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141화 늪 (20)
사흘 뒤, 카나저.
일본군이 10km 전방까지 왔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장비들을 점검하던 벌레가 툴툴거렸다.
“차아아암 빨리도 온다. 지들 떠났다는 말 듣고 나서 우리가 출발했는데 이제 오냐 ”
“이 땡볕에 사막을 걸어오는 애들이 이 정도면 빨리 온 거지.”
빨갱이가 타박을 했지만, 벌레는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야! 생각해 봐라. 하루에 15km 조금 넘는 거리밖에 못 왔다는 게 믿겨지냐 우리 군에서 혹서기 훈련할 때도 그것보다는 많이 걸었다!”
“한참 많이 걸었지.”
벌레의 지적에 대답이 궁해진 빨갱이는 우물거리며 말을 흐렸다.
벌레의 지적처럼 일본군의 이동속도는 예상보다 한참이나 느린 속도였다.
덕분에 무다구치는 길길이 날뛰며 부하지휘관들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것이 하루 일과였을 정도였다.
“이런 느림보 녀석들! 식충이들! 게을러빠진 녀석들!”
무다구치의 비난에 지휘관들은 입술을 깨물며 아픔을 참는 것이 다였다.
솔직히 일본군 지휘관들에게도 변명을 할 이야깃거리는 있었다.
중동지역에 도착한 일본군에게는 트럭이 없었다.
일본군이 아무리 19세기적 사고방식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차량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군의 수송능력으로는 충분한 수의 트럭을 가지고 오는 것은 무리였다.
중국 전선의 경우 한반도를 이용할 수 있었고, 남방 전선의 경우 영국과 미국 등이 남기고 난 트럭들을 노획해 빈틈을 메울 수 있었다.
하지만, 중동전선은 그게 불가능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일본 본토에서 모든 것을 준비해 배로 실어 날라야하는 상황에서 트럭의 우선순위는 무기와 탄약, 의약품과 식량 등에 밀려 저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중동의 기후가 문제였다.
충분한 수의 트럭을 수송할 수 없다는 문제의 해답으로 일본군은 전통적인 방식, 말을 이용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중동의 무더위에 사람은 물론이고 말까지 지쳐 쓰러져 폐사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응급처방으로 현지의 말 또는 낙타를 구매하려 했지만, 낙타는 말을 잘 듣지 않았고 말들은 이미 독일군과 유대군이 싹쓸이한 다음이었다.
결국, 일본군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벌레가 지적한 참담한 이동거리로 나타난 것이었고.
한참동안 부하지휘관들의 정강이를 차대는 것으로 화를 푼 무다구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군 포병대는 지금 즉시 이 위치에 92식 10cm 가농포(九二式十厘加農砲-Cannon)들을 방열한다! 이 정도 사거리면 가농포들에게 무리는 안 갈 것이다! 당장 실시해!”
“핫!”
“그리고 적진에서 6km 덜어진 지점에 96식 150mm 곡사포(九六式十五 榴 砲)들을 배치한다!”
“핫!”
“그리고 적진에서 4km 떨어진 곳까지 전진해 94식 산포(九四式山砲)들을 배치한다! 산포 지휘관! 오이! 오카다!”
“핫!”
“내일 정오까지 가능하지!”
“핫!”
오카다의 대답을 들은 무다구치는 다른 포병부대 지휘관들을 노려봤다.
“나머지 놈들도 마찬가지야! 내일 정오까지는 모든 준비를 끝내 놓도록!”
“핫!”
“보병들은 내일 정오까지 적진 앞 4km 지점까지 전진한다! 그 동안은 92식 가농포들이 나서서 엄호하도록! 곡사포들도 마찬가지! 지정위치에 방열을 끝내자마자 적진을 타격, 전진하는 보병들을 엄호한다!”
“핫!”
무다구치는 신이 나서 명령을 전파했다.
