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140화 늪 (19)
무다구치의 계획을 도조가 받아들이고 일주일 후, 이청천이 한국군 지휘관들을 소집했다.
“미군의 정찰기가 일본군의 움직임을 포착했소.”
이청천의 손짓에 회의실의 창문에 두터운 커튼이 쳐졌고, 스크린에 슬라이드 사진이 떠올랐다.
연속해서 올라오는 슬라이드 사진들에 나타난 일본군의 대형을 관찰한 지휘관들은 의견을 나누었다.
“트럭은 거의 안 보이는군.”
“일본군이잖소 ”
“그런데 대형 야포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
“저기 저쪽에 있소이다.”
“전차들은 ”
“이쪽에 경전차들이 있습니다.”
“이보게. 그거 중(中)전차일세. 국민당 병사들이 저것 때문에 속을 썩었지.”
“경전차 아니었습니까 ”
이런저런 의견교환이 이어진 후, 한국군 지휘관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 최대 4만의 보병부대.
- 대형 야포 약 20문, 중(中)전차 약 40대, 80여대로 추정되는 트럭들은 보급용도로만 사용되는 듯.
“4만이면 중동에 도착한 일본군의 거의 절반을 동원하는군.”
이청천의 지적에 송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 일본군들만 제대로 처리한다면 이곳에서 일본군은 제대로 힘을 못 쓸 것입니다, 비슷한 수의 일본군들이 채워질 즈음에는 미군 잠수함들이 본격적으로 사냥을 개시할 때니 말입니다.”
송 소장의 말에 이병석이 딴죽을 걸었다.
“과연 그럴까 심각한 손실을 입은 일본군이 손을 털고 나갈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이병석의 지적에 원 준장이 앞으로 나섰다.
“일본군은 독일과의 연결통로를 절대 손을 놓지 않을 겁니다. 아니, 손을 놓지 못합니다. 독일의 기술과 기계를 손에 넣으려면 말입니다.”
“그게 없었어도 일본은 중국을 거의 손에 넣었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상대로 나섰지요.”
뼈있는 원 준장의 대답에 이병석은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이청천은 아무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 일본군들이 어디로 올 것 같은가 ”
이청천의 물음에 원 준장과 송 소장은 지도를 살폈다.
자를 들어 거리를 계산하고, 이런저런 의견을 교환한 원 준장과 송 소장은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는 이청천에게 보고했다.
“카나저입니다.”
“카나저 ”
원 준장은 이청천에게 왜 카나저인지 설명을 했다.
- 현재 전선은 사라큅(Saraqib)- 아들리브- 엘 제누디야- 엘 아위사이야로 이어지고 있다.
- 해당전선의 지원을 위해서라면 일본군이 사막으로 나설 필요가 없다.
- 일본군 지휘관의 성격 상, 일본군만의 독자적인 전공을 노릴 것이다. 따라서 일본군은 독자적인 공세방향을 정해 움직일 것으로 봐야한다.
- 그렇다면 일본군은 언제나 그렇듯이 연합군의 측면을 노릴 것이다.
- 제아무리 멍청한 일본군이라도 장거리 사막행군은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중간 보급기지 및 휴식을 취할 거점이 필요하다.
- 그렇다면 제일 유력한 지점은 카나저 밖에 없다.
원 준장의 대답을 들은 이청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렇다면 카나저가 제일 유력하겠군.”
“거기에 더해 카나저는 연합군의 우익 끝입니다. 거기를 점령한다면 일본군은 연합군의 옆구리나 뒤통수를 노리고 들 것입니다.”
원 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청천은 지휘관들을 돌아봤다.
“그럼, 우리 군은 일본 놈들이 카나저를 점령한 다음 들이칠까 아니면 미리 점령한 다음 몰려오는 놈들을 받아칠까 ”
이청천의 물음에 송 소장이 가장 먼저 대답을 했다.
“먼저 가서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먼 곳에서 손님이 오시는데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송 소장의 말에 이병석이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점령한 다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수가 적기는 해도 일본 놈들이 대형 야포를 끌고 오는 이상, 우리가 먼저 고정표적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군이 점령한 다음 치고 들어가는 경우 역시 야포의 표적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미리 진을 치고 앉아 든든한 대피호를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일본군의 특성을 생각하면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이 낫습니다! 자신들이 점령해야 할 목표의 방비가 튼튼하다고 지레 포기하면 그건 일본 놈들이 아닙니다. 그놈들은 다 쓸어 넣어서 더 이상의 여력이 없을 때까지 병력을 밀어 넣을 겁니다!”
