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155화 작전명 ‘알리바바’ (11)
라타키아의 항구에서 도남규와 벌레, 빨갱이가 미군의 신형전차를 주제로 만담을 하는 동안, 바로 옆에서도 미군들이 수송선에서 내려지는 신형장비들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검수를 나온 기갑부대와 육군항공대의 소령들이 하역을 담당한 기술대위를 상대로 검수를 진행하고 있었다.
“연락기가 꽤 많이 내려지는데 이 지역에서 저게 많이 쓰일 일이 있나 ”
“저거 무인기입니다.”
“무인기 ”
“예, 형식명이 RCD(Radio controlled Drone)-5. ‘왓치 버드(Watch Bird)’입니다.”
“무인기가 왜 필요… 아! 저거 한국군이 잘 써먹고 있는 그 자그마한 귀염둥이를 대체하는 거야 ”
“그렇습니다.”
기갑부대의 소령이 말한 ‘자그마한 귀염둥이들’은 한국군이 운영하는 드론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 * *
한국군과 연합 작전을 펼치면서 미군들은 한국군이 어떤 장비를 어떻게 사용하며, 그 장비들이 어디에서 어떤 효용을 보이는지 자세하게 보고서를 작성했다.
무선을 통해서, 아니면 정기적으로 오가는 수송선단을 이용해 보고서는 꾸준하게 워싱턴으로 들어갔고, 미군의 장성들은 보고서가 올 때마다 밤을 새어 가면서 분석을 했다.
전선의 미군들이 작성해서 올린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한 장비로는 에어컨, 개틀링, 궤도 및 차륜형 자주포, 마지막으로 드론이었다.
“에어컨은 아무리 봐도 사치야.”
“개틀링이 괜찮다고 흐음… 연구를 해 봐야겠군.”
“자주포들은 이미 우리도 집중 배치하고 있으니 패스.”
가장 먼저 에어컨이 날아갔고, 개틀링은 연구라는 이름으로 보류, 자주포는 이미 있어서 패스를 한 미군의 장성들은 ‘드론’에 시선을 모았다.
“이거 쓸 만한데 우리도 한번 만들어 보자.”
장성들은 의견을 모았고, 결국 미육군 병기개발국에 오더가 내려갔다.
오더를 받은 병기개발국의 엔지니어들이 뒤집어진 것은 보지 않아도 빤한 일이었다.
“2000년대의 첨단 기술로 만든 것들을 1942년의 기술로 만들라니 불가능합니다!”
“우리도 알아, 아주 잘 알아.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금 우리 기술로 최대한 가능한 선까지 해 보자는 거야.”
“한국군이 쓰는 것과 100% 똑같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닐세,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근접한 장비들을 만들자는 거지.”
대답을 들은 치프 엔지니어는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장성들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 말씀 확실하신 거죠 한국군과 똑같은 물건이 아니라 최대한 근접한 장비를 개발하라는 것 말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한계는 잘 알아, 원한다면 문서로도 작성해 주겠네. 단, 우리도 이렇게 편의를 봐주는 만큼 최대한 빨리 결과물을 보고 싶네.”
“알겠습니다, 문서로 작성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며칠 뒤, 해당 오더를 내린 장성들의 연명 사인이 들어간 서류가 도착하고 나서야 엔지니어들은 안심하고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에 들어가면서 엔지니어들은 머리를 맞대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전용기체를 새로 설계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기존의 기체를 개조하는 것이 낫겠지 ”
“그게 합리적이지.”
“전에 누가 올렸던 기획안 생각나 ”
“무슨 ”
“원격조종 자폭 폭격기.”
“아! 기억났다! 다들 그거 보고 미친놈이라고 욕했던 거!”
“그거를 이용해 보자고.”
“그거 괜찮네.”
시간이동 전에 기록된 역사에서는 1944년부터 시작되었던 ‘아프로디테 프로젝트’가 2년 앞서 세상에 나오려는 순간, 누군가가 초를 쳤다.
