서 보낸 통신문을 읽은 사라코울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문을 서류철에 끼워 넣은 사라코울르는 창밖으로 보이는 워싱턴의 행정부 건물들을 보며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내일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다음 날, 회담이 시작되자마자 사라코울루는 헐 국무장관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본국에서 온 훈령이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제안이오.”

사라코울루가 내민 서류철을 열어 내용을 읽은 헐 국무장관은 조영려에게 서류를 건넸다.

그것을 시작으로 회담 당사자들이 다 읽은 서류를 다시 손에 든 헐 국무장관은 짧게 대답했다.

“Reasonable, But not acceptable.(합당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

헐 국무장관의 말에 사라코울루를 제외한 모든 당사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사라코울루가 버럭 소리를 지르기 직전 헐 국무장관이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합당한, 매우 진일보한 제안이오. 하지만 몇 개를 좀 조율하고 싶소이다.”

“조율 ”

“그렇소, 조율. 그동안 이 회담이 계속해서 어그러지기만 했던 것이 무엇이었소이까 그나마 가장 괜찮은 제안이 나왔으니 조금만 더 조율을 하면 될 것 같소.”

헐 국무장관의 말에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힌 사라코울루가 팔짱을 낀 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좋소. 어디 들어 봅시다, 그리고 그 조율이란 거 해 봅시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의 진통을 거쳐 최종안이 만들어졌다.

최종안의 내용은 터키의 최종안과 거의 똑같았지만 단서조항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터키 영토 내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의 분리 독립 운동의 원인이 터키에 있지 않는 한, 이 조약 당사자들은 분리 독립운동을 지원하지 않는다.

-터키의 비인간적인 압박으로 인한 쿠르드인의 탈출, 또는 터키의 국경봉쇄와 같은 일로 인해 해당 경로가 아닌 다른 경로를 사용할 경우, 조약 당사자들은 이들을 적극 보호한다.

-그리스와 터키 분쟁이 발발할 경우, 터키가 원인제공을 하지 않는 한 조약당사자들은 터키를 지지할 것이다.

-터키를 대상으로 한 지원은 민간부분에 한하며 5년 단위로 지원 범위에 관한 협의를 진행한다.

최종안을 놓고 약간의 말싸움이 있었지만, 결국 터키를 대표해 사라코울루가 조약에 사인을 했다.

그 결과, 모술 지역과 이란에 거주한 쿠르드 지역, 그리고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 거주지역과 라타키아 항구를 포함한 지역이 쿠르드족에게 넘어갔다.

덩달아 요르단 역시 하이파 항구과 연결되는 지역까지의 확장을 약속받았다.

“감사합니다! 알라의 가호가 늘 함께 하시기를!”

눈물범벅이 된 쿠르드족 대표는 호텔방을 찾아와 조영려의 손을 붙잡고 연신 감사를 표했다, 옆에 자리한 요르단 사자 나미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호를 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명심하실 것이 있습니다.”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에 답을 한 조영려는 곧 이어 진지한 목소리로 경고를 했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이 모든 것은 단지 약속일뿐입니다, 조약 역시 종이에 적어 놓은 문장일 따름이지요. 이 모든 것을 실체화시키려면 여러분들은 상당한 희생을 감수해야만 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희생으로 여러분들의 후손의 풍요를 보장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우리의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그럼 나중에 전쟁이 끝나고, 웃으며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는 진심으로 환영하겠습니다!”

쿠르드와 요르단의 사자들을 배웅한 조영려는 씁쓸함이 가득한 얼굴로 정 수석차관을 바라봤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으십니까 ”

“아닐세, 그냥….”

말을 흐린 조영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한잔 하겠나 ”

호텔에 자리한 바로 자리를 옮긴 조영려는 위스키 잔을 앞에 두고 정 수석차관에게 말을 걸었다.

“정 차관, 아니 정길수군. 아까 만났던 쿠르드족과 요르단의 사자들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더군.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 참가한 김규식 동지를 돕기 위해서 말이지. 그런데 고생 끝에 도착하니 회의는 이미 끝났고, 우리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지. 강대국들끼리 교환한 계산서 목록에 우리는 없었던 거지,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나서서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도울 수 있지 않았나 비록 정치적인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는 해도 말이지.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그런 감정이 자꾸 가슴에 남아.”

말을 하는 조영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손수건을 꺼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조영려는 정 수석차관의 잔에 위스키를 다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 의미에서 난, 아니 나를 비롯한 임정의 모든 이들은 다들 자네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네. 자네들이 있어준 덕에 미국의 인정도 받았고, 조국의 독립도 약속을 받았으니 말일세.”

“아직은 약속일뿐입니다, 앞으로 많은 희생이 필요할 겁니다.”

“그건 잘 알고 있네. 여러 번 겪었으니까. 그것 때문에 준비도 철저히 하고 있고 말이야, 부주석이 우리 임정 각료들의 월급까지 털어 가면서 말이지.”

조영려는 부주석을 입에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    *    *

LA에 둥지를 튼 다음 9전단의 사람들 외에 가장 바쁘게 움직인 사람들을 뽑자면 부주석 김기식과 유일한이 가장 먼저 손꼽힐 정도로 김기식은 바쁘게 움직였다.