“병력의 차이를 생각해 봐! 아무리 우리 화력이 우월하다고 해도 4만을 상대로 방어전은 무리야! 결국은 밀려날 거다! 차라리 밀집한 일본군들을 상대로 화력전을 벌이는 것이 나아!”
“왜 우리 단독전투만을 상정하는 겁니까 미군도 있습니다. 모자라는 머리수는 미군을 채우면 됩니다!”
“일본 놈들을 상대하는 거야! 이걸 왜 미군들한테 양보를 하나!”
“양보가 아닙니다! 같이 싸우자는 거지요!”
‘먼저 가서 기다린다.’, ‘도착한 다음 들이친다.’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한참동안 이어진 갑론을박을 지켜보던 이청천이 소리를 질렀다.
“그만! 조용!”
이청천의 명령에 회의실 안은 조용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청천은 지휘관들을 돌아봤다.
“의견들은 잘 들었고, 이제 결론을 내리겠소. 우리 군은…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것으로 결정하겠소.”
“알겠습니다.”
이청천이 결정을 내리자 지휘관들은 다들 승복을 했다.
시간을 확인한 이청천이 지휘관들을 돌아봤다.
“아이젠하워와 협의를 해야 하니 내일모레 새벽 04시에 출발하겠소. 모두 시간에 맞춰 제대로 출발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하도록.”
“알겠습니다!”
“해군은 필리핀과 동경 폭격, 페르시아 만 해전을 통해 3차례의 승전을 거뒀소. 이제 육군의 차례요. 청산리의 승전을 기억하시오! 일본군에게 한국군의 무서움을 각인시키시오!”
“알겠습니다!”
“해산!”이청천의 해산명령을 끝으로 지휘관들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날 밤, 원 준장의 텐트를 찾은 송 소장은 푸념을 터뜨렸다.
“내 요즘처럼 자네들이 원망스러운 적이 없어.”
“무슨 말씀이신지 ”
“필코 세이프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들어왔던 친구들, 자네들이 아프리카에서 족쳐 버린 친구들 말이야. 그 친구들만 있었어도 이병석 장군과 그 라인을 죄다 뒷방늙은이들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
요즘 들어 점점 더 딴죽을 걸어 대는 빈도가 늘은 이병석 일파를 언급하며 송 소장이 투덜거리자 원 준장이 고개를 저었다.
“이병석 라인의 문제는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만, 그때 명퇴시켜 버린 친구들이 유용했을 거라는 점에 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온실 속의 화초들이었어요. 당시 아프리카에서 벌였던 작전은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 정도 스트레스를 못 이기는 인재들이라면 지금과 같은 대규모 소모전과 장기전의 압박을 못 이깁니다.”
“육사에서부터 제대로 된 정규전 교육을 받았던 이들이네.”
송 소장의 반론에 원 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론만 빠삭할 따름이지요. 그리고 전원 육사출신이라… 이것도 문제입니다. 이병석 라인도 문제지만 또 다른 파벌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하나회를 다시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
“그건 안 되지….”
“차라리 실전을 거친 이들을 교관으로 해서 새로운 인재풀을 만드는 것이 낫습니다. 이병석 라인은 독립이 된 다음에 사회로 밀어내 버리고 말입니다. 다들 정치 좋아하니 정치나 하라고 말이지요.”
이틀 뒤, 밤 2시부터 한국군의 진지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빨리빨리 짐 챙겨라!”
“빼놓고, 흘리고, 까먹고 나중에 고생하지 말고 단단히 챙겨!”
“연료와 식수, 탄약 재고 확실히 체크해!”
“이 자식아! 탄약 수량 체크하라고 했지, 네놈 양말 개수 체크하라고 했냐 ”
지적과 명령, 뻘소리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확인까지 끝낸 한국군들은 전원 차량에 올라탔다.
“전원 출동준비를 끝냈습니다!”
보고를 확인한 이청천은 자신의 차량에 올라탔다.
“그럼 출발!”
이청천의 명령과 동시에 한국군의 차량들이 줄지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한국군과 함께 일본군을 타격하는 임무를 맡은 미군들을 태운 트럭들이 자신들의 주둔지에서 열을 지어 출발하기 시작했다.
