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139화 (139/464)

# 139

139화 늪 (18)

“레프가 화가 많이 났나 보군.”

레프가 보낸 보고서를 읽은 히틀러는 입술을 묘하게 말아 올리며 냉소가 가득 섞인 어조로 평가를 내렸다.

처음 페르시아 지역 방면군 사령관 후보에 레프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막상 해당 전선을 총괄할 사령관을 찾으려고 보니 적당한 인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젊은 장성들을 진급시키자니 적어도 20만 이상의 병력을 운용해 본 경험이 없었고, 거기에 더해 무게감도 없었다.

이런저런 고심 끝에 히틀러는 2선으로 물러나 있던 레프를 다시 불러들여야 했다.

레닌그라드 전투에서 보인 항명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충성심과 경력에서 주는 무게가 있었기에 히틀러는 결재서류에 사인을 했다.

그렇게 페르시아 전선에 부임한 레프는 미군이 오기 전까지는 착실하게 전공을 쌓아 히틀러를 만족시켰다, 미군이 오기 전까지는.

그런 레프가 보낸 일본군 관련 보고서를 보았을 때, 히틀러는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이거 아주 걸작이군!”

레프가 보낸 보고서의 내용은 일본군에 대한 혹평이었다.

-일본군의 장비와 무장상태는 매우 열악하다. 병사들의 개인무기인 typ99(99식) 소총의 경우, 무난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무장들의 경우, 특히 부사관 이상에게 지급되는 장비의 경우 권총과 군도, 또는 소총밖에 없다. 우리 독일군이 사용하는 SG-42 또는 기관단총의 부재는 부사관과 초급 장교들의 생존에 문제가 되며, 이는 최하부 지휘 효율에 문제가 된다.

-통신기의 상태 또한 마찬가지이다. 유선통신장비의 경우 음질이 좋지가 않다. 무선 장비의 경우 성능에 비해 크기가 크며, 성능 또한 열악하다. 연대 규모 이상의 집단에서 사용하는 대형 무전기의 경우는 어느 정도 사용가능하나, 말단제대에 사용하는 장비는 고철과도 같다.

-전력의 핵심인 기관총의 수와 성능 모두 부족하다. typ92(92식) 중기관총을 보면 발사속도, 신뢰성, 지속발사탄수, 운용방식 모두 독일군에 비해 열등하다. typ99(99식) 경기관총의 경우 성능은 영국군의 브렌, 체코슬로바키아의 VZ.26과 비슷하나 수가 부족하다.

-전차는 고철에 불과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군 병사 자체다. 일본군은 군기의 유지를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 일본군은 병영 내에서 극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이는 하부로 내려갈수록 강도가 급격하게 상승한다. 이는 민간인에 대한 범죄로 이어지며, 동일지역에 주둔하는 독일군과 유대군과 비교해 절대적으로 높은 범죄 발생건수를 기록하는 요인으로 파악된다.

-일본군의 교리 역시 문제가 크다. 일본군의 교리는 아직도 1차 대전 당시 수준이다. 일본군이 강조하는 ‘돌격정신’은 1차 대전 초기 프랑스군의 ‘공격 정신(Attaque a outrance)’과 동일하다. 이러한 교리를 고집한 결과, 현지 도착한 일본군은 사격훈련보다 착검돌격훈련을 집중적으로 훈련하고 있다. 적이 대량살상이 가능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을 때, 이런 돌격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오는지는 1차 대전에서 이미 증명하고 있다.

-일본군의 지휘 역시 문제가 크다. 전략이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면 전술은 유동성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일본의 전술은 극도로 경직되어 있다. 최전선의 전투현장을 지휘하는 초급 지휘관들에게 취사선택의 자유는 없으며 오직 위에 서술한 돌격정신에 의한 돌격만이 가능하다.

이는 ‘임무형 지휘체계’를 선택한 우리 독일군과 유대군과 정반대의 선택이다.