“지정 위치에 도착한 보병들은 해가 질 때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해가 지면 바로 석식(夕食)을 취식(取食)하고 바로 이동을 개시 내일 새벽 02시까지 적어도 적진 최전선 500m까지 진출해 대기한다! 03시 정각 방열과 휴식을 끝낸 모든 포병대는 일시에 적의 전방 경계선을 타격해 구멍을 뚫고 보병대가 그 구멍을 통과해 적진을 유린한다! 잘 알아들었지!”
“핫!”
“어서 움직여!”
무다구치의 호령에 부하들은 우르르 흩어져 자신들의 부대로 달려갔다.
부하들을 보낸 무다구치는 지평선 너머 미군들이 있는 곳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 작전으로 내 출세는 정해졌다!”
한편, 자신들의 부대로 돌아가는 지휘관들은 벌겋게 부어오른 정강이를 쓰다듬으며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멍청이! 이미 출발 전에 다 설명을 해 놓고 또 떠들어 대다니! 누굴 바보로 아는 건가!”
카나저. 한국군 주둔지.
벌레가 지휘하는 드론 통제실에는 원 준장과 송 소장을 비롯해 한국군 지휘부들과 미군 지휘관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드론을 통해 일본군의 움직임을 살피던 벌레는 피식 웃으며 원 준장을 돌아봤다.
“무다구치 이 양반은 진짜로 훈장을 줘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
“가장 큰 야포가 위치한 곳이 우리 진지부터 10km 떨어진 지점입니다. 나머지 야포들은 보병을 따라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보다 구경이 작은 야포들은 저것들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자리하겠군 ”
“그렇습니다. 어디 매복하거나 엄폐할 곳이 없는 사막 한복판에 저렇게 자리를 잡아 주다니 감사할 일 아니겠습니까 ”
“그렇군.”
벌레의 말에 원 준장은 물론이고 한국군 지휘관들과 통역을 통해 이야기를 듣던 미군 지휘관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시간동안 그들이 상대했던 독일군들과 유대군들은 지금 일본군이 보이는 행태와 정반대로 움직였었다.
얼마나 야포들을 꽁꽁 숨겨 놓았는지 그들이 발사를 하기 전까지 벌레의 드론으로도 찾지 못했던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어쨌거나 일본군이 교전권역에 들어오자 한국군과 미군지휘관들은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저놈들이 언제 덤벼들 것 같습니까 ”
“일본군의 주특기가 야간돌격이니만큼… 아마도 모레 내일 자정부터 이른 새벽이 가장 유력할 것이오.”
이청천의 대답에 중년의 미 장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대로 된 휴식도 안 취하고 말입니까 ”
미군 장성의 물음에 이청천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행동하면 일본군이 아니오. 중국군이 일본군에게 연전연패한 것은 중국군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일본군의 저런 방식에 허를 찔렸던 것도 크오.”
“하지만 저것은 일종의 기책입니다. 미리 대비만 잘 하면 충분히 대비가 가능하고 오히려 적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걸 못했다는 게 중국군의 문제였지. 정확히 말하자면 부대마다 능력의 편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 문제였소. 그건 상해전투만 봐도 알 수 있지.”
이청천의 말 그대로였다.
1937년 상해 공방전의 그 유명한 오송 상륙전에서 장개석 직계의 국민당군은 단 한 시간동안에 1만의 일본군을 살상시키고 당시 일본군 사단장이 후퇴를 고려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만드는 일을 벌였었다.
문제는 이 상해전투에서 결국 75만의 중국군은 1/3도 안 되는 일본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패배를 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중국군의 문제는 유능한 부대는 유능하지만 무능한 부대는 한없이 무능한 오합지졸이었고, 더해서 무능한 부대가 유능한 부대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이었다.
“아, 이야기가 옆길로 샜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일본은 중국군에게 너무 길들여졌다고 보면 되오. 착검돌격만하면 승리를 한다고 믿고 있지. 거기에 더해 야간이면 최고고.”
“그래서 야간 돌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
“그렇소.”
이청천의 대답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미군 장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군님의 의견에 동의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야습에 대비를 해야 하겠군요.”
“그 전에 일본군의 포격부터 대비를 하는 것이 순리요. 아무리 일본군이 멍청하다고 해도 아군 포대의 공격범위 안에서 무방비하게 이동을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오.”