* * *
한국군과 미군이 움직인 다음 날.
뜨거운 뙤약볕 아래 힘겹게 행군하는 일본군들의 행렬에 일단의 차량들이 접근했다.
갈고리십자가가 새겨진 군기를 펄럭이며 도착한 차량에서 모래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군인들이 내려 일본군들에게 걸어왔다.
“독일 제78기동타격대 지휘관 아인스 대위다. 카나저에 대한 중요정보가 있어 지휘관과 만나고 싶다.”
허겁지겁 달려온 통역병의 통역을 통해 독일군의 용건을 들은 일본군은 그들을 대열 후방으로 안내했다.
“카나자에 미군이 있다고 그건 이미 아는 사실 아니던가 ”
“그게 상당규모로 증원되어 있다고 합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당규모라면 어느 정도야 정확하게 말하라고 해!”
무다구치의 윽박지름에 통역은 진땀을 흘리며 아인스 대위에게 통역을 했다.
아인스 대위의 대답을 들은 통역은 무다구치에게 보고를 했다.
“약 1개 보병사단 정도로 보인다고 합니다! 기존의 카나자 방어 병력은 새롭게 도착한 병력들과 교대를 해 후방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통역의 보고를 들은 무다구치는 코웃음을 쳤다.
“흥! 겨우 1개 보병사단이 무에가 대수라고! 통역! 그 정도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전해!”
무다구치의 말을 전해 들은 아인스 대위는 추가로 설명을 했고, 통역은 충실하게 통역을 했다.
“보병사단이라고는 하나 전차 대대가 항시 배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차는 우리도 있어!”
“거기에 한국군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군 그건 또 뭐야 ”
무다구치의 물음에 참모 하나가 설명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후레이센진(不逞鮮人, 불령선인)의 단체가 있습니다. 그들의 무장병력인 듯합니다.”
“그래서 그 한국군의 병력이 얼마나 되기에 주의하라고 하는 거지 ”
“1개 여단 정도라고 합니다.”
통역의 대답에 무다구치는 웃음을 터뜨렸다.
“푸핫! 겨우 1개 여단 병력 때문에 주의하라고 하는 건가 통역, 내 말 잘 전하도록. 걱정해줘서 고마우나 우리 대일본제국의 육군은 누구처럼 겨우 그 정도에 겁먹을 병신들이 아니라고 말이야!”
통역의 대답을 들은 아인스 대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본 제국 육군의 무운장구를 빈다고 합니다.”
통역의 대답에 무다구치는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당케(Danke)!”
무다구치에게 경례를 한 아인스 대위는 몸을 돌려 자신의 부하들에게 돌아갔다.
퀴벨바겐에 오른 아인스 대위는 일본군의 행렬을 바라봤다.
보병들 사이에서 천천히 이동하는 97식 전차의 모습을 본 아인스 대위가 상큼하게 미소를 지으며 일본군을 비웃었다.
“병신, 멍청이들… 저것도 전차라고….”
적진에 한국군이 있다면 자신들의 자랑인 티거 전차도 몸을 사리는 상황이었다.
저런 알량한 전차라면 한국군의 전차가 아니라 셔먼만 나서도 탈탈 털릴 것이라는 걸 무시하는 일본군의 행태에 가볍게 고개를 저은 아인스 대위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우리 할 일은 다했다! 본부로 돌아간다!”
“야볼!”
독일군들은 태운 퀴벨바겐과 시보레 트럭들은 핸들을 돌려 일본군과 헤어졌다.
일본군들과 헤어지기 직전 독일군 하나가 일본군을 향해 소리쳤다.
“Sei vorsichtig mit der Mauer von Jericho!”
독일군의 외침을 들은 일본군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고함을 들은 일본군 하나가 앞에 서있던 일본군에게 질문을 했다.
“야, 샌님! 너 대학에서 도이치어 공부했다고 했지 저 도이치 놈이 뭐라고 떠든 거냐 ”
“잘못 들었습니다만… 여리고 어쩌고를 조심하라고 한 것 같습니다.”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질문을 던진 일본군은 대답을 한 일본군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병신 새꺄! 그거 하나 제대로 못 알아들어! 어쩌자고 이런 식충이가 군대에 들어온 거야!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병신이!”
“죄, 죄송합니다!”
“똑바로 걸어, 병신 새꺄!”
“하, 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