-결론. 상기한 문제점에 근거해 일본군과 독일군, 유대군의 협동작전은 오히려 더욱 많은 피해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불가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페르시아 전선에서 일본군을 가장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자면, 미군의 취약지구에 돌격을 감행시켜 미군의 물량을 소모시키고 피로를 누적시켜 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레프의 보고서를 읽으며 웃음을 터뜨린 히틀러는 다른 장성들에게 보고서를 내밀었다.

“레닌그라드 전투를 생각해 봤을 때, 군기관련이나 민간인에 대한 범죄측면은 레프의 결벽증 때문으로 생각해야겠다. 하지만, 다른 부분은 많이 생각을 해 봐야겠군. 특히나 돌격정신 부분은….”

말을 갑자기 멈춘 히틀러의 표정은 험악했다, 그 역시 지옥 같은 1차 대전의 소모전을 겪은 이였기 때문이었다.

험악한 얼굴로 사색에 빠져있던 히틀러는 곧 평정을 되찾고는 말을 이었다.

“명령서를 작성하도록. 수신자는 레프. 내용은 ‘우리 독일의 귀중한 동맹국의 군대니 독자적인 작전권을 부여하고 지원을 할 것. 단, 현재 전선과 우리 군의 상황에 악영향이 가는 것은 최대한 피하라.’ 수렁에 빠지는 것은 일본군 하나로 족해. 레프 말처럼 적당한 소모품으로나 써먹어야겠군.”

레프에게 보낼 명령서의 작성을 명령하는 것으로 페르시아 전선에 대해 신경을 꺼버린 히틀러는 다른 전선들의 상황을 주제로 회의를 이어 갔다.

*    *    *

히틀러의 명령서를 전달받은 레프는 다음 날, 도조를 초대했다.

“총통께서 명령서를 보내셨소. 추축동맹의 동맹국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귀국의 독자적인 작전권 행사를 허가하셨소이다.”

“당연한 일 아니겠소 ”

도조의 거만한 대답에 레프는 물론이고 동석한 독일군과 유대인 장교들의 표정이 사나워졌지만, 레프의 작은 손짓에 다들 억지로 표정을 풀어야 했다.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억지로 표정을 푼 레프는 지도가 있는 곳으로 도조를 안내해 이야기를 진행했다.

“어느 전선을 담당하시겠습니까 ”

레프의 물음에 도조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아직 연구 중이오. 정해지는 대로 바로 알려 드리도록 하겠소.”

“알겠소이다.”

“그럼 이만.”

가볍게 목례를 한 도조는 목에 힘을 잔뜩 준 채 레프의 사령부를 벗어났다. 그런 도조의 뒷모습을 본 레프가 이를 갈았다.

“건방진 놈!”

*    *    *

일본군 주둔지로 돌아온 도조는 바로 지휘관들을 소집했다.

무다구치를 선두로 일본군의 고급 지휘관들이 착석을 하자 도조가 입을 열었다.

“드디어 저 건방진 레프가 백기를 흔들었다. 히토라 총통이 우리에게 독자적인 작전권을 약속했다.”

“당연한 일입니다! 어디서 일개 전선 사령관이 망발을!”

무다구치를 시작으로 일본군의 지휘관들은 레프를 비롯한 독일군 지휘관들을 성토했다.

“그만.”

도조가 손을 들며 정지를 명령하자 일본군 지휘관들의 입이 즉시 닫혔다.

입을 다문 지휘관들을 돌아보며 도조가 말을 이었다.

“히토라 총통이 독자적인 작전권을 약속했지만 우리가 군공을 세우지 못한다면 이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거기에 더해 중앙아시아 지역과 페르시아 지역의 자원지대 분할에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다! 해서 우리는 저 건방진 도이치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전공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제군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도조의 명령에 지휘관들은 지도를 노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회의실에는 침묵만이 감도는 가운데 눈치를 살피던 무다구치가 냉큼 입을 열었다.

“하마를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하마 ”

무다구치가 하마를 언급하자 도조와 지휘관들은 지도에서 하마를 찾기 시작했다. 하마를 찾은 지휘관들은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멉니다!”

“지나(支那, 중국)라면 모를까, 사막 지대에서 이 정도 거리를 전진한다는 것은 충분한 준비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현재 아군의 보급능력을 생각하면 무리입니다!”