“그런데 그거 폭격기 이용하는 거잖아 전선 정찰용으로 폭격기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덩치가 너무 크잖아 ”
“그런가 ”
다들 고개를 갸웃할 때, 또 다른 엔지니어가 말을 덧붙였다.
“거기에 랜딩기어 조작관련부분까지 신경 쓰자면 제어부가 너무 커져, 보고서를 보니까 한국군의 그 비행체도 착륙장치는 고정이더라고.”
“흐음….”
이런저런 의견 교환 끝에 여러 종류의 기체들이 후보로 올라왔고 엔지니어들은 매의 눈으로 후보기종들을 심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최후로 낙점을 받은 것이 L-5 센티넬이었다.
* * *
“그렇게 해서 저 느림보깡통들이 무인기가 된 것입니다. 고정식 랜딩기어에 고정피치 프로펠러라 제어도 간단하고, 제작비도 싸고… 저 기체 구매단가보다 저 안에 실린 TV카메라와 녹화장비, 제어장비가 더 비싸니 말 다했죠.”
기술대위의 설명을 들은 소령들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제어와 영상 확인은 어떻게 하는 거야 한국군처럼 트럭에서 다하는 거야 ”
질문을 받은 대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쉽게도 그 정도까지 기술은 안 돼서요. 저쪽에 먼저 내려진 B-25들 있지 않습니까 그게 제어기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DD(Drone Director)-25‘퍼펫티어(Puppeteer, 인형술사)’라고 불리는 녀석입니다, 저기서 제어를 합니다.”
“무장을 했군 ”
50구경 기관총의 총신들이 삐죽이 튀어나온 기수를 보며 소령이 지적하자 기술대위가 설명했다.
“만약 적기의 공격을 받을 경우 제어기의 임무는 무인기를 격추하고 바로 도주를 하는 것입니다.”
“아아….”
기술대위의 설명에 소령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검수를 하던 소령들의 눈에 특이하게 생긴 B-17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 폭탄창이 왜 저래 꼭 주니어 가졌을 때 내 마누라 배 같구먼,”
폭탄창 부근이 불룩 튀어나온 B-17을 보며 육군항공대 소령이 던진 질문에 기술대위가 바로 대답을 했다.
“레이더 탑재 B-17입니다, 정식명으로는 PB-1W ‘왓치타워(Watchtower,감시탑)’입니다.”
“레이더탑재라면 한국군의 그 접시 ”
육군항공대 소령의 대답에 기술대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접시만큼의 성능은 안 나오지만 그래도 65마일(약100km)까지는 탐지 가능합니다.”
“그 정도만 해도 어느 정도 대응할 시간은 가질 수 있지.”
“그래도 육군항공대는 B-17을 써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해군은 어벤저에 탑재하느라 아직도 고생 중입니다.”
“하하하!”
원역사에서는 1946년부터 배치되기 시작했던, 그것도 해군에 배치되어야 했던 기체가 예상보다 3년이나 먼저 세상에 나온 것이었다.
가볍게 웃음을 터뜨린 육군항공대 소령은 기술대위를 바라봤다.
“좋은 설명 고마웠네, 대위는 이제 돌아가는 것인가 ”
“아닙니다, 저 기체들의 실전운영을 보면서 기술지도 및 개선점 파악을 해야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미육군항공대 기술대위 올리버 마이어라고 합니다.”
“독일계인가 ”
“증조부 때 미국에 왔습니다.”
마이어 대위의 설명을 들은 소령은 대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대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중동전선에서 독일군과 유대군, 일본군들을 상대하기 위한 지원병력들과 물자들의 하역이 끝나자 한국군들이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각종장비들이 조심스럽게 배에 실리고 미군과 한국군들이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줄지어 오르고 있는 동안 부두 한쪽에는 일단의 아랍인들이 모여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트랜스 요르단과 이라크, 시리아 지역의 군주 가문인 하심가(家)의 사자들과 쿠르드 족의 사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심가 사자들의 대표인 나미르 빈 압둘 이브라힘 하심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이 탈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보내며 그의 아버지 압둘 빈 이브라힘 누마이르 하심은 신신당부를 했다.