“당연한 말입니다. 포격에 대비해 참호들의 방비를 강화시켜야겠습니다. 그리고 대포병사격도 준비하고 말입니다.”
“그렇소이다. 우리도 준비하겠소.”
이청천과 미군 장성 사이의 대화를 듣던 벌레가 작게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하아~. K9과 니미럴에스(MLRS의 속어 별명)가 그립다.”
아직까지는 전함의 함포들을 제외하고는 20km가 넘는 사거리를 가진 대구경화포가 거의 없는 1940년대였다.
덕분에 사단 또는 군단의 작전범위가 벌레가 조종하는 드론의 조종범위 내라는 장점도 있었지만 말이다.
벌레와 부하들은 교대로 24시간 내내 드론들을 조종했다.
“드론들, 저거 소모품인데 재고는 충분하냐 ”
원 준장의 물음에 벌레는 짧게 대답했다.
“아직 컨테이너의 3/4 정도 남아있습니다.”
“그동안 굴려 댄 것 치고는 많이 안 썼다 ”
“블랙마켓에서 최대한 검증된 애들로만 골라 채웠잖습니까 덕분에 돈은 좀 깨졌지만.”
“그냥 정품 사도 됐었는데.”
“스파이웨어 착실하게 깔린 애들 쓰자고요 ”
“어차피 지금은 상관없잖아 ”
“1941년으로 안 넘어왔으면요 ”
“…”
* * *
벌레와 부하들이 철야근무를 한 덕에 한국군과 미군들은 일본군의 움직임을 손금 보듯이 볼 수 있었다.
12시가 되자 가장 후방의 대구경 야포들이 있는 곳을 관측하던 벌레의 부하가 보고를 했다.
“대구경 야포들이 있는 곳에서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부하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옮긴 벌레는 모니터의 영상을 확인하고 무전기의 키를 잡았다.
“여기는 벌레! 모두에게 알린다! 포격경보! 포격경보!”
벌레의 경보와 동시에 카나저의 모든 곳에서 요란하게 종소리가 울렸다.
막 점심식사를 하다가 경보를 들은 병사들은 먹던 것들을 내던지고 대피호로 달려 들어갔다.
“야! 이 시국에도 먹을 것을 챙겨 갖고 들어오냐!”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더라!”
물론 그 와중에도 식탐을 이기지 못하고 먹던 것들을 다 챙겨서 들어온 병사들도 있기는 했다.
쾅! 쾅!
잠시 후, 일본군이 쏜 포탄들이 미군과 한국군의 외곽 경계선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피해는 없었다. 떨어지는 포탄의 수도 적었고, 무엇보다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대피호에 들어앉은 한국군 지휘관들은 원인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그 수가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겨우 20문입니다. 20문이 한곳에 몰아서 치는 것도 아니라 전선 전체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밀도가 너무 낮아요. 다음으로는 결과를 보고 수정을 할 놈들이 아직 이곳까지 오지 못했지 않습니까 어림짐작으로 쏴대는 포탄이라면 럭키샷 외에는 큰 피해를 주지 못할 겁니다.”
“보고합니다! 식량저장고에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싱글싱글 웃으며 설명을 하던 원 준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이 빌어먹을 놈들!”
욕설을 내뱉은 원 준장은 유선통신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벌레야! 좌표 땄냐! 땄으면 155mm포병대에 전해! 이 빌어먹을 새끼들을 당장 조져버려!”
수화기 너머로 원 준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벌레는 이미 기록해 두었던 좌표를 155mm 포병대에 전달했다.
아이젠하워에게서 빌려온 M59 155mm 평사포 대대의 18문이 전달된 좌표로 포를 조준했고 초탄사격과 좌표수정을 거쳐 일제사격을 시작했다.
잽들을 때려잡는다고 신이 난 평사포 대대의 포병들은 신이 나서 포들을 쏴댔고, 그 결과 일본군의 92식 가농포 진지들과 그 인근 지역은 쑥밭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