“아니지, 지나라면 이 정도 거리는 별 문제가 없었지. 하지만, 이곳에서는 문제가 돼. 도조 총사령관! 이 거리를 움직여 미군을 공격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사방에서 반대 의견이 튀어나왔지만, 무다구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곳을 공격해야 하는 겁니다! 미군도 사막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미군은 눈앞에 버티고 선 도이치 군과 유다 군만 생각했지, 우리를 염두에 두지는 않고 있을 겁니다! 이 허점을 노리는 것입니다!”

어느새 자를 꺼내 거리를 계산해보던 장군이 무다구치의 의견에 반박을 했다.

“하지만 말입니다. 무다구치 장군! 180km가 넘는 거리입니다! 그것도 사막입니다! 탄약이야 병사들이 휴대하고 간다고 하지만, 식량과 물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거기에 야포들은 어떻게 운반을 할 것이고 말입니다! 하마는 너무 멀어요!”

뒤를 이어 무다구치의 의견에 대한 반대의견이 줄을 이었다.

잠자코 반대 의견을 듣던 무다구치가 폭발을 했다.

“이 바보들아! 누가 하마로 직진하자고 했나! 사람이 말을 하면 끝까지 들어! 거리는 조금 늘어날지 모르지만 우선 카나자를 점령한다! 거기에 충분한 보급물자를 쌓은 다음, 하마를 친다!”

“카나자 역시 사막지대를 지나가야 합니다!”

“하마까지 가는 거리의 절반 밖에 안 돼! 90km도 못 간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네놈들이 대일본제국의 육군이냐! 이 나약한 녀석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무다구치는 지휘관들을 노려보며 열변을 토했다.

“일러전쟁 당시 위대한 제국육군을 떠올려 보라! 머나먼 만주의 삭풍이 몰아치는 황야에서 몇 배나 되는 러시아군을 연전연패 시켰던 위대한 제국육군의 기개를 생각하라! 뤼순 공방전에서 203고지를 향해 시체의 탑을 쌓으며 돌격해 결국 203고지를 손에 넣은 제국 육군을 생각해 보라! 네놈들은 이러한 기개를 잊은 것인가! 네놈들은 사관학교에서 무엇을 배운 것이냐! 의지야말로 모든 것을 초월한다! 승리를 향한 강고한 의지! 그것은 야마토혼(大和魂)! 군기엄정, 정강용맹한 제국군인의 근본은 야마토혼(大和魂)! 이 위대한 야마토혼 앞에 얄팍한 서구의 물질문명이 이길 것 같더냐!”

“하지만 자연환경이….”

“나약한 소리 하지 말라니까! 저 미개한 아랍 원주민들도 살아온 곳이다! 잘 훈련받은 제국육군이 어째서 나약한 소리만을 하는 것이냐! 그럴 것이면 차라리 군에서 나가라! 너 같은 나약한 놈들이야말로 이 위대한 대일본 제국 육군의 암 덩어리들이다!”

“하지만….”

“나약한 소리 하지 말라니까! 그런 나약한 소리를 하면 조상들이 돌봐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나! 야스쿠니에 계신 군신들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승리를 향한 강고한 의지와 군신들의 가호 아래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광기에 가까운 무다구치의 발언에 지휘관들은 입을 다물고 도조만을 바라봤다.

좌중의 시선을 의식한 도조는 옆자리에 앉은 부사령관 스기야마 하지메를 돌아봤다.

“스기야마, 어떻게 생각하나 ”

“무다구치군이 저렇게 자신만만해 하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스기야마의 대답을 들은 도조는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무다구치 장군의 의견을 기반으로 작전을 세우도록 하지. 단, 1차 목표인 카나자의 공략 결과를 보고 다음을 진행하겠다. 무다구치, 진정 자신 있나 ”

도조의 물음에 무다구치는 깍듯하게 목례를 하며 대답했다.

“승리로 대답하겠습니다!”

먼 훗날, 당시 전투에 참가한 지휘관들 가운데 한 명은 자신의 회고록에 이 사건을 기록하며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그날, 무다구치를 총으로 쏴 죽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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