‘미국에 가면 반드시 요르단의 생존을 보장받고 와라! 가문의 형제들이 큰 실수를 했어! 잘못하면 영국의 손에 가문이 멸문당할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국의 손을 잡아야 한다!’
“하아~.”
부친의 당부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던 나미르는 다른 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쿠르드인들을 바라봤다.
그들 역시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나미르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일이 어쩌다가….”
독일군과 유대군이 중동에 진출하면서 시나이 반도를 경계로 동쪽 지역은 다 독일군과 유대군의 세력권에 들어갔고, 몇 달 전에는 페르시아 지역이 일본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 지역-정확하게는 몬술, 바그다드, 바스라-의 군주인 파이살2세가 독일과 동맹을 맺어 버렸다.
페르시아 지역 역시 마찬가지였다.
렌드리스의 통로를 열어 줄 것을 거부한 이란제국의 국왕 팔라비1세가 거부하자 영국과 소련은 이란제국을 무단으로 침공했다.
팔라비 1세는 결국 퇴위 후, 망명의 길을 떠나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군이 밀고 들어오자 팔라비2세는 일본과의 적극적인 동맹을 만방에 공표한 상황이었다.
그때까지의 상황을 보자면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지역에서 영국은 완전히 축출되어 버렸고 독일과 유대군, 일본군의 지원 속에 모든 것이 두 군주의 뜻대로만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은 시나이 반도에 도착해서 느긋하게 행동할 것처럼 보이던 미군이 기습적으로 움직이면서 완전히 반대가 되어 버렸다.
미군은 파죽지세로 독일군과 유대군을 압박해 지중해에서 중동으로 들어오는 해안지방을 거의 다 점령하고 터키 국경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일본군 역시 마찬가지, 페르시아 해에서 벌어진 대해전(大海戰)에서 연합함대는 궤멸당해 버렸고, 육군은 카나저 공방전에서 미군에게 대패를 당한 이후 알 트와르에 처박혀 눈치만 보는 상황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과 같은 상황이 된 것은 요르단에 자리한 하심 가문이었다.
가문의 대족장이었던 후세인 빈 알리(Hussein bin Ali)의 차남이자 트랜스 요르단의 군주였던 압둘라는 3남인 파이살1세에게로 도망을 가야만 했다.
남은 하심가문의 일원들은 미군에 최대한 협조를 하며 영국군이 돌아오지 않기만을 비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빌어먹을 영국놈들….”
나미르는 저 멀리에서 미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영국군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애초에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영국이었다.
지난 1차 대전에서 영국은 후세인에게 오스만투르크를 상대로 한 반란을 종용했다.
반란의 대가는 아라비아 왕국의 국왕자리.
영토는 아라비아 반도, 반란은 성공했고 영국은 승전했다.
하지만 영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영국은 몬술, 바그다드, 바스라의 3개 주와 트랜스 요르단 지방만을 넘겨주고는 팔레스타인지역을 포함한 나머지를 챙겼고,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반트 지역을 삼켜 버렸다.
후세인을 비롯한 하심가문으로서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독일이 밀고 들어오면서 독일에 적극적으로 협력을 하게 된 것이었다.
만약 영국이 제대로 약속만 지켰다면 하심 가문은 중립 아니면 영국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분통을 터뜨려 봤자 지금 상황은 변함이 없지….”
멀리 보이는 영국군들을 향해 이를 갈던 나미르는 자신의 감정을 정리했다.
가문의 형제들이 한 불운한 선택 때문에 지금 가문은 멸망의 위기 앞에 서 있었다.
언제까지 영국을 욕할 수도 없고, 불운을 한탄할 수도 없는 상황. 나미르는 굳은 얼굴로 짐을 챙겼다.
“지금은 그저 최선을 다할 뿐, 나머지는 알라의 뜻을 따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