영어에 능통한 덕에 다른 임정각료들과 달리 시간여유가 생긴 김기식이 매달린 것은 경제였다.

“대한제국이 똑똑한 부자였다면 그렇게 당했을 리 없다! 멍청한데다 가난하기까지 했으니 그 꼴이 된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힘! 그것도 금력(金力)이 가장 필요하다!”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서 당한 치욕을 곱씹으며 와신상담한 김기식은 정 수석차관이 미국의 차관을 얻어내고, 유일한과 함께 코람 캐피탈‘을 만들자 김 주석을 비롯한 각료들에게 선포했다.

“내치와 외교는 동지들에게 맡기겠소! 나는 조국의 독립을 위한 돈을 벌겠소!”

선언과 동시에 김기식은 행동을 시작했다.

일주일의 반은 UCLA의 도서관에 틀어박혀 경제관련 학술서적들을 읽었고, 나머지 반은 코람 캐피탈의 운영을 관찰했다.

6개월이 지났을 때, 김 주석을 비롯한 각료들을 찾은 김기식은 그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내가 봤는데 말이오. 나라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들이 필요하오. 그런데 하늘이 유능한 인재들을 내려준다 해도 제대로 배워 깨우치지 못하면 쓸 데가 없어! 인재를 키우려면 돈이 필요하오! 동지들! 동지들이 받은 월급이 필요하오! 많이도 필요 없소! 딱 절반만 내놓으시오!”

“이보시오, 부주석….”

난데없이 돈을 내놓으라는 김기식의 말에 김백 주석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지만 김기식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여기 모인 동지들 모두 독립 운동한다고 집을 떠나 혈혈단신 아니오! 홀아비들 주제에 돈 쓸 일이 어디 있어! 지금 술 한 잔 사 먹을 돈을 모아 후일 인재들이 읽을 책 한 권, 인재들이 먹을 한 끼 밥값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하오!”

“하지만 조국에는 가족이 있소… 나중에 돌아간다면 그들에게도….”

“그러니까 절반은 남겨 준다고 하지 않소! 저기 정 수석차관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각료들 월급이라고 책정한 금액이 얼마나 큰 금액인지 알기나 하오 내가 찾아보니 엄청납디다! 절반만 있어도 나중에 돌아가서 큰소리 칠 수 있소! 그러니까 당장 내놓으시오!”

LA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픈 곳보다 안 아픈 곳이 어디인지 먼저 물으라.’고 할 정도로 골골거리던 양반이 뿜어내는 기세에 주석을 비롯한 모든 각료들은 각자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야 했다.

물론, 예상보다 많은 소비를 한 각료들은 김기식에게 한소리를 들어야 했다.

“자네는 조국 독립에 앞서 음주 독립부터 하게나!”

그렇게 뜯어낸 돈으로 김기식은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한국 공무원 연금 장학재단.(Korea Public Employees Pension Scholarship Foundation. KPPSF.)’라 명명된 장학재단은 코람 캐피탈이 설립한 ‘코람 장학재단(KORAM Scholarship Foundation. KSF.), 벌레와 빨갱이가 주축이 돼서 만든 ’한국 군인 연금 장학재단(Korea Military Pension Scholarship Foundation. KMPSF.)와 함께 3대 장학재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훗날, 이들 장학재단의 도움으로 미국 내 한인 자녀들과 한국 유학생들, 그리고 미국인 인재들이 유수의 명문대로 진학해 사회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3대 장학회는 ‘출세의 징표’로 한국과 미국인들에게 인식되게 되었다.

*    *    *

‘수금(收金)’이라는 새로운 호까지 달게 된 김기식을 주제로 짧게 이야기를 하던 조영려는 진지한 눈으로 정 수석차관을 돌아봤다.

“정군.”

“예, 외무부장님.”

“자네 독립 이후, 김 주석 이후를 생각한 적 있나 ”

조영려의 물음에 정 수석차관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김 주석 이후라면 차기 대권을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

“맞네, 독립도 중요하지만 독립 이후도 중요해. 주석이라면 친일파 척결까지는 무사히 끝내실 수 있으실 걸세, 하지만 그 이후에는… 솔직히 말해 그 이후는 보이지가 않네. 부주석 부주석은 말 그대로 경제에만 몰두할 양반일세. 그렇게 따지면 주석 이후는 암흑이야. 조국 땅에서 가장 큰 세력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공산주의자들과 친일파들이야. 친일파는 척결의 대상이고 공산주의자들이 득세를 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될 걸세. 나는 주석 이후의 국정을 책임지고 싶네.”

조영려의 말에 정 수석차관은 주변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저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

“모른 척 하기는… 지금 우리 정부의 가장 큰 실세가 누구인가 자네와 자네의 부하들 아닌가 ”

조영려의 말에 정 수석차관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 실세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실세와 비세가 나뉘는 순간 부패가 시작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는 조용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법이라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는 법이지요.”

“그 나무의 뿌리를 깊게 만드는 것에 나도 일조를 하고 싶다는 것일세.”

“그 마음은 모두가 같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주석을 비롯해 동지들의 나이를 보면 앞으로가 문제라는 것도 잘 알지 않나 잘해야 앞으로 10년이야. 미리 준비를 해야 하네.”

조영려의 말에 정 수석차관의 얼굴에는 짙은 수심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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